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코리아, 코리안] “한국영화, 프랑스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유현목 감독을 알게

김지은200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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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코리아, 코리안] “한국영화, 프랑스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유현목 감독을 알게 된 건 내 인생의 행운” [내가 본 코리아, 코리안] “한국영화, 프랑스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유현목 감독을 알게

그때만 해도 내가 그를 악스(Aix)에 있는 우리집에 초대하고 1999년과 2006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유현목 감독전을 열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과 아시아 영화에 대한 책 두 권을 낸 지금-시간이 축적된 후-에야 말할 수 있다. 그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빛깔을 바꾸었다고 말이다.


내가 한국과 한국영화에 정열적으로 사로잡히게 된 것은 강물이 필연적으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나는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의 후손인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울하고 피폐한 시칠리아인과 멀리 떨어져 프랑스의 지중해 햇살을 받으며 살았다. 내 가슴은 자연히 ‘사라진 천국’에 대한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게 영화는 항상 하나의 언어였다. 흘러간 시절을 형상화하는 사랑의 속삭임이나 감각적인 그 무엇이었다. 아마도 이런 것 때문에 한국영화가 나를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교수로서, 나는 영화의 역사와 미학에 관해 연구조사를 하러 서울에 왔다. 그리고 한 사람의 얼굴에서 곧바로 한국영화의 특징을 만났다. 우아하면서도 정제된 태도로 그는 안락한 한국의 한 다방에 앉아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의 얼굴에서 대단한 인간미와 깊은 상처를 발견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화인 ‘오발탄’을 만든 유현목 감독이다. 그때가 1994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그를 악스(Aix)에 있는 우리집에 초대하고 1999년과 2006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유현목 감독전을 열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과 아시아 영화에 대한 책 두 권을 낸 지금-시간이 축적된 후-에야 말할 수 있다. 그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빛깔을 바꾸었다고 말이다.


우리는 영화라는 공통된 언어를 갖고 있다. 그건 언어적인 모든 경계선을 넘기에 충분했다. 그는 내게 브레송, 르누아르, 르네 클레르에 대해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내가 그토록 좋아한 영화 ‘오발탄’에 대해 말했다. 그의 영화는 내게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Voleur de Bicyclette)’이나 다름없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았다. 나는 유럽에 있는 영화학자들에게 한국영화가 ‘제7의 예술’인 영화의 역사를 바꿔버렸으니 서둘러 모든 것을 다시 써야 한다고 경고했다.


계속되는 만남을 가지면서, 나는 젊은 감독들-1980년대의 ‘누벨바그’ 운동을 벌인 사람들(박광수·장선우·임순례 같은)이나 박찬욱·김지훈 같은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이 영화감독 유현목에 대해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걸 알고 굉장히 놀랐다.


[내가 본 코리아, 코리안] “한국영화, 프랑스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유현목 감독을 알게 ▲ 유현목 감독

최근 내가 참여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의 축제에 갔다가 영화 ‘괴물’을 만든 봉준호 감독과 저녁을 같이 하게 됐다. 봉 감독은 내게 그가 얼마나 영화계의 이 대스승을 존경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나는 ‘프랑스에 이 두 명의 능력 있는 감독을 초청해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프랑스 교육부에 영화 ‘괴물’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드는 작업을 했을 때, 나는 한국 영화감독들 간의 인간적인 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걸 잊지 않았다. 단절과 모호한 개념의 나라인 프랑스에선 젊은 세대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그 예술가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연구를 하면서, 유현목이 친구인 고창수와 함께 한국에서 ‘영화시(Cin?-po?me·시를 쓰듯이 만든 영상)’를 창작했다는 걸 알아냈다. 다시 한 번 완전한 원이 그려지면서 나는 장 콕토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나 프랑수아즈 사강까지 프랑스 영화와 프랑스 영화시에서 볼 수 있는 관계를 다시 발견했다.


프랑스에 있는 내 친구들은 오랫동안 내가 먼 나라의 영화에 대해 열정을 갖고 말할 때마다 놀라움에 눈동자를 크게 뜨곤 했다. 내가 그들에게 한국영화에 대해 얼마나 반복해 말했던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요즘 내 친구들은 오히려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한다. “이창동 감독의 최신작을 봤어. 정말 대단하더라. 그리고 권택의 영화(프랑스에선 성과 이름 중 가장 짧은 단어가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임권택 감독에 대해선 이렇게 ‘임’을 생략하는 우스운 일이 일어난다)는 정말 놀라웠어. 그런데 판소리라는 게 뭐지? 임상수 감독이 황석영의 소설을 갖고 만든 영화를 봤는데….”  


프랑스 영화학자들과 비평가들은 이제 한국영화를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대다수의 한국영화가 프랑스에 소개되지 못한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코미디 영화나 교육적인 로맨스 같은 영화에선 관객층보다 훨씬 나이 많은 영화감독만의 독립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창동·김기덕·홍상수 같은 감독의 작품처럼 예술영화관에서 보여지는 것, ‘공공의 적’이나 ‘내츄럴 시티’ 같이 DVD로 선보인 영화, ‘올드 보이’나 ‘춘향뎐’처럼 영화제에서 대성공을 거둔 영화는 프랑스에서 점점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내가 본 코리아, 코리안] “한국영화, 프랑스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유현목 감독을 알게 ▲ 영화 ‘오발탄’ 포스터 (photo 조선일보 DB)

나는 한국영화가 프랑스에서 ‘숭배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 주시한다. 1년 내내 한 상영관에서 한 영화만 상영하는 것이 가능한 곳은 프랑스뿐이다. 영화관 소유주나 유통배급사는 보통 상영하고 싶은 한국영화가 있으면 내게 요청할 때가 많다. 나는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 섹션의 어드바이저로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다양성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장률 감독의 ‘망종’,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이미 상영되었다.


일단 영화에 관한 한 경제와 홍보 같은 문제는 뒤로 남겨두자. 본질은 ‘영화의 욕망’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욕망은 프랑스와 한국이 절대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영화가 직면한 쟁점에 대해 한국이나 프랑스의 식자층이나 영화감독이 느끼는 바는 같다고 본다. 우리는 영화가 그림이나 시처럼 철학적이거나 유희적이거나 감동적인 모던 아트이길 바란다. 또 예술에 의해 표현되는 작가의 감수성을 함께 나누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화와 다름없는 우리의 감정은, 우리를 계속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는 것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차세대의 영화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에 버금가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계승하는 고결하고 숭고한 것이 될 것이다. 한국과 한국영화 속에 투영된 그만의 아름다움은-예술가로 일하는 한국의 영화감독과 마찬가지로-탐험하고 연구하고 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어느 날 저녁,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처럼 유현목이라는 거장을 찾아냈듯이. ▒



/ 앙투안 코폴라 | 프랑스 악스 마르세유대학 영화학과 교수. 영화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조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 섹션의 어드바이저. 유현목 등 한국 영화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발표. 현재 한국외국어대 국제여름학기에서 강의 중.
번역 =  황성혜 기자 coby072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