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한혜민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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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쑈를 하다 !

처음 개그맨을 꿈꾸었던 때는 중학교 때입니다. 애초에는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반 제일 작은 1번 친구가 운동을 굉장히 잘했습니다. 내가 작은 편이 아니었는데, 그 가벼운 1번 친구를 던지며 놀았습니다. 운동을 잘하던 아이라 호흡을 아주 잘 맞춰 주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쇼를 보여주면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다른반에 가서까지 공연을 했습니다. 그래서 프로레슬러가 될까 했으나 외국에 나가야 한다는 난점이 있었습니다. 한국레슬링은 쇼를 안 좋아하니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다가왔습니다.

유머1번지, 쇼비디오자키 등 당시의 개그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으면 전개를 맞힐 수 있었습니다. 개그 감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누나들이랑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음 대사나 다음 상황을 맞히면 신기해 했습니다. 제일 잘 하는 것,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개그를 좋아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개그맨이 되고 보니 개그맨의 80%가 격투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둘의 공통점은 아마도 쇼맨십, 영웅심리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대의 영웅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레슬러를 좋아했던 또 다른 이유는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예상을 엎고 벌떡 일어나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다시 짠 하고 등장하는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영웅스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웅스러움이든 개그 스러움이든 반전하는 순간의 빛나는 쇼맨십이란 한 면 유치한 것이지만, 현실이 아니라 가상에서라도 사람들의 환호를 자아내는 찰나는 관객도 연기자도 매료시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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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보다 개근맨

요즘에야 학교수업에 빠지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지만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만해도 학교에 빠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안 가면 큰일나는 줄 알았기 때문에 굉장히 열심히 다녔습니다. 나는 소위 까불이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얌전하게 보통 아이처럼 지내다가 기회가 되어 내 무대가 되면 보일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개그맨이 될 생각이었지만 연극영화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연극영화과를 나왔다고 해서 더 잘했을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내가 다녔던 인하대학교에는 개그동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그동아리를 만들기로 하고보니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동아리방을 구하는 일부터 모든 것이 일이었습니다. 회비를 모아서 운영을 해야 하니까 사람이 많아야 했습니다. 사람을 많이 모으자면 여자가 많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항공운항과에 전단을 돌렸습니다. 소위 물이 좋아지니까 너무 많이 들어와서 100명이 되었습니다. 엠티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노는, 내게 말린 애들을 뒤에서 지켜보자니 너무 뿌듯했습니다. 그 동아리에서 개그를 궁리했던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그렇게 일하란다면 돈 생각부터 하겠지만 그 때는 젊어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도 안 했습니다.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학교에 갔다오면 6시쯤 되는데 밥 먹고 한 시간쯤 잡니다.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쯤 나가서 내 장사를 끝내면 11,12시쯤이 되었고, 집 근처 주유소에서 총무 일을 보면 아침 7,8시쯤 일이 끝납니다. 집에 들렀다 학교에 가서 잤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나더러 선동렬이라고 했습니다. 학점이 0.44였기 때문입니다. CPA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비교하며 잠시 고민도 했지만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보면 어떤 면에서는 내가 제일 성공한 것 같기도 합니다. ^^ 운도 많이 따랐습니다만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느냐는 것이 행복의 척도입니다. 하고싶은 일을 해야 능률도 오릅니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일입니다. 

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전유성을 웃기고도

정식으로 개그맨이 되기 전에 ‘전유성을 웃겨라’라는 프로젝트에서 전유성을 웃겼고 웃긴 사람들끼리의 왕중왕 전에서 또 웃겼습니다. 그런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개그맨 시험에는 떨어졌으니까 꽤 고민도 했을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끼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라면, 학교 때 발표수업을 하기 전날만 되면 너무 설레었습니다. ‘너네들 다 죽었어’ 하면서 선생님보다 더 재미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궁리해서 발표하는 것을 잘했고 자신 있었습니다. 춤도 노래도 잘 못했지만 장기자랑을 하면 괜히 안 불러주나 기대하곤 했던 기억을 보면 무대체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SBS에서 두 세 번, MBC에서 네 번쯤, 군대 가기 전에도 시험을 봤으니까 대략 여덟번쯤 개그맨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포기하기도 힘들게 1차에서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10명 뽑으면 1000명쯤이 오는데 늘 50명 안에는 들어가지만 10명 안에는 들지 못해서 항상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KBS의 개그맨 시험에 붙었던 때는 운 좋게도 30명을 뽑았기 때문이었습니다. 30명을 뽑아서 3개월 후에 떨어뜨리는 방식이었습니다. 30명과 3개월을 함께 생활을 하니까 그 동안에는 재능을 보일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그 때 성적이 1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단 꿈을 이루었으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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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나를 단련하는 무대

