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에는 극명하게 드러나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작가의 단편인 「플라워스」에 나오는 “... 그런데 보통 이중인격이라는 건 좋은 사람하고 나쁜 사람으로 딱 안팎이 구분되잖아.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묶인 이중인격이란 건 없을까? 겉이나 안이나 좋은 사람.” 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번에 요시다 슈이치는 작심이라도 한 듯 ‘악인’이라는 제목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역시 요시다 슈이치는 철저한 악인을 그리는 데에는 흥미가 없어 보인다. 비록 범죄 미스터리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소설 속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은 드러난 사실만큼 선명하지 않다. 작가는 피해자가 결국 가해자일 수도 있고, 가해자가 사실 피해자일 수도 있는 설정, 그렇게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 우리들의 내면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
신문에 연재되었다는 소설은 간혹 유령이 출몰한다는 미쓰세 고개, 그 고갯길에서 일어난 젊은 토목공이 젊은 보험설계사 이시바시 요시노를 목 졸라 죽이고 유기한 사건의 개요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그러고보니 미야베 미유키를 비롯한 일본 미스터리 추리물들의 시작은 많이들 이렇게 시작된 것도 같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소설은 뒷걸음질을 쳐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잡히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보여준다.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푼돈을 모으고, 휴일에는 명품 매장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3년쯤 일하고 나면 머릿속에 그렸던 자신의 본모습이 실은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후에는 자기 인생을 거의 포기하고, 가까스로 찾아낸 남자에게 미래를 통째로 던져버린다...”
부잣집 도련님을 향한 열망에 시달리면서도 동시에 문자 메시지 채팅을 통하여 만난 남자에게 하룻밤 화대로 용돈을 뜯어내고,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서슴치 않으며 동시에 동료의 거짓말을 캐치하기 위하여 애쓰는 피해자 요시노는 쉽게 버려지고,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 미호의 눈에는 그가 아주 멀고 먼 곳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밤의 저 너머에 또 다른 밤이 있다면 그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문자 채팅 상대자였으며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양쪽 다 피해자고 되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돈을 뜯어내면서 할머니와 할어버지를 부모님 삼아 자랐고, 친척의 도움으로 일을 하면서 마사지사의 한 마디에 집을 얻을 정도로 순진한 청년 유이치는 요시노를 살해한 다음에야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여자 미쓰요를 만나게 된다.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그렇게 아주 가까운 곳에 ‘소중한 사람’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한 요시노와 유이치는 한 사람은 죽음으로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비통에 빠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영어의 몸이 됨으로써 또한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슬픔에 빠트리게 된다.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와 그 실체에 연관되어 있는 다양한 사람들, 간간히 등장하는 이 사람들의 증언을 통하여 소설은 완성된다.
요시다 슈이치의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 조금은 다른 장르를 채택하고 있고, 그것이 색다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 같지는 않다.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그저 매끄럽기만 할 뿐이다. 대중적인 화법과 소탈한 메시지, 그리고 살인사건과 미스터리물이라는 형식이 신문 연재에는 잘 적응한 듯 보이지만 작가의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부터는 조금 멀어진 느낌이랄까...
대중적인 화법 속 소탈한 메시지가 전달하는 서툰 악인... <악인>
예전에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에는 극명하게 드러나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작가의 단편인 「플라워스」에 나오는 “... 그런데 보통 이중인격이라는 건 좋은 사람하고 나쁜 사람으로 딱 안팎이 구분되잖아.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묶인 이중인격이란 건 없을까? 겉이나 안이나 좋은 사람.” 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번에 요시다 슈이치는 작심이라도 한 듯 ‘악인’이라는 제목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역시 요시다 슈이치는 철저한 악인을 그리는 데에는 흥미가 없어 보인다. 비록 범죄 미스터리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소설 속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은 드러난 사실만큼 선명하지 않다. 작가는 피해자가 결국 가해자일 수도 있고, 가해자가 사실 피해자일 수도 있는 설정, 그렇게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 우리들의 내면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
신문에 연재되었다는 소설은 간혹 유령이 출몰한다는 미쓰세 고개, 그 고갯길에서 일어난 젊은 토목공이 젊은 보험설계사 이시바시 요시노를 목 졸라 죽이고 유기한 사건의 개요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그러고보니 미야베 미유키를 비롯한 일본 미스터리 추리물들의 시작은 많이들 이렇게 시작된 것도 같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소설은 뒷걸음질을 쳐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잡히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보여준다.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푼돈을 모으고, 휴일에는 명품 매장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3년쯤 일하고 나면 머릿속에 그렸던 자신의 본모습이 실은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후에는 자기 인생을 거의 포기하고, 가까스로 찾아낸 남자에게 미래를 통째로 던져버린다...”
부잣집 도련님을 향한 열망에 시달리면서도 동시에 문자 메시지 채팅을 통하여 만난 남자에게 하룻밤 화대로 용돈을 뜯어내고,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서슴치 않으며 동시에 동료의 거짓말을 캐치하기 위하여 애쓰는 피해자 요시노는 쉽게 버려지고,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 미호의 눈에는 그가 아주 멀고 먼 곳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밤의 저 너머에 또 다른 밤이 있다면 그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문자 채팅 상대자였으며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양쪽 다 피해자고 되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돈을 뜯어내면서 할머니와 할어버지를 부모님 삼아 자랐고, 친척의 도움으로 일을 하면서 마사지사의 한 마디에 집을 얻을 정도로 순진한 청년 유이치는 요시노를 살해한 다음에야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여자 미쓰요를 만나게 된다.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그렇게 아주 가까운 곳에 ‘소중한 사람’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한 요시노와 유이치는 한 사람은 죽음으로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비통에 빠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영어의 몸이 됨으로써 또한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슬픔에 빠트리게 된다.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와 그 실체에 연관되어 있는 다양한 사람들, 간간히 등장하는 이 사람들의 증언을 통하여 소설은 완성된다.
요시다 슈이치의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 조금은 다른 장르를 채택하고 있고, 그것이 색다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 같지는 않다.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그저 매끄럽기만 할 뿐이다. 대중적인 화법과 소탈한 메시지, 그리고 살인사건과 미스터리물이라는 형식이 신문 연재에는 잘 적응한 듯 보이지만 작가의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부터는 조금 멀어진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