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경우 부모가 모두 친일의혹을 받고 있는데 매우 보기 드문 사례인 것 같습니다. 부부가 쌍으로 친일의혹을 받고 있으니... 친일도 참 가지각색입니다.
일제시절(1930년 전후로 추정됨) 이명박 부친은 일본에 목부로 취직해 돈벌러 갔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15년정도 살았으면 일본말도 유창하게 구사할 것이고 돈도 많이 벌고 중견기업가가 될수도 있는데 이때 무슨 친일행위를 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일본에 조사단을 파견해야 합니다.
부부가 일본에 살면서 6형제를 일본에서 낳았는데 자식들의 이름을 일본호적에 어떻게 올렸을까? 참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출생한 이명박의 큰형 즉 장남은 한국해방 당시 15살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일본 어느 초등학교,중등학교를 다녔는가? 그리고 그는 일본의 애국가와 일본초등학교 일본중학교 교가를 얼마나 잘 불렀는지 밝혀야 합니다.
"징용으로 어쩔수 없이 일본에 갔을수 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되는 변명입니다. 1930년 전후에는 태평양전쟁 시기가 아니라 징용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일본에 갔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일제시절 한국에 살았던 사람은 다 굶어 죽었단 말인가?
이명박이 스스로 밝혔듯이 이명박은 일본 오오사카에서 1941년 출생했는데 당시는 일제시대였다. 그렇다면 그는 일본호적에 어떤 이름으로 올랐을까? 明博은 일본에서 아키히로(あきひろ)인데 明博(아키히로)이라는 이름이 일본에 매우 많습니다. 참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1936년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항일운동가 신채호선생은 일본산 물고기를 먹지 않은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렇게 투철한 항일정신을 한국인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뻔뻔한 친일행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일제시절 일본에 가 15년동안 살면서 일본에서 6형제를 낳아 기르고 아들의 이름을 일본인처럼 지어 붙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의 부모입니다. 1~2년도 아니고 15년이나 침략자들의 본거지에 가 살았다는 것도 그렇고 아들의 이름까지 일본인같이 지어준 것도 그렇고 참 역겹습니다.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명박 부모는 일본에서 그렇게 오래 살면서 신사참배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 황국신민의 서사를 얼마나 많이 읊조렸을까? 일장기를 얼마나 많이 흔들고 기미가요(일제의 애국가)를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 참 궁금하다.
그동안 우리들은 친일파를 올바로 가려내어 비판했을까? 등잔불 아래가 어둡다고, 진짜 친일파는 놔두고 엉뚱한 사람만 가지고 논란을 벌인 것은 아닐는지...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친일의 기준은 무엇일까? 친일의 정도는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할까? 참 어려운 문제이다. 일제시절 일본에 유학을 갔던 어떤 사람은 "나는 그때 일본인이 다 되어 있었다"고 고백을 한 사실이 있다. 반면에 일본에 잠시 유학을 갔었지만 독립정신을 잃지 않았던 사람도 있다.
대선 예비주자들 부친의 친일행적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친일의 수준과 정도에 대한 논쟁도 뜨거운 것 같다. 그리고 친일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 중에는 항일행적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잘 분별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친일논쟁은 정략적으로 이용된 느낌이 있다. 이제 이런 태도를 버리고 진짜친일파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명박 부모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상한 일이다. 이명박 부모가 일제시대에 일본에 건너가 장기간 거주하며 친일파의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명박 부친은 이충우씨로 1907년생인데 해방당시는 38세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방시 중년에 가까운 나이였다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이충우씨는 젊은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살면서 일본에서 6형제를 낳아 기르다가 한국이 해방되자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명박도 일본 오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이명박의 셋째 형인 이상득씨는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1935년생이다. (1945-1935=10년) 그런데 이상득씨 위에 형(남,녀)이 둘이나 있고 그들 모두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번 계산해 보자. 자녀 둘 낳는데 보통 몇년 걸릴까? 최소 4년에서 5년 걸린다. 그렇게 보면 이명박 부모는 최소 14~15년을 일본에서 거주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오래 일본에 짱박혀 산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인이 되려고?
