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민법
근대 영국에서 빈민은 어떻게 학대받고 통제되었는가?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빈곤은 인생살이를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극심할 경우에는 생명 자체를 빼앗아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빈곤은 특이하게도 빈곤하지 않은 상태와 견주어 볼 때에만 그 실체를 인식할 수 있고, 인간의 욕심이란 한이 없어서, 부유함 또한 가난한 모습을 거꾸로 투영할 때에만 인식할 수 있다. 서양의 역사에서 잘 알려진 영특한 이론가들은 실체를 규명하기 어려운 빈부 상태를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두 부류 혹은 세 부류로 나누어 계급에 관련된 이론을 제시했고, 이들은 아울러 계급 갈등 해소의 비법까지 알려주었다.
절대적 혹은 상대적 빈곤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태초부터 공존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 이 문제에 관하여 이해가 가장 빨랐던 영국에서도, 빈민에 관한 본격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는 놀랍게도 19세기 중반에 들어와서야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빈민들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거나 그저 측은한 사람들로 여겼고, 때로는 이들을 낭만적인 대상으로까지 생각했다. 어차피 인간 사회에서 없앨 수 없는 빈민들이기에, 지배 계층은 이들을 사회에서 제거하기보다는 도덕이나 종교를 통하여 제어할 수 있기를 원했고, 이런 고매한 방법이 실효성이 없을 때에는 강제적인 법을 만들어 기존 사회 체제 속에서 이들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에서 나타난 빈민 통제의 역사는 약 5백년 이상에 걸친 많은 빈민법(Poor Laws 혹은 Poor Relief Laws)과 사회보장제도의 역사 속에 잘 간직되어 있다.
19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영국 빈민에 관한 조직적인 연구는 George Nicholls의 History of the English Poor Law (1854, 개정판 1904)에서 집대성 되었다. 1900년에 E. M. Leonard가 빈민 구제의 기원과 발전을 종합적으로 언급한 The Early History of English Poor Relief (Cambridge)는 사회학자가 아닌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당시까지 입법된 영국 빈민법 역사의 거의 전모를 소개하였다. 20세기 이전의 영국 빈민에 관한 법제사적인 연구는 니콜스와 레너드의 연구 성과로 거의 완성되었다. 1927년에는 이런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성격의 연구물이 제시되었다. 이 연구물은 학문의 객관성을 표방하여 빈민에 대해 냉냉한 태도를 견지하였던 위의 두 고전과는 달리 빈민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접하고 이들을 위해 사회 정의를 구원하려는 차원에서 빈민을 사회적 현상의 일환으로 파악하였다. 이 책이 Webb 부부의 English Poor Law History였다. 이후, 빈민을 역사의 주요 동인으로 생각하는 마르크스적 해석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국 빈민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서평의 대상이 되는 책이 영국 빈민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서 최초이다. 이 책이 서양사학계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고려할 때 이 글에 제시된 비판은 매우 지엽적인 지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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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문제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사회심리적, 문화적인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살펴” 보기 위해서 매우 포괄적인 책 제목을 사용하였다. 에는 지역, 시기, 주제의 제한이 없다. 저자에게는 빈곤과 복지에 관련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언급할 수 있는 자유가 제목으로부터 부여되었다. 빈민에 관한 사항이라면 어떤 주제도 논의할 수 있는 이 책의 제목을 선정하는 데 저자와 출판사는 고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와 핵심 내용을 고려할 때 평자가 생각하는 이 책의 보다 정확한 제목은 ‘영국에서 빈민 통제의 역사, 1536-1834’로 표현할 수 있다. 평자가 제시한 제목이 좀더 학문적이고 논리적일지는 모르지만, 실은 제목 선정에서 저자는 평자보다 훨씬 더 현명했다. 저자는 요즈음 역사 연구의 큰 흐름으로 부각될 수 있는 문화사, 사회사, 미시사를 표지하는 매혹적인 제목을 사용했고, 어차피 포괄적인 논의를 저술의 목표로 내 건만큼 저자는 독자나 평자의 예민한 비판의 화살을 정당하게 피해 갈 수 있다. 평자가 제시한 제목은 비록 학술적이기는 하지만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 평자가 제안한 학술적인 제목으로 이 책이 출판되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일반인들이 이 책을 구매할 것인가?
