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시대의 여명기에 들어와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하류지역에 수메르인(Sumerian)들이 정착했다. 수메르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홍수를 다스릴줄 아는 농경민들이었으며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싼 부락을 세웠는데 우루크(Uruk, 성서에서의 에레크 Erech, 현재의 와르카 Warka)나 라가쉬(Lagash, 현재의 텔로 Telloh) 등이 그 예이다. 몇 세기가 흐른 뒤에 양을 치는 유목민 셈족(Semite)이 서쪽의 사막으로부터 도래했다. 이들은 농경생활을 하기 시작하였고 수메르족의 많은 문화를 배웠으며 악카드(Akkad)나 바빌론(Babylon) 같은 훨씬 북쪽에 그들의 도시를 세웠다. 몇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 두 종족은 번갈아가며 지배했으며 셈족은 사르곤(Sargon) 왕과 하무라비(Hammurabi) 왕의 강력한 두 왕을 탄생시켰다.
2. 종교적 상황
구석기 시대 이래로 인류는 그림 주술로써 환경을 통제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수메르족의 경우에 이러한 오래된 주술은 자비로우면서도 심술궂고, 자연의 힘을 의인화시킨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진 신들을 믿는 종교로 대체되었다. 신들과 인간 사이의 일종의 교류체계인 이러한 형식적인 종교은 자연의 힘을 정복하고 회유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수메르족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종교는 사제, 제물, 제사의식과 같은 신을 회유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은 불완전하여서 보다 높은 존재에 의존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종교관을 소유하고 있었다. 수메르족은 자연의 산을 숭배하였는데, 그들은 하늘의 신인 아누(Anu), 대지를 만들고 지배하는 엔릴(Enlil), 물을 지배하는 에아(Ea), 달의 신, 해의 신, 사랑과 번식의 여신 등이다.
3. 사회적 상황
종교는 생활의 지배적 요소로서 사회의 형태를 결정했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는 도시의 신의 보호하에 있었다. 왕은 신이 땅위에 자기를 대신해서 내보낸 대리자였으며, 땅위의 보물을 지키는 심부름꾼이었다. 왕은 신과 땅 사이에 있었으므로 위로는 신과, 아래로는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싹튼 사회·정치적 체제를 ‘신권 사회(Theocratic Socialism)’라 한다.
4. 경제적 상황
앞에서 말했듯이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문서는 수메르족의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거대한 경제 단위인 신전 사회에 대한 행정기록들이다. 이 기록들은 수메르족의 경제가 비교적 발달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지구라트 위의 ‘흰 신전’, 우루크, BC 3500~3000년
수메르족의 전형적 건물은 지구라트(Ziggurat)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지구라트는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있는 우루크(Uruk)에 세워진 것이다. 이것 은 하늘의 신인 아누(Anu)에게 봉헌된 것이며, 어떤 이집트의 기념물들 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다.
