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이루는 것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하는 민주주의에 이른 경로 역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념형적인 민주주의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민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이를 ‘선거주의’(electoralism)의 실현으로 보는 최소주의적 해석에서 참여와 평등 개념의 제도화로 보는 최대주의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폭넓다.
더구나 2차대전 이후 서구 식민지하에 있던 제 3세계권에서 반서방 민족주의의 파고가 드높았을 때 서구식 민주주의, 다시 말해 선거주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제 3세계 내 급진주의자들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러기에 제 3세계 내 사회주의지향국가들의 체제는 제한적 다원주의와 국유화노선을 핵심으로 하는 평등지향적 비자유주의적 모델(illiberal model)에 해당하였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비자유주의적 모델의 추진 주체 중의 하나가 군부였다는 점이다. 이집트의 낫세르, 페루의 벨라스코, 리비아의 가다피 등은 반미, 반서방, 반제국주의를 기치로 한 대표적인 군부 엘리트였다.
1962년 3월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네윈정권 역시 이와 같은 ‘급진적 쁘띠부르주아 민족주의정권’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네윈은 당시 사회주의건설방위법에 따라 모든 야당을 해산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폐지함으로써, 사실상 군간부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계획당(BSPP) 일당체제를 구축하였다. 또한 반정부세력에 대한 탄압, 불교신문 폐간과 버마어 신문 국유화(1969년 1월), 국가정보국 설치 등을 통해 권력집중을 가속화하였다. 경제면에서도 1963-1965년에 걸쳐 국유화를 단행하여, 전기.통신.금융부문은 100%로 국유화되었고. 광업부문은 생산액 기준으로 약 90%가 국유화되었으며, 제조업의 50% 이상 그리고 상업부문의 40% 이상이 국유화되었다. 특히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농촌지역에서 토지개혁이나 집단화가 추진되지 않았다는 점, 국가기관의 대부분을 현역 및 퇴역군인이 차지하는 기형적인 군사화 경향을 보였다는 점 등이 특이하였다. 이처럼 ‘위로부터 강요된 사회주의’로서의 ‘버마식 사회주의’는 어떠한 계급의 해방도 이룩하지 못하고 오직 군부의 권력독점을 통해 국민의 정치참여를 배제하고 과도한 국유화와 국가통제로 인한 생산의욕 감퇴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한 유망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아시아 국가 중의 하나로 기대되던 버마는 1987년에 UN에 최빈국 신청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버마 군부는 8888 민주항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직후인 1988년 11월에 외국인투자법을 제정하고 외국인투자유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버마투자위원회(Myanmar Investment Commission, MIC)가 투자유치를 관리하였다. 그것은 그간의 자력갱생모델(autarky model)의 폐기를 통한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혹은 동아시아 개발독재모델 모방 단계로의 진입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도 버마 내에서는 공공부문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을 만큼 사회주의적 요소가 남아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도 버마는 정치적으로 독특하게도 1947년부터 15년가량 의회주의를 경험한 역사를 갖고 있고, 더군다나 군부가 대참패를 한 1990년 선거 경험은 최소한의 선거주의 경험조차 없는 다른 사회주의지향적 제 3세계 국가들과 차별성을 보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마가 민주화 이행의 문턱을 넘어 민주적 공고화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한국적 경험이 제공할 수 있는 교훈은 상당히 제약되어 있다고 보인다. 이를테면 한국의 1980년대에 논쟁거리가 되었던 식민지반봉건사회론, 식민지반자본주의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등은 기본적으로 반제반자본 테제에 기초한 것이었다. 