돈 벌었으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것 아닌가? 이명박 부친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930년 전후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시기는 어느 시기인가? 이봉창의사가 일본 침략자들에게 폭탄을 투척하던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조국을 팽개치고 침략자들의 본거지 일본 본토로 들어가 태연하게 그들과 함께 산다? 당시 일본 본토는 아시아 침략의 제1기지였고 대만과 조선은 제2기지였다.
만주는 아직 일본의 수중으로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 일본은 골수친일파들이 들어가 사는 친일본거지였던 것이다. 일제시절 일본은 ´내지´라고 불렸는데 안쪽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일본땅은 일제시절 친일파들의 고향같은 곳이었고 민간친일파들이 들어가 살던 친일의 본거지였던 것이다. 1930년 당시는 태평양전쟁이 발생하기 전이라 징용도 없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일제시절에 일본에 들어가 일본에서 6형제를 낳아 기르고 산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것은 일본인이 되려고 작정한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독립투사 신채호선생은 일본 근처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데 일본에 들어가 15년동안 그들과 붙어 살았다면 이건 보통의 일이 아니다.
일제시절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이명박의 아버지는 이 말이 듣기 싫었던 것일까? 그래서 일본으로 들어가 15년동안 살면서 일본에서 6형제를 낳아 길러 자녀들이 일본국적을 갖도록 한 것일까? 자녀들이 일본토박이 신분을 갖도록 계획하고 행동한 것일까?
1930년대 중반은 어떤 시기인가? 한국에서는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선수 일장기 말살사건이 벌어져 시끌벅적하던 시기였다. 동아일보는 9개월 정간되고 많은 사람이 투옥되었다. 한국의 뜻있는 지식인들은 태극기를 품속에 숨겨 가지고 다니며 후학들에게 태극기를 몰래 보여주며 가르치던 시기였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일제에 저항할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있었기에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살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당시 일본에 가 살았다면, 일본에서는 일장기 말살사건 같은 일은 발생할수도 없고 일제에 저항한다는 것은 꿈도 꿀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렇게 한국에 사는 것과 일본에 사는 것이 그 의미가 다른 것이고 친일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지표도 될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부친은 일본에 가서 그렇게 살다가 일제가 패망하자 이듬해 한국에 들어 왔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조카 이상진(78)씨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 출생한 이명박이 한국으로 온 것은 “해방 이듬해”이다. 1946년 이명박이 6세때이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나이 38세의 가장인데 21세부터 아내를 데리고 일본에 가서 15~17년을 일본어로 생활하며 일본생활에 적응해 6형제를 낳아 기르고 살았다고 생각을 해보자. 6명의 자녀들이 모두 일본에서 출생한 일본토박이들인데 한국과 일본중 어느 곳이 더 애착이 갔을까? 고국에 돌아오고 싶었을까? 일본이 원자탄 맞고 무너진후 그때서야 고국에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친일에 대한 논란은 무성했는데 단지 정략적으로 이용된 감이 있다. 이제 이런 태도를 버리고 진짜 친일파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명박 부친의 행적과 이명박의 이름은 큰 의혹을 낳고 있다.
이명박은 이름이 李明博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明博이라는 이름이다. 明博은 일본에서 아키히로(あきひろ)라고 읽는데 이 아키히로(明博)라는 이름이 일본에 매우 흔하고 많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출생한 이명박과 이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이름을 가진 일본인이 혹시 있을까 해서 찾아 보았지만 없었다. 즉 승만,보선,정희,규하,두환,태우,영삼,대중,무현...이런 이름은 일본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선 예비주자들 이름인 동영,근태,학규,근혜..이런 이름도 일본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明博이라는 이름은 일본에 매우 많다. 왜일까? 왜 明博이란 이름만 유독 그렇게 일본에 많을까? 이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은 일본어 강사나 일본인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명박 부친이 아들의 이름을 일본인처럼 지어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완벽한 일본인이 되라는 뜻에서 그랬을까?