흥미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할 때 전문 역사학자들과 학부 학생을 비롯한 일반적인 독자들은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전자는 기존 연구사에 의미를 추가할 수 있는 연구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후자는 역사학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어서 낡고 낡은 내용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처음으로 대하는 역사 서술에 환호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이 책은 전자와 후자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방향으로 저술되었다. 그러나 이런 서술 방향은 잘 못되면 두 독자 계층 모두를 실망시킬 수 있고, 잘 되면 두 계층을 모두를 만족시켜 학문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이룰 수 있는 커다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책 전체라고 하기 보다는 책의 부분에 따라서 독자의 흥미를 다르게 유발할 수 있다. 전문 역사학자들의 경우에 이 책의 처음 1/3은 읽지 않아도 책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커다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빈곤의 상대적 개념과 고대와 중세에 나타난 자선을 다룬 이 부분은 역사학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빈민과 자선에 관련된 해설을 붙였다. 반면에 책의 2/3에 해당되는 제4장 ‘가격혁명과 근대 초기의 빈곤’부터 마지막 결론까지는 역사가들의 흥미를 끌 것이다. 영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영국의 빈민 관련법들을 저자가 어떻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각각의 사건에 저자가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는가를 살펴보는 데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영국사학자 이외의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저자가 본격적으로 영국 빈민 통제의 역사를 소개한 5장부터 많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읽을 수 있다. 반면에 일반 독자의 성향은 전문 역사가들과는 완전히 반대일 수 있다. 이들은 역사가들과는 거꾸로 저자가 빈민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매우 쉽게 해설한 처음 1/3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결론 부분을 제외한 이후 2/3에 해당되는 학술적인 역사 해설에는 상대적으로 흥미를 덜 보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전문역사가와 일반 독자 모두를 상당 부분에서 만족시키고 있다.
평자는 저자의 책 제목과 다르게 ‘영국에서 빈민 통제의 역사’로 책의 성격을 요약하였다. 1900년 무렵에 빈민법에 대한 연구가 처음으로 궤도에 올랐을 때 가장 보편적인 표현은 ‘빈민 통제’가 아니라 ‘빈민 구제(poor relief)’였다. 그러나 저자가 잘 설명했듯이, 역사상 빈민의 개념은 너무 다양하여 많은 경우에 빈민은 구제의 대상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통제 및 처벌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빈민법 입법의 목표는 구빈보다는 빈민의 사회적인 문제 제거에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저자는 구빈이라는 전근대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평자는 영국 빈민법의 역사를 빈민들을 국가적 질서에 강제적으로 순종하게 만드는 ‘빈민 통제의 역사’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빈민과 복지의 역사를 왜 하필이면 영국을 중심으로 하였는가? 저자는 영국의 빈민 통제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틈틈이 유럽 각국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주제는 분명히 영국 빈민법의 역사였다. 저자는 영국을 중심으로 책을 저술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영국은 16세기 전반에 걸친 논의와 몇 차례의 실패를 경험한 끝에 16세기 말(1597-1598)에 이르러 강제적 구빈세를 법률로 규정, 실시하였다. 그러나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는 19세기에 들어서야 전국적인 규모의 강제적 구빈세 제도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p. 167) ... 19세기 통일된 독일에서 새로운 사회복지제도가 출현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유일하게 근대적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했던 국가가 영국이기 때문이다." (p. 171)
영국은 유럽의 다른 국가보다 일찍이 국가적인 정책과 입법을 통하여 빈민을 통제했다. 적어도 산업혁명 이전 시대에는 영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마련된 빈민에 대한 행정의 합리화, 관료화, 전문화에서 선두를 달렸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저자가 빈민 통제의 시점을 튜더 시대로 소개한 것은 저자 자신이 내세운 빈민 관리에서 차지하는 영국의 위상을 스스로 격하시킨 셈이 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영국에서 빈민 통제의 역사는 저자가 제시한 튜더시대 보다 백여 년 이상 앞선 긴 연혁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중세말기의 빈곤을 설명하면서 14-15세기의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노동 능력이 없던 “진짜 빈민”과 그렇지 않은 걸인을 구별했던 예를 들면서 “중세 말기 도시의 자치 정부들이 이미 빈민에 대한 통제를 시작하고 그들에 대한 조직적 사회정책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여 빈민 통제의 역사에서 중세 말기와 근대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가 영국 빈민 통제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에서 중세 말기에 이루어진 빈민법의 법제사적인 기원에 관하여는 언급이 없었다.
