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남편

김남호20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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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남편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그 말을 믿으라고?

어떻게..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내 눈에 띄지마...

내가 널 .... 죽여 버릴지도 몰라...

 

누군가의 말처럼 평범한, 근근히 벌어 조금 빠듯하지만 큰 어려움없이,

월급날이면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잔 하는 그런 가정이었다.

피아노가 갖고 싶다는 딸아이를 위해 싸구려 전자키보드를 몇 달치 용돈을 쪼개

예쁘게 직접 포장해 선물해 주는 능력 떨어지는 가장이 지키는 보금자리였다.

아내의 생일.

백송이 장미를 받고 싶다는 말은 잊어버린 척 하며 달랑 장미 한 송이 사들고

은 목걸이 하나 던져주며 생색내는 알량한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가 사는 집이었다.

13년동안 그토록 행복해 지기를 바라며 악착같이 지켜왔던 모든 것이었다.

 

전화를 걸었다.

늘 바뀌지 않던 컬러링이 바뀌어있다.

새벽3시가 넘은시간.

‘자고있겠지 뭐...’

‘평소에도 툭하면 받지않아 음성사서함 그녀의 목소리만 들었는걸...’

오늘은 유별나게 아내의 목소리가 듣고싶다.

실은 자랑할게 생겼으니까.

봉급이 올랐다.

광주에서 한달 내내 하루도 쉬지않고 일해도 벌어지지 않던 돈이다.

한달 5일 이상 쉴 수 있고, 하루종일 일하지 않아도 되고...

역시 고급 기술은 좋은거다.

 

나는 특수카메라 기사다.

전문용어 써봐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 이고 그냥 특수카메라.

일을 시작한지는 이제 넉달째다.

좀더 깊게 말하자면 광주에서 하던 사업 모두 말아먹고 서울로 올라와

방송쪽 일 배워 본답시고 3개월째 집에도 한번 못가는 놈이다.

그래도 월급에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보내주는 것에, 그 돈으로 아내와

애들이 그나마 생활하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놈이다.

상경할 때 가지고온 청바지 몇 벌과 옷가지들이면 올 겨울을 나는데 지장없고

겨울이 어서 지나 봄이오면, 음... 그때쯤이면 약간의 내 용돈도 생기겠지...

겨울아 어서어서 가거라.

꽃피는 봄이오면 내 인생 찬란히 꽃 피울테니.

 

“안된다.”

“아버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아 글쎄 안된다고 임마!!”

“몇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냐! 얼굴에 씌여있잖아!”

“아버지!! 관상이 안좋다고 무조건 안된다는게 말이 됩니까??”

“너 아버지 모르냐? 지금까지 내가 판단해서 틀린적이 없어.”

 

아무리 그녀를 예쁘게 봐달라고 말해도 아버지는 반대하신다.

아니 예쁘게 봐주는 것은 고사하고 ‘아들의 여자’로 인정조차 하지 않으신다.

그래도 언제나 ‘아들편’이신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설득하려 하시지만

결국 두손 두발 다 드시고 ‘알아서 하슈’ 를 외치실 것이다.

홧김에 읍내로 나가 죄 없는 술만 두들겼다.

 

제대한지 석달.

그야말로 고무신 거꾸로 신은 ‘그년’ 때문에 제대하면 가장 하고싶은 일이

아무여자나 닥치는대로 꼬드겨서 싫컷 따먹고 ‘나도한번 차보자!’ 였다.

계집들은 다 똑같아.

똑같이 대접해 줘야 하는 동물들이지...

 

“여~~ 조순진!! 오랜만이다??”

“음마? 너 제대했냐? 언제 했냐? 써글놈.”

“야이 가시나야! 그놈의 발육부진은 여전하구나?”

“염병하네~ 니가 보태준거 있냐?”

“왜. 좀 보태주까? 만져주면 커진다는데 좀... 푸히히히”

“니가 군대서 덜맞은 빶따를 여기서 마저 맞고 뒈지고 싶은갑찌??”