설사 이러한 급진적 변혁이론이 아닌 ‘일반민주주의론’에 기초하여 민주주의 개념을 받아드렸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자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반면 최빈곤 상황에 있는 버마의 문제는 자본의 과잉 결핍에서 비롯되었고 미국은 현 민주화세력의 최대 후원자이며 미국과 대척지점에 있는 사회주의 대국 중국은 버마 군부독재의 최대 후원자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탈권위주의화와 동구에서의 탈사회주의화가 1980년대, 1990년대의 민주화 이론을 구성하였듯이 한국에서의 ‘공고화’ 단계로 나아가는 민주화의 경험이 줄 수 있는 여지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달성하였다고 보는 근대화론자들의 경우 한국의 발전경로를 정치제도화와 정치참여간의 비조응에 따른 정치불안->쿠테타에 따른 군사정부의 출현->군사정부 주도의 압축성장(권위주의적 발전국가의 업적)->시민사회의 성장과 도전->군부의 퇴장->민주화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성공의 위기’(crisis of success)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결국 경제발전과 민주화, 민주주의로의 이행지대(transition zone)가 구조적 수준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행위자의 수준에서 어떻게 조직되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어야 지만 ‘과도기 개발독재 불가피론’ 혹은 ‘잔인한 선택론’(cruel choice thesis)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 민주화와 민주주의
민주화란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 to democracy)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 고전적 해석에 따르자면 민주주의란 ‘인민’(demos)에 의한 ‘지배’(kratos)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쟁점이 제기된다. 첫째, 인민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둘째, 인민의 의사는 단일한가, 그렇지 않은가? 셋째, 주조된(manufactured) 인민의 의사가 아닌 진정한(genuine) 인민의 의사가 관철될 수 있는 조건, 구조, 제도는 무엇인가?
‘실현가능한 민주주의’(feasible democracy)와 관련하여 사무엘 헌팅톤(Samuel Huntington)은 민주주의를 둘러싼 이성적(rationalistic),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적 정의와 경험적, 서술적, 제도적, 절차적 정의 사이의 대결은 1970년대에 들어와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절차론적, 최소주의적 정의는 일찍이 조제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에 의해 명료하게 정리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민주주의를 정치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이며, 이 안에서 개인들은 인민의 표를 얻기 위해 쟁투를 벌인다고 보았다. 사실상 비밀․보통 투표에 의한 다당제하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는 자기쇄신(self-renewal)의 기제이며 권위주의체제 하에서는 이것이 없다. 노베르또 보비오(Noberto Bobbio) 역시 민주주의를 집합적 결정권자에 권위를 부여하고 행위의 절차를 수립하는 일련의 규칙으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본 규칙을 다수결의 지배로 표현하였다. 스캇 메인웨어링(Scott Mainwaring)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결과중심적 정의(outcome-oriented definition)의 쇠퇴 경향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절차론적 정의의 주류화 경향은 제 3의 민주화 물결에서의 신생 민주주의가 경쟁적 선거를 필요조건으로 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토대로 하였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주의 국가(liberal state)가 민주적 국가(democratic state)의 역사적 전제, 법적 전제로까지 표현된다. 이렇듯 민주주의에 대한 절차론적 정의는 국가권력의 제한과 통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정당화한다.
요컨대 이행론(transitology)에서 얘기하는 민주화 이행의 출발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정의에 따라 권위주의체제의 붕괴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경쟁 및 견제와 균형의 묘를 살린 정치의 도입을 의미한다. 특히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경쟁을 위해서는 표현, 조직, 반대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화란 개인과 집단에 대한 보장,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공간, 사생활 등이 국가의 통제로부터 보호를 받는 체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치적 폭력과 정부의 자의적인 행동은 최소화된다.
3. 이행과 공고화의 조건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민주화란 세 단계, 즉 권위주의체제의 종식→민주주의체제의 수립 →민주주의체제의 공고화의 순으로 진행된다. 민주주의 혹은 민주화에 기여하는 요인들로는 높은 수준의 경제적 부, 상대적으로 균등한 부의 배분, 강력한 부르주아지의 존재, 강력한 중간계급, 높은 수준의 교육과 문자 해득률, 낮은 수준의 정치적 양극화, 정치지도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등이 제시된 바가 있다. 이때 민주화를 이끄는 요인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며, 어떠한 단일 요인도 모든 민주화 사례를 설명할 수 없다. 민주화는 여러 요인들의 결합의 결과이며 각 사례마다 결합의 방식도 상이하다. 서구의 예를 보자면 경제발전, 산업화, 도시화, 부르주아지와 중간계급의 출현, 노동계급의 규모화와 그들 조직의 발전, 경제적 불평등의 점진적 완화 등은 19세기에 북유럽의 민주화를 추동해낸 중요한 요인들이었다.