영국에서 제정된 빈민법의 직접적인 기원을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1349-1350년의 노동자에 관한 법에서 찾았다. 이 법은 레너드에 의하면 “구빈을 국가적으로 통제하려는 첫 걸음”이었다. 이 법에 의하면 개인은 자신이 선정한 걸인에게 임의로 자선을 베풀 수 없었고, “건장한 걸인(sturdy beggars)”과 “신체적으로 무능력한 걸인(impotent beggars)”을 구별하여 전자에게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강제”할 수 있었다. 1388년에도 노동자에 관한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의해서 노동자들의 이동이 강도 높게 제한되었다. 이 법은, 레너드에 의하면, 노동하기에는 “신체적으로 무능력한 빈민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고, 이들을 노동 능력이 있는 빈민과 면밀하게 구분했기 때문에 최초의 영국 빈민법이라고 자주 여겨졌다.” 이들 두 법 이외에도 노동자를 규제하는 법령은 튜더 시대 이전에 여러 차례 제정되었다. 저자는 독일의 한 도시에서 이루어진 사례는 소개하면서 다른 국가도 아닌 바로 영국에서 있었던 그것도 도시 차원이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정된 이런 법들을 왜 소개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빈민과 복지의 역사’에서 16세기를 가장 결정적인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저자가 강조한 1530년대의 법을 비롯한 16세기의 많은 빈민 관련법과 이 법들의 결정판인 1597-1598년 빈민법은 영국 빈민법 역사에서 획을 그었던 매우 중요한 법령들이었다. 저자는 왜 이런 획기적인 법률들이 하필이면 튜더 시대에 이르러서 제정되었는가를 설명했다. 저자는 가격혁명, 인클로저, 식량위기, 소요 증가 등의 급변했던 사회, 경제적 이유로 16세기에 들어와서 빈민이 대량 발생했고 특히 부랑인 수가 급증하여 이에 대한 대책으로 튜더 시대에 빈민법들이 제정되었으며, 이것이 근대적인 빈민 통제의 전환점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증거를 제4장 ‘가격혁명과 근대 초기의 빈곤’에서 제시했고, 이 부분은 책 전체 책 분량의 거의 20%를 차지했다.
저자가 빈민법의 배경 설명으로 제시한 16세기의 사상적이고 사회경제적인 요인들은 어쩌면 그 논리 기반이 매우 취약할 수 있다. 저자는 튜더시대의 휴머니즘과 “커먼웰스(commonwealth)” 사상을 빈민법이 영국에서 출현한 사상적인 배경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휴머니즘의 개념은 너무 다양하여 이 용어는 역사학자들의 사고 경향에 따라서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저자가 일체의 정의를 제시하지 않고 막연하게 소개한 휴머니즘은 빈민 통제의 배경이 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저자는 퓨리턴의 커먼웰스 사상을 공화정 사상과 연결시켜 빈민법 제정의 배경 중의 하나로 부각시켰지만, 실은 퓨리턴이 이 당시에 생각한 컴먼웰스 개념은 공화정 사상이라고 하기보다는 20세기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 표방하는 사상에 더 가까웠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살기를 소망하는 영국의 전통적인 커먼웰스 사상은 빈민 구제의 원칙과 법률을 제정하는 동인이 되기에는 너무 막연한 개념이었다.
