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 에쿠니 가오리

강희정20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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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수 많은 신작을 냈던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를 제외하고는 사보지 않았다.

 

늘 그랬다.

그녀는 내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뭔가를 절실히 원할때쯤 가장 필요한 신작을 내어주었다.

 

 

지난번엔 낙하하는 저녁으로,

섬세한 리카가 사랑을 잃고

강직한 다케오가 사랑을 버린,

슬프고도 아련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이번에는 쇼코와 곤과 무츠키로 다시 돌아왔다.

 

반짝반짝 빛나는의 10년 후 이야기가 들어있는 이책은

여러가지 단편들이 모여있다.

 

생각같아선 후속편인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부터 읽고싶지만,

꾹 참고 처음부터 보고 있다.

 

 

1.

엄마가 물었다.

'저녁은?'

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업무가 끝나고, 회식까지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9시가 넘은 시각에 나를 위해 삼겹살과 김치를 구웠다.

번거롭게 만든게 미안해서

혼자 밥을 먹는 내 곁을 지켜주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일본 어느집에 어느아줌마가 30대가 넘어서야 엘비스프레슬리를 광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대. 맨날 음반 듣고, 잡지란 잡지는 다 모아다가 옷장에 그득하게 모아놓고, 온갖 기념품을 사모으고.. 정도가 너무 심해서 몇번이나 남편이랑 이혼할뻔 했대.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고나서는 집안식구들이 너무 걱정되서 집안 쇠붙이란 쇠붙이, 끈이란 끈은 다 치웠는데, 어느날 엄마가 혼자 훌쩍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가버린거야. 해외여행은 커녕 비행기 한번 안타본 사람이었는데,, 엄만 성묘를 간거지. 돌아와서도 엄마의 엘비스 사랑은 계속됐고, 어느날 늙어버린 엄마에게 노인성 치매가 온거야. 하루는 딸이 엄마랑 전화를 하고 있는데, 매일 12시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기한테 전화를 해서 일본어로 사랑을 속삭이고 '러브 미 텐더'를 불러준다는거야. 딸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걱정이 되어서 엄마의 집으로 갔어. 근데 엄만 생각보다 너무 멀쩡하고 활기찬거야. 딸은 엄마의 환청이라고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지만, 엄마는 오는걸 어쩌냐며 웃을 뿐이었지. 결국 딸은 엄마의 정신을 되돌려놓기 위해 그날밤 12시까지 기다렸어. 전화는 오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는 잠자리로 향했지. 엄만 오늘 엘비스가 무슨 일이 있나보다 하시며, 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어. 그리고는 음식이며 과자를 바리바리 싸기 시작하셨지. 딸에게 줄 음식이었어. 딸은 엄마를 걱정하며 차안에서 숨을 돌리고는 천천히 집으로 운전해가기 시작했어. 동네 공중전화 박스를 지나는 순간, 딸은 보고 말았어.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잠옷 위에 점퍼 하나 만을 걸친 채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버지는 그렇게 매일 엄마를 위해 엘비스 프레슬리가 됐던 거지."

 

난 '러브 미 텐더'를 각색해서 실화처럼 엄마에게 들려주었고 엄마는 감동을 받아버렸다..

 

 

생각했다. 내 저무는 날들이 저렇게 평화롭고, 로맨틱했으면.. 이라고..

 

 

- 러브 미 텐더

 

 

2.

푸르키녜 현상이 일어날때쯤 나는 한없는 슬픔으로 빠져든다. 요즘 숙면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째, 나는 엄마 옆에서 잠이 든다. 내 방 침대는 정돈되지 못한채 뒤죽박죽이다. 침대를 보면, 원망섞인 눈으로 나를 보는 에반때문에 서글퍼지기 때문이다.

 

  이별을 슬퍼하지 않던 히나코는 한순간의 야간비행으로 온몸으로 이별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보이프렌드 토오루가 있어서 괜찮았다. 밤마다 시작되는 유체이탈과 그때마다 보이는 고스케씨의 와이프는 보는 것 만으로 그녀를 괴롭힌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여전히 토오루가 있었다..

