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간단한 것부터 말해보자. 어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우리는 그가 깨달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깨달음을 얻어야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신도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얘기하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혹, 완벽한 사람이라 할지라고 그 사람이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귀울일까. 확실히 깨달음을 얻은 사람과 그 사람이 얘기하는 말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 깨달은 사람을 숭배하는 사람은 실제로 그 권위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숭배하는 사람은 결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깨달았다는 것을 이해한다든가 깨달은 사람을 안다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깨달은 사람과 함께 가라" 하지만, 그 사람이 깨달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가.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뿐이다.
진정으로 선량한 사람은 매우 소수이며, 그 사람들은 무엇을 찾거나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뭔가를 추구하는 사람은 착취를 하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구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는 깨달은 인간을 이상화하며, 그런 인간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줄 것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관계는 잘못된 관계이다. 사랑이 없다면 깨달은 인간이 어떻게 그것을 타인에게 알려 줄수 있을까.
깨달음을 얻은 인간에게서 우리는 항상 지식이나 인식 같은 것을 얻으려고 하거나 교제하기를 바란다. 이런 관계는 서로간에 사랑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혹 참으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거기에는 즉시 친교가 생긴다. 그때에는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있고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든가, 신분의 차이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우리의 정서가 메말라 있기 때문에 신이 매우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예를들자면, 마음 속의 노래를 잃어서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신에게<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 height="1" src="http://netnabi.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 wmode="transparent" invokeurls="false" autostart="false" id="bootstrappernetnabitistorycom292632" allowscriptaccess="never" enablecontextmenu="false" flashvars="&callbackId=netnabitistorycom292632&host=http://netnabi.tistory.com&embedCodeSrc=http%3A%2F%2Fnetnabi.tistory.com%2Fplugin%2FCallBack_bootstrapper%3F%26src%3Dhttp%3A%2F%2Fcfs.tistory.com%2Fblog%2Fplugins%2FCallBack%2Fcallback%26id%3D29%26callbackId%3Dnetnabitistorycom292632%26destDocId%3Dcallbacknestnetnabitistorycom292632%26host%3Dhttp%3A%2F%2Fnetnabi.tistory.com%26float%3Dleft" swliveconnect="true"> 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한다고 하자. 그는 방법을 알려 줄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그 방법에 의해 창조에 도달할 수는 없다. 창법만 알아가지고는 음악가가 될 수 없듯이.
우리의 목적이 단지 어떤 한 가지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랑을 처음부터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은 하나의 달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랑이 있다면 미지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도, 신이 무엇인가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것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게 될 것이다.
신이나 타인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고, 우리의 행복이나 사물이나 가정이나 이상을 위하여 투자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행복하기 때문에, 사물이나 인간이나 이상이 우리의 생활을 좌우 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가지 투자를 하며 그것이 행복을 안겨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 투자 중 하나가 신이라는 것이다.
신에 대한 실재를 어떻게 추측할 수 있을까?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까? 혹 그렇다면 그것이 바람일까? 추측할 수 없는 것을 만일 당신이 추측한다면 그것이 실체일까? 혹 그것을 공식화 한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확실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순간, 그것은 진실한 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미지의 것을 기지(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바꾸자마자 그것은 이미 미지의 것이 아닌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진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성급하게 나마 내가 내린 결론은 자기 자신에게서 진리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의존하지 않고, 현재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고 느낌으로써 진리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한다. 물론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또 다시 무언가에 의지하는 일은, 또 다시 무언가를 손에 잡으려고 하는 일은, 더욱 더 진실이나 진리에서 멀어지는 일이 아닐까?
신(GOD)
우선 간단한 것부터 말해보자.
어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우리는 그가 깨달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깨달음을 얻어야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신도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얘기하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혹, 완벽한 사람이라 할지라고 그 사람이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귀울일까.
확실히 깨달음을 얻은 사람과 그 사람이 얘기하는 말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 깨달은 사람을 숭배하는 사람은 실제로 그 권위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숭배하는 사람은 결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깨달았다는 것을 이해한다든가 깨달은 사람을 안다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깨달은 사람과 함께 가라"
하지만, 그 사람이 깨달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가.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뿐이다.
진정으로 선량한 사람은 매우 소수이며, 그 사람들은 무엇을 찾거나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뭔가를 추구하는 사람은 착취를 하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구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는 깨달은 인간을 이상화하며, 그런 인간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줄 것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관계는 잘못된 관계이다.
사랑이 없다면 깨달은 인간이 어떻게 그것을 타인에게 알려 줄수 있을까.
깨달음을 얻은 인간에게서 우리는 항상 지식이나 인식 같은 것을 얻으려고 하거나
교제하기를 바란다. 이런 관계는 서로간에 사랑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혹 참으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거기에는 즉시 친교가 생긴다. 그때에는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있고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든가, 신분의 차이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우리의 정서가 메말라 있기 때문에 신이 매우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예를들자면,
마음 속의 노래를 잃어서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신에게<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 height="1" src="http://netnabi.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 wmode="transparent" invokeurls="false" autostart="false" id="bootstrappernetnabitistorycom292632" allowscriptaccess="never" enablecontextmenu="false" flashvars="&callbackId=netnabitistorycom292632&host=http://netnabi.tistory.com&embedCodeSrc=http%3A%2F%2Fnetnabi.tistory.com%2Fplugin%2FCallBack_bootstrapper%3F%26src%3Dhttp%3A%2F%2Fcfs.tistory.com%2Fblog%2Fplugins%2FCallBack%2Fcallback%26id%3D29%26callbackId%3Dnetnabitistorycom292632%26destDocId%3Dcallbacknestnetnabitistorycom292632%26host%3Dhttp%3A%2F%2Fnetnabi.tistory.com%26float%3Dleft" swliveconnect="true"> 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한다고 하자. 그는 방법을 알려 줄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그 방법에 의해 창조에 도달할 수는
없다. 창법만 알아가지고는 음악가가 될 수 없듯이.
우리의 목적이 단지 어떤 한 가지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랑을 처음부터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은 하나의 달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랑이 있다면 미지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도, 신이 무엇인가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것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게 될 것이다.
신이나 타인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고, 우리의 행복이나 사물이나
가정이나 이상을 위하여 투자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행복하기 때문에, 사물이나 인간이나 이상이 우리의 생활을 좌우 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가지 투자를 하며 그것이 행복을 안겨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 투자 중 하나가 신이라는 것이다.
신에 대한 실재를 어떻게 추측할 수 있을까?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까? 혹 그렇다면 그것이 바람일까?
추측할 수 없는 것을 만일 당신이 추측한다면 그것이 실체일까?
혹 그것을 공식화 한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확실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순간, 그것은 진실한 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미지의 것을 기지(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바꾸자마자 그것은 이미 미지의 것이 아닌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진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성급하게 나마 내가 내린 결론은 자기 자신에게서 진리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의존하지 않고, 현재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고
느낌으로써 진리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한다.
물론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또 다시 무언가에 의지하는 일은,
또 다시 무언가를 손에 잡으려고 하는 일은,
더욱 더 진실이나 진리에서 멀어지는 일이 아닐까?
< 크리슈나무르티 : 자신으로부터의 혁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