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의 존폐문제로 네티즌의 여론이 들썩인다는 뉴스를 봤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참혹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인해 '살인광'을 죽이느냐 마느냐, 라는 문제를 가지고 다시 사형제도 존폐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게다가 법무부에서 사형제도 존폐에 관해 신중하게 검토를 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혀 10년간 중단되었던 사형틀이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사형제도를 반대하며, 폐지시켜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하나 차근히 설명하기보다는 우선 사형제도 존치를 찬성하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의견에 대해 반박을 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니 부모자식이 죽어봐라 그런소리 나오나'라는 식의 전혀 발전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는다. '니 부모자식이 사형선고 받아봐라 그런 소리 나오나' 정도로 받아치련다.
일부 사람들은 "살인자가 사람을 죽인것은 권리침해이니, 그 살인자 권리따위 뭐하러 신경쓰나!" 라고 말한다.
권리, 보통 인권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와는 매우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는 '존엄'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존엄은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침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 살인자는 피해자의 존엄을 헤쳤다. 그렇다면 살인자에게는 인간의 존엄이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말에 많은 네티즌이 '그게 사람이냐!'라고 물을 법하다. 하지만 무엇이 사람인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있는 것인가? 꼭 사형시켜야만 하는 그러한 인간의 기준이 있느냐 말이다.
만약에 한 사기꾼이 100명을 상대로 한사람당 10억씩 천억을 들고 도망갔다 치자. 물론 잘나가는 사람은 10억 상관없겠지만, 100명 모두가 평생동안 미친듯이 벌어서 모은 10억이므로, 100명 가운데 20명은 투신자살, 30명은 중태에 빠졌으며, 50명은 농약을 사러 갔다. 그 사기꾼은 한마디로 일거에 20명이나 '죽인 것'이다.
칼로 찌르든 총으로 쏘든 간에, 어떻게든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저러한 분류의 사기꾼은 사형당하지 않는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를 잘못해서 오백만명이 실업자가 되었다. 그중 100명은 단체 분신자살을 했고, 200명은 가난한 삶을 못이겨 범죄자로 전락했다. 오백만명의 실업자는 아마 정치인을 토막내 죽이고 싶을 것이다. 바로 옆에 있다면 그대로 그 정치인은 살해당한다. 정치인은 100명을 분신자살 시켰다. 그러나, 사형당하지 않는다.
추가로, 북한과의 통일에 있어서 새로운 자신만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한 대학생이 있다. 목표는 통일이지만, 현재 정부가 내세우는 통일관과는 매우 다른 통일관이다. 하지만 그 대학생은 국가보안법에 걸려 어느날 갑자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국가보안법에는 국가전복이라는 기준도 애매모호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단체의 수장일 경우, 사형선고를 받게 되어 있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부류의 사람, 직접 칼로 찌른것도 아니고, 목을 조른것도 아닌데, 1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아마 그 유족들은 그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서 미칠 것이다. 하지만 사형이 아니다.
이것은 여러가지의 문제점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법에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범위와, 실제 죽여버리고 싶은 일이 생기는 범위가 완전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형을 줄라 치면 누구에게나 줄 수 있겠으나, 그 기준이 사실은 애매모호 한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좀 까분다 생각되는 대학생들, 언론인들 모조리 사형시켰다.
하지만 탱크로 국민을 밀고 피로써 정권을 장악한 지도자는 아직도 살아 있다.
사형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애매모호 하게 된 것은,
사형을 선고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변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그 시대의 사조를 타고난 사람!
사법기관이 사형을 선고하기에, 억울하게 사형된 사람도 있고, 또 어느 시절이나 시점에서는 죽여야 할 사람도 못 죽이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원래 사람이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한 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인대다가, 그것을 집행하려고 해대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유족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 스스로가 "너 이자식 나 한대 때렸으니, 너도 한대맞어," 이런 논리와 다를바 없다.
과연 그런가?
그렇게 보자면, 피해자의 유족 역시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는 것은 아니지만, 법에 호소하여, 내 가족을 죽였으니, 나 대신 저 살인마를 죽여주십시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간접살인인 것이다.
무협소설을 보면, 내 아버지를 죽인 원수! 라며 복수의 칼날을 갈다가 결국에 원수를 죽인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도대체 무엇이 생산적일까?
그리고 최근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들은 대부분이 '정신병자'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일종의 환자이고, 장애인이다.
