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즈의 산 증인이자, 한국 최초의 토종 재즈클럽 "야누스"를 30년간 운영해오신 박성연 선생님의 영상입니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아는 형님을 통해 소개를 받고 사진기록작업을 하면서 이런 저런 부분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야누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토종 재즈클럽이면서, 신관웅, 이정식, 웅산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들이 한번쯤은 거쳐간, 그리고 지금도 많은 후배들이 연주를 하고 땀을 흘리는 한국 재즈의 요람입니다.
박성연 선생님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죠. 외국의 흑인 재즈 보컬리스트와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스캣과 가사 전달력, 다듬어지지 않은 허스키함, 길들일 수 없는 회한이 마음을 잡아당겼습니다. 건강이 좋으셨을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파워풀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셨다고 합니다
30년이라는 믿을 수 없는 그 시간동안 여러차례 경영난을 겪으며 이대에서 대학로로, 대학로에서 청담동 구석으로 그리고 이번에 청담동에서 교대로 자리를 옮겨야 했지만, 손님이 있을때나 없을때나 박성연 선생님은 묵묵히 야누스를 지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다 건강이 악화되어 신장투석을 1주일에 세,네번씩 받게 되었으나, 그래도 선생님은 여전히 혼신의 힘을 다해 매일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스스로 "재즈와 결혼했다"고 말할 만큼 선생님은 재즈에 인생을 걸었던 것이죠..
사실 청담동에 있던 야누스가 없어지면서 이제는 야누스가 정말 영영 없어지겠구나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을겁니다. 재정적인 부분도 그렇고 선생님의 건강도 그렇고 그만큼 어려웠거든요. 야누스가 박성연 선생님이고 박성연 선생님이 곧 야누스 그 자체인데... 노래를 못하시면 건강이 더 나빠지시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이 됐었죠. 그러다가 어렵게 교대에 다시 가게 계약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제 교대에 정식으로 오픈한지 한달이 되었습니다.
교대로 옮긴 야누스는 비록 규모는 작아졌지만 그래서 연주자들의 숨소리까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 앞으로 함께 채워나가고 만들어 나갈 이야기들이 더 많은 공간입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30주년을 맞은 야누스가 부활하여, 박성연 선생님이 그동안 묵묵히 걸어온 재즈인생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다시 한번 기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겠지요.
사실 우리나라 문화계의 토양이 척박하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신 박성연 선생님 같은 분 덕분에 미약하나마 우리 사회 안에 문화를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의 싹이 돋고 자라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오래된 LP 앨범을 보여주시며 덱스터 고든(Dextor Gordon)을 아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수줍게 재즈나 뮤지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답할 수 밖에 없었죠. 그냥 재즈가 좋다고.. 앞으로 선생님 다큐 작업하려면 재즈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면서 멋적게 웃었더니 손사레를 치시며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즐기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즐긴다는 말,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문화라는 것을 너무 어렵고 딱딱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무언가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실되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한 것이 아닐런지..
아무쪼록 마음으로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많은 분들이 야누스로 발걸음 하시어 박성연 선생님의 깊은 목소리와 라이브 재즈의 감동을 느껴보시고, 꾸준한 애정과 관심으로 야누스를 채워주시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 본 동영상은 2008년 1월 5일에 방송된 "EBS 스페이스 공감 - 재즈팬이 선정한 수퍼세션 2007" 중의 일부입니다.
한국 재즈의 대모 박성연, 그리고 재즈클럽 야누스
한국 재즈의 산 증인이자, 한국 최초의 토종 재즈클럽 "야누스"를 30년간 운영해오신 박성연 선생님의 영상입니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아는 형님을 통해 소개를 받고 사진기록작업을 하면서 이런 저런 부분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야누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토종 재즈클럽이면서, 신관웅, 이정식, 웅산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들이 한번쯤은 거쳐간, 그리고 지금도 많은 후배들이 연주를 하고 땀을 흘리는 한국 재즈의 요람입니다.
박성연 선생님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죠. 외국의 흑인 재즈 보컬리스트와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스캣과 가사 전달력, 다듬어지지 않은 허스키함, 길들일 수 없는 회한이 마음을 잡아당겼습니다. 건강이 좋으셨을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파워풀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셨다고 합니다
30년이라는 믿을 수 없는 그 시간동안 여러차례 경영난을 겪으며 이대에서 대학로로, 대학로에서 청담동 구석으로 그리고 이번에 청담동에서 교대로 자리를 옮겨야 했지만, 손님이 있을때나 없을때나 박성연 선생님은 묵묵히 야누스를 지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다 건강이 악화되어 신장투석을 1주일에 세,네번씩 받게 되었으나, 그래도 선생님은 여전히 혼신의 힘을 다해 매일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스스로 "재즈와 결혼했다"고 말할 만큼 선생님은 재즈에 인생을 걸었던 것이죠..
사실 청담동에 있던 야누스가 없어지면서 이제는 야누스가 정말 영영 없어지겠구나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을겁니다. 재정적인 부분도 그렇고 선생님의 건강도 그렇고 그만큼 어려웠거든요. 야누스가 박성연 선생님이고 박성연 선생님이 곧 야누스 그 자체인데... 노래를 못하시면 건강이 더 나빠지시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이 됐었죠. 그러다가 어렵게 교대에 다시 가게 계약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제 교대에 정식으로 오픈한지 한달이 되었습니다.
교대로 옮긴 야누스는 비록 규모는 작아졌지만 그래서 연주자들의 숨소리까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 앞으로 함께 채워나가고 만들어 나갈 이야기들이 더 많은 공간입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30주년을 맞은 야누스가 부활하여, 박성연 선생님이 그동안 묵묵히 걸어온 재즈인생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다시 한번 기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겠지요.
사실 우리나라 문화계의 토양이 척박하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신 박성연 선생님 같은 분 덕분에 미약하나마 우리 사회 안에 문화를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의 싹이 돋고 자라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오래된 LP 앨범을 보여주시며 덱스터 고든(Dextor Gordon)을 아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수줍게 재즈나 뮤지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답할 수 밖에 없었죠. 그냥 재즈가 좋다고.. 앞으로 선생님 다큐 작업하려면 재즈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면서 멋적게 웃었더니 손사레를 치시며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즐기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즐긴다는 말,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문화라는 것을 너무 어렵고 딱딱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무언가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실되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한 것이 아닐런지..
아무쪼록 마음으로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많은 분들이 야누스로 발걸음 하시어 박성연 선생님의 깊은 목소리와 라이브 재즈의 감동을 느껴보시고, 꾸준한 애정과 관심으로 야누스를 채워주시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 본 동영상은 2008년 1월 5일에 방송된 "EBS 스페이스 공감 - 재즈팬이 선정한 수퍼세션 2007" 중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