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세가지 내용을 비교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살기를 희망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수 있습니다. 무엇을 향하여 살아가는 자를 생각하게 하는 책 <꽃들에게 희망을>을 떠올리게 됩니다.
1. 2006년 중국사회의 모습 : 방노
중국 TV방송국은 2006년에 중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는 "기금(基金),방노(房奴),보이차" 였다고 보도했다. (월간지 운남보이차 2007년 봄호73쪽)
이 중에서 방노(房奴)의 뜻은 집의 노예란 뜻으로 생명의 황금시기인 20 ~ 30년을 소모하며 매달 가정소득의 40 ~ 50%를 집 대출에 지불하고 있는 도시주민들을 말함이라고 주석이 붙어 있다.
2. 집값에 죽고, 집값에 살고
변호사에게 가장 많은 사건 중 하나는 역시 땅이나 집 문제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여기저기 집이나 땅 많은 회사나 사람이 좋은 고객이라고 한다. 집 가진 사람이 겪는 고민과 싸움은 집 살 때부터 시작되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아니, 죽고 나서도 끝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문제가 생기는 것도 땅 많은 집이고, 이혼할 때에도, 집 없는 부부는 훌훌 털고 끝나도 땅 많은 부부는 오래, 크게 싸운다. 어디 땅을 사야 오를지, 경매 물건이 싸다는데 혹 문제 있는 건 아닌지. 두 채 이상의 집을 가지면 세금이 많다니 누구 이름을 빌려야 하나, 그랬다가 영영 돌려받지 못하면 어쩌지. 일단 집을 사면 한가해질 것 같지만, 외려 더 바빠진다. 세입자나 이웃과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장애인 학교라도 들어설라치면 혹여 집 값 떨어질까 띠 두르고 데모해야 하고, 집이 낡으면 재건축을 해야 하고, 이참에 조금이라도 더 넓힐 수 있게 노심초사해야 하니까.
이런 싸움에서 고객들을 거들다 보면 톨스토이의 짧은 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생각난다. “땅을 파먹고 살아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도 않고, 악마도 무섭지 않아”라던 자부심 강한 농부 ‘바흠’은, 땅 주인이 되면서 달라진다. 소작인 시절 그렇게 미워하던 지주처럼, 옆집 소가 목초지를 짓밟으면 재판을 했고, 재판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재판관과 이웃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면서 “땅은 넓게 가졌으나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땅을 찾아 먼 마을로 갔고, 다른 사람들과 다시 싸워야 했다. 생활이 충분해지자 이번에는 별장을 갖고 싶어 더 많은 땅이 필요했다. 드디어 풍요로운 유목지의 멋진 땅을 찾아가 “하루 종일 걸은 만큼의 땅”을 사게 되는데, 되도록 많은 땅을 위해 무리해 걷다가 죽고 말았다. 결국 자기 몸을 누인 무덤만큼이 그가 차지할 수 있는 땅의 전부가 된 셈이다. 오래 전 톨스토이 역시, 땅 가진 사람과 싸움, 재판, 그리고 괴로움의 문제를 꿰뚫어 본 모양이다.
지금 대한민국도, 같은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듯하다. 땅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못 하나 편히 박고 추운 계절에 이사 걱정 안 해도 되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월급을 꼬박꼬박 저금해야 하는 사람들 모두. 회사나 동네에서도 몇명만 모이면 다들 집값 얘기다. 행정 수도를 옮긴다는 동네는 무슨 계엄령처럼 ‘투기과열지구’가 선포되고, 이전 반대가 모두 서울에 집 가진 사람들 욕심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집이 낡으면 새로 고쳐 살려고 하는 ‘재건축’일 터인데, 별로 낡지도 않은 집을 모두 헐고 새로 짓는다면서, 가난한 임대주택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집 값 떨어뜨리느니 새로 짓지 않겠다고 엉뚱한 협박을 한다. 집 값이 두배씩 뛸 때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아직 10%도 안 떨어졌는데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분배주의자’ 교수 몇몇이 시장을 죽여 놓았다고 하더니, “이대로라면 이 정권에서 경기가 살아날 리가 없다”라는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집 값이 오르기 때문에 부양해야 하는 부동산 경기는 진짜 ‘경기’도 아닐 뿐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가지 않는 집을 위해 무작정 ‘건설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부동산 값이 비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시장 기능에는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이 여자, 집 한 채 없으니 억한 심정에서 이러는 것 아냐 흐음, 그럴 수도. 그렇지만, 이제 내 친구들도 “집값이 오를 동네”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동네”에 집을 샀으면 한다. 그래서 만나면 집 값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다. ‘건설·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삶의 터전을 주는, 제대로 된 ‘주거’ 정책으로, 어린 가장들이 더 이상 ‘러브하우스’에 나오지 않아도 되었으면 한다. 도대체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얼마만큼의 땅과 집이 ‘필요’한가? 김진/변호사 (한겨레신문 2004. 7. 15)
