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망할놈의 토익..

김영민2008.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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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놈의 토익...

 

12월 신분증 미지참으로 out,

 

1월 늦잠 자서 불참,

 

2월..비장한 각오로 시험에 임했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가서 창가에 앉았는데, 왠걸 커튼이 없어서 책상에는 비스듬한 사다리꼴 모양으로 햇빛이 비춰졌다.

 

별로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자리를 옮길까도 생각했지만(내 뒤에 앉아있던 회색 양말이 눈에 띄는 아저씨는 옆줄로 자리를 옮겼다), 그냥 앉았다.

 

긴장된 가운데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었는데,

 

한 50번쯤인가..배에서 꾸루룩 소리가 나며 장 운동이 디젤엔진의 4행정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참았다. 다 풀고 볼 일 보지 뭐..하면서..

 

참았는데, 71번에서 못 참겠더라..

 

급하게 감독관을 불러 화장실을 보내 달라고 했다. 머릿 속에서는 LC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지난 3달간의 절차탁마, 절치부심 속에 기다려온 이 시험을 반도 풀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고뇌가 머릿 속과 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부랴부랴 시험 중에 화장실로 뛰어갔다. 얼마나 내가 간절해 보였으면 감독관도 얼른 조용히 다녀오라고 했을까..

 

볼 일을 다 마칠 즈음 걱정이 생겼다.

 

다름아닌 마무리용 휴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늦게 알았다. 워낙 급한 상황이었기에..

 

어떻게 마무리하고 나갈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휴지통에서 무얼 봤다.

 

아직 몇 번은 더 활용해도 될만한 used paper...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젠장.. 그나마도 그 존재에 감사함을 느꼈다. '오, 주님..' 깔끔한 면을 이용해 한 번에 마무리를 봤다.

 

아, 이 찝찝함..

 

그러고 나와서 89번부터 다시 풀기 시작했으나 머릿 속에는 이미 방금의 사건이 떠나가질 않는다. 같은 교실의 사람들은 내가 왜 나갔다 들어왔는지 궁금해할까?

 

결국 71번부터 89번은 지문을 읽고 12년 국가교육과 1년의 교환학생시기를 포함하여 4년 대학생활, 2년의 군대생활을 통틀어 일궈낸 상상과 유추로 ABCD놀이를 했다.

 

그리고 나니 RC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3개월의 수모의 시간은 이 마무리 사건으로 파행으로 점철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길...

 

'3월 며칠에 또 토익 있더라?'라는 생각으로 RC를 풀었다. LC를 망치고 나니 RC는 급한 맘에 서두르게 되었고, 오히려 집중력에도 더 도움이 된 듯 하다.

 

과연 몇 점이나 나올까?

 

아, 이 망할놈의 토익..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토익이라는 녀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대체 이까짓 미국 기관시험이 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메이져가 되어 활개치는지 모르겠다는 둥, 내가 인사담당자라면 토익은 배제하고 인사를 실시할텐데라고 생각하는 등등..

 

아, 이 망할놈의 토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