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와 더불어 한국 영화계는 또 하나의 괴물같은 신인 감독을 갖게 되었다. 나홍진 감독은 상당히 재량있는 감독이다. 디테일이 뛰어난 점에서 봉준호 감독을 연상시키고, 스타파워에 연연하지 않고 가장 걸맞는 배우를 기용하는 혜안을 가진 점에서 장준환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그가 뛰어난 것은 탁월한 시나리오와 연출력을 동시에 겸비한 점이다. 5년간 구상하고 3년간 30고가 넘는 시나리오 작업을 마다 않은 노력가이면서도 씬의 배치, 숏의 연결등에서 거의 한 군데도 나무랄 데가 없는 (신인답지 않은) 스타일을 보여주는 숙련된 장인이기도 하다.
좋은 영화답게 좋은 리뷰도 상당히 많다. 다른 글과 중첩되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히 의식하며 글을 쓰게 된다. 사실 기회가 된다면 이 영화를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고픈 맘이 있다. 컷 단위로 해체하여 자세히 탐구해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영화의 DVD라도 출시되야 가능한 일일 듯싶어 훗날을 기약하고 지금은 우선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보겠다.
[추격자]가 흥미로웠던 것은 단순히 시스템에 대한 고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주인공 중호(김윤석)에게서 여자를 지키려는 '남자'이자, 아이를 보호하는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는 (폭폭한 한국 사회 시스템의 고발을 제쳐두고라도) 중호가 점점 변화되는 추이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 그는 쓰레기에서 출발하여 따뜻한 인간이 된다. 윤락업의 포주는 밑바닥 인생이다. 전직 경찰관답게 냉철하고 폭력도 불사한다. 감기가 들어 아파하는 미진(서영희)에게 일(윤락)을 강요할 정도로 비정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결국 그 쓰레기 같은 비정함은 중호의 본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는데 점점 따뜻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라는 해석은 왠지 꺼림직하다. 그에겐 이미 내밀한 감수성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이 발현될 일과 맞닥뜨렸다, 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오히려 저런 여린 맘으로 어떻게 그전까지 험악한 일을 해내오고 있었을까, 하는 연민의 감정까지 들 정도이다. 그가 미진의 아이를 발견하게 될 때 짓던 미세한 표정을 보았는가? (이것은 영화의 전개상 초반부이다.) 그가 만약 미진에게 아이가 있고 감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장면을 이미 목도했다면, 그녀에게 냉정히 일을 나가라고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분명 아닐 것이다. 영민(하정우)의 누나 집을 찾아가서 돈을 받으려 각서를 종용하다가도 상처입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그냥 돌아선 그다. 그는 하는 일에 비해선 이미 여린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그가 밑바닥에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직업이 하찮아서라기 보다는 그가 직시해야 할 사회적 모순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던 자아의 상태가 밑바닥을 의미한다는 것. 그동안 내재된 따뜻함에 비해 일을 냉정히 할 수 있었던 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유아적 이기심이었던 것. 쓰레기 같던 나쁜 놈이 완전 교화되었다, 라는 교훈이 아니라, 시스템을 걷돌던 자가 그것에 정면으로 맞부닥끼면서 자신의 감수성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된다는 뒤늦은 성장담. 마치 영화의 시작, 높디 높은 망원동 언덕을 차가 힘겹게 올라가듯이, 골고다 언덕 같은 사회의 깊은 내부까지 쓰라린 맘을 안고 올라가려는 의지. 그런 주제가 배우 김윤석의 한치 오차도 없는 표정과 어우러져 영화적 극한 쾌감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의 장소적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영화에서 가장 감명깊게 느낀 것은 망원동 고지대라는 공간이 의미하는 메타포였다. 