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시작을 어떤 주제로 할지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풀어나갈 이야기가 너무도 방대한 범주안에 있는지라 첫 시작이 여간 어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민했던 결과만큼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처음시작인 것을 감안하여 냉혹한 비판은 삼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치혀가 풀어나갈 첫 주제는 가장 기본에서 부터 찾을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다보면 조금은 복잡하고 다소 어려운 이야기들을 풀어놓게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말그대로 뒤에 일이고 오늘 첫 시간은 처음이니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가겠습니다. ( 그러나 결코 쉬운내용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제목을 보고 눈대중질을 좀 하셨겠지만 오늘의 주제는 바로 '寺와 절' 입니다. 뭐 장황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부터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짖거려 볼까 하니 무거운 주제가 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청하는 아니 심독(深讀)하는 자세를 취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평소 '寺'라는 말과 '절'이라는 말을 회원 여러분들도 참 많이 듣고 사용하고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명색이 불교모임에 회원님들이니 보통의 사람들 보다는 더욱 불교도량을 많이 찾을것으로 생각해보면 두말해 잔소리 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런데 회원님들 중에서 혹시 한분이라도 이 寺와 절이라는 글자가 무슨 의미를 품고있는지 의심해보신적이 있으신지 물어보고싶습니다. 짐작컨데 아마 '寺는 한자고 절은 한글이겠지...' 하는 생각정도가 다일 것이며, 그마저도 사실은 그냥 원래부터 있던 그냥 그런 말이려니 하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하는게 옳을것입니다. 그러나 뭐 모른다고 해서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세치혀가 짖거리는 이야기들을 들으시며 한가닥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절이라는 의미가 ' 절을 많이 하기때문에 절이고 부른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회원님들이 계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법당에 들어가서 하는 그 '절'과 불교도량을 총칭하여 부르는 그 '절'과는 설득력있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려 이런 설이 흘러나오게 된것은 아마도 승려들이 종교적인 심성을 일깨우기 위해 의미를 붙인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다시말해 언어 음운상의 유사성을 이용하여 그 의미까지도 마치 유사성이 있는것처럼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절'이라는 말은 어떤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걸까요? 아직 확실히 이렇다 하는 정설은 없지만 신빙성있는 이야기들로 좋합하여 전달할 터이니 착오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우선 '절'이라는 말은 '털례의 집'이라는 말에서 '털'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절'이 되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털->덜->절' 이렇게 변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앞서말한 '털례의 집' 이란 어떤 뿌리를 두고 나온 이야기 일까요? 이제부터 그에대한 설명을 늘어놓을 터이니 집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가장 늦게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나라가 신라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런이야기 입니다. 신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들어온것은 사적상의 기록을 통하여 신라 19대 눌지왕때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고구려는 이미 불교를 국교로 삼고있었고 대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전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인 묵호자가 일선군(지금의 경북 선산군) '모례(毛禮 혹은 毛祿)'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며 몰래 불교를 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례'는 원래 우리말의 '털례'를 한자로 음사한 것으로, 그 '털례의 집'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불교인들이 모여서 믿음을 행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저절로 '털례의 집'은 가람(伽藍)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행할 수 있는 집을 '털례네' 라고 부르던 것이 점차 변하여 '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절(寺)'의 발음이 '데라'임을 생각해 볼때, 그 말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털례'에서 변천된 것이라고 보는 논거까지 뒷받침되고 있는 상황이라 앞서 장황하게 말한 이 이야기가 '절'의 가장 설득력있는 유래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번에는 '사(寺)'에 대하여 그 유래를 간단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회원님들은 다들 한자에 관심이 많은것으로 알기때문에 이번 이야기는 직접적인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寺'라는 한자를 보도록 합시다. 