“잔소리 그만하시고 일단 한잔하러 가야지??”

“그랍시다 예비군 아자씨~!”

 

순진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옆에 찰싹 붙어서 팔짱을 끼며 ‘렛츠고’를 외쳤다.

고등학교 2학년 써클활동 할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민속놀이’써클에 들었고

술과 계집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를 외쳐대는 선배들 덕에 만나게된 광주‘모’여고

애들중 하나였다.

가냘픈 외모지만 유달리 눈이 땡그러니 크고 외모와는 달리 호탕한 성격탓에

선배며 동기며 후배들까지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정작 본인은 ‘온리 욱’만 외치며

나에게만 관심을 보여주는 취향이 특이한 아이였다.

물론 내게는 그저 이성친구일 뿐... 이성친구...

 

“언제 제대했냐?”

“이제 한 2주 되가지...”

“인자 좀 남자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다야.”

“지랄하고 앉았네. 그럼 내가 언제는 여자냄시가 나디??”

“잡놈아! 그게 아니고 진정한 사내의 냄시가 난다고야!!”

“그래? 그럼 우리 연애라도 한번 할끄나?”

 

그때는 몰랐다.

웃으며 장난하고 철없던 시절의 단순한 짝사랑 이었던 한 남자를 만나

그저 옛 생각에 젖어 돌아보는 단순한 시간인 줄 알았다.

캔맥주를 몇 개 사들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가시네가 술만 늘어가꼬...”

“내가 원래 한술 하잖아.”

“여자나 하나 만들어주라.”

“뭔 여자? 애인 만들라고야.”

“애인까지는 아니고... 그냥 앤조이?”

“육갑을 떨어라~! 앤조이 같은 소리 하고있네...”

“없으믄 말고.. 직접 찾아봐야것다.”

“나는 어쩌냐?”

“허허.. 니가 여자냐? 앉아쏴만 하믄 여잔줄 아냐?”

“하긴... 니가 언제 나를 여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기나 했것냐?”

“한방에서 밤을 새도...”

“시끄럽다 임마! 넌 그냥 친구여. 그냥 친구.”

“모르것다.. 어느날 니가 갑자기 여자로 보일랑가는.. 그 때까지만 살어라..헤헤.”

 

몇 달간 아버지의 농장에서 일손을 도와드리며 사회적응기간을 나름대로 갖고

진정한 사회인으로서 살아보겠다며 익산에 있는 설비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익산에는 큰누나가 살고있어 잠시 숙식걱정은 없을 듯 했다.

입대전 10여개월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해 본 적이 있어 시작하기 쉽기도 했지만

실은 광주를 떠나 나만의 세계를 찾고싶은 겁없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삐삐삐 삐삐삐...

먼지를 뒤집어쓰며 오전 작업을 마치고 막 점심을 먹으로 가려할 때 순진이로부터

삐삐가 왔다.

 

“뭐여~ 점심은 먹었냐?”

“응. 이제 먹을려고... 니 주소좀 불러봐.”

“주소? 뭣하게?”

“말 많네... 불러보라믄 불러볼것이제..”

“전북 익산시 부송동 xx아파트 101동 201호”

“알았어...”

“뭔대 가시네야~!! 뭔지 말해줘야제!”

“편지 가거든 답장이나 잘해라.”

“뭔 편지?”

“여자 하나 해주라메~!!”

“염병~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냐?”

 

1주일쯤 지나 퇴근했을 때 이불위에 편지 한통이 놓여있었다.

 

‘박숙영. 첫 희생자가 되겠군 크크크’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녀도 나를 가지고 놀다가 차버리려 했단다.

같은 생각으로 서로를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재미있는 전쟁이었겠는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싸우고...

광주와 익산을 오가며 그렇게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아니~ 뭔 여자가 그렇게 드센거요?”

“드세기는 뭐가 드세요? 도대체 배려라는걸 알기는 하세요?”

“배려도 사람 봐가면서 배려하는거지, 무슨놈의 성질머리가...”