*다음은 일본 전화번호부에서 明博이라는 이름을 검색한 결과입니다. 매우 많습니다. 더 보시면 알겠지만 일본에는 사방천지가 明博이 입니다.
이명박은 친일파 대통령~!
이명박 부모 양친의 친일행적
이명박의 경우 부모가 모두 친일의혹을 받고 있는데 매우 보기 드문 사례인 것 같습니다. 부부가 쌍으로 친일의혹을 받고 있으니... 친일도 참 가지각색입니다.
일제시절(1930년 전후로 추정됨) 이명박 부친은 일본에 목부로 취직해 돈벌러 갔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15년정도 살았으면 일본말도 유창하게 구사할 것이고 돈도 많이 벌고 중견기업가가 될수도 있는데 이때 무슨 친일행위를 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일본에 조사단을 파견해야 합니다.
부부가 일본에 살면서 6형제를 일본에서 낳았는데 자식들의 이름을 일본호적에 어떻게 올렸을까? 참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출생한 이명박의 큰형 즉 장남은 한국해방 당시 15살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일본 어느 초등학교,중등학교를 다녔는가? 그리고 그는 일본의 애국가와 일본초등학교 일본중학교 교가를 얼마나 잘 불렀는지 밝혀야 합니다.
"징용으로 어쩔수 없이 일본에 갔을수 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되는 변명입니다. 1930년 전후에는 태평양전쟁 시기가 아니라 징용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일본에 갔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일제시절 한국에 살았던 사람은 다 굶어 죽었단 말인가?
이명박이 스스로 밝혔듯이 이명박은 일본 오오사카에서 1941년 출생했는데 당시는 일제시대였다. 그렇다면 그는 일본호적에 어떤 이름으로 올랐을까? 明博은 일본에서 아키히로(あきひろ)인데 明博(아키히로)이라는 이름이 일본에 매우 많습니다. 참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1936년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항일운동가 신채호선생은 일본산 물고기를 먹지 않은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렇게 투철한 항일정신을 한국인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뻔뻔한 친일행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일제시절 일본에 가 15년동안 살면서 일본에서 6형제를 낳아 기르고 아들의 이름을 일본인처럼 지어 붙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의 부모입니다. 1~2년도 아니고 15년이나 침략자들의 본거지에 가 살았다는 것도 그렇고 아들의 이름까지 일본인같이 지어준 것도 그렇고 참 역겹습니다.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명박 부모는 일본에서 그렇게 오래 살면서 신사참배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 황국신민의 서사를 얼마나 많이 읊조렸을까? 일장기를 얼마나 많이 흔들고 기미가요(일제의 애국가)를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 참 궁금하다.
그동안 우리들은 친일파를 올바로 가려내어 비판했을까? 등잔불 아래가 어둡다고, 진짜 친일파는 놔두고 엉뚱한 사람만 가지고 논란을 벌인 것은 아닐는지...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친일의 기준은 무엇일까? 친일의 정도는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할까? 참 어려운 문제이다. 일제시절 일본에 유학을 갔던 어떤 사람은 "나는 그때 일본인이 다 되어 있었다"고 고백을 한 사실이 있다. 반면에 일본에 잠시 유학을 갔었지만 독립정신을 잃지 않았던 사람도 있다.
대선 예비주자들 부친의 친일행적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친일의 수준과 정도에 대한 논쟁도 뜨거운 것 같다. 그리고 친일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 중에는 항일행적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잘 분별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친일논쟁은 정략적으로 이용된 느낌이 있다. 이제 이런 태도를 버리고 진짜친일파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명박 부모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상한 일이다. 이명박 부모가 일제시대에 일본에 건너가 장기간 거주하며 친일파의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명박 부친은 이충우씨로 1907년생인데 해방당시는 38세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방시 중년에 가까운 나이였다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이충우씨는 젊은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살면서 일본에서 6형제를 낳아 기르다가 한국이 해방되자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명박도 일본 오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이명박의 셋째 형인 이상득씨는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1935년생이다. (1945-1935=10년) 그런데 이상득씨 위에 형(남,녀)이 둘이나 있고 그들 모두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번 계산해 보자. 자녀 둘 낳는데 보통 몇년 걸릴까? 최소 4년에서 5년 걸린다. 그렇게 보면 이명박 부모는 최소 14~15년을 일본에서 거주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오래 일본에 짱박혀 산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인이 되려고?
