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

노숙인 다시서기 센터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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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어느 날 거리상담(아웃리치)를 하는 이하령 선생님이

갓난아기를 안고 왔습니다.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혜림(가명)씨 아이에요."

그렇습니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혜림씨가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

그러나 부모가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생후 15일만에 거리노숙을 해야했던 아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숙인은 남성으로 청장년 층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근래의 노숙인은 여성, 장애인, 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길준이와 같이 가족이 함께 노숙을 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나고 있답니다.

센터 설립이후 최연소 노숙인,아니, 아마 세계 최연소 노숙인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

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 "길준(가명)"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

정말 가혹하기 그지 없는 노숙인의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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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보내는 축복

 

임영인(시몬)신부 / 노숙인다시서기센터 소장

 

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사무실 문을 여니 평소에 가지런하게 놓여있던 소파가 흩어져있고 그 위에는 수건과 아기 옷이 널려 있었다. 내 책상위에 놓여있던 파일과 책들은 한켠으로 치워져 있었고 대신 분유통, 기저귀, 젖병 같은 것이 놓여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전기난로도 켜져 있다. 게다가 방안에서는 지린내도 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여성 실무자가 등 뒤에 다가와서 한마디를 한다.

  “급해서 데려다 놨어요. 혜림(가명)씨 아이예요.”

 

  갑자기 “허허…….참!”하는 헛웃음소리가 나왔다.

  아이의 이름은 ‘길준’이다. 지난 1월 4일에 낳았으니 세상에 나온 지 불과 열흘 밖에 안 된다. 아마 기록상 최연소 노숙인일 게다. 배꼽에는 아직 반창고가 붙어있다.

  길준이 엄마는 올해 25살인 여성노숙인 이혜림. 그녀가 서울역에 처음 나타난 것은 재작년 6월이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사라졌다가 작년 초에 또 서울역에 나타났다.

 

  그녀는 언제나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나타날 때마다 만삭의 몸이었다. 또다시 만삭의 몸으로 서울역에 나타난 것이 지난 연말이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이다. 그녀는 임신 9개월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년 초에 시립병원에 보내 고주파 검사를 하기도 했다. 태아의 상태도 걱정이 되고 산모를 설득하여 입원을 권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입원을 거부했다. 그러다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때가되어 입원을 했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서울역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낳은 지 열흘도 채 안 된 아이를 안고! 당혹스럽다.

 

  그녀가 서울역에 나타날 때면 위태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정신지체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판단력도 흐리고 술도 즐겨 마신다.

 

  그녀는 시설에 입소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경험에 미루어 가정환경이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다. 혜림씨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가출을 해서 마산 어디엔가 산다고 했다. 그녀는 고아원, 장애인 시설을 비롯해 이곳저곳 많은 시설에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미혼모 시설에서 생활을 한 것 같다. 그곳에서의 경험도 그리 좋은 기억을 남긴 것은 아니다.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면 무조건 아이를 입양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이해를 못한다.

 

  그녀는 거리에서 만난 두 남자에게 의존을 하고 있었다. 두 남자는 “걱정하지마라 내가 방을 마련해주겠다”고 한다. 물론 이 두 남자들 역시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혜림씨를 도울 능력이 못된다. 가끔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그 두남자와 떨어져서 지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다가 서울역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게 1월 4일이다. 철도공사 직원들이 112신고를 해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했다. 그것도 불과 며칠 동안이다. 병원을 나온 뒤 어디에서 지냈냐는 질문에 “쪽방에서 지내기도 하고 찜질방에서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세상에, 그런 곳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니…. 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

 

   기가 막혔다. 젖도 잘 안 나와서 아이에게 분유를 먹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찬물에 탄 분유를 먹였단다. 게다가 전날에는 분유마저 떨어져 아이를 굶기고 있었다. 아이의 옷에는 분유 묻은 것이 굳어 있었고, 때가 끼어있었다. 며칠 동안 목욕을 못시킨 상태였다. 돈이 떨어져 기저귀도 구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의 배꼽에는 고름이 끼어있었고, 엉덩이는 짓물러 있었다.

 

 “산후조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

 는 이야기에 “미역국은 먹었다”고 한다. 그것으로 그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나보다. 다시 쉼터에서 당분가 지내면 어떻겠냐고 묻자 고개를 흔든다. 단지 아이만 얼마동안 봐주면 안 되겠냐고 한다. 아이를 양육할 환경이 되면 데려오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날 밤에 이렇게 대책이 안서는 모습으로 서울역 대합실에서 서성이는 혜림씨를 설득해서 그녀의 아이, 길준이를 내 사무실도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다.

 

  다음날 오전부터 실무자 선생님들이 부산해졌다. 이이의 옷, 기저귀, 젖병, 아기용 비누, 엉덩이 발진용 분, 배꼽에 바를 연고, 분유…. 왜 그리 살 것이 많은지.

 

  게다가 기저귀가 없어서 깔아놓았던 수건이 오줌에 젖었는데 그것도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다 빨아야만 했다. 게다가 아이노숙인이 들어왔다는 것이 신기한지, 실무자들도 수시로 드나들며 아기를 보기 원했다.

 

  이런 부산한 상황에서 아이가 긴장이 되어서인지 잘 울지도 않았다. 분유도 제대로 못 먹었다.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서야 아이가 울었다. 그래도 의사표현을 할 줄 아니 다행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울고 나서는 우유도 조금씩 먹었다. 아무리 못난 부모라도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자라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경우처럼 아이가 방치되고 있을 때는 당혹스럽다.

 

  다음날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다. 마땅한 시설이 없었다. 구청과 아동복지센터를 통해 사정을 한 결과 저녁나절에 보육원에 보낼 수 있었다. 그 보육원에서도 놀라워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가 들어오기는 보육원 생긴 이래 처음이에요.”

 

  우리 센터에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만이 처음이 아니다. 삶이란 어차피 매순간 ‘처음’을 대하는 것이다.

 

  그 처음을 거리에서 맞이한 아이의 삶은 축복된 것일까? 이런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축복이다.

 

  부자로 태어나건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나건, 건강하게 태어나건 장애를 갖고 태어나건, 생명을 갖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것자체만으로도 축복이다.  다만 길준이는 더 이상 거리에서의 삶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생후15일만에 노숙인이된 아기노숙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