언급했듯 영화는 망원동 골목을 차가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망원동의 골목골목은 알고 보면 쓰디쓴 사회 부조리의 상징처럼 쉽게 파악되지도, 근원과 끝도 알기 어렵다. 미진은 아직 죽지 않고 망원동 어딘가에 버려져있는데, 중호는 그의 직원까지 동원해서 골목과 집을 한가구씩 뒤져나가지만 결코 찾지 못한다. 영화의 중반, 중호가 영민의 친구 집을 찾은 틈에 미진의 아이 은지(김유정)가 없어진다. 굉장히 슬픈 장면 중 하나였는데, 중호는 아이를 찾아 망원동 일대를 뒤지지만 아이의 이름도 몰라 소리 한번 못 내보고 뛰어만 다닌다. 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리고 어느 전봇대 밑에 유기된 듯, 쓰러져있는 아이를 보라. 대체 망원동은 어떤 곳인가...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
감독은 그런 망원동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아내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때로는 최대한 가까이, 때로는 무심한 듯 벽에 걸쳐 카메라를 들이댐으로서 땀으로 끈적이는 꿉꿉한 고지대이면서도 동시에 차갑고 어두운 골목임을 완벽하게 드러냈다. 신인 감독답지 않은 연출력이라고 느껴진건 근거리와 원거리에 모두 능통한데다 그 숏들을 정확한 계산으로 배치하여 의도를 극대화하는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숏 연결이 많았는데 아직 한 번밖에 보지 못한 터라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단지 영화가 사회 고발적인 모습에 너무 강박을 갖고 있는 점이 다소 거슬렸다. [그 놈 목소리]처럼 대책 없이 까발리는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의 세련됨을 가미했다손 쳐도, 감독의 주제의식을 절제하기 어려워 표출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냉정히 판단해보면 이 영화는 사회의 모순을 까발리는 장면에서보다는 자꾸 카메라를 중호에게로 근접해서 그의 표정을 잡아낼 때 주는 쾌감이 더욱 크다. 그가 미진을 애타게 찾고 아이를 보호하며 범인을 쫒아가며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흐름에 놓였을 때 영화는 관객을 휘어잡고 힘을 발휘한다. 사회 전반에 걸친 모순은 말 그대로 '고발'이 아니라 '페이소스'처럼 곁들였으면 더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았다. 쉽게 말해 조금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영화의 엔딩은 병원 안이다. 침상에 누운 아이 은지 곁에 중호가 다가와 벽에 기대어 앉아 피곤한 숨을 내쉰다. 그들은 아픈 사람이 가득한 병원에 갇혀있고, 카메라는 서서히 창밖의 서울 야경을 비춘다. 지친 사내와 병든 아이가 살아내기엔 녹녹치 않은 사회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영화가 끝이 난다. 철저한 주제가 깃든 엔딩이다.
그러나 (외람된 말이지만) 나 같으면 그런 엔딩은 선택하지 않았을 듯싶다. 역시 과하다는 생각에설까. 이미 충분히 표출했기에 사족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차라리 중호가 영민을 제압하고 경찰에 진압당해 바닥에 얼굴을 맞대고 목이 잘린 미진의 얼굴을 쳐다보던 클로즈업 숏에서 끝이 났으면 어땠을까. 그 상처 입고 눈물을 흘리던 쓸쓸한 표정을 롱테이크로 가져가며 아픈 숨소리를 곁들인 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면 더욱 파급 효과가 크지 않았을까. 이 영화에는 롱테이크 장면이 없다. 범인을 추격하는 힘든 장면이나 중호의 표정을 롱테이크로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또 다른 재미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추격자]는 정과 같은 날카로움을 지닌 영화이다. 사회 환부에 메스를 대는 솜씨도 날카롭고, 그것을 돕는 연출력도 예리하다다. 아울러 영화가 이미 다 커버린 어른의 쓸쓸한 성장담을 담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더불어 뭉툭한 망치처럼 우직하게 관객을 두드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걸출한 배우 없이도, 그 흔한 티브이 홍보 없이도 그저 묵직한 영화의 장점만으로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노력의 영화이다. 한국 영화계가 위태하면 한 번씩 이렇게 좋은 장르 영화를 배출해 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박수를 보낸다.
