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가 전 교수의 강의평점을 실명 공개하면서 찬반논쟁이 뜨겁다. 교수 강의평점 공개 문제가 이제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우리 대학의 현실이 오히려 부끄럽다.
현재 대부분의 교수는 강의 평가 자체는 동의하는 것 같다. 반면 이를 실명 공개하는 것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가진 교수들이 많다. 하지만 강의평가는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자발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도구이지 수치심이나 우월감을 주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세계적 대학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교수 강의평점 공개를 당연시한다. 시카고, MIT, 컬럼비아, 와튼 등 유명 경영대학은 교수 강의평점 공개뿐 아니라 수강신청도 온라인 경매방식으로 이뤄진다.
예컨대 시카고 경영대학은 학기마다 각 학생들에게 1000점의 수강 포인트를 쓸 수 있게 하고, 학생이 세 과목을 신청할 경우 꼭 듣고 싶은 과목에 800점, 다음 과목에 200점, 마지막 과목에 0점을 배분하는 식으로 점수를 매기게 한다. 수강 정원이 60명인 과목이면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적어낸 학생부터 60번째 학생까지 그 과목을 듣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매긴 점수가 낮은 교수는 강의 교정 클리닉을 찾는다. 자유시장경쟁을 신봉하던 밀턴 프리드먼이나 조지 스티글러와 같은 시카고 경제학자들의 정신을 대학 제도에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를 평가할 때 강의평점은 물론이고 수강생 수까지 고려하기도 한다. 대형강의 평점이 일반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아는 교수가 평점을 높이기 위해 수강인원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국내 경영대학도 강의평점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2006년 8월 설립된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설립 때부터 평점을 공개하고 있다.
인간은 본래 평가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교수들의 경우 직업의 특성상 타인의 평가가 더욱 필요하다. 실명 공개와 같은 불편한 잣대를 교수에게 들이대도록 한 것은 교수 자신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리탐구와 후학 양성의 책무는 등한시하고 개인사로 바쁜 교수들이 많지 않았다면 교수 강의평가 공개와 같은 비극적인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시장의 글로벌화를 앞두고 더 이상 강의평가 공개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공개하고 평가 방식의 객관성이나 신뢰도의 문제 등을 논의하는 것이 바른 수순이다. 게다가 대학교수의 솔선수범이 중·고등학교 교사의 동참을 유도하고 나라 전체의 공교육을 바로잡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필자는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쓰라린 경험이 있다. 모든 교수와 학생에게 공개되는 첫 학기 강의평가 점수를 확인하고는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성실히 강의준비를 했다고 생각했기에 실망이 더욱 컸다. 학생 중에는 '당신 강의는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르겠다'며 필자의 발음을 불평하는 이도 있었다. 이후 강의준비 시간을 배 이상 늘렸다.
지금도 강의에 나태해질 때면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미국대학 교수들 중에는 자신의 강의를 가장 비판한 평가서를 연구실 문에 붙여 놓는 경우가 있다. 그 강의평가서를 보면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를 지키겠다는 뜻일 것이다.
반대 ; 정재형 동국대 교수회장· 영화영상학과 교수
"비교육적 포퓰리즘 우려"
지난 12일 동국대에서 학교 구성원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교수들의 강의 평가점수를 학생과 교수는 물론 일반에게 공개한 것은 큰 문제다.