이러한 경험적 토대하에서 사회경제적 발전이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근대화 상관이론’(modernization-correlation approach),‘부-민주주의 이론’(wealth-democracy)이 제기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적 발전이 민주적 돌파(democratic breakthrough)의 토양이라는 것이다.
베링턴 무어(Barrington Moore, Jr.)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양산된 부르주아지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의 ‘부르주아지 없이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 가설은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정합성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이어진다. 반면 테르본(Goran Therbon)은 민주주의는 언제 어디서나 부르주아지 계급에 대항하는 민중투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요컨대 민주화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권위주의체제의 인내력 시험에 나선 모범적 행위자들, 즉 지도자들과 대중들의 위험을 감수한 집합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봉착한다. 첫 번째로 이행의 문제(transition problems)이다. 여기에는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있었던 인권침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고문기술자의 문제(the torturer problem)와 군부의 정치개입을 축소시키고 민-군관계를 재편해야 하는 군부문제(the praetorian problems)가 있다. 두 번째로, 구조의 문제(contextual problems)이다. 구체적으로 반란, 민족문제, 지역주의문제, 빈곤, 사회경제적 불평등, 인플레이션, 외채, 저성장 등을 가리키는데, 그 중에서도 저발전의 문제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세 번째로, 체제의 문제(systemic problems)이다. 교착상태(stalemate), 정책결정의 지체, 선동, 경제적 특권집단의 지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군부문제와 관련하여 사무엘 헌팅톤은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⑴권위주의체제에 적극적으로 복무하였던 자들, 역모를 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공직자들을 과감하게 처벌하거나 해임할 것. ⑵신생 민주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쿠테타 기도세력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처단할 것. ⑶민간정부의 수뇌가 군부를 지휘할 수 있는 명료한 지휘계통을 제도화해낼 것. ⑷군 장교들이 자신들의 복지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으며 이것은 대개 타당하다. 따라서 군 규모를 줄이는 대가로 그들의 봉급, 연금 등 생활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복지를 제공할 것 등등.
구조적 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종족정치의 갈등 문제 해결은 제도화된 민주주의가 모든 인민들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해주는 보편적 규범을 실행에 옮기냐, 그렇지 않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민족문제는 지역주의문제와 마찬가지로 각 개별집단의 욕구를 얼마나 다원주의적으로 수용해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특히 민족․지역주의 문제는 권위주의체제에 의한 강압적인 사회적 평화가 민주화를 계기로 깨지면서 분출하게 된다. 그것은 내재되어 있던 긴장(embedded tensions)의 표출이자, 일종의 ‘자유화의 비용’이다. 이렇듯 신생 민주주의는 국민통합과 종족다원주의 사이의 딜레마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한편 시장친화적 개혁(market-oriented reforms)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신생민주주의의 개혁 요건으로서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자유화의 동시적 이행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정상경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공급측면에서 통화 공급의 축소, 재정적자 개선, 세수 확대를 겨냥하고, 수요 측면에서는 임금상승 억제책을 사용한다.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논리는 사회적 고통을 수반하는 조치는 거시경제의 안정과 경제 활성화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통과해야 할 ‘눈물의 계곡’(valley of tears)이기 때문에 다소 고통스럽더라도 정부 주도의 독단적인 구조조정 집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하에서 제기되는 위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정의에 따라 민주화 이행(democratic transition)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의미 있는 정치적 경쟁,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체제의 수립으로 정의 내린다면, 민주주의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란 이러한 민주적 원리가 인민과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내면화됨으로써 민주주의 제도의 전복 가능성이 없는 상황을 지칭한다. 따라서 민주적 공고화는 위에서 언급한 이행의 문제, 구조의 문제, 체제의 문제 등사회화와 관련된 의제의 해결과 무관하게 실현되기가 어렵다.
