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 성에서의 잡념

이세규200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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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이 내려오고, 또 계단이 나온다.

등 뒤로는 앙카라 시내가 서서히 영역을 넓히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이드북에 등고선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몹시 원망하면서 또 오른다.

한참을...

 

이제 정상(?)에 왔다고 생각했을 때, 커다란 돌 문이 성벽과 연결돠어 있어서

돌문을 통과하니 또 계단이다. ㅠ 또 오른다.

 

 

 

 

 

앞에는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는 허름한 차림의 한 남자가 비닐 봉지를 들고 땅을 쳐다본 채 오르고 있었다.

이 절망스러운 계단들에 무관심한 태도로, 아니면 이 '오름'이 거스를 수 없는 일상이 되어 버려

십자가를 대신해 가족들을 위한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검은 비닐 봉다리를 들고 오르는 

이 고난의 운명을 피할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발걸음으로...

 

 

성채의 문을 지나는 계단을 오르니...

놀랍게도, 아니 내 예측과는 크게 다르게도,

그곳은 그냥 또 다른 달동네였다.

 

시끄러운 아이들이, 현대 봉고차 뒤에서 왁자지껄 놀고 있었다.

두려운 마음에 그 아이들의 소리가 담긴 사진만을 몇 장 찍고 급히 되돌아 간다.

 

 

 

마지막 성채의 외벽, 그러니까 계단으로 말하자면 제일 마지막 계단의 한 칸 아래 쯤에 해당되는 곳.

한적하다. 아니, 인적이 없다.

오른쪽에는 큰 개 다섯 마리가 오히려 나를 경계하며 걸었고,

성채가 허공과 맞닿은 쪽에 중년 남성 한 명이 보였다.

 

 

 

'허공과 맞닿은' 쪽으로 갔다.

앙카라의 그리 멋있지 않은 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집들이 빼곡히 얹혀 있던 피곤한 언덕도 더 가까이에 보인다.

 

 

 

 

 

앙카라는 사실 '공화국'의 수도임에도, 멋지거나 권위있다기보다는

남루하거나 피로해보인다.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가 있다.

 

저 아래 남쪽 대사관 거리 쪽엔 부촌이 있다고도 하지만,

내가 있는 울루스에서의 전망은 그렇다.

하기사, 서울이라고 안 그러랴, 워싱턴이라고 남다르랴.

빈부격차와 도시의 슬럼화는 세계적인 추세일텐데... ㅠ

 

 

 

 

이제 성채를 내려오는 길은 훨씬 편하고 속도감 있다.

 

 

비잔틴 병사 하나가 나에게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이 급하게 내 옆을 뛰어 올라간다. 

 

아주 먼 옛날, 보초를 서기 위해 이곳을 오르락내리락 했을 병사들의 씩씩함 또는 숨가쁨.

잔뜩 힘이 들어 있는 종아리의 힘줄, 투구를 얹고 창을 쥔 머리와 손에서 흘러내렸을 땀냄새.

그들은 분명 이 수많은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뛰어서 오르고 내리도록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앙카라 성(城) 개요 @ 가이드북

 

로마 시대의 성을 본따 만든 것으로 성벽이 2중으로 되어 있다.

안쪽의 성벽은 7세기에 아랍의 침공에 대비해 비잔틴 제국이 만들었다.

바깥쪽의 것은 9세기의 비잔틴 황제 미하일 2세가 증강한 것이다.

북쪽의 언덕 정상에는 독립된 성이 있으며, 이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맞은편 언덕의 경사면에

게제콘두(=하룻밤 건축)라고 불리는 집이 빽빽이 늘어서 있다.

또, 성벽 안에 있는 12세기 건축물인 알라딘 자미 맞은편 길을 올라가면

동쪽 성벽(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성벽 안에서는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