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한국은 이래저래 샌드위치

이강섭200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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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 남미여행 (07.12.17 ~ 08.01.10)

 

1/1 : 한국은 이래저래 샌드위치

 

 

[3:20pm]

 

느즈막히 일어나 점심을 먹고 광장에 앉아 있다.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의 그늘과 산들거리는 바람, 새들의 지저귐까지 더해져 더없이

평화롭다. 새해 첫 날, 주변엔 관광객들 발걸음조차 뜸하다. 이 동네

는 차도 적게 돌아다녀 더 조용하다. 이 상태로 낮잠 한 번 자면

최고일 것 같다.

 

어젯밤 자정이 넘어 새해가 되자 아타카마 마을은 축제가 벌어졌다.

레스토랑마다 샴페인을 터뜨리고 손님들은 흥겨운 음악에 몸을

흔들었다. 거리에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Happy New Year! 를 외치

고 곳곳에서 인형을 태우며 새해맞이 행사를 거행했다. 우리가 묵은

호스텔에서도 조촐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 모습을 보니 정말 신나 하는 모습이었다. 남미 음악에 춤을

추며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이 매우 이국적이었다. 사람들은 왜

새해가 되는 것을 기뻐하며 즐기는걸까. 단순히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 것에 대한 기쁨인가. 시간의 흐름이란 늘

똑같고 연도의 구분이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그리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새해가 밝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암튼 새해 첫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허기진 배를 달래려 했지만

점심 장사하는 레스토랑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찾아 들어간

곳에서 시킨 것은 스파게티. 올리브유에 마늘을 넣었다는 설명이

그럴싸했지만 느끼해 죽는 줄 알았다. ㅡㅜ 정말 따끈한 떡국 한

그릇이 그리워지는 오후시간이다.

 

 

[10:30pm]

 

아타카마에서 아리카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칼라마에 와 있다.

버스에서 자다 일어나 정신이 어벙벙한 상태. 화장실에 다녀오려

했더니 200페소를 내란다. 그냥 아리카행 버스에서 해결해야겠다.

 

달의 계곡 투어에서 만난 한국 여성분이 어제 내 다리를 보더니

이렇게 말해줬다.

 

"어머, 그 쪽도 이한테 물렸네요. 자국이 나랑 똑같은데요!

 꽤 가렵죠?"

 

남미에 오니 별 일을 다 겪는구나. 말로만 듣던 이한테 물린건가.

어쩐지 생각보다 가려운게 오래간다 싶었는데 그냥 벌레가 아니었

나보다. 처음엔 몇 군데 안 보였는데 팔, 다리 곳곳에 물린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 한국에 이를 옮기는 건 아닐런지. >.< 이에

물렸다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이번 여행 중 서양인들에게 많이 듣는 말이 몇 가지 있다.

"곤니찌와?", "샹하이?", "야폰?" 등이 그것. 남미 지역에 여행오는

동양인 수가 적다보니 호기심으로 묻는 말인데 듣는 나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말이다. 눈치 챘듯이, 모두가 일본이나 중국인임을

확인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나는 "쏘이 데 꼬레아

(한국에서 왔습니다)" 라고 말해준다. 그래봤자 별 효과도 없겠지

만...이러저래 우리나라는 경제 뿐 아니라 관광에서도 중국과

일본에 치이는 샌드위치가 돼 버렸다.

 

한국 관광객들은 기회가 되면 서양인들에게 왜 일본해가 아닌

동해인지 설명하려 애쓴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그러나 요즘와서

보면 그게 얼마나 먹혀들지 회의가 든다. 서양인들 입장에서는

별 관심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해가 그리 큰 바다도 아니기

때문에 왜 우리가 그토록 침 튀기며 열심히 설명하는지 모르기

일쑤다. 우리가 구소련 연방국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나 남미 나라들

의 얽히고 섥힌 역사관계에 별 관심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런 것이 우리의 수준을 가늠하는 한 척도가 되는 것 같다. 나라의

힘이 약할수록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외국인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됨을 여행지에서 느낀다. 우리 중에도 볼리비아를 높게

평가하고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끼리

우물 안에서 싸우고 티격태격 하기 전에 나라의 힘을 키우고 국제

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제 밤새 아리카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다.

한 숨 푹 자고 일어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