4. 버마사례에의 적용
버마 현대사를 볼 때 예상되는 버마 민주주의의 주된 장애요인은 종족갈등, 정치지향적 군부, 행정체계의 비효율, 저발전과 빈곤, 신자유주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버마에서 예상되는 민주주의의 장애요인과 기대되는 해결방식
종족갈등-협의 민주주의
버마는 130여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상 군부는 1947년의 아웅산 장군 주도의 핀롱합의(Panlong Agreement)가 좌초하면서 버마족과 다른 종족간의 갈등의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 초대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핀롱합의 정신에 입각한 연방주의(Federalism)의 실현이 다종족사회인 버마의 통합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다. 그리고 그 연방주의의 정치적 기제로 A. Lijphart가 개념화한 협의 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를 적용해 볼 수 있다. 협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민족, 언어, 종교로 구성된 스위스와 같은 나라에서 제도화된 민주주의로서 반대보다는 합의, 배제보다는 수용, 다수의 횡포로부터의 소수의 보호 등을 통한 대연정(grand coalition executive)과 권력공유를 제도화한다. 협의 민주주의는 다수결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의 결함을 혁신한 것이다. 이를테면 스위스에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어, 레토-로만어가 모두 국어로 인정된다. 어떠한 코뮌도 고유 언어를 변경토록 강요받지 않는다.
정치지향적 군부-타협에 의한 민주주의
버마에서 군부는 영국 식민지와 일본 식민지를 거치면서 전개되었던 민족독립투쟁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민주화 이후 군에 대한 문민우위의 원리를 관철시키려면 군부에 대한 배제가 아닌 직업주의를 지향하는 군부 내 개혁파와의 동맹이 필요하다.
행정체계․정책결정의 비효율-근대적 관료제의 제도화
마웅 민 뇨(Maung Min Nyo) 박사는 네윈, 딴쉐 군부체제는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군부체제와는 달리 근대적 관료제 정착에 실패했음을 주장한다. 따라서 행정체계의 효율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본위의 관료제(meritocracy) 구축이 필요하다. 산출된 정책에 대한 수요자의 불만은 과거 군부독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 수 있다.
저발전-민주적 발전국가모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모델 혹은 개발독재모델을 통해 압축성장에 성공하였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같이 가는 ‘민주적 발전국가 모델’의 조직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동아시아의 연대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조절형 경제자유화(regulated liberalization)
민주화 이후 부패와 비효율을 상징하는 국가부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유화 조치가 불가피하다. 동구의 경우 옛 공산귀족들이 민간기업을 장악하는 기이한 현상이 있었던 바 급진적 시장화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를 통제하면서 효율과 투명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점진적 방식의 신중한 경제자유화가 필요할 것이다.
과거청산-사면과 처벌의 혼합
인권유린에 연루된 자들에 대한 급격한 처벌은 과거 권위주의세력을 자극하여 이들의 집단적 저항을 유도할 수 있다. 반면 과거청산에 대한 민주정부의 보수적 태도는 지지층을 상실할 수 있다. 사면과 처벌의 황금비의 혼합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황금비는 민주주의의 심화를 꾀하는 진보세력과 과거회귀적 보수세력간의 힘의 균형에 의존할 것이다.