[영화평] - 추격자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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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와 더불어 한국 영화계는 또 하나의 괴물같은 신인 감독을 갖게 되었다. 나홍진 감독은 상당히 재량있는 감독이다. 디테일이 뛰어난 점에서 봉준호 감독을 연상시키고, 스타파워에 연연하지 않고 가장 걸맞는 배우를 기용하는 혜안을 가진 점에서 장준환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그가 뛰어난 것은 탁월한 시나리오와 연출력을 동시에 겸비한 점이다. 5년간 구상하고 3년간 30고가 넘는 시나리오 작업을 마다 않은 노력가이면서도 씬의 배치, 숏의 연결등에서 거의 한 군데도 나무랄 데가 없는 (신인답지 않은) 스타일을 보여주는 숙련된 장인이기도 하다.
좋은 영화답게 좋은 리뷰도 상당히 많다. 다른 글과 중첩되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히 의식하며 글을 쓰게 된다. 사실 기회가 된다면 이 영화를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고픈 맘이 있다. 컷 단위로 해체하여 자세히 탐구해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영화의 DVD라도 출시되야 가능한 일일 듯싶어 훗날을 기약하고 지금은 우선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보겠다.
[추격자]가 흥미로웠던 것은 단순히 시스템에 대한 고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주인공 중호(김윤석)에게서 여자를 지키려는 '남자'이자, 아이를 보호하는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는 (폭폭한 한국 사회 시스템의 고발을 제쳐두고라도) 중호가 점점 변화되는 추이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 그는 쓰레기에서 출발하여 따뜻한 인간이 된다. 윤락업의 포주는 밑바닥 인생이다. 전직 경찰관답게 냉철하고 폭력도 불사한다. 감기가 들어 아파하는 미진(서영희)에게 일(윤락)을 강요할 정도로 비정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결국 그 쓰레기 같은 비정함은 중호의 본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는데 점점 따뜻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라는 해석은 왠지 꺼림직하다. 그에겐 이미 내밀한 감수성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이 발현될 일과 맞닥뜨렸다, 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오히려 저런 여린 맘으로 어떻게 그전까지 험악한 일을 해내오고 있었을까, 하는 연민의 감정까지 들 정도이다. 그가 미진의 아이를 발견하게 될 때 짓던 미세한 표정을 보았는가? (이것은 영화의 전개상 초반부이다.) 그가 만약 미진에게 아이가 있고 감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장면을 이미 목도했다면, 그녀에게 냉정히 일을 나가라고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분명 아닐 것이다. 영민(하정우)의 누나 집을 찾아가서 돈을 받으려 각서를 종용하다가도 상처입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그냥 돌아선 그다. 그는 하는 일에 비해선 이미 여린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그가 밑바닥에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직업이 하찮아서라기 보다는 그가 직시해야 할 사회적 모순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던 자아의 상태가 밑바닥을 의미한다는 것. 그동안 내재된 따뜻함에 비해 일을 냉정히 할 수 있었던 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유아적 이기심이었던 것. 쓰레기 같던 나쁜 놈이 완전 교화되었다, 라는 교훈이 아니라, 시스템을 걷돌던 자가 그것에 정면으로 맞부닥끼면서 자신의 감수성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된다는 뒤늦은 성장담. 마치 영화의 시작, 높디 높은 망원동 언덕을 차가 힘겹게 올라가듯이, 골고다 언덕 같은 사회의 깊은 내부까지 쓰라린 맘을 안고 올라가려는 의지. 그런 주제가 배우 김윤석의 한치 오차도 없는 표정과 어우러져 영화적 극한 쾌감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의 장소적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영화에서 가장 감명깊게 느낀 것은 망원동 고지대라는 공간이 의미하는 메타포였다. 