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휴양과 화려한 셀렙의 도시 L.A.

美 本2008.02.28
조회97
달콤한 휴양과 화려한 셀렙의 도시 L.A.로 오라. 비행기 티켓을 끊은 후에는 L.A. 최고의 스타일 스트리트 멜로즈 애비뉴의 유일한 호스텔, 오르빗에 예약할 것. 세계 각국의 빛나는 청춘으로 가득한 오르빗은 당신에게 ‘머무는 여행’의 참맛을 알려줄 테니.

<STYLE type=text/css>

이글스는 저 유명한 ‘Hotel California’에서 노래한다. ‘어두운 사막의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머리는 무겁고 시야가 흐려지고 있어. 오늘 밤에 묵을 곳을 찾아봐야겠군’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머나먼 타국에 가면서 나는 숙소도 예약하지 않은 것이다. 마감 돌입 직전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소개한 저렴한 L.A.행 티켓을 끊어놓고, 가기로 한 것도 잊어버릴 만큼 정신없이 마감을 끝내자마자 짐도 제대로 꾸리지 못한 채 떠난 여행이었다. 황망함을 커피 한 잔으로 달래는데 공항 한쪽의 인포메이션 센터가 눈에 띄었다. 다짜고짜 물었다. “L.A.에서 가장 멋진 거리가 어디죠? 그곳에서 가장 싼 호텔을 알고 싶어요.” 인자해 보이는 흑인 아저씨는 최대한 의아한 표정을 감추려 애쓰며 말했다. “요즘 아가씨들은 멜로즈 애비뉴를 좋아하던데, 영화배우도 쇼핑하러 자주 온다고. 거기에 오르빗(Orbit)이라는 호스텔이 있어.” 인생을 우연에 의탁해 살아온 나에게 선택이란 의외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도박이다. “우리는 계획보다는 우연에 의해 목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 하이데거의 말은 찬양할 만했다.
북쪽으로는 할리우드를, 남쪽으로는 코리아타운을 두고 동서로 길게 이어진 총 4km 정도의 4차선 도로인 멜로즈 애비뉴. 그 가운데 지점에 오르빗이 있다. 2층 높이의 아담한 건물 외관에는 한쪽 벽면에 부조로 조각을 설치했는데 어둠이 내리면 형형색색의 불빛을 밝혀 여행자를 인도한다. 호텔 내부에 들어서면 60~70년대 레트로 무드에 기반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우리가 즐겨 찾는 카페의 겉만 치장한 빈티지가 아니라 호스텔을 지은 30년 전에는 가장 트렌디한 스타일로 꾸몄을 텐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지금은 때가 타고 흠집이 생긴, 진짜 레트로 스타일! 공중에 TV 2대가 매달린 TV룸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소파와 의자가 오종종하게 놓여 있고, 다양한 잡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가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TV를 보는데, 공통점은 저마다의 자세가 공공장소치고는 무척 편안해 보인다는 것. 누구나 탁자에 다리를 뻗어 올려놓고 맥주를 홀짝이며 TV를 본다. 어둑한 이 방의 공기가 익숙한 촉감으로, 마치 잠 잘 오게 하는 이불을 덮을 때와 같은 편안함을 주니 누구나 제 방인 줄로 착각할 만하다. TV룸과 식당 그리고 주방은 문 없이 연결된다. 식당에는 정 가운데 당구대가 있고, 그 주변으로 소파, 탁자와 의자가 늘어서 있다. 주방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요리사가 상주하며, 6~7달러만 내면 파스타나 샌드위치를 만들어준다. 외부에서 음식을 사 와서 먹어도 되고 주방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냉장고에 자신의 음식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 먹어도 된다. 커피와 홍차는 언제나 공짜다. 내가 오르빗에서 자주 머문 공간은 중정처럼 건물 사이에 있는 공간에 파라솔을 놓아둔 일종의 마당이었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파란 하늘 아래 앉아 다른 방에서 새어나오는 낯선 외국어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던 오후 3시는 시에스타보다 더 달콤했다.


달콤한 휴양과 화려한 셀렙의 도시 L.A.

오르빗이 본격적으로 좋아진 건 비가 오지 않기로 유명한 L.A.에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것을 기념하는 ‘레이니 데이 파티’날부터다. 심각하게 혀를 굴리는 L.A.스타일 영어에 한창 기 죽어 영어 울렁증을 겪던 나에게 파티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래층 TV룸과 식당에 모여 눈빛과 체취를 주고받고 있을 혈기 방자한 코즈모폴리턴의 웃음소리와 수다 떠는 소리는 2층 구석에 있는 내 방문을 두드리며 밤잠을 설치게 했다. 이렇게 쓸쓸하고 더딘 새벽이면 나는 내 방 앞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에 앉아 L.A.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을 읽으며 범죄로 얼룩진 1940년대의 할리우드를 상상하곤 했다. 그날도 책을 집어들고 살금살금 복도로 나갔는데, 내 지정 좌석에 한 흑인 남자가 ‘오르빗 전용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열심히 문자를 치느라 나를 못 본 줄 알았다. ‘에이, 되는 일 하나 없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시 우리 방문을 열려고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힘없이 넣고 있었다. 그때, “너 한국인이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전화할 때 듣고 알았어. 나는 ‘하프-코리안(Half-Korean)’이야. 아버지는 흑인, 어머니는 한국인. 반갑다. 이리 와서 앉을래?” 잠옷을 대신한 ‘추리닝’ 차림으로 야심한 새벽에 나는 오르빗에서 첫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날부터 오르빗은 잠 설친 새벽, 싸이월드에 로그인했다가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처럼 반갑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달콤한 휴양과 화려한 셀렙의 도시 L.A.

매일 아침 호스텔 입구에는 여러 행사가 적힌 화이트보드가 등장한다. 화이트보드에는 L.A. 투어를 할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가 거의 매일 등장하고, 어떤 날엔 TV 룸에서 축구 경기를 함께 보자는 계획이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하는 알림, 근처 클럽에서 열리는 공연이 무료라는 정보, 온갖 클럽과 라이브 하우스가 몰려 있는 선셋 스트립으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광고 등이 빼곡히 적힌다. 매일 여기에 적힌 스케줄만 따라 다녀도 L.A. 관광은 제대로 하는 셈이다.
‘하프 코리안’ 카린을 만나면서 오르빗에서의 생활에 물꼬가 트였다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L.A.에 왔다는 한국인 수정과 L.A.에서 의사로 근무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왔다는 한국인 2세 윌리엄을 만나면서부터는 하이라이트를 맞았다. 우리 셋이 TV룸에 모여 소주와 컵라면을 풀기 시작하면 지나가던 외국인 친구들이 호기심에 하나씩 모여들었다. 새벽 2시쯤 되면 일개 군단이 모여 이탈리아 식 영어, 아프리카 식 영어 심지어 티벳 식 영어로 얘기를 나누며 밤이 새도록 화기애애한 순간을 즐겼다. 그리고 아침이 밝으면 오르빗에서 보름 이상 머문 친구들의 조언을 구해 멜로즈 애비뉴 산책에 나서는 거다. 밤새 호텔에서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놀고 낮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쇼핑도 하고 식사도 하는 여행, 이것이야말로 ‘머무는 여행’의 정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