개그맨으로서 정해놓고 역할모델로 삼은 경우는 없습니다만 개그맨이다 보니 선배님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선배님마다의 장점들은 각각이 다 존경스럽습니다. 벤치마킹하고 싶어서 엔터테이너로서 장수하는 선배들을 많이 연구합니다. 다른 경우로는 심형래 선배님의 영화에 대한 그 천재적인 열정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습니다. <디 워>라는 대작을 만들어냈는데, 사람들의 평은 차치하고 지난 해 팔백만명을 넘긴 유일한 영화니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은 대단하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실력은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더 많이 모자랐습니다. 초기에는 리포터를 많이 했습니다. 이창명 선배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하다가 보니 개그맨은 개그를 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출연은 많이 해서 많이 알아보기는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스타 같은데 비해 나는 많이 모자라는구나 싶어 대학로로 들어갔습니다.

대학로 공연장은 내 실력을 가늠해보는 가장 냉정한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돈을 내고 공연을 보기 때문에 재미없으면 웃지도 않고 보러 오지도 않습니다. 본전 생각나게 만든다면 공연하는 사람으로서는 최악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발전시키고 단련하는 방법으로서 공연장을 택했습니다. 이십대 후반에서 서른 초반 사이였습니다. 그 때 함께했던 친구들과 실전훈련을 했기 때문에 선배들이 개그계를 떠난 때에도 버텨낼 수 있는 실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계속 단련시켜 가야 발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 대학로에서 공연하며 보낸 4,5년이 지금의 나를 만든 내공이 되었습니다. 

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웃는 즐거움, 웃기는 괴로움

겸손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생각해 볼 때 꽤 많이 웃기는 개그맨은 아닙니다. 끼와 순발력 넘쳐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나서는 일보다 챙기는 일이 더 많아서 맏형 같은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 잘 봐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맏형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실제로 형이라 부를만한 분들 거의가 개그계를 빠져 나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활동을 하시는 경우도 라디오 등 다른 영역에서 하시니까 개그계에서는 형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선배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은 나 자신의 미래와 정체성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게 만들고 지금 그런 고민이 깊은 때이기도 합니다. 나이는 먹어가고 있는데 여기서 뭔가를 더해서 엔터테이너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고 고민합니다. 묻어가는 캐릭터를 할 수는 있는데 내가 그렇게 개그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많습니다. 개그맨으로서 대단한 성취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애매한 입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렵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보면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로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소위 ‘치고 빠지기’는 어렵지 않지만 입지를 굳히고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고 그래서 대단합니다. 

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끼있는 사람들은 오시오

개그맨의 매력은 작가, 피디, 연기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끼만 있다면 기회의 땅인 곳이 개그업계라 다른 연예계에 비해서 공평합니다. 기획사를 잘 만나서 일류백댄서를 두고 가수를 한다고 쳐도 자기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개그는 달랑 몸 하나만으로도 가능한 분야입니다. 아주 공평하고 무척 신성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후배들에게 늘 강조합니다.

누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 기획하는 직업이라는 점도 매력적이고 창작하는 즐거움도 큽니다. 그래서인지 개개인을 놓고 보아도 하나하나가 훌륭한 능력으로 무장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다음 편 만화를 기다릴 때처럼 내 개그를 기다리는 관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굉장히 행복할 겁니다. 내 경우는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내가 궁리해낸 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요즈음은 만능 엔터테이닝이 하나의 흐름입니다. 나를 남에게 보인다는 점에서 끼를 한 영역에 묶어둘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개그맨보다 웃기는 아나운서도 있고 가수보다 노래 잘하는 개그맨도 있을 수 있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나운서가 앨범을 취입할 수도 있는 때입니다. 더 허물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로 표현하면 작가가 되는 것이고 피디가 되고 싶은 연기자들도 많습니다. 지시대로 연기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경우도 많으니까요. 자기가 개그를 만들고 납품하고 인기 여하에 따라 도태되기도 하고 더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하면서 더욱더 치열한 경쟁이 되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갈갈이의 꿈

스물 여섯에 데뷔를 했는데 이미 꿈이 개그맨이었으니 그 다음은 대한민국의 훌륭한 개그맨이 되는 것입니다. 엔터테이닝한 것을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데 정통개그가 더 웃기는 것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중들의 취향은 나무랄 수 없는 것입니다. 관객과 호흡하려면, 다른 표현으로, 파도를 타고 있다면 파고에 맞추어 함께 잘 흐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박준형 하면 ‘그 사람 개그는 정말 예술이야’ 같은 평을 듣고 싶습니다. 웃기면서 잘 살아가는 겁니다. 또 잘 하면서 오래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더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역사교과서에 실리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천년대의 광대로는 박준형, 정종철 등이 있다’고 기록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형광팬을 칠하면서 외우는 겁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외우듯이 박준형의 우비삼남매 식으로 외는 꿈입니다. 하하. 곽규석은 후라이보이 이런 식으로 외우지는 않고 있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 시대가 바뀌면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요?