동국대 교수들은 지금까지 학생들의 평가를 수용해 왔다. 또 앞으로도 합리적인 평가는 적극적으로 수용할 태도가 되어 있다. 학자는 원래 비판과 토론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존재이므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비판과 지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동국대 대학본부가 이번에 강행한 일방적인 강의평가 점수 공개는 비교육적, 비이성적이라는 점에서 절대 용허할 수 없다. 이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비교육적인 횡포이다. 그 이유는 동국대뿐 아니라 현재 각 대학에서 실시되고 있는 강의평가가 학생들의 선호도 조사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강의의 질을 평가하기 위한 수업여건, 수강생 수, 전공·교양 강의 여부 등은 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교수에 대한 '인기투표'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한 강의평가 점수를 학생은 물론 일반인에게까지 공개해 교수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도 비교육적인 처사다. 이 때문에 교수들이 소신과 창의력이 넘치는 강의보다는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한 강의에 몰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당사자인 교수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강의 결과를 공개한 대학 측의 행동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대학에서는 매 학기 수천 강좌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교수는 학생들의 평가가 없어도 자신이 맡고 있는 강의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교수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진지한 수업 태도와 비판이 교수들의 학구열을 자극하고, 교수의 성실한 강의와 피드백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고양하는 등 상호작용을 하므로 건전한 비판과 평가는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강의 평가 지표는 교육의 성과를 측정하는 여러 항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좋은 강의란 교수의 성실한 준비와 열정, 학생들의 진지한 수업 태도와 발표, 그리고 교수와 학생 사이의 활발하고 격의 없는 토론과 비판이 어우러지는 마당이어야 한다. 문제는 현재 학생들의 강의 평가 항목이 교수가 얼마나 강의계획서의 순서와 계획에 따라 강의를 하였느냐에 따라 좋은 점수를 부여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강의를 하는 교수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강의 평가의 궁극적 목적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유익하고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자로서의 창의력과 정열이 부족한 교수는 학생들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나태를 반성해야 하고, 학생도 지난 강의를 되돌아보면서 교수에 대한 경의와 비판을 함께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생들의 평가를 수용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학자는 원래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존재이므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비판이라고 해서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교수와 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평가를 소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가 방식이나 문항이 그렇듯, 지금 시행하고 있는 학생들의 평가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앞으로도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지속되더라도, 끊임없이 수정 보완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와 같은 공개 방식은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쟁점] 교수 강의평가 공개
[쟁점] 교수 강의평가 공개
찬성 ;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 부학장"강의평가는 수십 년 된 글로벌 스탠더드"
동국대학교가 전 교수의 강의평점을 실명 공개하면서 찬반논쟁이 뜨겁다. 교수 강의평점 공개 문제가 이제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우리 대학의 현실이 오히려 부끄럽다.
현재 대부분의 교수는 강의 평가 자체는 동의하는 것 같다. 반면 이를 실명 공개하는 것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가진 교수들이 많다. 하지만 강의평가는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자발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도구이지 수치심이나 우월감을 주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세계적 대학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교수 강의평점 공개를 당연시한다. 시카고, MIT, 컬럼비아, 와튼 등 유명 경영대학은 교수 강의평점 공개뿐 아니라 수강신청도 온라인 경매방식으로 이뤄진다.
예컨대 시카고 경영대학은 학기마다 각 학생들에게 1000점의 수강 포인트를 쓸 수 있게 하고, 학생이 세 과목을 신청할 경우 꼭 듣고 싶은 과목에 800점, 다음 과목에 200점, 마지막 과목에 0점을 배분하는 식으로 점수를 매기게 한다. 수강 정원이 60명인 과목이면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적어낸 학생부터 60번째 학생까지 그 과목을 듣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매긴 점수가 낮은 교수는 강의 교정 클리닉을 찾는다. 자유시장경쟁을 신봉하던 밀턴 프리드먼이나 조지 스티글러와 같은 시카고 경제학자들의 정신을 대학 제도에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를 평가할 때 강의평점은 물론이고 수강생 수까지 고려하기도 한다. 대형강의 평점이 일반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아는 교수가 평점을 높이기 위해 수강인원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국내 경영대학도 강의평점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2006년 8월 설립된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설립 때부터 평점을 공개하고 있다.