돈 벌었으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것 아닌가? 이명박 부친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930년 전후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시기는 어느 시기인가? 이봉창의사가 일본 침략자들에게 폭탄을 투척하던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조국을 팽개치고 침략자들의 본거지 일본 본토로 들어가 태연하게 그들과 함께 산다? 당시 일본 본토는 아시아 침략의 제1기지였고 대만과 조선은 제2기지였다.
만주는 아직 일본의 수중으로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 일본은 골수친일파들이 들어가 사는 친일본거지였던 것이다. 일제시절 일본은 ´내지´라고 불렸는데 안쪽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일본땅은 일제시절 친일파들의 고향같은 곳이었고 민간친일파들이 들어가 살던 친일의 본거지였던 것이다. 1930년 당시는 태평양전쟁이 발생하기 전이라 징용도 없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일제시절에 일본에 들어가 일본에서 6형제를 낳아 기르고 산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것은 일본인이 되려고 작정한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독립투사 신채호선생은 일본 근처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데 일본에 들어가 15년동안 그들과 붙어 살았다면 이건 보통의 일이 아니다.
일제시절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이명박의 아버지는 이 말이 듣기 싫었던 것일까? 그래서 일본으로 들어가 15년동안 살면서 일본에서 6형제를 낳아 길러 자녀들이 일본국적을 갖도록 한 것일까? 자녀들이 일본토박이 신분을 갖도록 계획하고 행동한 것일까?
1930년대 중반은 어떤 시기인가? 한국에서는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선수 일장기 말살사건이 벌어져 시끌벅적하던 시기였다. 동아일보는 9개월 정간되고 많은 사람이 투옥되었다. 한국의 뜻있는 지식인들은 태극기를 품속에 숨겨 가지고 다니며 후학들에게 태극기를 몰래 보여주며 가르치던 시기였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일제에 저항할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있었기에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살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당시 일본에 가 살았다면, 일본에서는 일장기 말살사건 같은 일은 발생할수도 없고 일제에 저항한다는 것은 꿈도 꿀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렇게 한국에 사는 것과 일본에 사는 것이 그 의미가 다른 것이고 친일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지표도 될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부친은 일본에 가서 그렇게 살다가 일제가 패망하자 이듬해 한국에 들어 왔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조카 이상진(78)씨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 출생한 이명박이 한국으로 온 것은 “해방 이듬해”이다. 1946년 이명박이 6세때이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나이 38세의 가장인데 21세부터 아내를 데리고 일본에 가서 15~17년을 일본어로 생활하며 일본생활에 적응해 6형제를 낳아 기르고 살았다고 생각을 해보자. 6명의 자녀들이 모두 일본에서 출생한 일본토박이들인데 한국과 일본중 어느 곳이 더 애착이 갔을까? 고국에 돌아오고 싶었을까? 일본이 원자탄 맞고 무너진후 그때서야 고국에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친일에 대한 논란은 무성했는데 단지 정략적으로 이용된 감이 있다. 이제 이런 태도를 버리고 진짜 친일파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명박 부친의 행적과 이명박의 이름은 큰 의혹을 낳고 있다.
