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터 시작 할 이야기는 실화지만... 정말 영화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첫사랑... 사랑이라고 말하기 뭐한 만큼 어린 나이었던거 같다.초등학교를 입학한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약 30~40분 가량 걸어서 다녔다.(초등학교 1학년 걸음으로 30~40분... 다시 가서 걸어봤을때는 15~20분 정도 걸렸다.) 그래서 솔직히 학교를 가는게 정말 너무도 싫었던 기억이 난다.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 처럼 학교를 가는 길에 집에서 약 200m 쯤 거리에 있는 골목에서한 여자 아이가 나오는걸 봤다.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아! 이쁘다...' 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우연찮게 그 여자 아이를 봤고, 그 여자아이는 부지런한 편이었는지 항상 등교길을 일찍 나서곤 했다. 나는 그 여자아이를 보기 위해서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우리집 방향쪽으로 약 50m거리에서 그 여자아이가 나오는걸 기다렸다.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나오면 나는 뒤따라 등교를 했다. 말 한마디 못 건채 그렇게 뒤따라 학교를 다니다 보니 여름 방학을 하고 그 여자아이는 집에서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개학 후...나는 뒤따라 가는 등교를 다시 시작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머니께서 아침에 깨워도 그렇게 안 일어 날려고 하던 내가, 먼저 일찍 깨워 달라고 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 하셨다고 한다.하지만 어머니께서 내가 왜 그랬는지 눈치를 채시고 아무말 없이 그렇게 협조(?)를 해주셨다.협조라고 해봐야... 아침에 안 일어 날려고 발버둥 치는 나를 깨워주셨던 것이지만....^^;; 또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갔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1학년을 마치는 동안까지그 여자애 이름도 모르고 말도 붙여 본 적 없었다.아는 것이라고는 얼굴과 등교길에 나서는 대략적인 시간정도? 그리고 사는 집... 겨울방학을 하고 또 한동안 그 여자아이를 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반 배정을 하던날... 하늘이 내 정성을 알아주신걸까?그 여자아이랑 같은 반이 된것이 아닌가!정말 '만세삼창' 을 외치고 싶을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쿵쾅쿵쾅...' 심장이 막 뛰고... 거의패닉 상태에 빠져 정신 없이 하루를 보냈다. 배영초등학교...(현재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에 있는 학교) 2학년 7반... 같은반이 되면서 이름도 알게 됐고 수업중에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고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기억도 있다.그때 당시 (아직도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짝꿍'을 정하는 날이 있었다.3~4번 계속 짝이 안 되길래 그냥 보기만이라도 할수 있는걸로 위안을 삼으며 지내던 어느날...짝이 됐다! 정말 수업 내내 고개를 옆으로 돌릴수 없었다.새하얀 얼굴...지금 생각 해보면 약간 이국적인 이미지로 갈색빛 머리색... 눈만 슬쩍 돌려 쳐다보고 혼자 얼굴이 빨개지고... 지금 생각 해보면 정말 쑥스럽다. 그러다 방학을 한 후 우연찮게 방학을 했는데도 그 여자 아이를 종종 보게 되었다.그렇게 얼굴을 자주 보다 보니 좀 친해진건가... 2학기가 시작 되서 항상 그랬듯이 뒤따라 가는등교길에 같이 가자는게 아닌가... 쑥스러워서 그랬던것 같다. '싫어! 그냥 뒤에서 가는게 편해'라고 말해버렸다. 여자아이는... 무안했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내 자신을 탓하면 뒤따라갔다. 어린 마음에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 하는거라고는 괴롭히고 장난치고 놀리고....그랬던것 같다. 왜 그랬지는지 모르겠다....... 지금 떠올려 보면 웃음 밖에 안나는 유치한 별명... '소림사'... 뒤따라 가며 종종 가방을 툭 치고뛰어가면서 '메롱! 소림사~!!!' 이러기도 했다. 종종 그런 장난(?)을 쳤는데 하루는 울어버리는게 아닌가... 어쩔줄 몰라서 '바보같이 왜우냐!' 라고 해놓고 가버렸다.... 이런 저런 일들과 함께 시간이 지나고.... 겨울방학이 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고민거리는.... 3학년이 되면 못 보게 되는것이었다. 내 걱정과는 달리...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참... 신기한 일이었다. 3학년 3반...2학년 때와 같은 날을 보내며 한 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여름 방학 역시 별다른일이 없이 잘 지나갔다고 생각 할 무렵... 개학 이틀 전에 교통사고가 났다. 병명은 '두강 내 출혈'...두개골이 깨지지 않아 외부로 출혈이 없이 파열된 혈관에 피들이 두개골 안에 즉 뇌에 고여있는증상이다. 쉽게 설명 하자면 망치질 하다가 손을 찌었을때 피가 뭉치는거랑 비슷하다. 교통사고가 났을 당시 나는 의식을 잃었고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잠시 깨어났다. 어머니가 계셨고 아버지가 계셨고 두분 다 놀란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던것도 기억이 난다. 