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전설, - 파올로 말디니 -

윤재범2008.02.25
조회341
살아있는 전설, - 파올로 말디니 -

① 프로필

 

- 이름: 파올로 말디니(Paolo Maldini)

- 생년월일: 1968년 6월 26일

- 신체조건: 187cm/85kg

- 소속팀: AC Millan

- 포지션: 수비수(DF)

- 등번호: 3번

 

② 소개

 

 "로쏘네리" AC밀란의 왼쪽을 20년동안 지켜왔던 "살아있는 전설" 말디니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1968년생, 한국나이로는 올해 41살이 되는 말디니의 은퇴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해가 갈수록 길어져오던 그의 선수 경력이 끝이 날 것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아쉽기만 하다.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는 AC밀란이 낳은 슈퍼스타였다. 밀란이 최초로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컵을 들어올릴 때의 에이스가 단연 체자레 말디니였기 때문이다. 파올로 말디니 역시 밀란의 유스팀에 입단했고, 1985년 1월 20일 우디네세의 홈구장 프리울리 스타디오에서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게 된다.

 

 당시 우디네세 원정을 떠났던 밀란의 닐스 리에트홀름 감독의 곁에는 16살의 체자레 말디니의 아들이 있었다. 감독은 그 소년에게 지시했다. "파올로, 교체를 준비하거라. 그런데 너는 어떤 포지션에서 뛰고 싶니?" 그 소년은 대답했다. "오른쪽 풀백에서 뛰고 싶어요." 감독은 손을 내저으며, "오른쪽은 안된다. 정 뛰고 싶다면 왼쪽은 주마." 하자, 소년은 "왼쪽도 좋아요. 경기장 안으로 보내 주세요." 이 소년과 감독의 짧은 대화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레프트백을 만들어 낸 첫 시발점이 되었다.

 

 187cm의 탄탄한 신장과 긴 다리는 수비수로서는 최적의 조건이었으며, 특유의 성실성은 본래 오른발잡이인 말디니를 왼발잡이로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후 87-88시즌에는 스쿠데토를 들어올렸고, 88유로대회에서 아주리의 왼쪽 수비수로 발탁이 되었다. 이 대회에서 아주리는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구소련에게 패배했고 말디니는 팀 동료인 반 바스텐과 루트 굴리트가 앙리 들로네를 들어올리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아야 했다.

 

 1990년, 말디니는 다시 찬스를 잡았다.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치뤄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의 아주리는 엄청난 수비력을 자랑했는데 이 때의 기록인 517분 무실점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거의 6경기에 이를 때까지 한 골도 먹히지 않았는데, 아쉽게도 4강전 아르헨전에서 카니쟈의 헤딩슛 하나에 월드컵 최초로 무실점 우승은 끝나고 말았지만 말디니의 진가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말디니는 아주리의 수비뿐만 아니라 뛰어난 오버래핑도 선보였다. 당시 아주리의 감독이었던 비키니는 쓰리백과 포백을 혼용했다. 이 때의 말디니는 왼쪽 풀백뿐만 아니라 왼쪽 윙백, 즉 쓰리백시 수비진 위에 위치한 미드필더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었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선수가 해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운 활약이었다.

 