이명박은 이름이 李明博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明博이라는 이름이다. 明博은 일본에서 아키히로(あきひろ)라고 읽는데 이 아키히로(明博)라는 이름이 일본에 매우 흔하고 많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출생한 이명박과 이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이름을 가진 일본인이 혹시 있을까 해서 찾아 보았지만 없었다. 즉 승만,보선,정희,규하,두환,태우,영삼,대중,무현...이런 이름은 일본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선 예비주자들 이름인 동영,근태,학규,근혜..이런 이름도 일본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明博이라는 이름은 일본에 매우 많다. 왜일까? 왜 明博이란 이름만 유독 그렇게 일본에 많을까? 이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은 일본어 강사나 일본인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명박 부친이 아들의 이름을 일본인처럼 지어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완벽한 일본인이 되라는 뜻에서 그랬을까?
*다음은 일본 전화번호부에서 明博이라는 이름을 검색한 결과입니다. 매우 많습니다. 더 보시면 알겠지만 일본에는 사방천지가 明博이 입니다.
山内明博 0138-84-xxxx 北海道函館市豊浦町151 漁業
久保田明博 042-646-xxxx 東京都八王子市石川町2443 造園業
武藤明博 0428-74-xxxx 東京都青梅市成木7丁目884 製材業
川上明博 045-621-xxxx 神奈川県横浜市中区本郷町3丁目203 左官業
吉村明博行政書士事務所 046-823-xxxx
(FAX兼用) 神奈川県横須賀市米が浜通1丁目1 行政書士事務所
酒巻明博土地家屋調査士事務所 048-964-xxxx 埼玉県越谷市東越谷3丁目10-26 土地家屋調査士
橋本明博 0299-52-xxxx 茨城県小美玉市飯前1482-5 建設業
千明博 0278-58-xxxx 群馬県利根郡片品村大字鎌田3946-49 食料品店
家田明博 0569-35-xxxx 愛知県常滑市千代ケ丘5丁目58 日本人形
井口明博税理士事務所 0587-37-xxxx
(FAX) 愛知県岩倉市東新町下境52 税理士事務所
平野明博商店 058-271-xxxx 岐阜県岐阜市加納北広江町16 和がさ製造
大石明博 0547-38-xxxx 静岡県島田市阪本1869-1 建築工事
池田明博 072-465-xxxx 大阪府泉佐野市長滝977 織物
太田明博 0771-26-xxxx 京都府亀岡市宮前町猪倉宮ノ下6 土木建築材料
藤原明博 0772-75-xxxx 京都府京丹後市丹後町是安167 織物
森川明博堂印房 078-341-xxxx
(FAX兼用) 兵庫県神戸市中央区元町通5丁目8-4 印鑑・印章・ゴム印
石橋明博 0944-87-xxxx 福岡県大川市大字小保448-9 建具
中村明博鈑金塗装 099-267-xxxx 鹿児島県鹿児島市中山町1590 自動車鈑金・塗装
*다음은 明博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타 일본인들 이름
守屋明博, 杉山明博, 中山明博, 水村明博, 水江明博, 猪口明博, 内海明博, 山下明博, 関川明博, 庄子明博, 中山明博, 金山明博, 郷明博, 木内明博, 杉山明博, 一村明博, 栗本明博, 丹羽明博, 西畑明博, 松本明博, 田辺明博, 山口明博, 吉川明博, 泉明博, 井上明博, 竹内明博, 樋之口明博, 森谷明博, 和田明博, 細川明博, 岩井明博, 石川明博, 武田明博, .鎌田明博, 村明博, 立石明博, 藤田明博, 後藤明博, 小林明博, 廣崎明博,
川崎明博, 河合明博, 本木明博, 藪下明博, 黒柳明博, 水谷明博, 畠山明博, 長明博, 小松明博, 棟久明博, 安保明博, 勝川明博, 村下明博, 秋山明博, 新屋敷明博, 藤原明博, 高本明博, 長谷川明博, 日渡明博, 増田明博, 中川明博, 蓮実明博, 八杉明博, 茅根明博, 鈴木明博, 小熊明博, 村下明博, 堀内明博, 大竹明博, 濱崎明博, 宍戸明博, 斉藤明博, 飯塚明博, 蓮井明博, 澤田明博, 小幡明博, 村田明博, 栗本明博, 木明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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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명박부모의 친일행각|작성자 bodoso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