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C]못마땅함

박민진200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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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교제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사실상 관계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관계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지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민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관계에서 발생하는 장애는 많은 경우 우리를 좌절시키는 것이 사실입니다.


관계에서 오는 장애의 한 가지가 바로 이 ‘못마땅함’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경우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봅니다. 그렇다면 못마땅함이라는 감정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 사람들은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상대가 더 잘 되도록 하기 위한 관심’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상대방을 못마땅해 할까요? 상대가 잘 되길 바라서가 아닙니다. 첫째는 상대를 나에게 맞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함이요, 둘째는 나도 도달하지 못하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눅11:46)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옆집 남자와 비교하며 부모는 아이에게 맞지도 않는 목표를 세워놓고 달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못마땅함은 인간이 중생을 경험할 때 겪게 되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의 가치혁명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며 사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직분에 맞게 충성된 것은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행함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을 정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는 교만한 것이고 다시 말해 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못마땅함이라는 태도를 갖게 될 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긍휼히 여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긍휼히 여김은 내가 상대보다 더 낫기 때문에 그를 불쌍히 여긴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여기서의 긍휼은 나 역시 그렇게 약함을 경험했기 때문에 상대의 약함을 공감함으로부터 나오는 불쌍히 여김입니다.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 상태는 이미 상대보다 내가 높아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관계 속에 흐르는 은혜는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는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입니다) 관계의 은혜를 경험하고 싶다면 우리는 반드시 마음상태를 낮추어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글을 쓰다 보면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공격적인 태도로 쉽게 상처를 주고 무례함을 느끼게 만드는 분들이 있습니다.(물론 대부분의 경우 귀한 격려로 큰 힘을 주시는 분들이 비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사람과 내가 모두 마음이 높아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란 것이 그리 대단할 것도 없고 그리 신비할 것도 없습니다. 다 같은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환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계에 은혜가 흐를 공간이 필요함을 느낀다면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으시는 은혜는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내 목표치로 상대를 기대하지 말고 그 사람 스스로 목표치를 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목표치를 정하는 이유는 이후에 있을 평가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정한 목표치를 우리는 많은 경우 상대에게 알리지 않으며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그리고는 관계가 어렵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목표를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거기에 평가가 있고 반성이 있으며 궁극적인 동기부여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예수님의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참 피상적으로 들리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땅히 할 말이 없을 때 이런 부류의 표현을 식상하게 의미 없이 사용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구한다는 의미를 제 경험에 비추어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과거에 제가 다니는 교회에 학교 선배를 데려온 일이 있습니다. 그는 선교단체에서 훈련받고 귀한 사역을 담당했던 리더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로 인도하며 사역에 대한 기대감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는 미래를 위한 준비 때문에 교회에서 사역을 할 입장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는 알게, 모르게 못마땅함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후에는 어떤 모습을 보아도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예배 전에 기도하는 제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무엇인지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각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히 어떤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이 우리 각 사람을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하시는지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하물며 예배의 자리에 나아온 그 분의 자녀들을 하나님은 어떤 눈으로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눈을 떴을 때 하나님은 그 선배를 보는 나의 눈을 완전히 바꿔주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눈이었습니다. 그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고 그에게 다가가 그가 있어서 내게 얼마나 큰 감사가 되며 그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한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 사랑은 분명 예수님이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우리는 늘 관계에 대한 장애를 가지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부족한 사람입니다.(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에게 요구되는 태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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