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집에는 온도계가 있습니다. 온도계는 그 집의 온도를 가리킵니다. 온도계의 눈금이 25도를 가리키면 그 집의 온도는 25도입니다. 온도계의 눈금이 15도면 그 집의 온도는 15도인 것입니다. 절대로 온도계의 눈금이 먼저 올라간 다음에 온도가 올라가는 법은 없습니다. 온도가 올라간 다음에 온도계의 눈금이 따라 올라가며, 온도가 내려가면 온도계의 눈금도 내려갑니다. 그것이 온도계의 특징입니다.
온도계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의 감정과 상황의 온도가 올라가면 자기의 감정과 상태도 함께 올라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주 화를 내며, 남을 비방합니다. 주변의 감정과 상황의 온도가 내려가면 그 자신도 함께 내려갑니다. 이런 사람은 자주 낙심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부정적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주 환경을 탓하며 사람을 원망하며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화를 내면서도 정당화합니다. 왜 화를 내느냐고 물어보면, 화가 나게 만드니까 화를 낸다고 말합니다.
온도계 같은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계도 있습니다. 집의 온도가 내려가서 추위를 느끼면 온도조절계의 눈금을 원하는 온도만큼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집안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집의 온도가 30도여서 너무 더우면 온도조절계의 눈금을 22도로 내려놓습니다. 그러면 온도가 22도로 내려갑니다.
온도조절계의 눈금에 따라서 집의 온도가 오르기로 하고 내리기도 합니다.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의 감정과 상황의 온도가 올라가면 오히려 이를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화를 내는 사람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도록 온유하고 겸손하게 응답합니다. 또한 주변 상황의 온도가 내려가 낙담과 염려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위로하고 믿음과 소망의 분위기로 변화를 줍니다. 긍정적, 적극적,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합니다. 감사의 말을 하며 소망을 불어넣은 사람입니다. 차갑고 냉랭한 분위기를,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로 바꿀 줄 압니다.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는 땅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온도조절계처럼 살아야 합니다.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며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질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기질적으로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능동적, 적극적, 수동적, 소극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이며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소망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화를 주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우리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올 때에 온도계처럼 반응합니까? 자주 낙심합니까? 환경에 의해 자주 영향을 받습니까?
많은 경우, 우리는 온도계처럼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온도계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도조절계로 지으셨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온도계처럼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으로 우리 자신을 깨뜨려서 다시금 온도조절계처럼 살 수 있도록 요청하여야 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주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l 영향을 주는 삶을 살라
l 변화를 주는 삶을 살라
l 능동적인 삶을 살라
l 적극적이며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삶을 살라
l 힘 있게, 밝게, 생동감 있게 살라
당신은
온도계가 아니라 온도조절계입니다.
- 홍성건 목사, 섬기며 다스리는 사람 중에서...
홍성건 목사은 지금도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일어나
나라를 섬기고 열방을 변화시키는 이 시대 믿음의 주역이 될 것을 바라보고 있다.
온 민족이 주를 예배하는 그 날을 바라는 우리들에게 주님을 믿는 믿음과 주님의 마음과 비전을 청년들에게 심겨주는 열방대학 사역을 제주도에서 하고 있다.
온도계와 온도조절계
온도계와 온도조절계
대부분의 집에는 온도계가 있습니다. 온도계는 그 집의 온도를 가리킵니다. 온도계의 눈금이 25도를 가리키면 그 집의 온도는 25도입니다. 온도계의 눈금이 15도면 그 집의 온도는 15도인 것입니다. 절대로 온도계의 눈금이 먼저 올라간 다음에 온도가 올라가는 법은 없습니다. 온도가 올라간 다음에 온도계의 눈금이 따라 올라가며, 온도가 내려가면 온도계의 눈금도 내려갑니다. 그것이 온도계의 특징입니다.
온도계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의 감정과 상황의 온도가 올라가면 자기의 감정과 상태도 함께 올라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주 화를 내며, 남을 비방합니다. 주변의 감정과 상황의 온도가 내려가면 그 자신도 함께 내려갑니다. 이런 사람은 자주 낙심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부정적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주 환경을 탓하며 사람을 원망하며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화를 내면서도 정당화합니다. 왜 화를 내느냐고 물어보면, 화가 나게 만드니까 화를 낸다고 말합니다.
온도계 같은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계도 있습니다. 집의 온도가 내려가서 추위를 느끼면 온도조절계의 눈금을 원하는 온도만큼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집안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집의 온도가 30도여서 너무 더우면 온도조절계의 눈금을 22도로 내려놓습니다. 그러면 온도가 22도로 내려갑니다.
온도조절계의 눈금에 따라서 집의 온도가 오르기로 하고 내리기도 합니다.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의 감정과 상황의 온도가 올라가면 오히려 이를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화를 내는 사람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도록 온유하고 겸손하게 응답합니다. 또한 주변 상황의 온도가 내려가 낙담과 염려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위로하고 믿음과 소망의 분위기로 변화를 줍니다. 긍정적, 적극적,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합니다. 감사의 말을 하며 소망을 불어넣은 사람입니다. 차갑고 냉랭한 분위기를,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로 바꿀 줄 압니다.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는 땅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온도조절계처럼 살아야 합니다.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며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질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기질적으로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능동적, 적극적, 수동적, 소극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이며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소망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화를 주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우리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올 때에 온도계처럼 반응합니까? 자주 낙심합니까? 환경에 의해 자주 영향을 받습니까?
많은 경우, 우리는 온도계처럼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온도계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도조절계로 지으셨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온도계처럼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으로 우리 자신을 깨뜨려서 다시금 온도조절계처럼 살 수 있도록 요청하여야 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주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l 영향을 주는 삶을 살라
l 변화를 주는 삶을 살라
l 능동적인 삶을 살라
l 적극적이며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삶을 살라
l 힘 있게, 밝게, 생동감 있게 살라
당신은
온도계가 아니라 온도조절계입니다.
- 홍성건 목사, 섬기며 다스리는 사람 중에서...
홍성건 목사은 지금도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일어나
나라를 섬기고 열방을 변화시키는 이 시대 믿음의 주역이 될 것을 바라보고 있다.
온 민족이 주를 예배하는 그 날을 바라는 우리들에게 주님을 믿는 믿음과 주님의 마음과 비전을 청년들에게 심겨주는 열방대학 사역을 제주도에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