“성질머리라뇨? 그러는 댁은 성격 참~ 좋습니다!!!”

“여자가 좀 여자다운 맛이 있어야지 이거 원...”

“여자다운게 도대체 어떤거죠? 그쪽은 남자답다고 생각하나 보죠?”

“관둡시다. 예?? 서로 성격도 안맞는데 끝내자구요.”

“끝내요? 언제 시작이라도 했나요?”

 

그게 전부였다.

펜팔로 시작해서 몇 번의 만남, 만남보다 더 잦은 다툼으로 인해 3개월의 인연은

끝나게 되었다.

아니, 끝난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그렇게 끝나버렸으면 이 지독한 인연의 잔인한 결과는 없었을 것을...

 

하늘이 너무 맑았다.

너무 맑고 높아서 바라만 보고 있어도 눈도 마음도 시린 듯 했다.

병이었다.

첫사랑 그녀가 떠나간 가을이 돌아오면 증오도 어느새 잊혀지고 그리움만 더해갔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것처럼 허전했고 그녀의 이름만 가을냄새와 함께 진해져갔다.

 

‘재경아... 잘 있는거지? 그 빌어먹을 자식과 행복한거지??’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

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손을 보았지 우후~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었어. 지금은 후회를 하고있지만...“

 

처량했다.

혼자서 노래방에 앉아 술에취해 오백원짜리 동전을 만지작 거리며 ‘김성호의 회상’이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만 부르고 또 불렀다.

울컥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도 흐르고, 흐르는 눈물따라 더 바보가 되어갔다.

취한 걸음으로 낙엽이 쌓여가는 거리를 걸었다.

낙엽을 휩쓸고 지나는 바람이 더욱 스산하게 느껴졌다.

 

‘젠장... 올 겨울은 징하게도 춥것구만...“

 

문득 공중전화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꼭 전화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처럼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동전을 넣고 꾹꾹 번호를 눌렀다.

 

“호출은 1번, 음성녹음은 2번을 눌러주십시오.”

“야이 개같은년아!! 잘 있는거지? 잘 살고 있는거지? 잘 살아야지...”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이 썅년아!!”

“호출하였습니다”

 

누구에게 삐삐를 친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삐삐가 울렸다.

 

“안녕 하셨어요? 저 숙영입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누구에게 호출을 한것인지 내가 무슨말을 한것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꿈을 꿨다.

기나긴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는꿈.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끝에 닿을 수 없는 답답한 꿈.

심한 갈증에 눈을 떴다.

낯선 방이었다.

깔끔한 실내, 향긋한 냄새,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있는 화장대.

벌떡 일어나려다 현기증에 다시 털썩 쓰러지듯 누웠다.

 

“더 자요... 무슨 술에 웬수졌다고 그렇게 마셔요.”

 

침대 아래쪽에 숙영이 누워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어젯밤 노래방, 술을마시고... 삐삐...

깜깜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미래로 온 듯이...

 

“무슨 욕을 그렇게 해요?”

“살면서 그렇게 심한욕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 해장국에 소금간을 해 주며 숙영이 물었다.

 

“욕이요?”

 

말없이 숙영은 웃었다.

마치 다 이해 한다는 듯이...

 

“다짜고짜 터미널로 나오라더니 잔뜩 취해서는...”

“정말 기억 안나는 거에요? 아니면 기억 안나는 척 하는거죠?”

“재경이라는 여자... 그렇게 사랑했었나요?”

“그렇게 서럽게 가슴아파 할 정도로, 그렇게 서럽게 울 정도로?”

“좋아요... 나한테 풀어요. 내가 당해 줄게요.”

“도대체 무슨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국 식어요... 여기 해장국 정말 죽여줘요. 히히”

 

‘너 여자가 필요해서 사귈려고 했던거 아냐.’

‘그냥 가지고 놀다가 차 버릴려고 그랬어.’

‘그년 때문에, 그년한테 당한게 억울하고 분해서 복수하고 싶었어...’