인간은 본래 평가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교수들의 경우 직업의 특성상 타인의 평가가 더욱 필요하다. 실명 공개와 같은 불편한 잣대를 교수에게 들이대도록 한 것은 교수 자신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리탐구와 후학 양성의 책무는 등한시하고 개인사로 바쁜 교수들이 많지 않았다면 교수 강의평가 공개와 같은 비극적인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시장의 글로벌화를 앞두고 더 이상 강의평가 공개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공개하고 평가 방식의 객관성이나 신뢰도의 문제 등을 논의하는 것이 바른 수순이다. 게다가 대학교수의 솔선수범이 중·고등학교 교사의 동참을 유도하고 나라 전체의 공교육을 바로잡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필자는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쓰라린 경험이 있다. 모든 교수와 학생에게 공개되는 첫 학기 강의평가 점수를 확인하고는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성실히 강의준비를 했다고 생각했기에 실망이 더욱 컸다. 학생 중에는 '당신 강의는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르겠다'며 필자의 발음을 불평하는 이도 있었다. 이후 강의준비 시간을 배 이상 늘렸다.
지금도 강의에 나태해질 때면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미국대학 교수들 중에는 자신의 강의를 가장 비판한 평가서를 연구실 문에 붙여 놓는 경우가 있다. 그 강의평가서를 보면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를 지키겠다는 뜻일 것이다.
반대 ; 정재형 동국대 교수회장· 영화영상학과 교수
"비교육적 포퓰리즘 우려"
지난 12일 동국대에서 학교 구성원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교수들의 강의 평가점수를 학생과 교수는 물론 일반에게 공개한 것은 큰 문제다.
동국대 교수들은 지금까지 학생들의 평가를 수용해 왔다. 또 앞으로도 합리적인 평가는 적극적으로 수용할 태도가 되어 있다. 학자는 원래 비판과 토론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존재이므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비판과 지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동국대 대학본부가 이번에 강행한 일방적인 강의평가 점수 공개는 비교육적, 비이성적이라는 점에서 절대 용허할 수 없다. 이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비교육적인 횡포이다. 그 이유는 동국대뿐 아니라 현재 각 대학에서 실시되고 있는 강의평가가 학생들의 선호도 조사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강의의 질을 평가하기 위한 수업여건, 수강생 수, 전공·교양 강의 여부 등은 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교수에 대한 '인기투표'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한 강의평가 점수를 학생은 물론 일반인에게까지 공개해 교수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도 비교육적인 처사다. 이 때문에 교수들이 소신과 창의력이 넘치는 강의보다는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한 강의에 몰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당사자인 교수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강의 결과를 공개한 대학 측의 행동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대학에서는 매 학기 수천 강좌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교수는 학생들의 평가가 없어도 자신이 맡고 있는 강의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교수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진지한 수업 태도와 비판이 교수들의 학구열을 자극하고, 교수의 성실한 강의와 피드백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고양하는 등 상호작용을 하므로 건전한 비판과 평가는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강의 평가 지표는 교육의 성과를 측정하는 여러 항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좋은 강의란 교수의 성실한 준비와 열정, 학생들의 진지한 수업 태도와 발표, 그리고 교수와 학생 사이의 활발하고 격의 없는 토론과 비판이 어우러지는 마당이어야 한다. 문제는 현재 학생들의 강의 평가 항목이 교수가 얼마나 강의계획서의 순서와 계획에 따라 강의를 하였느냐에 따라 좋은 점수를 부여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강의를 하는 교수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강의 평가의 궁극적 목적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유익하고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자로서의 창의력과 정열이 부족한 교수는 학생들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나태를 반성해야 하고, 학생도 지난 강의를 되돌아보면서 교수에 대한 경의와 비판을 함께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생들의 평가를 수용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학자는 원래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존재이므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비판이라고 해서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교수와 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평가를 소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가 방식이나 문항이 그렇듯, 지금 시행하고 있는 학생들의 평가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앞으로도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지속되더라도, 끊임없이 수정 보완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와 같은 공개 방식은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