* 출처 : 아레나(Asian Regional Exchange for New Alternatives) / 버마전략회의-독재 이후 버마 민주화의 예상 도전들과 민주개혁구상(Envisioning Post-Dictatorship Burma) 자료집 중
버마에서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몇 가지 이론적 논의
버마에서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몇 가지 이론적 논의

박은홍(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 소장)
1. 문제의 제기
민주화를 이루는 것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하는 민주주의에 이른 경로 역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념형적인 민주주의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민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이를 ‘선거주의’(electoralism)의 실현으로 보는 최소주의적 해석에서 참여와 평등 개념의 제도화로 보는 최대주의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폭넓다.
더구나 2차대전 이후 서구 식민지하에 있던 제 3세계권에서 반서방 민족주의의 파고가 드높았을 때 서구식 민주주의, 다시 말해 선거주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제 3세계 내 급진주의자들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러기에 제 3세계 내 사회주의지향국가들의 체제는 제한적 다원주의와 국유화노선을 핵심으로 하는 평등지향적 비자유주의적 모델(illiberal model)에 해당하였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비자유주의적 모델의 추진 주체 중의 하나가 군부였다는 점이다. 이집트의 낫세르, 페루의 벨라스코, 리비아의 가다피 등은 반미, 반서방, 반제국주의를 기치로 한 대표적인 군부 엘리트였다.
1962년 3월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네윈정권 역시 이와 같은 ‘급진적 쁘띠부르주아 민족주의정권’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네윈은 당시 사회주의건설방위법에 따라 모든 야당을 해산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폐지함으로써, 사실상 군간부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계획당(BSPP) 일당체제를 구축하였다. 또한 반정부세력에 대한 탄압, 불교신문 폐간과 버마어 신문 국유화(1969년 1월), 국가정보국 설치 등을 통해 권력집중을 가속화하였다. 경제면에서도 1963-1965년에 걸쳐 국유화를 단행하여, 전기.통신.금융부문은 100%로 국유화되었고. 광업부문은 생산액 기준으로 약 90%가 국유화되었으며, 제조업의 50% 이상 그리고 상업부문의 40% 이상이 국유화되었다. 특히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농촌지역에서 토지개혁이나 집단화가 추진되지 않았다는 점, 국가기관의 대부분을 현역 및 퇴역군인이 차지하는 기형적인 군사화 경향을 보였다는 점 등이 특이하였다. 이처럼 ‘위로부터 강요된 사회주의’로서의 ‘버마식 사회주의’는 어떠한 계급의 해방도 이룩하지 못하고 오직 군부의 권력독점을 통해 국민의 정치참여를 배제하고 과도한 국유화와 국가통제로 인한 생산의욕 감퇴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한 유망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아시아 국가 중의 하나로 기대되던 버마는 1987년에 UN에 최빈국 신청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버마 군부는 8888 민주항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직후인 1988년 11월에 외국인투자법을 제정하고 외국인투자유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버마투자위원회(Myanmar Investment Commission, MIC)가 투자유치를 관리하였다. 그것은 그간의 자력갱생모델(autarky model)의 폐기를 통한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혹은 동아시아 개발독재모델 모방 단계로의 진입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도 버마 내에서는 공공부문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을 만큼 사회주의적 요소가 남아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도 버마는 정치적으로 독특하게도 1947년부터 15년가량 의회주의를 경험한 역사를 갖고 있고, 더군다나 군부가 대참패를 한 1990년 선거 경험은 최소한의 선거주의 경험조차 없는 다른 사회주의지향적 제 3세계 국가들과 차별성을 보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마가 민주화 이행의 문턱을 넘어 민주적 공고화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한국적 경험이 제공할 수 있는 교훈은 상당히 제약되어 있다고 보인다. 이를테면 한국의 1980년대에 논쟁거리가 되었던 식민지반봉건사회론, 식민지반자본주의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등은 기본적으로 반제반자본 테제에 기초한 것이었다. 