괜찮다고 해놓고'엄마, 나 어지러워...'소리와 함께 다시 의식을 잃었다. 응급실에서 잠시 깨어난 뒤 나는 의식불명 상태로 일주일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물론 학교에는 연락을 했고 담임 선생님이 들렸다가 가셨다고 한다. 의식불명 상태로 일주일이 지나서 잠시 나는 깨어났고 눈을 뜨는걸 확인한 부모님은 기뻐 하셨지만 나는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또 의식을 잃었다. 그렇게 또 3일이 지나고... 깨어 났다가 또 의식을 잃고... 거의 보름간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하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보름 정도 기간동안 담당의사와 아버지께서는 수술을 해서 피를 빼내는 방법과 약물치료 방법으로 상의를 하고 계셨다고 한다. 수술을 할 경우 그 당시에는 제대로 성공할 확률이 적었고,흉터가 심하게 남아 정상적인 삶에 지장이 있었다.약물 치료는 약으로 피를 응고 시키는것이기 때문에 흉터는 없지만 내 목숨을 담보로 했었다.약물을 투여 했는데 호전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죽는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흉터를 안고 힘들게 살 바에는 좀 위험하지만 내 아들이 잘 버텨 낼거라고 믿고약물 투여 치료쪽을 선택 하셨고 나는 운이 좋게도 호전이 되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약 보름을 하고 나는 퇴원 할 수 있을 만큼 상처는 치유됐고 안정을 찾기 위해 일주일가량 더 입원해있었다. 그동안 반친구들과 선생님, 아는 사람들, 친척들 모두 병문안을 왔었지만 단 한사람... 그 아이는오지 않았다.나는 퇴원 후 다음날 바로 학교를 갔고 빈 자리 하나를 발견했다.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없는 사람이 있다는걸 알았다. 물어 보기 뭐해서 모른척 했지만 이틀 후 나는 슬쩍 물어봤다.'그 여자아이 어디갔냐? 안보이네? 놀릴 사람이 안보여서 그래~'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가며 나는 물었고....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두번째 짝사랑편] 에서 계속....^^
ㆀ 첫사랑 부터 현재까지....[첫사랑편]
지금 부터 시작 할 이야기는 실화지만... 정말 영화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첫사랑... 사랑이라고 말하기 뭐한 만큼 어린 나이었던거 같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약 30~40분 가량 걸어서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 걸음으로 30~40분... 다시 가서 걸어봤을때는 15~20분 정도 걸렸다.)
그래서 솔직히 학교를 가는게 정말 너무도 싫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 처럼 학교를 가는 길에 집에서 약 200m 쯤 거리에 있는 골목에서
한 여자 아이가 나오는걸 봤다.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아! 이쁘다...' 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우연찮게 그 여자 아이를 봤고, 그 여자아이는 부지런한 편이었는지 항상 등교길을 일찍 나서곤 했다. 나는 그 여자아이를 보기 위해서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우리집 방향쪽으로 약 50m
거리에서 그 여자아이가 나오는걸 기다렸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나오면 나는 뒤따라 등교를 했다.
말 한마디 못 건채 그렇게 뒤따라 학교를 다니다 보니 여름 방학을 하고 그 여자아이는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개학 후...
나는 뒤따라 가는 등교를 다시 시작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머니께서 아침에 깨워도 그렇게
안 일어 날려고 하던 내가, 먼저 일찍 깨워 달라고 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내가 왜 그랬는지 눈치를 채시고 아무말 없이 그렇게 협조(?)를 해주셨다.
협조라고 해봐야... 아침에 안 일어 날려고 발버둥 치는 나를 깨워주셨던 것이지만....^^;;
또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갔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1학년을 마치는 동안까지
그 여자애 이름도 모르고 말도 붙여 본 적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얼굴과 등교길에 나서는 대략적인 시간정도? 그리고 사는 집...
겨울방학을 하고 또 한동안 그 여자아이를 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반 배정을 하던날... 하늘이 내 정성을 알아주신걸까?
그 여자아이랑 같은 반이 된것이 아닌가!
정말 '만세삼창' 을 외치고 싶을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쿵쾅쿵쾅...' 심장이 막 뛰고...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정신 없이 하루를 보냈다.
배영초등학교...(현재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에 있는 학교) 2학년 7반...
같은반이 되면서 이름도 알게 됐고 수업중에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고 얼굴이 빨개
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기억도 있다.
