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에 화재가 있었고 거의 진압 중이라는 뉴스에 안심하고 잠들어 있던 11일 새벽 1시 55분, 숭례문은 화염에 휩싸인 채 굉음을 내며 무너져 버렸다. 오늘 신문을 읽다가 위 사진을 보면서 나는 문득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도 저녁(우리 시간으로)이었다. 학원 야간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끼리 비행기가 빌딩에 충돌했다는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그냥 농담이거나 영화 속의 장면을 말하는 것이라 흘려듣고 집으로 돌아온 내게 뉴스 속보는 비행기 두 대가 차례로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는 영화와도 같은 장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다음 날 그 거대한 세계무역센터 두 동이 차례로 무너져내리는 장면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9.11 테러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으로 총칭되는 비극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중동에서 전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다.
당시에 왜 테러 대상이 세계무역센터였는지를 두고 많은 말들이 나왔지만 세계 최고의 교역국이자 공업국인 미국을 상징하는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 최고(最高)의 건물로서 이미 1993년에도 폭탄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한 상징성을 갖는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에 소실된 숭례문 역시 우리나라 국보 1호('1'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단지 등록 순서에 불과하다 할지라도)로 600여년간, 이제는 빌딩으로 둘러쌓인 서울 한복판에서 거의 원형 그대로 자리했다는 상징성은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건물이 화염에 휩싸여 모두가 보는 가운데 무너져 내린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9.11 테러 당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에 못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후반 냉전의 종식과 동시에 세계 초 강대국이 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여러 국가들에 간섭하고 그에 대한 비난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착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왔다.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라는 이권이 걸려 있는 중동에서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었고 이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가 날로 커진 결과 9.11 테러라는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은 악순환을 불러 일으켜 미국과 아랍 모두를 비극으로 몰고 갔다.
오늘 잡힌 60대 방화범이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고 과거 2006년에도 창경궁에 방화를 해 1300만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은 60대의 채모씨로 밝혀졌다. 채씨의 범행 동기는 20세기 후반 급속한 경제 성장과 그 속에서 부동산 투기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리고 그가 택한 범행 장소는 국보로 지정되었음에도 접근이 용이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무관심 속에 방치된 숭례문이었다.
이번 숭례문 방화를 단순히 한 사회에 불만을 품은 방화범의 소행으로 보고 넘기면 안 된다. 이것은 경제 성장 속에서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그간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온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이다. 우리 선조들은 숭례문이 세워질 당시 세로 현판을 달아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 했다. 그 당시 불은 꼭 필요하면서도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다. 더 이상 불이 과거와 같은 재앙은 아니라고 여기는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자만 속에 숭례문을 불로 잃어버렸다.
이번 사건을 중요한 것을 잃고 돈에 함몰되어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조상들의 경고라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단지 몇 백억 들여서 복원하고 첨단 경비 장치를 설치하고 끝냄으로서 행정수도와 대운하로 인한 땅 투기 열풍 속에서 분명 다시 반복될 비극을 이대로 놔둘 것인지는 앞으로 우리에게 달렸다.
숭례문과 세계무역센터
숭례문 2층 누각이 화재 발생 5시간 만인 11일 새벽 1시55분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채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 |강윤중기자
사진 및 사진 설명 출처 : 경향신문 2월 12일자 3면
숭례문에 화재가 있었고 거의 진압 중이라는 뉴스에 안심하고 잠들어 있던 11일 새벽 1시 55분, 숭례문은 화염에 휩싸인 채 굉음을 내며 무너져 버렸다. 오늘 신문을 읽다가 위 사진을 보면서 나는 문득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도 저녁(우리 시간으로)이었다. 학원 야간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끼리 비행기가 빌딩에 충돌했다는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그냥 농담이거나 영화 속의 장면을 말하는 것이라 흘려듣고 집으로 돌아온 내게 뉴스 속보는 비행기 두 대가 차례로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는 영화와도 같은 장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다음 날 그 거대한 세계무역센터 두 동이 차례로 무너져내리는 장면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9.11 테러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으로 총칭되는 비극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중동에서 전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다.
당시에 왜 테러 대상이 세계무역센터였는지를 두고 많은 말들이 나왔지만 세계 최고의 교역국이자 공업국인 미국을 상징하는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 최고(最高)의 건물로서 이미 1993년에도 폭탄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한 상징성을 갖는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에 소실된 숭례문 역시 우리나라 국보 1호('1'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단지 등록 순서에 불과하다 할지라도)로 600여년간, 이제는 빌딩으로 둘러쌓인 서울 한복판에서 거의 원형 그대로 자리했다는 상징성은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건물이 화염에 휩싸여 모두가 보는 가운데 무너져 내린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9.11 테러 당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에 못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후반 냉전의 종식과 동시에 세계 초 강대국이 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여러 국가들에 간섭하고 그에 대한 비난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착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왔다.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라는 이권이 걸려 있는 중동에서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었고 이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가 날로 커진 결과 9.11 테러라는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은 악순환을 불러 일으켜 미국과 아랍 모두를 비극으로 몰고 갔다.
오늘 잡힌 60대 방화범이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고 과거 2006년에도 창경궁에 방화를 해 1300만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은 60대의 채모씨로 밝혀졌다. 채씨의 범행 동기는 20세기 후반 급속한 경제 성장과 그 속에서 부동산 투기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리고 그가 택한 범행 장소는 국보로 지정되었음에도 접근이 용이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무관심 속에 방치된 숭례문이었다.
이번 숭례문 방화를 단순히 한 사회에 불만을 품은 방화범의 소행으로 보고 넘기면 안 된다. 이것은 경제 성장 속에서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그간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온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이다. 우리 선조들은 숭례문이 세워질 당시 세로 현판을 달아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 했다. 그 당시 불은 꼭 필요하면서도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다. 더 이상 불이 과거와 같은 재앙은 아니라고 여기는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자만 속에 숭례문을 불로 잃어버렸다.
이번 사건을 중요한 것을 잃고 돈에 함몰되어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조상들의 경고라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단지 몇 백억 들여서 복원하고 첨단 경비 장치를 설치하고 끝냄으로서 행정수도와 대운하로 인한 땅 투기 열풍 속에서 분명 다시 반복될 비극을 이대로 놔둘 것인지는 앞으로 우리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