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잘지내나요, 미숙씨?

이동헌200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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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날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날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핸드볼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승부던지기 끝에 은메달을 땄고 그 덕에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이 후끈 달아올랐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기억은 멈추었다. 아마도 은메달이 기억을 멈추는 촉매제가 되었으리라. 우리는 2등을 기억할 만큼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이 멈춘 바로 그 지점부터 미숙씨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스포츠 영화를 보아왔고 그 속에서 일정한 규칙들을 익히 체득하고 있다. 이 같은 일정한 규칙을 장르라 부른다면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다분히 장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박빙의 승부(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지 않던가)도 없고, 상대팀에 대한 어떠한 정보(대부분 악당으로 묘사되곤 하는)도 없고, 무엇보다도 최후의 승리도 없다. 그러니 핸드볼로 은메달을 딴 얘기거리가 영화로 만들기에는 적당한 찰흙덩어리는 아닌 게 분명하다. 따라서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스포츠를 가지고 진짜 사람 사는 얘기 한번 들어 보라는 거다. 그건 임순례 감독의 전작인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무수한 노래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음악영화가 아닌 것과 똑 같은 얘기다.

 

  대학을 들어가지 못한 백수 친구들의 이야기<세친구>, 인기도 없이 소도시의 밤무대를 전전하는 밴드의 이야기<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심지어 구린내까지도 맡아야 했던 그녀의 전작들처럼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도 제목과는 달리 가슴 벅찬 희망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숙의 삶도, 혜경의 삶도, 정란의 삶도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애 최고의 순간이 지나도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는 것. 그렇다면 그 순간이란 무의미한 것일까? 그 순간을 위한 노력은 부질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이 영화를 온전히 보게 되는 것일게다.

 

  나는 이 영화가 &#-9;최고&#-9;가 아니라 &#-9;순간&#-9;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9;최고&#-9;는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승부던지기는 실패했고 그녀들은 아마도 쓸쓸히 귀국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9;순간&#-9;들을 우리는 목격한다. 혜경이 감독자리에서 쫓겨 나지만 선수의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 미숙이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 경기장으로 돌아온 순간. 장보람이 부상을 입고도 경기에 뛰겠다고 얘기하는 순간. 우리가 목격한 바로 그 순간 그녀들은 최고인 것이다. 그 순간은 그녀들이 선택한 순간이다. 그녀들이 최고라고 생가한 일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생각해보라. 내 생애 최고라고 생각한 일에 대해 선택한 순간이 많은지, 아니면 그냥 뒤돌아선 순간이 많은지. 가슴 벅찬 사랑 앞에, 부모님의 고마움 앞에, 가족의 애정 앞에, 우리 옆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도움의 손길 앞에, 그리고 당신의 꿈 앞에 당당히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용기있게 선택했던가?

 

  순간은 흘러가면 끝이다. 순간이 지나고 나면 삶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계속될 것이다. 혜경은 일본에서 다시 감독 겸 선수생활을 할 것이고, 정란은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해주는 남편과 식당에서 물수건으로 슛을 던지며 살아갈 것이고, 미숙은 마트에서 야채를 팔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지난하다. 그러나 그때 그녀들이 선택한 순간이 나머지 삶을 지탱해 줄 것이다. 그 순간 그녀들은 최고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를 생각한다. 지금 이순간이 내 생애 최고를 만들 수 있는 순간임을 알기에 최고가 될 수 있는 지금,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뒤돌아 도망가지 않고 당당히 지금 이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나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