그때 당시 (아직도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짝꿍'을 정하는 날이 있었다.
3~4번 계속 짝이 안 되길래 그냥 보기만이라도 할수 있는걸로 위안을 삼으며 지내던 어느날...
짝이 됐다!
정말 수업 내내 고개를 옆으로 돌릴수 없었다.
새하얀 얼굴...지금 생각 해보면 약간 이국적인 이미지로 갈색빛 머리색...
눈만 슬쩍 돌려 쳐다보고 혼자 얼굴이 빨개지고... 지금 생각 해보면 정말 쑥스럽다.
그러다 방학을 한 후 우연찮게 방학을 했는데도 그 여자 아이를 종종 보게 되었다.
그렇게 얼굴을 자주 보다 보니 좀 친해진건가... 2학기가 시작 되서 항상 그랬듯이 뒤따라 가는
등교길에 같이 가자는게 아닌가... 쑥스러워서 그랬던것 같다. '싫어! 그냥 뒤에서 가는게 편해'
라고 말해버렸다.
여자아이는... 무안했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내 자신을 탓하면 뒤따라
갔다. 어린 마음에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 하는거라고는 괴롭히고 장난치고 놀리고....
그랬던것 같다. 왜 그랬지는지 모르겠다.......
지금 떠올려 보면 웃음 밖에 안나는 유치한 별명... '소림사'... 뒤따라 가며 종종 가방을 툭 치고
뛰어가면서 '메롱! 소림사~!!!' 이러기도 했다.
종종 그런 장난(?)을 쳤는데 하루는 울어버리는게 아닌가... 어쩔줄 몰라서 '바보같이 왜우냐!'
라고 해놓고 가버렸다.... 이런 저런 일들과 함께 시간이 지나고....
겨울방학이 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고민거리는.... 3학년이 되면 못 보게 되는것이었다.
내 걱정과는 달리...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3학년 3반...
2학년 때와 같은 날을 보내며 한 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여름 방학 역시 별다른
일이 없이 잘 지나갔다고 생각 할 무렵... 개학 이틀 전에 교통사고가 났다.
병명은 '두강 내 출혈'...
두개골이 깨지지 않아 외부로 출혈이 없이 파열된 혈관에 피들이 두개골 안에 즉 뇌에 고여있는
증상이다. 쉽게 설명 하자면 망치질 하다가 손을 찌었을때 피가 뭉치는거랑 비슷하다.
교통사고가 났을 당시 나는 의식을 잃었고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잠시 깨어났다. 어머니가 계셨고 아버지가 계셨고 두분 다 놀란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던것도 기억이 난다. 괜찮다고 해놓고
'엄마, 나 어지러워...'소리와 함께 다시 의식을 잃었다.
응급실에서 잠시 깨어난 뒤 나는 의식불명 상태로 일주일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학교에는 연락을 했고 담임 선생님이 들렸다가 가셨다고 한다.
의식불명 상태로 일주일이 지나서 잠시 나는 깨어났고 눈을 뜨는걸 확인한 부모님은 기뻐 하셨
지만 나는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또 의식을 잃었다.
그렇게 또 3일이 지나고... 깨어 났다가 또 의식을 잃고... 거의 보름간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하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보름 정도 기간동안 담당의사와 아버지께서는 수술을 해서 피를 빼내는 방법과 약물치료 방법으로 상의를 하고 계셨다고 한다. 수술을 할 경우 그 당시에는 제대로 성공할 확률이 적었고,
흉터가 심하게 남아 정상적인 삶에 지장이 있었다.
약물 치료는 약으로 피를 응고 시키는것이기 때문에 흉터는 없지만 내 목숨을 담보로 했었다.
약물을 투여 했는데 호전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죽는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흉터를 안고 힘들게 살 바에는 좀 위험하지만 내 아들이 잘 버텨 낼거라고 믿고
약물 투여 치료쪽을 선택 하셨고 나는 운이 좋게도 호전이 되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약 보름을 하고 나는 퇴원 할 수 있을 만큼 상처는 치유됐고 안정을 찾기 위해 일주일
가량 더 입원해있었다.
그동안 반친구들과 선생님, 아는 사람들, 친척들 모두 병문안을 왔었지만 단 한사람... 그 아이는
오지 않았다.
나는 퇴원 후 다음날 바로 학교를 갔고 빈 자리 하나를 발견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없는 사람이 있다는걸 알았다.
물어 보기 뭐해서 모른척 했지만 이틀 후 나는 슬쩍 물어봤다.
'그 여자아이 어디갔냐? 안보이네? 놀릴 사람이 안보여서 그래~'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가며 나는 물었고....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두번째 짝사랑편]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