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의 도시 테노츠틀란

모션클리닉200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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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의 도시 테노츠틀란

  서기16세기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는 어디였을까? 인구 4만명정도의 영국? 인구 10만의 파리나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 20만정도의 로마? 모두다 아니다. 16세기경 가장 번성하였던 곳은, 당시까지만 해도 가장 원시의 세계로 알려진 현재 멕시코의 수도에 자리잡고 있던 테노츠틀란이었다.
 테노츠 틀란은 멕시코를 포함한 중미지역을 장악한 아즈텍의 수도였고, 무려 30만의 인구가 상주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황금의 양은 전 유럽을 합친것과 맞먹었고 농업생산력역시 그 어떤 나라보다 월등하였다.

 전설에 따르면...어느 날 밤, 위칠로뽀츠뜰리가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을 하였다. “전에 내가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된다면 너는 아주 행복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나의 조카 꼬삘리를 네게 보내 희생을 하고 그의 심장을 꺼내 갈대숲에 던졌던 것을 기억하는가. 심장은 돌 위에 떨어져서 커다랗고 아름다운 노빨이 자라나고, 그 위에서 독수리가 둥지를 짓고 작은 새 가슴을 먹었다. 너는 나의 조카 꼬삘리의 심장에서 자라난 노빨을 찾으라. 그리고 그곳의 이름은 떼노츠띠뜰란이라 하여라”.”

 전쟁과 태양의 신 위찔로뽀츠뜰리를 받들던 용맹한 메시까 사람들은 호수 안에 있는데다 척박하고 뱀들만 득실거리는 변변치 못한 이 섬에 터를 잡았다. 그들은 1325년에서 1345년 사이에 호수에 갈대와 부식토를 번갈아 쌓아올린 인공 섬 치남빠(갈대울타리)를 만들고 그 위에 수도 테노츠틀란(스페인어식 발음으로는 떼노츠띠뜰란이라 한다)을 세운다.
물 위의 도시 테노츠틀란
 특히 아즈텍인들은 치남빠로 불리우는 그야말로 불가사의에 가까운 수경 농업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멕시코 지역은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여 일년에 3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비옥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아즈텍이 확장하면서 인구는 기아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자급자족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잉여 생산물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즉 부의 축적이 이루어 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즈텍인인은 농경지 습지에 도랑을 파내고 그 흙을 양쪽에 올려 밭을 만드는 치남빠의 원형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밭은 항상 아래로부터 물기가 스며들여 습도를 자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치남빠스는 메시까 족의 영역을 넓혀주고 경계를 짓는 역할을 했다. 떼노츠띠뜰란은 작은 섬들이 수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섬과 섬 사이는 통나무를 깎아 만든 바닥이 평평한 작은 카누를 타고 왕래하였다. 그리고 섬과 호숫가를 잇는 대 도로와 수로, 다리 등을 만들었다. 
물 위의 도시 테노츠틀란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당시 멕시코는 지금과는 달리 습지와 수목이 우거져 있었다. 따라서 비만 오면 온통 물에 잠겼기 때문에 농경지에 도랑을 파는 정도로는 생산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즈텍 인들은 수초를 역어 뗏목을 만들고 그 뗏목위에 흙을 다져 넣었다. 쉽게 말해서 물위에 떠 있는 밭을 만든 것이다. 이 경이로운 농장법으로 인해 1년에 무려 5회 이상의 일정한 수확이 가능했을 뿐 아니라, 습지건 호수건 어디든지 밭을 만들 수 잇었던 것이다.

 현재의 멕시코 시티는 바로 거대한 치남빠 위에 건설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과거 아즈텍의 수도였던 테노츠틀란을 파괴하고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가 만든 도시가 멕시코시티이다. 즉 멕시코 시티는 물위에 떠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물위에 완벽하게 떠 잇는 것은 아니고, 치남빠로 인해 원래 앝은 호수 지역에, 농작물이 뿌리가 내리고 각종 침전물이 쌓이면서 점차 육지화 되어갔다.
 이런 이유 때문에 테노츠틀란의 대규모 신전들은 가장 가벼운 석재들로만 지어졌다. 현재에도 멕시코 시티는 지반 침하 현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형 건물들의 건설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