설사 이러한 급진적 변혁이론이 아닌 ‘일반민주주의론’에 기초하여 민주주의 개념을 받아드렸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자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반면 최빈곤 상황에 있는 버마의 문제는 자본의 과잉 결핍에서 비롯되었고 미국은 현 민주화세력의 최대 후원자이며 미국과 대척지점에 있는 사회주의 대국 중국은 버마 군부독재의 최대 후원자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탈권위주의화와 동구에서의 탈사회주의화가 1980년대, 1990년대의 민주화 이론을 구성하였듯이 한국에서의 ‘공고화’ 단계로 나아가는 민주화의 경험이 줄 수 있는 여지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달성하였다고 보는 근대화론자들의 경우 한국의 발전경로를 정치제도화와 정치참여간의 비조응에 따른 정치불안->쿠테타에 따른 군사정부의 출현->군사정부 주도의 압축성장(권위주의적 발전국가의 업적)->시민사회의 성장과 도전->군부의 퇴장->민주화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성공의 위기’(crisis of success)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결국 경제발전과 민주화, 민주주의로의 이행지대(transition zone)가 구조적 수준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행위자의 수준에서 어떻게 조직되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어야 지만 ‘과도기 개발독재 불가피론’ 혹은 ‘잔인한 선택론’(cruel choice thesis)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 민주화와 민주주의
민주화란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 to democracy)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 고전적 해석에 따르자면 민주주의란 ‘인민’(demos)에 의한 ‘지배’(kratos)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쟁점이 제기된다. 첫째, 인민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둘째, 인민의 의사는 단일한가, 그렇지 않은가? 셋째, 주조된(manufactured) 인민의 의사가 아닌 진정한(genuine) 인민의 의사가 관철될 수 있는 조건, 구조, 제도는 무엇인가?
‘실현가능한 민주주의’(feasible democracy)와 관련하여 사무엘 헌팅톤(Samuel Huntington)은 민주주의를 둘러싼 이성적(rationalistic),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적 정의와 경험적, 서술적, 제도적, 절차적 정의 사이의 대결은 1970년대에 들어와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절차론적, 최소주의적 정의는 일찍이 조제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에 의해 명료하게 정리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민주주의를 정치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이며, 이 안에서 개인들은 인민의 표를 얻기 위해 쟁투를 벌인다고 보았다. 사실상 비밀․보통 투표에 의한 다당제하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는 자기쇄신(self-renewal)의 기제이며 권위주의체제 하에서는 이것이 없다. 노베르또 보비오(Noberto Bobbio) 역시 민주주의를 집합적 결정권자에 권위를 부여하고 행위의 절차를 수립하는 일련의 규칙으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본 규칙을 다수결의 지배로 표현하였다. 스캇 메인웨어링(Scott Mainwaring)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결과중심적 정의(outcome-oriented definition)의 쇠퇴 경향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절차론적 정의의 주류화 경향은 제 3의 민주화 물결에서의 신생 민주주의가 경쟁적 선거를 필요조건으로 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토대로 하였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주의 국가(liberal state)가 민주적 국가(democratic state)의 역사적 전제, 법적 전제로까지 표현된다. 이렇듯 민주주의에 대한 절차론적 정의는 국가권력의 제한과 통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정당화한다.
요컨대 이행론(transitology)에서 얘기하는 민주화 이행의 출발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정의에 따라 권위주의체제의 붕괴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경쟁 및 견제와 균형의 묘를 살린 정치의 도입을 의미한다. 특히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경쟁을 위해서는 표현, 조직, 반대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화란 개인과 집단에 대한 보장,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공간, 사생활 등이 국가의 통제로부터 보호를 받는 체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치적 폭력과 정부의 자의적인 행동은 최소화된다.