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생활인, 연예인

옛날부터도 그랬지만 소띠라 그런지 일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코메디 프로그램, YTNStar의 일일 프로그램, 밤에는 라디오, 극장공연 등 일이 꽤 많은 편입니다. 또 갈갈이패밀리라는 소규모 개그집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라디오진행은 인간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사연들을 읽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두 시간 동안 떠들면서 청취자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니까 진행자인 나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매체이기도 합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크지만 거기에 따르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에 오래오래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입니다. 즐겁게 생각하면 참 즐겁고 힘들어한다면 힘들 수도 있는 일입니다만, 나는 행복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많은 즐거움을 느낍니다. 아빠로서의 감정이 참 유별난 감정인 것 같습니다. 총각 때 느끼지 못했던 것을 결혼해서 느끼고 결혼해서 느끼지 못한 것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느끼게 됩니다. 집에 있는 동안은 아이를 끼고 살고 예쁜 모습을 많이 남겨주려고 하는 다른 아빠들과 똑같습니다. 이래서 가족을 만들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고 아이가 크면서 나는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구나 느낍니다. 

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마구 시도하라

실패해도 용서받을 수 있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이입니다. 하고 싶다면 마구 많은 시도를 해보라고 권합니다. 하다가 안되면 그만이지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말입니다. 해보고 해보다 보면, 한 번 할 때 못 배운 것을 그 다음에 배우기도 합니다. 나라도 30년 공부하면 사시 패스할 것 같습니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된다는 것,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집안형편이 어렵다면 알바를 열심히 해서 집안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것도 좋고, 집안형편이 괜찮다면 알바를 열심히 해서 여행을 많이 하면 좋겠습니다. 나가서 보면 많이 다릅니다. 12일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더 새고 싶었지만, 지금은 데일리 프로그램들 때문에 긴 여행이 불가능합니다.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운다면 많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떠날 수 있을 때 마구 떠나야 합니다.

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이십대, 자기사업을 해 보라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자기장사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는 길거리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팔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내가 장사한 곳은 영등포 역을 등진 오른편 길다랗게 생긴 건물 앞에서였습니다. 개당 600원에 가져와서 2000원에 팔았는데 100개를 두 시간 만에 팔았습니다. 하루 14만원을 벌면 한 달에 근 500만원이 되니까 500만원 짜리 월급쟁이와 비슷한 셈입니다.

어느 날은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오시더니 ‘이 리어카에 있는 것이 다 얼만가’ 하시는 것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150에서 200정도 될 겁니다.’ 했더니 ‘그럼 내가 이 리어카를 살 테니 나한테 주지?’ 진짜 살 것처럼 얘기하시며 ‘이걸 살 테니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말씀인즉슨 장사가 왜 안되나 해서 봤더니 나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 건물의 음악사 앞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음악사 사장님이셨던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건 좋지만 이렇게 장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장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얼마를 더 벌 수 있었느냐는 것 보다 그 사건을 포함해서 장사하는 동안 배운 것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삼일 장사를 못 나간다면 다른 리어카가 와서 장사를 합니다. 그 때문에 나는 나가기 싫어도 안 나갈 수가 없습니다. 비 오는 날은 정말 나가기 싫지만 그래도 나가야 합니다. 또 내 리어카 앞에 구경꾼이 한 명도 없으면 아무도 안 오지만 한 명이라도 서 있으면 손님들이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장사를 통해서 군중심리를 많이 익혔습니다. 전단지조차도 손 높이에 맞추어 드리면 받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오던 첫 사람이 전단을 받아 들면 뒤에 분들도 줄줄이 받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손을 내젓습니다. 대중을 상대한다는 공통점 속에서 나를 발전시키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실 수 있다면 자기장사를 해보라고 권합니다. 힘들기 때문입니다.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안되더라도 생계구조와 인생에 대해서 배우는 점이 많고, 잘 된다면 돈까지 벌어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아니한가요?^^ 

전유성을 웃긴 갈갈이의 20대 들어보실라우?

  출처 : 당신의 열정지지자 영삼성(www.young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