아마 다들 이 한자를 보여주면 '절 사'로 음독 할 것입니다. 하지만 '寺'는 본래 탄생되기를 '절'이라는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 뜻은 '모시다'라는 것이였고, 읽기는 '시' 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한자가 절의 의미를 더하게 된것일까요? 중국 불교 전래가 있었다고 전해지던 후한 명제(明帝)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중국의 불교 전래는 후한 명제에 이르러서 라고 합니다. 서기로는 약 60~70년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그때 인도에서 가섭마등과 축법란 두 스님이 흰말(白馬)에 많은 장경(藏經)을 싣고 당시의 수도인 낙양으로 왔다고 합니다. 이에 당시에 조정에서는 그 분들이 외국인이므로 당시의 관례에 따라서 외무부의 소속 관아인 홍려시(鴻慮寺)에 머물게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잘 보셔야 할 것이 바로 '寺'의 사용입니다. 뭐 정확히 확정지어 답해드릴 순 없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이 한자는 모시다라는 의미로 관청의 이름에 사용된 용례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는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그분들이 거주할 적당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그대로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그 곳에서 역경 등 많은 불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홍려시'라는 명칭을 그대로 쓸수가 없으므로 그 분들이 타고 온 흰말을 기념하여 '백마사(白馬寺)'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사찰의 효시가 되며, 이후로 중국에서는 불도를 수행하는 승가들의 거쳐를 '사(寺)'로 부르게 된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실 사(寺)'란 불교의 전용어가 아니라 불교전래 이전에 이미 관아에서 쓰이던 용어이며 불교가 전래되던 그 당시부터 승려들이 거주하는 곳과 관청을 구분짓기 위하여 '시'를 '사'라고 달리 부르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어떻게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위의 내용은 절대 인터넷자료를 긁은 것이 아니며 전문 서적에서 발췌하여 실은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첫 이야기라 많이 서툴러도 양해 바라며 다음시간은 오늘 게제한 이 글을 바탕으로 연계선상에서 확장된 이야기를 전해 드릴까 합니다. 오늘 이야기에 혹시 의문나는 점이 있다거나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다면 혹은 오늘 이야기가 어떠하였는지 느끼신 바가 있다면 꼭 댓글로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치혀와 함께하는 재미있는 사찰공부! 그럼 다음 주 에 뵙겠습니다. 다들 성불하십시오~^^
세치혀와 함께하는 재미있는 사찰공부, 그 첫번째 이야기 - 사(寺)와 절의 의미
처음시작을 어떤 주제로 할지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풀어나갈 이야기가 너무도 방대한 범주안에 있는지라 첫 시작이 여간 어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민했던 결과만큼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처음시작인 것을 감안하여 냉혹한 비판은 삼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치혀가 풀어나갈 첫 주제는 가장 기본에서 부터 찾을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다보면 조금은 복잡하고 다소 어려운 이야기들을 풀어놓게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말그대로 뒤에 일이고 오늘 첫 시간은 처음이니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가겠습니다. ( 그러나 결코 쉬운내용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제목을 보고 눈대중질을 좀 하셨겠지만 오늘의 주제는 바로 '寺와 절' 입니다. 뭐 장황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부터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짖거려 볼까 하니 무거운 주제가 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청하는 아니 심독(深讀)하는 자세를 취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평소 '寺'라는 말과 '절'이라는 말을 회원 여러분들도 참 많이 듣고 사용하고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명색이 불교모임에 회원님들이니 보통의 사람들 보다는 더욱 불교도량을 많이 찾을것으로 생각해보면 두말해 잔소리 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런데 회원님들 중에서 혹시 한분이라도 이 寺와 절이라는 글자가 무슨 의미를 품고있는지 의심해보신적이 있으신지 물어보고싶습니다. 짐작컨데 아마 '寺는 한자고 절은 한글이겠지...' 하는 생각정도가 다일 것이며, 그마저도 사실은 그냥 원래부터 있던 그냥 그런 말이려니 하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하는게 옳을것입니다. 그러나 뭐 모른다고 해서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세치혀가 짖거리는 이야기들을 들으시며 한가닥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절이라는 의미가 ' 절을 많이 하기때문에 절이고 부른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회원님들이 계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법당에 들어가서 하는 그 '절'과 불교도량을 총칭하여 부르는 그 '절'과는 설득력있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려 이런 설이 흘러나오게 된것은 아마도 승려들이 종교적인 심성을 일깨우기 위해 의미를 붙인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다시말해 언어 음운상의 유사성을 이용하여 그 의미까지도 마치 유사성이 있는것처럼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절'이라는 말은 어떤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걸까요? 