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의 원조 케네디는 대대적인 선거부정이 없었다면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못했을 것이다.

홍순기2008.03.05
조회80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조지 W. 부시는 민주당 후보 앨 고어보다 더 적은 표를 얻고도 대통령에 당선되어, 그 선거는 오명을 얻었다. 두 후보가 접전을 벌였던 플로리다 주에서 부시가 승리함으로써 부시가 결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공교롭게도 조지 W. 부시의 동생 젭 부시였다. 대법원이 부시를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하자, 다수의 논평가들과 미국 유권자들은 고어가 대통령직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했다. 플로리다에서 대규모의 선거부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일부 고어 지지자들의 분노가 높아졌다.

 

하지만 현대 미국 대선이 이런 오명을 얻었떤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범죄행위 때문에 백악관에 잘못된 사람이 입성했다는 생각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60년 리처드 닉슨과 존 F. 케네디의 치열한 선거전 결과, 근소한 차이로 닉슨이 패배했다. 결국 최종 결과는 텍사스 주와 일리노이 주 두 곳에서 판가름이 났다. 그러나 모든 논평가들은 텍사스 주 전역과 일리노이 주 쿡카운티에서 선거부정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고 확신했다.

 

텍사스 주에서는 유권자 등록수가 4895명인데도 6138표(이 중 75퍼센트를 케네디가 득표했다)가 나오는 등 다양한 선거부정 양상이 나타났다. 시카고에서는 사실상 사망하여 공동묘지에 자리 잡고 있던 유권자들이 케네디를 뽑았다. 케네디를 뽑은 56명이 유권자 등록을 한 주소의 건물을 한 기자가 방문했지만 그 건물은 이미 헐려 있었다. 쿡카운티에서는 총 677명이 선거 관련 부정행위로 기소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 미국 법무부는 유권자 부정 증거를 조사했다. 법무부 장관은 바로 로버트 케네디였다.

 

닉슨의 선거사무장 렌 홀과 공화당 의장 스러스턴 모턴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닉슨에게 선거 결과에 불복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면 이 나라가 분열될 거요. 그렇게는 할 수 없소"

 

       부정선거의 원조 케네디는 대대적인 선거부정이 없었다면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못했을 것이다.

 

JFK는 죽은 사람들도 아들에게 표를 던지도록 한 그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닉슨을 물리쳤다.

케네디가 암살 당한 것은 어쩌면 부정선거를 한 죄 값을 받은 것이 아닐까?

 

 

닉슨.. 그는 1960년 케네디에게 부정 선거로 패한 뒤.. 1968년, 1972년 그는 대통령 취임, 재선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개선을 위하여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외교적 성과를 올렸고, 1969년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하여 발표한 ‘닉슨독트린’은 유명하다. 그러나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Case)’으로 말미암아 1974년 8월 대통령직을 사임함으로써 미국 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에 사임한 대통령이 되었다. 1981년부터 1994년 뇌졸중으로 사망할 때까지 국제문제 관련 집필과 국제문제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정부의 국제문제 자문에 대한 조언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출처 - 세계를 속인 200가지 비밀과 거짓말

 

http://cafe.naver.com/nazzis/996 - 왜곡되거나 파묻히거나 승전국에 의해 쓰여진 역사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