저자가 제4장에서 사용한 많은 통계적인 근거 자료는 모두 현대 사회 이전의 통계자료가 가지고 있는 통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통계 자료가 전해지지 않는 지역이 통계 자료가 전해지고 있는 지역보다 월등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수된 자료, 그것도 주로 도시만의 현상을 가지고 16세기 영국 전체의 통계수치로 반영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전문역사가 계층의 독자들이 이 책에서 읽기를 원하는 것은 16세기의 위기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문제가 많고 전통적인 통계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저자가 짧게 소개한 수정주의적인 해석에 관한 구체적이고 긴 설명일 것이다. 16세기에 만들어진 통계 자료를 한 번이라도 직접 통계학적으로 처리해본 역사가라면 영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사회경제적 현상을 설명하는 통계 지표에 큰 신뢰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수정주의적 해석이 각광을 받을 수 있었다.
16세기 위기설과 이에 대응한 국가 차원의 빈민에 대한 정책 수립은 소위 말하는 ‘근대화 이론’의 한 부분이다. 이 책 전체에 흐르는 주요 요지는 크게 말하면 영국의 빈곤과 복지의 역사를 근대화 개념의 틀 속에서 상정하였다. 이 책에는 중세적 질서를 넘어서는 근대 사회 형성, 르네상스, 종교개혁, 자본주의 발전, 사회경제적인 대 변혁과 이에 대응한 국민국가의 발전, 영국의 경우에는 튜더 정부 조직에서의 혁명 등이 영국으로 하여금 최초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빈민 정책을 수립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이런 근대화의 요소들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부분이다. 평자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이론은 그 이론 자체에만 경의를 표할 뿐 역사 연구 현장에서의 적용성은 그들이 주장하는 만큼 의미가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취향은 평자 개인의 것일 뿐 여러 신진 역사학자들이 신봉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이 만에 하나라도 설득력을 갖는다면 저자의 핵심 주장은 힘을 잃게 될 가능성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16세기의 중요성 대신에 저자가 강조하지 않은 산업혁명 시대 이후가 영국 빈민법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로 대두될 수도 있다.
튜더 시대에 제정된 빈민과 구빈에 관한 중요한 법들의 제정 배경, 내용, 설명, 영향, 역사적 의미 등은 저자가 이 책에서 매우 훌륭하게 설명했다. 평자의 견해로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16세기 빈민법 못지않게, 어쩌면 후세 영국의 복지 역사에 이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18-19세기의 빈민법에 저자가 할애한 지면은 16세기의 법에 할당된 부분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분량이 너무 적었다. 저자는 길버트 법(1782), 스핀햄랜드 제도(1795), 신빈민법(1834) 등의 매우 중요한 빈민 통제와 관련된 법들도 일목요연하고 조직적으로 잘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이들 법들이 제정된 사회, 경제적 배경에 대해서는 몇 마디 해설을 필요한 경우에 더했을 뿐 제4장 가격혁명에 대응할 만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18세기와 19세기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산업혁명의 여파가 영국 전체의 사회 분위기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놓은 시기였다. 이 부분에 하나 혹은 두개의 장을 배치하여 당시 빈민법이 등장한 사회, 경제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책의 균형상 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장에서 후세 영국의 복지 정책 형성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들, 예들 들면, 산업구조 변혁과 이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의 변화, 철도를 이용한 근본적인 기근 문제 해소, 기술 발전과 이에 따른 복지 증진과 통제 수단의 효율화, 법의 발전이 아닌 생활수준 자체의 향상으로 이룩된 복지 사회의 기반 형성 등을 언급할 수 있고, 이런 변화는 영국의 복지 역사에서 16세기의 변화보다 월등하게 영향력이 컸음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만 이 책이 16세기의 근대화 개념을 부정하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보다 안전해질 수 있다.