언급했듯 영화는 망원동 골목을 차가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망원동의 골목골목은 알고 보면 쓰디쓴 사회 부조리의 상징처럼 쉽게 파악되지도, 근원과 끝도 알기 어렵다. 미진은 아직 죽지 않고 망원동 어딘가에 버려져있는데, 중호는 그의 직원까지 동원해서 골목과 집을 한가구씩 뒤져나가지만 결코 찾지 못한다. 영화의 중반, 중호가 영민의 친구 집을 찾은 틈에 미진의 아이 은지(김유정)가 없어진다. 굉장히 슬픈 장면 중 하나였는데, 중호는 아이를 찾아 망원동 일대를 뒤지지만 아이의 이름도 몰라 소리 한번 못 내보고 뛰어만 다닌다. 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리고 어느 전봇대 밑에 유기된 듯, 쓰러져있는 아이를 보라. 대체 망원동은 어떤 곳인가...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
감독은 그런 망원동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아내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때로는 최대한 가까이, 때로는 무심한 듯 벽에 걸쳐 카메라를 들이댐으로서 땀으로 끈적이는 꿉꿉한 고지대이면서도 동시에 차갑고 어두운 골목임을 완벽하게 드러냈다. 신인 감독답지 않은 연출력이라고 느껴진건 근거리와 원거리에 모두 능통한데다 그 숏들을 정확한 계산으로 배치하여 의도를 극대화하는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숏 연결이 많았는데 아직 한 번밖에 보지 못한 터라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단지 영화가 사회 고발적인 모습에 너무 강박을 갖고 있는 점이 다소 거슬렸다. [그 놈 목소리]처럼 대책 없이 까발리는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의 세련됨을 가미했다손 쳐도, 감독의 주제의식을 절제하기 어려워 표출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냉정히 판단해보면 이 영화는 사회의 모순을 까발리는 장면에서보다는 자꾸 카메라를 중호에게로 근접해서 그의 표정을 잡아낼 때 주는 쾌감이 더욱 크다. 그가 미진을 애타게 찾고 아이를 보호하며 범인을 쫒아가며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흐름에 놓였을 때 영화는 관객을 휘어잡고 힘을 발휘한다. 사회 전반에 걸친 모순은 말 그대로 '고발'이 아니라 '페이소스'처럼 곁들였으면 더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았다. 쉽게 말해 조금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영화의 엔딩은 병원 안이다. 침상에 누운 아이 은지 곁에 중호가 다가와 벽에 기대어 앉아 피곤한 숨을 내쉰다. 그들은 아픈 사람이 가득한 병원에 갇혀있고, 카메라는 서서히 창밖의 서울 야경을 비춘다. 지친 사내와 병든 아이가 살아내기엔 녹녹치 않은 사회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영화가 끝이 난다. 철저한 주제가 깃든 엔딩이다.
그러나 (외람된 말이지만) 나 같으면 그런 엔딩은 선택하지 않았을 듯싶다. 역시 과하다는 생각에설까. 이미 충분히 표출했기에 사족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차라리 중호가 영민을 제압하고 경찰에 진압당해 바닥에 얼굴을 맞대고 목이 잘린 미진의 얼굴을 쳐다보던 클로즈업 숏에서 끝이 났으면 어땠을까. 그 상처 입고 눈물을 흘리던 쓸쓸한 표정을 롱테이크로 가져가며 아픈 숨소리를 곁들인 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면 더욱 파급 효과가 크지 않았을까. 이 영화에는 롱테이크 장면이 없다. 범인을 추격하는 힘든 장면이나 중호의 표정을 롱테이크로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또 다른 재미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추격자]는 정과 같은 날카로움을 지닌 영화이다. 사회 환부에 메스를 대는 솜씨도 날카롭고, 그것을 돕는 연출력도 예리하다다. 아울러 영화가 이미 다 커버린 어른의 쓸쓸한 성장담을 담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더불어 뭉툭한 망치처럼 우직하게 관객을 두드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걸출한 배우 없이도, 그 흔한 티브이 홍보 없이도 그저 묵직한 영화의 장점만으로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노력의 영화이다. 한국 영화계가 위태하면 한 번씩 이렇게 좋은 장르 영화를 배출해 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