3. 이행과 공고화의 조건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민주화란 세 단계, 즉 권위주의체제의 종식→민주주의체제의 수립 →민주주의체제의 공고화의 순으로 진행된다. 민주주의 혹은 민주화에 기여하는 요인들로는 높은 수준의 경제적 부, 상대적으로 균등한 부의 배분, 강력한 부르주아지의 존재, 강력한 중간계급, 높은 수준의 교육과 문자 해득률, 낮은 수준의 정치적 양극화, 정치지도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등이 제시된 바가 있다. 이때 민주화를 이끄는 요인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며, 어떠한 단일 요인도 모든 민주화 사례를 설명할 수 없다. 민주화는 여러 요인들의 결합의 결과이며 각 사례마다 결합의 방식도 상이하다. 서구의 예를 보자면 경제발전, 산업화, 도시화, 부르주아지와 중간계급의 출현, 노동계급의 규모화와 그들 조직의 발전, 경제적 불평등의 점진적 완화 등은 19세기에 북유럽의 민주화를 추동해낸 중요한 요인들이었다.
이러한 경험적 토대하에서 사회경제적 발전이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근대화 상관이론’(modernization-correlation approach),‘부-민주주의 이론’(wealth-democracy)이 제기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적 발전이 민주적 돌파(democratic breakthrough)의 토양이라는 것이다.
베링턴 무어(Barrington Moore, Jr.)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양산된 부르주아지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의 ‘부르주아지 없이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 가설은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정합성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이어진다. 반면 테르본(Goran Therbon)은 민주주의는 언제 어디서나 부르주아지 계급에 대항하는 민중투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요컨대 민주화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권위주의체제의 인내력 시험에 나선 모범적 행위자들, 즉 지도자들과 대중들의 위험을 감수한 집합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봉착한다. 첫 번째로 이행의 문제(transition problems)이다. 여기에는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있었던 인권침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고문기술자의 문제(the torturer problem)와 군부의 정치개입을 축소시키고 민-군관계를 재편해야 하는 군부문제(the praetorian problems)가 있다. 두 번째로, 구조의 문제(contextual problems)이다. 구체적으로 반란, 민족문제, 지역주의문제, 빈곤, 사회경제적 불평등, 인플레이션, 외채, 저성장 등을 가리키는데, 그 중에서도 저발전의 문제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세 번째로, 체제의 문제(systemic problems)이다. 교착상태(stalemate), 정책결정의 지체, 선동, 경제적 특권집단의 지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군부문제와 관련하여 사무엘 헌팅톤은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⑴권위주의체제에 적극적으로 복무하였던 자들, 역모를 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공직자들을 과감하게 처벌하거나 해임할 것. ⑵신생 민주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쿠테타 기도세력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처단할 것. ⑶민간정부의 수뇌가 군부를 지휘할 수 있는 명료한 지휘계통을 제도화해낼 것. ⑷군 장교들이 자신들의 복지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으며 이것은 대개 타당하다. 따라서 군 규모를 줄이는 대가로 그들의 봉급, 연금 등 생활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복지를 제공할 것 등등.
구조적 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종족정치의 갈등 문제 해결은 제도화된 민주주의가 모든 인민들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해주는 보편적 규범을 실행에 옮기냐, 그렇지 않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민족문제는 지역주의문제와 마찬가지로 각 개별집단의 욕구를 얼마나 다원주의적으로 수용해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특히 민족․지역주의 문제는 권위주의체제에 의한 강압적인 사회적 평화가 민주화를 계기로 깨지면서 분출하게 된다. 그것은 내재되어 있던 긴장(embedded tensions)의 표출이자, 일종의 ‘자유화의 비용’이다. 이렇듯 신생 민주주의는 국민통합과 종족다원주의 사이의 딜레마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한편 시장친화적 개혁(market-oriented reforms)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신생민주주의의 개혁 요건으로서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자유화의 동시적 이행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정상경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공급측면에서 통화 공급의 축소, 재정적자 개선, 세수 확대를 겨냥하고, 수요 측면에서는 임금상승 억제책을 사용한다.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논리는 사회적 고통을 수반하는 조치는 거시경제의 안정과 경제 활성화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통과해야 할 ‘눈물의 계곡’(valley of tears)이기 때문에 다소 고통스럽더라도 정부 주도의 독단적인 구조조정 집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하에서 제기되는 위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정의에 따라 민주화 이행(democratic transition)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의미 있는 정치적 경쟁,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체제의 수립으로 정의 내린다면, 민주주의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란 이러한 민주적 원리가 인민과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내면화됨으로써 민주주의 제도의 전복 가능성이 없는 상황을 지칭한다. 따라서 민주적 공고화는 위에서 언급한 이행의 문제, 구조의 문제, 체제의 문제 등사회화와 관련된 의제의 해결과 무관하게 실현되기가 어렵다.