그 사람들은 사형제도가 있든 말든간에, 살인을 저지를 뿐이다.
사형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정신병자들의 살인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한 연쇄살인 말이다.
그리고 우발적 살인이라고 해서 과연 그것도 줄어들까?
저 자식이 갑자기 술먹다가 나를 갈군다. 아 미치겠어서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려쳤더니 죽었다.
죽이기 전에, 소주병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의 뇌리 속에
"아, 우리나라 사형제 부활됐지? 안돼 이러면 안돼!" 라는 생각이 스칠까?
절대 아니다.
그냥 죽여버리려고 할 뿐이다.
사형제도는 살인범죄를 막는다는 어떠한 연구결과도 없다.
사형제도가 살인범죄가 발생할 확률을 낮추려면,
죄수들은 공개처형 시켜야 할 것이다. 예전의 중국 혹은 몇몇 후진국처럼 말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무서워서 범죄 안 저지르지.
그것을 원하는가?
사형이란,
한 인간의 영원한 추방을 의미한다.
넌 교도소를 가도 절대 교화가 될 수 없다. 넌 가능성이 없으니, 사회에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옳은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가능성이 있다, 없다. 라고 타인이 판단할 수 있는가?
대학교에서 퇴학당한 한 학생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일 줄 누가 알았으며,
이북에서 소 한마리 끌고 도망온 어린 소년이 정주영일 줄 누가 알았는가?
인간의 존엄이란,
그 추측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판단조차 못한다.
사형이란, 그 가능성을 공부 잘해서 사법고시 패스한 몇몇 법조인들과 판사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게 말이 되는가?
사형제도 존폐 문제가 들썩 거릴때마다, '니 가족이 죽어봐라!'라며 도배를 하는 네티즌 덕분에,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러나, 사형이라는 것은 인간의 그 역사를 따져볼 때,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봉건사회에서 군주나 잘나가는 사람이, 자신에게 반항하는 자들의 입을 막을 때 쓰던 도구였음을 알아야 한다.
♨ 사형제도 존폐문제,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
사형제도의 존폐문제로 네티즌의 여론이 들썩인다는 뉴스를 봤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참혹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인해 '살인광'을 죽이느냐 마느냐, 라는 문제를 가지고 다시 사형제도 존폐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게다가 법무부에서 사형제도 존폐에 관해 신중하게 검토를 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혀 10년간 중단되었던 사형틀이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사형제도를 반대하며, 폐지시켜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하나 차근히 설명하기보다는 우선 사형제도 존치를 찬성하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의견에 대해 반박을 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니 부모자식이 죽어봐라 그런소리 나오나'라는 식의 전혀 발전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는다. '니 부모자식이 사형선고 받아봐라 그런 소리 나오나' 정도로 받아치련다.
일부 사람들은 "살인자가 사람을 죽인것은 권리침해이니, 그 살인자 권리따위 뭐하러 신경쓰나!" 라고 말한다.
권리, 보통 인권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와는 매우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는 '존엄'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존엄은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침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 살인자는 피해자의 존엄을 헤쳤다. 그렇다면 살인자에게는 인간의 존엄이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말에 많은 네티즌이 '그게 사람이냐!'라고 물을 법하다. 하지만 무엇이 사람인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있는 것인가? 꼭 사형시켜야만 하는 그러한 인간의 기준이 있느냐 말이다.
만약에 한 사기꾼이 100명을 상대로 한사람당 10억씩 천억을 들고 도망갔다 치자. 물론 잘나가는 사람은 10억 상관없겠지만, 100명 모두가 평생동안 미친듯이 벌어서 모은 10억이므로, 100명 가운데 20명은 투신자살, 30명은 중태에 빠졌으며, 50명은 농약을 사러 갔다. 그 사기꾼은 한마디로 일거에 20명이나 '죽인 것'이다.
칼로 찌르든 총으로 쏘든 간에, 어떻게든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저러한 분류의 사기꾼은 사형당하지 않는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를 잘못해서 오백만명이 실업자가 되었다. 그중 100명은 단체 분신자살을 했고, 200명은 가난한 삶을 못이겨 범죄자로 전락했다. 오백만명의 실업자는 아마 정치인을 토막내 죽이고 싶을 것이다. 바로 옆에 있다면 그대로 그 정치인은 살해당한다. 정치인은 100명을 분신자살 시켰다. 그러나, 사형당하지 않는다.