 밀란에서의 말디니 역시 훌륭했다. 이 때의 감독인 아리고 사키는 압박축구의 창시자였는데 사키에서 파비오 카펠로에 이르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밀란을 흔히 "밀란세대"라 부른다. 당시의 멤버를 살펴보자면 수비진의 말디니-프랑코 바레시-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마우로 타소티의 포백에 밀란세대 말기에는 프랑스의 마르셀 드사이까지 가세하여 무적의 수비진을 구축했다. 중원에는 피를로의 업그레이드 판이라 할 수 있는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와 흔히 말하는 오렌지 삼총사의 프랑크 레이카르트, 그 위로 루드 굴리트와 로베르토 도나도니, 투톱엔 마르코 반 바스텐과 다니엘레 마사로였다. 밀란세대 9시즌 동안 밀란이 거둔 성적을 보면 세랴 5회 우승에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이다. 그야말로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96년 유로에서 바레시로부터 아주리의 캡틴 완장을 물려받은 말디니는 아주리를 이끌고 개최국 잉글랜드로 떠났다. 대진운은 그야말로 최악이어서, 전차군단 독일, 동유럽의 강호 체코, 그리고 러시아와 한 조가 되었다. 이 때의 체코는 피파랭킹 2위, 러시아는 3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허나 아주리는 첫 경기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무난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허나 2차전 체코전에서는 전반 중반에 아폴로니의 퇴장과 지안프랑코 졸라의 치명적인 실수, 게다가 체코의 '젊은 사자' 파벨 네드베드의 득점까지, 잇단 악재가 겹치며 결국 2-1로 패배한다. 마지막 독일과의 한판에서 무조건 이겨야 했는데 체코를 2-0, 러시아를 3-0으로 대파한 독일에게 아주리는 두 골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8강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허나 졸라의 패널티킥 실축으로 8강 진출을 실패했고, 말디니는 자신이 캡틴이었던 첫 메이저대회에서 짐을 싸야만 했다.

 

 이 때부터 98 프랑스월드컵 전까지 아주리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을 겪었다. 97년 프레 월드컵(현재의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잉글랜드, 브라질, 프랑스와의 대전에서 3경기 7실점이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안겨주었다. 당시 멤버들이 말디니-코스타쿠르타-네스타-칸나바로였는데 당시의 선수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특히 중앙 수비수, 네스타와 코스타쿠르타와의 호흡이 정말 맞지 않았는데 코스타쿠르타가 흔히 말하는 리베로형 수비수였고 네스타는 현대축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스토퍼형 수비수였기 때문에 호흡에 문제가 생겼고 이런 결과가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말디니는 주장 완장을 차고 첫 월드컵에 출전한다. 게다가 아주리의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였다. 그 어느 때보다 우승의 기대는 높았던 아주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승부차기 악령, 4강전 지단의 프랑스와 연장 끝에 디 비아죠와 로베르토 바죠의 실축으로 결국 월드컵을 들어올리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 때의 밀란은 상당히 슬럼프였다. 밀란세대가 대부분 떠나거나 노쇠화되었고 무엇보다 수비의 리더 프랑코 바레시가 은퇴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꾸기가 너무나 컸다. 이 두 시즌의 밀란의 순위는 무려 두 자리였으니 그야말로 위기였다.

 