아직 확실히 이렇다 하는 정설은 없지만 신빙성있는 이야기들로 좋합하여 전달할 터이니 착오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우선 '절'이라는 말은 '털례의 집'이라는 말에서 '털'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절'이 되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털->덜->절' 이렇게 변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앞서말한 '털례의 집' 이란 어떤 뿌리를 두고 나온 이야기 일까요? 이제부터 그에대한 설명을 늘어놓을 터이니 집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가장 늦게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나라가 신라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런이야기 입니다. 신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들어온것은 사적상의 기록을 통하여 신라 19대 눌지왕때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고구려는 이미 불교를 국교로 삼고있었고 대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전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인 묵호자가 일선군(지금의 경북 선산군) '모례(毛禮 혹은 毛祿)'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며 몰래 불교를 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례'는 원래 우리말의 '털례'를 한자로 음사한 것으로, 그 '털례의 집'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불교인들이 모여서 믿음을 행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저절로 '털례의 집'은 가람(伽藍)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행할 수 있는 집을 '털례네' 라고 부르던 것이 점차 변하여 '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절(寺)'의 발음이 '데라'임을 생각해 볼때, 그 말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털례'에서 변천된 것이라고 보는 논거까지 뒷받침되고 있는 상황이라 앞서 장황하게 말한 이 이야기가 '절'의 가장 설득력있는 유래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번에는 '사(寺)'에 대하여 그 유래를 간단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회원님들은 다들 한자에 관심이 많은것으로 알기때문에 이번 이야기는 직접적인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寺'라는 한자를 보도록 합시다. 아마 다들 이 한자를 보여주면 '절 사'로 음독 할 것입니다. 하지만 '寺'는 본래 탄생되기를 '절'이라는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 뜻은 '모시다'라는 것이였고, 읽기는 '시' 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한자가 절의 의미를 더하게 된것일까요? 중국 불교 전래가 있었다고 전해지던 후한 명제(明帝)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중국의 불교 전래는 후한 명제에 이르러서 라고 합니다. 서기로는 약 60~70년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그때 인도에서 가섭마등과 축법란 두 스님이 흰말(白馬)에 많은 장경(藏經)을 싣고 당시의 수도인 낙양으로 왔다고 합니다. 이에 당시에 조정에서는 그 분들이 외국인이므로 당시의 관례에 따라서 외무부의 소속 관아인 홍려시(鴻慮寺)에 머물게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잘 보셔야 할 것이 바로 '寺'의 사용입니다. 뭐 정확히 확정지어 답해드릴 순 없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이 한자는 모시다라는 의미로 관청의 이름에 사용된 용례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는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그분들이 거주할 적당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그대로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그 곳에서 역경 등 많은 불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홍려시'라는 명칭을 그대로 쓸수가 없으므로 그 분들이 타고 온 흰말을 기념하여 '백마사(白馬寺)'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사찰의 효시가 되며, 이후로 중국에서는 불도를 수행하는 승가들의 거쳐를 '사(寺)'로 부르게 된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실 사(寺)'란 불교의 전용어가 아니라 불교전래 이전에 이미 관아에서 쓰이던 용어이며 불교가 전래되던 그 당시부터 승려들이 거주하는 곳과 관청을 구분짓기 위하여 '시'를 '사'라고 달리 부르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어떻게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위의 내용은 절대 인터넷자료를 긁은 것이 아니며 전문 서적에서 발췌하여 실은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첫 이야기라 많이 서툴러도 양해 바라며 다음시간은 오늘 게제한 이 글을 바탕으로 연계선상에서 확장된 이야기를 전해 드릴까 합니다. 오늘 이야기에 혹시 의문나는 점이 있다거나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다면 혹은 오늘 이야기가 어떠하였는지 느끼신 바가 있다면 꼭 댓글로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치혀와 함께하는 재미있는 사찰공부! 그럼 다음 주 에 뵙겠습니다. 다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