3. 아파트급등이 불러 온 두 입사동기생의 명암
서울시 소재의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입사동기생 A(47)씨와 B(43)씨는 최근 심각한 이질감에 시달리고 있다(위 도표 참조). 99년 경기도 일산의 같은 아파트 38평형에 살다가 각각 서울시 서초구와 양천구로 이사를 했지만 아파트 자산가치가 4년 사이에 3배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A씨의 경우 99년 일산아파트를 1억5000만에 팔고, 여기에 1000만원을 보태 서초구의 27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당시 구입할 때 가격이 2000만원 올라 망설였지만, 아이들 교육문제로 강남권 진입을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2001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아파트는 3배 가까이 뛰어 현재 4억5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B씨는 2001년 말에 서울로 이주를 결정, 일산아파트를 판 돈으로 서울시 강남권 아파트를 사기에 이미 늦어 버렸다. 그래서 양천구의 32평형 아파트를 1억6000만원 주고 전세를 들었다. 그러나 아파트 급등과 더불어 전세가격도 2년 사이에 5000만원이나 올랐다. B씨는 지금 전세로 이사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때 은행 돈을 빌려서라도 아파트를 구입했으면 오른 전세가를 채워야 하는 어려움도 없었으리란 후회와 함께 입사동기생 A씨와 비교되는 자신에 대해 낭패감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A씨와 B씨가 99년 일산아파트에 살 때는 1억5000만원의 부동산자산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2003년 현재, 두사람의 자산은 4억5000만원과 1억6000만원으로 3배나 벌어져 있다. 3억원이면 B씨가 한해 1000만원씩 모아도 30년 걸리는 액수다. 한때 판단의 차이가 불러온 A씨와 B씨의 이같이 극명한 명암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파트 가격의 차별적 상승이 직장내 빈부격차를 불러, 근로 분위기를 심각하게 해칠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에게 미래의 전망을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홍장기 기자(내일신문 2003. 10. 23)
집값에 살고, 집값에 죽고
다음의 세가지 내용을 비교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살기를 희망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수 있습니다. 무엇을 향하여 살아가는 자를 생각하게 하는 책 <꽃들에게 희망을>을 떠올리게 됩니다.
1. 2006년 중국사회의 모습 : 방노
중국 TV방송국은 2006년에 중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는 "기금(基金),방노(房奴),보이차" 였다고 보도했다. (월간지 운남보이차 2007년 봄호73쪽)
이 중에서 방노(房奴)의 뜻은 집의 노예란 뜻으로 생명의 황금시기인 20 ~ 30년을 소모하며 매달 가정소득의 40 ~ 50%를 집 대출에 지불하고 있는 도시주민들을 말함이라고 주석이 붙어 있다.
2. 집값에 죽고, 집값에 살고
변호사에게 가장 많은 사건 중 하나는 역시 땅이나 집 문제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여기저기 집이나 땅 많은 회사나 사람이 좋은 고객이라고 한다. 집 가진 사람이 겪는 고민과 싸움은 집 살 때부터 시작되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아니, 죽고 나서도 끝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문제가 생기는 것도 땅 많은 집이고, 이혼할 때에도, 집 없는 부부는 훌훌 털고 끝나도 땅 많은 부부는 오래, 크게 싸운다. 어디 땅을 사야 오를지, 경매 물건이 싸다는데 혹 문제 있는 건 아닌지. 두 채 이상의 집을 가지면 세금이 많다니 누구 이름을 빌려야 하나, 그랬다가 영영 돌려받지 못하면 어쩌지. 일단 집을 사면 한가해질 것 같지만, 외려 더 바빠진다. 세입자나 이웃과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장애인 학교라도 들어설라치면 혹여 집 값 떨어질까 띠 두르고 데모해야 하고, 집이 낡으면 재건축을 해야 하고, 이참에 조금이라도 더 넓힐 수 있게 노심초사해야 하니까.