 98-99시즌에 결국 밀란은 기적적인 역전 우승으로 스쿠데토를 들어올린다. 리그 막판 7연승으로 말디니는 주장 완장을 차고 스쿠데토를 들어올리는 감격을 맛보았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유로2000,  당시 아주리의 감독인 디노 조프는 쓰리백을 기본으로 하고 포백을 옵션으로 사용하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이 때의 말디니의 오버래핑은 놀라울 정도였다. 수비의 달인이 위협적인 공격력까지, 이미 말디니는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8강 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는 중앙 수비수 네스타의 활약이 대단했다. 공격수와의 아무런 접촉 없이 공만 빼내는 태클링, 오프사이드를 감안한 수비 통솔 능력 등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4강전 상대는 밀란세대의 멤버였던 레이카르트의 네덜란드였는데 당시 네덜란드는 8강전에서 유고를 상대로 6골을 넣는 최강의 화력을 보여주던 팀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는 엄청난 홈 어드밴티지가 난무했고 설상가상으로 전반 중반 잠브로타가 퇴장까지 당했다. 그러자 쓰리백이던 아주리의 수비진은 포백으로 전환했고, 중앙 수비진에 네스타와 율리아노를 중심으로 양쪽에 칸나바로와 말디니가 배치되었다. 말디니와 칸나바로의 상대는 "플라잉 더치맨" 오베르마스와 젠덴이었는데 당시 말디니의 수비솜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감동을 받게 만들었다. 물론 이 날 경기의 최고 수훈은 단연 골키퍼인 톨도였는데, 엄청난 선방뿐만 아니라 두 개의 패널티킥을 막아낸 데다가 승부차기에서도 선방을 통해 아주리를 결승까지 올리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오버페이스를 했던 것일까, 결승전이었던 프랑스와의 승부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경기 종료 직전 윌토르의 골과 연장전에서 트레제게의 발리슛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특히 윌토르의 골 직전 칸나바로의 헤딩 클리어링 미스가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고 만 경기였다. 칸나바로의 키가 5cm만 더 컷더라면 우승팀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002년의 말디니는 사실 출전하지 못할 뻔했다. 다행히도 말디니는 특유의 성실성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몸상태를 회복하여 다시 캡틴 완장을 차고 월드컵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허나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아주리는 고생이었다. 무엇보다 알베르티니가 트라파토니 감독과의 불화로 아주리의 유니폼을 벗게 되었고, 조별 예선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마테라치의 대형 실수와 네스타의 부상, 게다가 두 선수의 공백을 메꾸느라 이리저리 뛰다가 경고누적으로 16강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된 칸나바로까지. 고생끝에 올라온 16강전 상대가 개최국 한국이라는 사실에 말디니는 안도했을지도 모르겠다. 단 두경기만 더 치루면 독일의 로타르 마테우스가 가진 월드컵 최다 게임 출전과 최다 시간 출전을 모두 갈아치울 수 있지 않은가.

 

 결과론적이지만 한국 입장에서 네스타와 칸나바로의 결장은 대단히 다행이었다. 아주리는 이 두 선수의 결장으로 생전 처음보는 기형적인 수비라인을 들고 나왔는데 바로 쓰리백의 중심을 말디니로 세우고 양 센터백을 파누치와 율리아노로 메꾸는 희한한 포메이션을 감행했다. 이 전술은 결국 파누치의 헛발질로 인한 설기현의 동점골과 말디니의 눈앞에서 안정환의 헤딩슛을 막지 못하게 된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2002년 이후 말디니는 아주리의 캡틴 완장을 칸나바로에게 넘겨주고 은퇴한다. 사실 말디니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월드컵이나 유로 우승컵이 단 한개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아주리의 유니폼을 벗었고 밀란에서의 선수생활을 계속 보냈다.

 

 은퇴와 동시에 말디니는 포지션 변경을 시도한다. 왼쪽 풀백에서 왼쪽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옮기는데 이는 대성공이었고 밀란은 현재까지 한 개의 스쿠데토와 두 개의 챔피언스리그컵을 들어올렸다. 게다가 작년 리버풀에게 승리하여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것은 말디니의 입장에서 더더욱 감동이었을 것이다.

 

 말디니의 축구 인생은 이제 거의 막을 내리고 있다. 그의 우아한 양발 태클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 그리고 주장으로서의 리더쉽과 타의 모범이 되는 근면 성실함까지. 물론 최근에는 나이로 인한 스피드의 하락과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내었지만 밀란은 아직도 그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심지어 카카는 공개적으로 말디니에게 은퇴를 하지 말라달라고까지 부탁을 나서지 않았는가. 그는 밀란의 상징이었고 아주리의 상징이었으며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으로서 명성을 떨친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③ 주요 경력

 

- 세리에 우승 7회

-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5회

-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 이탈리아 슈퍼컵 우승 5회

- UEFA 슈퍼컵 우승 4회

- 2007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 월드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

- 이탈리아 국가대표 역대 최다 출장

- 세리에 단일 소속 클럽으로 역대 최다 출장

- 세리에 역대 최다 출장

 

④ 그 밖에

 

- 말디니의 등번호인 3번은 프랑코 바레시의 6번에 이어 두번째로 밀란의 영구 결번이 되었다.

- 말디니의 아들 크리스티앙 말디니는 현재 밀란의 유스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