‘그거 알어? 어떻게 할 수도 없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일방적으로 당하는거..’

‘군바리라구, 즐거워도 함께 웃을 수 없고 괴로워도 아픈마음 만져줄 수 없는

좃같은 군대에 메어있는 군바리라고 그렇게 날 버렸어.‘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러면서 울었잖아요. 바보같이...’

 

익산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희미한 불빛만 깜박이는 어둠속을 보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 돌아가야 할 어딘가가, 반겨줄 누군가가 있기에

행복한 것 아닐까 하며 살며시 미소가 흘렀다.

 

“뭐야~ 집안 분위기가 왜이래? 누나! 왜... 매형하고 싸웠어?”

“잉? 누나 우는거야? 왜~ 무슨일인데? 말해봐.”

“남욱아... 아빠가... 아빠가...”

“아빠가 뭐~ 말을해! 말을 하라고~!!!”

 

의사새끼들은 똑같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또박또박 잔인한 말을 해댄다.

 

“간암 말기입니다.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습니다.”

“길면 6개월, 짧게는 3개월 정도입니다.”

“환자가 원하는거, 드시고 싶은거, 가보고싶은 곳 ..............”

 

‘저새끼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거야?’

‘누가 좀 말해줘봐.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뭐라고 하는거냐구!!!’

 

“남욱아. 의사가 뭐라고 하디? 죽을병이라고 하디? 허허허.”

“아버지! 뭔 말을 그렇게 하요?”

“그놈의 농장 맹근다고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소?”

“한동안 병원신세 져야한다고 하니까 몸조리 잘 하씨요.”

“아픈대도 없는디 뭔 병원이냐. 공기좋은 집에가서 쉬는게 더 낫지.”

“아버지, 이태까지 살아옴서 처자식 말 한번이라도 들어봤소?”

“인자는 좀 들어줄 것은 들어주고 그라씨요.”

“써글놈. 잘하믄 애비 치것다 이놈아.”

 

정말 때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정말 때려주고 싶었다.

평생을 가난이 싫어, 간장 한병과 무 두 개로 시작한 삶을 바꿔 보겠다고

죽도록 고생만 하고 이제 좀 살만 하니까 저렇게 떠나려고 하는 답답한 노인네를

정말이지 때려주고 싶었다.

 

“이게 뭐냐?”

“사푭니다.”

“음... 아버지 이야기는 들었다.”

“그동안 감사 했습니다.”

“그래... 잘 모시고 해결 되거든 와라... 사표가 다 뭐냐...”

 

‘해결 되면 오라구? 아버지 돌아가시면 다시 돌아오라구?’

‘사장이란 놈이 할 소리냐? 하긴... 사장이니까 그런말을 하는거겠지. 사장이니까...’

 

“숙영아! 애기하나 낳아주라.”

“갑자기 뭔소리야? 낮술 먹었어?”

“아니. 진심이다. 애기하나 만들어서 낳자. 최대한 빨리.”

“헷갈린다. 프로포즈도 아니고 이거 뭐...”

“지금 프로포즈 그딴거 따질 상황이 아니야.”

“나중에, 정말 멋지고 화려하게 프로포즈 다시할게.”

“좋아! 이유가 확실하다면 생각...”

“울 아버지 얼마 못살아! 가시기전에 친손주는 안겨드려야 하잖아.”

“해드린거 아무것도 없이 살았는데 뭐라도 해 드려야 하잖아.”

“이렇게 가 버리시면 내가, 내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아...”

“그럼 나는? 오빠 인생은 그렇다치고 내 인생은?”

“첫사랑 그녀를 못잊어 괴로워 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애라니?”

“오빠! 나 이제 스물 셋이야!”

“하고싶은거, 가보고싶은곳 너무나 많다구...”

“이제보니 오빠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그랬구나.

내 욕심을 채우기위해 숙영이는 도구에 불과했구나.

나만 생각하고 내것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놈이었구나 나는...