4. 버마사례에의 적용
버마 현대사를 볼 때 예상되는 버마 민주주의의 주된 장애요인은 종족갈등, 정치지향적 군부, 행정체계의 비효율, 저발전과 빈곤, 신자유주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버마에서 예상되는 민주주의의 장애요인과 기대되는 해결방식
종족갈등-협의 민주주의
버마는 130여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상 군부는 1947년의 아웅산 장군 주도의 핀롱합의(Panlong Agreement)가 좌초하면서 버마족과 다른 종족간의 갈등의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 초대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핀롱합의 정신에 입각한 연방주의(Federalism)의 실현이 다종족사회인 버마의 통합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다. 그리고 그 연방주의의 정치적 기제로 A. Lijphart가 개념화한 협의 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를 적용해 볼 수 있다. 협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민족, 언어, 종교로 구성된 스위스와 같은 나라에서 제도화된 민주주의로서 반대보다는 합의, 배제보다는 수용, 다수의 횡포로부터의 소수의 보호 등을 통한 대연정(grand coalition executive)과 권력공유를 제도화한다. 협의 민주주의는 다수결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의 결함을 혁신한 것이다. 이를테면 스위스에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어, 레토-로만어가 모두 국어로 인정된다. 어떠한 코뮌도 고유 언어를 변경토록 강요받지 않는다.
정치지향적 군부-타협에 의한 민주주의
버마에서 군부는 영국 식민지와 일본 식민지를 거치면서 전개되었던 민족독립투쟁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민주화 이후 군에 대한 문민우위의 원리를 관철시키려면 군부에 대한 배제가 아닌 직업주의를 지향하는 군부 내 개혁파와의 동맹이 필요하다.
행정체계․정책결정의 비효율-근대적 관료제의 제도화
마웅 민 뇨(Maung Min Nyo) 박사는 네윈, 딴쉐 군부체제는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군부체제와는 달리 근대적 관료제 정착에 실패했음을 주장한다. 따라서 행정체계의 효율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본위의 관료제(meritocracy) 구축이 필요하다. 산출된 정책에 대한 수요자의 불만은 과거 군부독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 수 있다.
저발전-민주적 발전국가모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모델 혹은 개발독재모델을 통해 압축성장에 성공하였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같이 가는 ‘민주적 발전국가 모델’의 조직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동아시아의 연대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조절형 경제자유화(regulated liberalization)
민주화 이후 부패와 비효율을 상징하는 국가부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유화 조치가 불가피하다. 동구의 경우 옛 공산귀족들이 민간기업을 장악하는 기이한 현상이 있었던 바 급진적 시장화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를 통제하면서 효율과 투명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점진적 방식의 신중한 경제자유화가 필요할 것이다.
과거청산-사면과 처벌의 혼합
인권유린에 연루된 자들에 대한 급격한 처벌은 과거 권위주의세력을 자극하여 이들의 집단적 저항을 유도할 수 있다. 반면 과거청산에 대한 민주정부의 보수적 태도는 지지층을 상실할 수 있다. 사면과 처벌의 황금비의 혼합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황금비는 민주주의의 심화를 꾀하는 진보세력과 과거회귀적 보수세력간의 힘의 균형에 의존할 것이다.
* 출처 : 아레나(Asian Regional Exchange for New Alternatives) / 버마전략회의-독재 이후 버마 민주화의 예상 도전들과 민주개혁구상(Envisioning Post-Dictatorship Burma) 자료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