저자는 20세기의 복지제도에 관한 논의를 이 책의 주요 주제로 삼지 않았다. 대신 “간단하게나마 복지국가의 탄생 과정과 사회정책상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 부분에는 20세기 전반기에 입법된 몇 개의 중요한 관련법의 이름과 간략한 설명이 첨부되었다. 저자는 영국의 20세기 복지 제도 수립에는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제정한 질병, 재해, 노령에 관련된 3개의 사회보험 정책이 자극제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저자가 20세기의 복지 정책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한 이유는 영국의 역대 빈민법이 영국의 현대 복지 사회 건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영국이 현대 서양의 복지 사회 건설에 뚜렷하게 기여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제도는 서양의 현대적인 복지사회 건설에 기반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미진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실업 보험이었다. 영국은 바로 이점을 보완하여 빈민법 이외에도 서양의 복지사회 건설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실업보험제도를 세계에서 최초로 영국에서 실시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저자가 책에서 강조한 기나긴 영국 빈민 통제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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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대 빈민법 조항만을 살펴보면 당대의 영국에서는 빈민이 이상적으로 통제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 조항의 현실적인 적용 실태는 런던에 가까웠던 지역과 먼 지역에서 달랐고, 대도시와 소도시에서 달랐으며, 인구밀도가 조밀했던 농촌과 그렇지 않은 산간벽지의 경우에 크게 달랐다. 근대 영국 사회에서 법 규정과 실제 적용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16세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법체계를 가지고 있던 15세기의 영국에서 다음과 일이 있었다. 1414년에 영국의 5개 주에서 살인죄로 763명이 기소되었다. 이 중에서 590명은 행방을 몰라서 처벌하지 못했고, 126명은 용서되었으며, 25명은 무죄로 석방되었고, 19명은 자연사했으며, 3명은 이후 행방을 감추었다. 죄목이 무시무시한 살인죄였고 추상같은 법 조항은 처벌로 사형을 규정했지만, 결국 법조항에 따라서 실제적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이 없었다. 서양역사상 영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구체화된 전국 규모의 빈민법 조항들은 영국 및 서양의 복지 사회 건설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법 조항과 현실은 매우 동떨어져 있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저자가 사용하지 않은 문헌인 Poor Relief in England and Wales 1601-1834(London, 1974)에서 저자 Geoffrey Oxley는 영국의 역대 빈민법 조항들이 지방 현장에서 적용하기에 얼마나 부적절했고, 이런 이유에서 빈민법들은 필연적으로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법 조항들이 개정될 수밖에 없었던가를 설명했다. 중앙정부가 영국 전체에 적용할 목적으로 일반화한 그럴듯한 국가적인 빈민법의 조항들은 번번이 지방의 현실과 상충되었다. 역사가들은 지방의 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중앙 혹은 대도시의 자료만을 분석하여 빈민법의 성격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해왔다. 중앙 정부는, 원래 입법의 용단과는 달리, 빈민법을 강제하려는 노력 자체를 자주 포기하곤 하였으며, 각 지역마다 빈민의 정의가 서로 달라서 구빈 대상자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구빈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결성된 각 지역간의 연대는 너무나 많은 변수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고, 중앙과 지방에서 작성된 빈민 관련 자료는 갖은자들의 선입견을 증명해 내는 자료만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경우는 빈민을 규제하기 위한 행정과 재정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 빈민 통제 그 자체를 포기했으며, 고매한 개념으로 입안된 강제적 구빈세 징수는 지방 교구에서 구빈세율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수에 휘둘려 효과적으로 징세되지 못했다. 공공작업장은 주로 도시만의 현상이었고, 이 제도의 완전한 실패는 구빈과 복지 정책에 관련하여 이론과 실제적인 제도의 실시가 너무나 달랐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빈민법 조항과 현실 적용 사이에 심각한 괴리 현상이 존재했다면 역사가들은 빈곤과 복지에 관련하여 어떤 자료를 가지고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빈민법의 현실 적용 사례만을 가지고 빈곤과 복지를 연구한다면 각 지역의 혼잡한 사례 분석만 가능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경험했던 빈곤과 복지에 관한 일반화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제한 사항 속에서 역사가들이 실제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이 책에서 사용했던 방법과 같이 법 조항과 사회적 배경, 그리고 법 조항들이 내포했던 역사적인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빈곤과 복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이 책은 적절하고 현실적으로 거의 유일한 접근 방법을 선택했다.
신빈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