 

“여보. 받아 줍시다. 저렇게 둘이 죽고 못사는데...”

“아 글쎄 안된다니까.”

“저 고집세게 생긴것좀 보라고~ 저런것하고 같이 살믄 남욱이 인생 망친다니께.”

“소띠람서? 황소고집으로 남자 앞길 막을 상이라니께.”

“아버지... 숙영이 애 가졌어요.”

“뭐? 뭐를 가졌다고?”

“숙영이 애 가졌다고요. 제 애를 가졌어요.”

“미... 미친새끼... 니 맘대로 해라!! 어른말 안듣고 잘된놈 못봤응께...”

 

“오빠! 벌써 4개월이 지났어. 아빠 돌아가시기 전에 가능할까?”

“어쩔 수 없잖아. 살아계시기를 바랄 수 밖에.”

“내가 정말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요즘 아버지가 너 대하는게 좀 부드러워 진 것 같더라?”

“어제 오빠 광주갔을 때 아빠가 ‘나땜에 니가 욕본다’ 하시면서 등 토닥여 주시더라.”

“정말?”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나봐.”

 

6개월이 지나고 첫 아이가 태어날 때 까지 아버지는 건강을 지키셨고

병원에서는 기적이니 미스테리니 하며 개거품을 물었다.

일체 병원약은 드시질 않고 단방약으로만 치료를 하셨던 것이 도움이 되었나 보다.

틈만나면 들로 산으로 암에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구하러 다녔다.

물론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될수록 막사에 소들은 줄어들었고 통장의 잔고도

간암세포만큼 작아져 갔다.

 

“우리 벼리 세상에서 누가 젤루 좋아?”

“할아부지~”

“에구에구 내새끼~ 할아부지랑 감 따묵으로 가까?”

 

“엄니.. 나 결혼식 올려주세요.”

“속없는 놈아. 지금 뭔 돈이 있어서 결혼식이냐?”

“다 필요없응께 그냥 양가 부모님하고 형제들만 참석해서 합시다.”

“왜 갑자기 결혼식이여?”

“아무래도 느낌이 안좋아요. 아버지 요즘 갑자기 몸 약해지시고...”

“나중에 아버지 자리에 형님 앉아있는거 보믄 내 속이 안좋을 것 같아서요.”

“누나들하고 형하고 상의한번 해 볼란다.”

 

“야~ 이 나쁜새끼 봐라 요~~?”

“소리소문 없이 애기까지 낳고 느닷없이 장가 가부러야?”

“연락 안하믄 모를줄 알았지?”

“너는 좀 맞아야 쓰것다!! 일단 식 끝나고 보자!”

“숙영아! 이 지집에... 너무한거 아냐?”

“남욱씨! 서운해요.”

“숙영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숙영이를 뺏어갔어~ 흑흑.”

“경희씨.. 좋은날에 뭔소리요... 둘이 사귀요?”

 

노려보는 숙영의 친구 경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싸늘했다.

생각해 보니 짧은 연애기간 중 거의 대부분을 함께 만났으며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모텔까지 쫓아와 친구를 지킨다며 요란을 떨던

여자였다.

숙영의 말로는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함께 자취를 해서 자매같아 그러는거라 하지만

어쩐지 석연치 않은 눈빛이 맘에 들지 않았다.

 

신혼여행 다녀온지 딱 석달만에, 투병생활 3년만에 아버지는 우리곁을 떠나셨다.

‘남욱아 미안하다’라는 쪽지같은 유언만 남기시고...

정말이지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다 쓰고 가셨다.

담양에 있는 농장을 처분하였지만 밀린 병원비를 제하고 나니 겨우 몇천만원...

광주로 이사를 나오던날 뒤돌아 보지 않으려 다짐했건만 차가 저수지를 돌아 나올 때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울컥 목구멍에서 주먹만한 것이 솟구쳐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도 울고 숙영도 울고 영문도 모른채 벼리까지 따라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내 가슴도 통곡을 하고있었다.

 

 

2부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