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이상향의 실현과 그 한계.

이진형2008.03.13
조회86

  조선은 유교적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성립된 나라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조선시대만큼 자세히 배우지만, 흥미롭지 못하고 짜증나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짐이라 칭하지도 못하고 전하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왕들을 보면 가끔은 짜증을 넘어, 보고 싶지 않기까지도 할 것이다. 철저하게 중국에 사대의 예를 갖춘 정권이고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이런 꼴같지도 않은 이유 하나로 조선을 중국의 속국이라 이야기하는 친일,친중적인 역사학자들의 이야기에 대꾸하기도 싫을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보다 강성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리 형편없는 나라는 아니며, 유교는 더더욱 그리 나쁜 정치이념은 아닐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노예제와 중세 봉건의 시대를 거치는데, 중세사회의 특징중 하나가 변변한 철학적 이념이 없어서 정치사회가 종교의 예속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로서 서양 중세가 기독교라는 종교의 계율속에 정치와 사회가 예속되어 있었고, 동양에서는 불교의 융성으로 인한 불교국가체제가 꽤 장시간 지속된다. 우리나라 고려왕조의 경우가 후자의 한 예일 것이다. 이러한 합리성이 결여된 종교국가는 왕과 귀족의 연합통치를 아주 쉽게 해주며, 왕권신성설을 강화해주는 확실한 기반이 되는 것이기에, 그 시기의 통치자들이 선호하는 제도였다. 또한, 권력을 탐하는 썩어빠진 종교지도자들도 환영할 수 밖에 없는 제도이다.---지금 이러고 있는 무리들은 정말 없애 버려야 한다!

  이러한, 암흑기같은 종교국가의 틀을 벗고, 동서양에서 공히 합리적 철학을 바탕으로 국가 기반을 마련하고자하는 시도들이 14세기이후 일어나게 된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와 이성론이 이러한 현상을 주도하고, 동양에서는 유교가 이러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들 서양의 르네상스와 이성론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고 칭찬하지만, 우리역사속의 유교적 이상정치의 업적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거나,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서양의 르네상스가 인간중심의 이성론으로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 했다면, 동양의 유교는 합리적인 도덕성의 바탕으로 우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했다고 할 것이다. 하여간, 두 사상의 자연스런 출현으로 인해 역사는 좀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 초,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사대부 계급의 출현으로 인한 개혁을 시작으로 역사는 확연한 진보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진보는 세종대왕의 출현으로 그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데, 한글창제를 비롯한 세종조의 무수한 업적들이 바로 이러한 유교적 이념을 제대로 구현해낸 결과라고 할 것이다. 이 유교적 이념 구현의 극치는 바로 애민정신이라 할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한글창제의 이유가 바로 유교적 이념을 현실에 부여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보여진다.

  유교는 이렇듯, 지극히 애민적이고 시대적으로 훌륭한 정치사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교는 한국사회에서 배척하지 못 해서 안달이 난 이유는 무엇일가?
  생각해 보건대, 이는 대략 3가지의 이유로 설명되어지는 것 같다. 우선적으로 유교자체가 그 시대를 반영하다 보니, 그 사상기반에 신분적 차별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장유유서 사상이나 남존여비같은 그 당시로는 당연할런지 모르나, 신분적 차별을 규정하는 사상이 많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국가간에도 이러한 차별적 요소가 존재하니, 그것이 조선의 대중 사대외교를 정당화하게 한 요인인 것이다.

  두번째 생각해 봐야할 유교의 문제는 유교적 사상내에서의 격물이라 일컬어지는 과학적 탐구가 지극히 추상적이고, 그 기술 방식에서 지나치게 언어적 유희만 추구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교에는 수학과 같은 간단하면서도 치밀한 논리적 도구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수학유무가 18세기 이후, 동양과 서양의 문명의 진보 차이를 이끄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의 두가지보다 더 심각한 우리나라 유교의 폐단은

현실적으로 유교를 진화 또는 변화시키거나, 더 나은 사상을 찾아나가는 시도를 유교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지극히 교조적이고 배타적인 유교사상을 스스로 만들게 되고, 이러한 사상을 따르는 집단(조선후기 노론세력)이 1세기 이상 집권하면서, 타 사상에대한 학문적 학살을 가한 것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더구나, 유교사상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도덕성조차 상실한 집단의 집권은 사회를 나락으로 빠뜨리고, 결국 조선을 멸망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조선의 멸망의 원인으로 유교가 크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결국, 유교는 17세기 이전 우리의 정치사상으로서, 다소 문제가 있었다 할찌라도 부족함은 없었던 훌륭한 사상인 것이다. 도덕과 애민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논리로 무장된 세종대왕같은 현군의 출현으로 우리나라는 당대에 지구상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역사의 진보를 이루나. 교조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유교사상을 만들어낸 조선 후기의 노론집단의 출현과 그 집단의 도덕적 타락으로 역사의 후퇴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니... 과연 오늘날의 일들이 위의 이야기와 같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도덕성, 애민, 그리고 교조적이고 배타적인 사상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