추가로, 북한과의 통일에 있어서 새로운 자신만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한 대학생이 있다. 목표는 통일이지만, 현재 정부가 내세우는 통일관과는 매우 다른 통일관이다. 하지만 그 대학생은 국가보안법에 걸려 어느날 갑자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국가보안법에는 국가전복이라는 기준도 애매모호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단체의 수장일 경우, 사형선고를 받게 되어 있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부류의 사람, 직접 칼로 찌른것도 아니고, 목을 조른것도 아닌데, 1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아마 그 유족들은 그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서 미칠 것이다. 하지만 사형이 아니다.
이것은 여러가지의 문제점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법에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범위와, 실제 죽여버리고 싶은 일이 생기는 범위가 완전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형을 줄라 치면 누구에게나 줄 수 있겠으나, 그 기준이 사실은 애매모호 한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좀 까분다 생각되는 대학생들, 언론인들 모조리 사형시켰다.
하지만 탱크로 국민을 밀고 피로써 정권을 장악한 지도자는 아직도 살아 있다.
사형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애매모호 하게 된 것은,
사형을 선고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변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그 시대의 사조를 타고난 사람!
사법기관이 사형을 선고하기에, 억울하게 사형된 사람도 있고, 또 어느 시절이나 시점에서는 죽여야 할 사람도 못 죽이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원래 사람이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한 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인대다가, 그것을 집행하려고 해대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유족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 스스로가 "너 이자식 나 한대 때렸으니, 너도 한대맞어," 이런 논리와 다를바 없다.
과연 그런가?
그렇게 보자면, 피해자의 유족 역시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는 것은 아니지만, 법에 호소하여, 내 가족을 죽였으니, 나 대신 저 살인마를 죽여주십시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간접살인인 것이다.
무협소설을 보면, 내 아버지를 죽인 원수! 라며 복수의 칼날을 갈다가 결국에 원수를 죽인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도대체 무엇이 생산적일까?
그리고 최근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들은 대부분이 '정신병자'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일종의 환자이고, 장애인이다.
그 사람들은 사형제도가 있든 말든간에, 살인을 저지를 뿐이다.
사형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정신병자들의 살인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한 연쇄살인 말이다.
그리고 우발적 살인이라고 해서 과연 그것도 줄어들까?
저 자식이 갑자기 술먹다가 나를 갈군다. 아 미치겠어서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려쳤더니 죽었다.
죽이기 전에, 소주병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의 뇌리 속에
"아, 우리나라 사형제 부활됐지? 안돼 이러면 안돼!" 라는 생각이 스칠까?
절대 아니다.
그냥 죽여버리려고 할 뿐이다.
사형제도는 살인범죄를 막는다는 어떠한 연구결과도 없다.
사형제도가 살인범죄가 발생할 확률을 낮추려면,
죄수들은 공개처형 시켜야 할 것이다. 예전의 중국 혹은 몇몇 후진국처럼 말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무서워서 범죄 안 저지르지.
그것을 원하는가?
사형이란,
한 인간의 영원한 추방을 의미한다.
넌 교도소를 가도 절대 교화가 될 수 없다. 넌 가능성이 없으니, 사회에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옳은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가능성이 있다, 없다. 라고 타인이 판단할 수 있는가?
대학교에서 퇴학당한 한 학생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일 줄 누가 알았으며,
이북에서 소 한마리 끌고 도망온 어린 소년이 정주영일 줄 누가 알았는가?
인간의 존엄이란,
그 추측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판단조차 못한다.
사형이란, 그 가능성을 공부 잘해서 사법고시 패스한 몇몇 법조인들과 판사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게 말이 되는가?
사형제도 존폐 문제가 들썩 거릴때마다, '니 가족이 죽어봐라!'라며 도배를 하는 네티즌 덕분에,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러나, 사형이라는 것은 인간의 그 역사를 따져볼 때,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봉건사회에서 군주나 잘나가는 사람이, 자신에게 반항하는 자들의 입을 막을 때 쓰던 도구였음을 알아야 한다.
사형제도 존폐문제가 제대로 된 토론으로 다뤄지길 바란다.
출처:다음 아고라 ....즐보도..
너무도 공감이가는 글이 정말 오랜만에 올라와서 이렇게 퍼가지고왔습니다...
이그을읽고 사형제도에 대해서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광장에 올립니다.
올린이:올바른삶과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