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 끌림 #009 탱고.

김윤경2008.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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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 끌림 #009 탱고.

#009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그날 탱고 공연을 보고 나온 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밤하늘에 초승달이 위태롭게 떠 있던 날 골목길을 혼자 걷다가 골목길을 돌기 위해 몸을 꺾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탱고 스텝을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웃다가 그날 본 탱고 공연이 너무 대단해서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탱고 학교에 가보겠다 맘을 먹었다. 쉽지 않겠지만 탱고를 배워도 좋겠다 생각을 한 것이다. 탱고란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면서도 로맨틱한 춤이란 인상이 내겐 있었다. 탱고 학교에는 나처럼 여행 온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 떨렸던 것 같다. 사진이나 영화만으로 봐왔던 그걸 과연 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강사는 긴장도 어려움도 모두 없애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자꾸 강사의 발만 밟기 일쑤였다. 그래도 미안해하지 말라고 한다. 남의 발에 밟히는 일이 자신의 직업이라며 발을 몇 번 쯤이나 밟았을까, 도대체 땀을 얼마나 흘렸을까.

 

오늘도 난 그곳에 갔다. 오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몇몇 외국인 커플도 탱고를 배우기위해  와있는 모습이 보였다. 스위스에서 왔다는 '세실' 이라는 이름의 너도 그들 틈에 끼여 있었다. 늘씬하고 진지해보였고 무엇보다 인상이 부드러운 강사는 나와 너를 앞으로 불러내어 지금까지 익힌 간단한 동작들을 해보이라고 말한다. 나는 창피했지만 네 손을 잡는 순간 갑자기 모든게 괜찮아 진다. 내가 너의 발을 밟을 때 마다 우릴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웃었지만 그럴 때 마다 넌 더 열심이다. 내가 자꾸 너의 발을 밟아 더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두 손을 들어 보였더니 강사는 벽에 붙여 놓은 사진 한 장을 가리킨다.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포스터였는데 거기엔 이렇게 써 있다.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그 문구를 읽는 순간 내 앞에 벌어진 모든 상황들이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로맨틱한 뭔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탱고를 배우려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손수건을 꺼내 너의 구두를 닦아주려고 하는데 너는 그러지 말라며 내 손을 잡았고 다른 한손으로 구두 콧등을 쓱쓱 닦아낸다. 너는 고맙다고 웃으며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나가 스텝을 익히고 나자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있었고 강사는 특별히 시범을 보여준다며 조수쯤으로 보이는 여인과 탱고를 추기 시작했다. 춤을 추는 두 사람을 잔잔한 호수를 걷는 새들처럼 부드럽고 날렵하다. 나는 순간 탱고의 의식앞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조금이라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출 수 없는 춤. 저런 춤을 추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순간, 벽에 붙은 포스터의 글씨가 이렇게 읽히기 시작한다.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