이런 싸움에서 고객들을 거들다 보면 톨스토이의 짧은 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생각난다. “땅을 파먹고 살아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도 않고, 악마도 무섭지 않아”라던 자부심 강한 농부 ‘바흠’은, 땅 주인이 되면서 달라진다. 소작인 시절 그렇게 미워하던 지주처럼, 옆집 소가 목초지를 짓밟으면 재판을 했고, 재판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재판관과 이웃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면서 “땅은 넓게 가졌으나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땅을 찾아 먼 마을로 갔고, 다른 사람들과 다시 싸워야 했다. 생활이 충분해지자 이번에는 별장을 갖고 싶어 더 많은 땅이 필요했다. 드디어 풍요로운 유목지의 멋진 땅을 찾아가 “하루 종일 걸은 만큼의 땅”을 사게 되는데, 되도록 많은 땅을 위해 무리해 걷다가 죽고 말았다. 결국 자기 몸을 누인 무덤만큼이 그가 차지할 수 있는 땅의 전부가 된 셈이다. 오래 전 톨스토이 역시, 땅 가진 사람과 싸움, 재판, 그리고 괴로움의 문제를 꿰뚫어 본 모양이다.
지금 대한민국도, 같은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듯하다. 땅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못 하나 편히 박고 추운 계절에 이사 걱정 안 해도 되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월급을 꼬박꼬박 저금해야 하는 사람들 모두. 회사나 동네에서도 몇명만 모이면 다들 집값 얘기다. 행정 수도를 옮긴다는 동네는 무슨 계엄령처럼 ‘투기과열지구’가 선포되고, 이전 반대가 모두 서울에 집 가진 사람들 욕심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집이 낡으면 새로 고쳐 살려고 하는 ‘재건축’일 터인데, 별로 낡지도 않은 집을 모두 헐고 새로 짓는다면서, 가난한 임대주택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집 값 떨어뜨리느니 새로 짓지 않겠다고 엉뚱한 협박을 한다. 집 값이 두배씩 뛸 때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아직 10%도 안 떨어졌는데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분배주의자’ 교수 몇몇이 시장을 죽여 놓았다고 하더니, “이대로라면 이 정권에서 경기가 살아날 리가 없다”라는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집 값이 오르기 때문에 부양해야 하는 부동산 경기는 진짜 ‘경기’도 아닐 뿐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가지 않는 집을 위해 무작정 ‘건설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부동산 값이 비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시장 기능에는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이 여자, 집 한 채 없으니 억한 심정에서 이러는 것 아냐 흐음, 그럴 수도. 그렇지만, 이제 내 친구들도 “집값이 오를 동네”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동네”에 집을 샀으면 한다. 그래서 만나면 집 값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다. ‘건설·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삶의 터전을 주는, 제대로 된 ‘주거’ 정책으로, 어린 가장들이 더 이상 ‘러브하우스’에 나오지 않아도 되었으면 한다. 도대체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얼마만큼의 땅과 집이 ‘필요’한가? 김진/변호사 (한겨레신문 2004. 7. 15)
3. 아파트급등이 불러 온 두 입사동기생의 명암
서울시 소재의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입사동기생 A(47)씨와 B(43)씨는 최근 심각한 이질감에 시달리고 있다(위 도표 참조). 99년 경기도 일산의 같은 아파트 38평형에 살다가 각각 서울시 서초구와 양천구로 이사를 했지만 아파트 자산가치가 4년 사이에 3배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A씨의 경우 99년 일산아파트를 1억5000만에 팔고, 여기에 1000만원을 보태 서초구의 27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당시 구입할 때 가격이 2000만원 올라 망설였지만, 아이들 교육문제로 강남권 진입을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2001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아파트는 3배 가까이 뛰어 현재 4억5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B씨는 2001년 말에 서울로 이주를 결정, 일산아파트를 판 돈으로 서울시 강남권 아파트를 사기에 이미 늦어 버렸다. 그래서 양천구의 32평형 아파트를 1억6000만원 주고 전세를 들었다. 그러나 아파트 급등과 더불어 전세가격도 2년 사이에 5000만원이나 올랐다.
B씨는 지금 전세로 이사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때 은행 돈을 빌려서라도 아파트를 구입했으면 오른 전세가를 채워야 하는 어려움도 없었으리란 후회와 함께 입사동기생 A씨와 비교되는 자신에 대해 낭패감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A씨와 B씨가 99년 일산아파트에 살 때는 1억5000만원의 부동산자산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2003년 현재, 두사람의 자산은 4억5000만원과 1억6000만원으로 3배나 벌어져 있다. 3억원이면 B씨가 한해 1000만원씩 모아도 30년 걸리는 액수다.
한때 판단의 차이가 불러온 A씨와 B씨의 이같이 극명한 명암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파트 가격의 차별적 상승이 직장내 빈부격차를 불러, 근로 분위기를 심각하게 해칠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에게 미래의 전망을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홍장기 기자(내일신문 2003.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