 

 

- 선잠

 

 

3.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친구들이라 함은, 대학에 와서 친해진 남자아이들이다. 내가 결혼하면 축의금은 에어컨이나 냉장고로 해줘. 그럴때마다 그들은 대신 보청기(!)를 사주겠다며 내 청력을 비웃고는 한다. 결혼식에 축가 불러도 괜찮아? 라고 물으면 축의금 필요없으니 밥이나 먹고가라는 신군. 나중일이야 알 수 없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한때는 우리가 졸업을 하고도 결혼을 하고도 아이들의 엄마아빠가 되어서도 이렇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소중하기만 하다.

 

  미치코는 대학때 친했던 두명의 친구가 있다. 이들은 남자이고, 졸업을 하고, 각자 직업이 있는 요즘은 6개월에 한번, 송년회때 한번처럼 일년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나, 여전히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예전에 즐거웠던 농담들이나 장난들이 괜시리 서글퍼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 포물선

 

 

4.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는 목욕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녀 자신도 목욕을 즐긴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목욕은 늘 주인공의 감정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그녀의 소설을 목욕탕에서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일찍 일어난 김에 느긋하게 몸을 욕조에 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주인공에 동화시켜 갔다.

 

  벼룩에 물린 일이 현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교코는 벼룩에 물린 몸을 타인에게, 심지어 결혼을 생각하는 애인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아 했다. 이별을 선언하는 애인을 한번 잡지도 않은 채, 교코는 벼룩에 물린 몸을 숨겼다. 그녀는 행동의 이유를 '자기애'에서 찾았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별은 아무런 아픔이 되지 못했다. 벼룩에 물린 일이 더욱 중요했고, 벼룩을 몰고다니는, 가족인 고양이 '위스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생각해버렸다.

  '나도 벼룩한테나 물려볼까...'

 

 

- 재난의 전말

 

 

5. 

 보기만해도 녹신녹신해지는 애인이 있으면서도, 인간은 바람을 피울 수 밖에 없는 존재라며 다른 남자들을 만나는 미요. 미요는 자신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면서도, 신지를 상처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손만 잡고 자도 괜찮냐고, 등에 딱 붙어 자도 괜찮냐고, 신지 없이는 살 수 없으면서도 미요는 다른 사람을 만난다.

 

 

- 녹신녹신

 

 

6.

  이런 남자 딱 질색이다. 문제의 본질이 뭔지를 모르는. 반복되는거라 생각하고 무시해버리는.

  .. 근데, 가끔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줬음 싶을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이따위 의견묵살남편과는 하루도 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이 얼마나 지독한 모순인지.

 

 

- 밤과 아내와 세제

 

 

 

7.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는 것을 즐기는 시미즈 부부. 장례식 후에는 꼭 장어를 먹는 시미즈 부부.

  인간은 누구나 다 그날을 향해 살아가는 셈이고, 그날 해방되는 거라고.. 통속적인 슬픔으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자유를 향한 의식으로 보는 신선한 관점.

 

  역자도 그런 말을 했지만, 분명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이야기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만한 화제들도 있고.. 하지만 그녀가 가진 힘은 정말 대단하게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 시미즈 부부

 

 

8.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랬던 쇼코와 곤과 무츠키. 주변인의 역할로 돌아와다. 쇼코와 무츠키는 정체불명 살롱의 주인들로, 곤은 무츠키를 버리고 어린 남자와 사귀며 게이 바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언제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랬던 내 마음은, 상처입은 은사자의 이틀간 외출과, 남편을 버린 남편의 애인을 원망하는 아내, 곤과 함께 있기를 바랬던 쇼코가 곤의 부재를 원망하면서도 곤의 나무를 소중히 키우는 조금은 답답한 이야기가 되어 돌아왔다.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 하루를 잘 살아가는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접어보려고 한다.

 

 

 

-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9.

  나랑 엄마와 언니도, 늙으면 이렇게 되는 걸까?

 

 

 

- 기묘한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