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이나 와 같은 다른 '발 루튼'의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마크 로브슨'감독은 '자크 투르네'처럼 '오퇴르'도 아니고 '로버트 와이즈'처럼 헐리웃 거장도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를 깎아내리는 것은 부당하다. 로브슨감독은 언제나 훌륭하게 '발 루튼'영화들을 만들어왔으며, 는 그의 영화중 가장 훌륭한 영화 중 하나이다. 모든 루튼의 작품이 그렇듯 이 영화에도 루튼의 컴컴한 개성이 가득 차 있다.
는 물리적 폭력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나오는 구체적인 폭력이란 한 건의 살인으로 악의를 품은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며 살해 과정 또한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물리적 폭력의 부재가 결코 폭력의 부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루튼은 이 비폭력의 폭력을 의식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의 악역인 악마 숭배자들은 상당히 기묘한 사람들로 그들은 , 에 나오는 광신자들도 아니며 특별히 나쁜 사람들도 아니다. 단지 보통 사람들과 다른 걸 믿는 온화하고 지적인 뉴요커들일 뿐이다. 그들은 철저한 비폭력주의자들이다.
재클린의 사형 집행 장면은 그 아이러니컬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으로 재클린 앞에 독이 든 술잔을 놓고 모여앉아 마실 때까지 그녀를 설득한다. "안 마신다면? 어쩌겠어요? 비폭력이 원칙인데."
그러나 이 폭력 아닌 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도 훨씬 잔인하다. 물리적인 폭력은 육체적인 해만 입힐 뿐이지만 이런 비폭력은 사람들의 영혼을 때려 눕힌다. 이들한테 처벌당한 일곱 명의 희생자들이 모두 타의에 의해 희생된 것이 아니며,끔찍함을 더하는 것은 그들에게 악의도 없다는 점입니다. 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온화한 살인들은 분노나 광기에 의한 난도질보다도 더 무섭다. 영화의 황량하기 그지없는 엔딩과 섬뜩한 분위기도 그 때문이다.
'로브슨'감독은 '투르네'처럼 매혹적인 영화적 어법으로 이 영화를 장식하지는 않았지만, 이나 에서 느낄 수 있는 거의 에로틱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은 이 영화에 나타나질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그 나름대로의 풍부한 아이디어들과 멋진 분위기가 있다. 가장 루튼의 작품다운 장면은 사립탐정 '어빙 어거스트'가 '메리'를 남겨두고 '재클린'을 찾아 복도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으로 악마의 입처럼 '어거스트'를 삼켜버린 어두컴컴한 복도 앞에서 조바심내며 기다리는 메리의 모습은 루튼식의 간접화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메리'가 지하철에서 '어거스트'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의 태평스러운 차분함, 끝없는 미로와 그림자로 이루어진 '재클린'의 마지막 귀로, 그리고 '재클린'의 텅 빈 방에 놓인 의자와 올가미. 하지만 영화팬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메리'의 샤워실 장면이다. 메리의 샤워실에 불쑥 들어와 샤워 커튼 뒤에서 진상을 폭로하는 '레디'부인의 흐릿한 모습은 의 샤워실 장면과 이상할 정도로 비슷하며 이 영화가 한참 먼저이다.
이 영화는 '킴 헌터'의 데뷰작으로 훗날 의주인공과 에서 '스텔라'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일곱 번째 희생자 (The Seventh Victim, 1943)
미국 / 드라마, 호러 / 71분 / 감독: 마크 로브슨
(★★★★☆)
영화는 이나 와 같은 다른 '발 루튼'의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마크 로브슨'감독은 '자크 투르네'처럼 '오퇴르'도 아니고 '로버트 와이즈'처럼 헐리웃 거장도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를 깎아내리는 것은 부당하다. 로브슨감독은 언제나 훌륭하게 '발 루튼'영화들을 만들어왔으며, 는 그의 영화중 가장 훌륭한 영화 중 하나이다. 모든 루튼의 작품이 그렇듯 이 영화에도 루튼의 컴컴한 개성이 가득 차 있다.
는 물리적 폭력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나오는 구체적인 폭력이란 한 건의 살인으로 악의를 품은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며 살해 과정 또한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물리적 폭력의 부재가 결코 폭력의 부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루튼은 이 비폭력의 폭력을 의식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의 악역인 악마 숭배자들은 상당히 기묘한 사람들로 그들은 , 에 나오는 광신자들도 아니며 특별히 나쁜 사람들도 아니다. 단지 보통 사람들과 다른 걸 믿는 온화하고 지적인 뉴요커들일 뿐이다. 그들은 철저한 비폭력주의자들이다.
재클린의 사형 집행 장면은 그 아이러니컬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으로 재클린 앞에 독이 든 술잔을 놓고 모여앉아 마실 때까지 그녀를 설득한다. "안 마신다면? 어쩌겠어요? 비폭력이 원칙인데."
그러나 이 폭력 아닌 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도 훨씬 잔인하다. 물리적인 폭력은 육체적인 해만 입힐 뿐이지만 이런 비폭력은 사람들의 영혼을 때려 눕힌다. 이들한테 처벌당한 일곱 명의 희생자들이 모두 타의에 의해 희생된 것이 아니며,끔찍함을 더하는 것은 그들에게 악의도 없다는 점입니다. 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온화한 살인들은 분노나 광기에 의한 난도질보다도 더 무섭다. 영화의 황량하기 그지없는 엔딩과 섬뜩한 분위기도 그 때문이다.
'로브슨'감독은 '투르네'처럼 매혹적인 영화적 어법으로 이 영화를 장식하지는 않았지만, 이나 에서 느낄 수 있는 거의 에로틱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은 이 영화에 나타나질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그 나름대로의 풍부한 아이디어들과 멋진 분위기가 있다. 가장 루튼의 작품다운 장면은 사립탐정 '어빙 어거스트'가 '메리'를 남겨두고 '재클린'을 찾아 복도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으로 악마의 입처럼 '어거스트'를 삼켜버린 어두컴컴한 복도 앞에서 조바심내며 기다리는 메리의 모습은 루튼식의 간접화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메리'가 지하철에서 '어거스트'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의 태평스러운 차분함, 끝없는 미로와 그림자로 이루어진 '재클린'의 마지막 귀로, 그리고 '재클린'의 텅 빈 방에 놓인 의자와 올가미. 하지만 영화팬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메리'의 샤워실 장면이다. 메리의 샤워실에 불쑥 들어와 샤워 커튼 뒤에서 진상을 폭로하는 '레디'부인의 흐릿한 모습은 의 샤워실 장면과 이상할 정도로 비슷하며 이 영화가 한참 먼저이다.
이 영화는 '킴 헌터'의 데뷰작으로 훗날 의주인공과 에서 '스텔라'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