이 건물은 훨씬 후에까지 헬레니즘의 성역 속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보존이 될 수 있었다. 둔덕의 네 귀퉁이는 방위의 네방향으로 향하게끔 설치되었으며, 벽돌로 경사진 옹벽을 쌓아서 주위면보다 12m를 높여 장방형의 거대한 단(壇)을 형성시켰다. 이 테라스 위에 희게 칠한 작은 조적조의 '흰 신전(White Temple)'이 서 있는데 현재는 그 아래 부분만이 남아있다. 출입구는 둔덕을 향해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과 엇갈려서 위치하며, 제단은 내부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아마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부축벽은 목재로 보강되어져 있었으나 건물의 지붕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신전에 해당하는 수메르어의 명칭이 '기다리는 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곳은(왕이 신을) 기다리는 장소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우르의 지구라트, 이라크, BC 2100년경
우르(Ur)와 같은 수메르 도시의 평면은 그들의 생활에 있어 신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신전이 도시의 건축적 배치에 있어 클라이막스가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신전은 도시의 종교적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행정의 중심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신이 도시의 보호자일 뿐 아니라 모든 땅과 가축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제 계급이 도시의 상업을 이끌어 갔으며 신과 그의 심부름꾼인 왕의 재산을 돌보았다. 신전의 영역 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층의 단(段)이 진 벽돌로 된 구조체인 지구라트이다. BC 2200~2100년 사이에 세워진 우르의 지구라트는 햇볕으로 건조시킨 벽돌로 세워졌으며, 표면은 역청으로 처리한 구운 벽돌을 사용하여 덮었다. 15m 높이의 거대한 기단 위에는 2개의 작은 단(壇)이 놓여있는데, 이중 위의 것은 신전을 위한 기단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경사로처럼 보이는 100개의 단을 가진 3개의 계단은 네귀퉁이에 탑이 있는 출입문에서 만나며, 여기에서 또 하나의 계단이 올라가 신전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의식행렬용의 길은 일종의 각이 진 나선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굴곡 축’에 의한 접근방식은 이집트 신전의 직선축에 의한 접근 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지구라트의 건축적 형태
지구라트의 주된 형태요소는 점으로서, 이집트 건축의 지배적인 형태요소인 직선이 아니다. 평면에 있어서는 정사각형에 기초한 중앙집중적 배치이다. 또한 이집트에서보다는 수직축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중앙집중적 배치방식에서는 어느 정도 본질적인 것이다. 점진적인 상승을 통하여 정점으로 이끌어 가는 배치방식은 구성상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집트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수메르의 지구라트 사이에는 형태상으로 유사한 점이 보인다. 이 형태는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쳐왔다(예를들면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구겐하임 미술관).
지구라트의 건축적 의미
수직축과 결합된 중앙집중적 배치는 안정감과 질서감을 주며, 도시 국가에 대한 개인의 소속감을 나타낸다. 지구라트의 꼭대기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신전은 신중심적인 사회구조를 나타내며 신에 대한 의존, 그리고 신과 그의 지상 대리자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다. 나선형 경사로와 계단으로 힘들여 올라가게 한 것은 신성한 교화(敎化)의 경험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인간에게 부과되는 엄격한 요구를 의미한다. 지구라트의 탑은 인간이 자신을 뛰어넘고 싶어하는 영원한 염원을 그 전체로서 표출시키고 있다. 바빌론에 있는 바벨탑에 대해 성경에는 이것이 자만심의 표현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지구라트는 또한, 신이 산 꼭대기나 적어도 높은 장소에 산다는 고대의 믿음을 나타낸다(그리스의 올림푸스 산에서와 같다). 수메르는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신의 거주지로서 인공적인 산을 만들어 내었다.
수메르 건축 [지구라트]
수메르 건축
인문적 상황
1. 역사적 상황
역사시대의 여명기에 들어와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하류지역에 수메르인(Sumerian)들이 정착했다. 수메르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홍수를 다스릴줄 아는 농경민들이었으며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싼 부락을 세웠는데 우루크(Uruk, 성서에서의 에레크 Erech, 현재의 와르카 Warka)나 라가쉬(Lagash, 현재의 텔로 Telloh) 등이 그 예이다. 몇 세기가 흐른 뒤에 양을 치는 유목민 셈족(Semite)이 서쪽의 사막으로부터 도래했다. 이들은 농경생활을 하기 시작하였고 수메르족의 많은 문화를 배웠으며 악카드(Akkad)나 바빌론(Babylon) 같은 훨씬 북쪽에 그들의 도시를 세웠다. 몇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 두 종족은 번갈아가며 지배했으며 셈족은 사르곤(Sargon) 왕과 하무라비(Hammurabi) 왕의 강력한 두 왕을 탄생시켰다.
2. 종교적 상황
구석기 시대 이래로 인류는 그림 주술로써 환경을 통제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수메르족의 경우에 이러한 오래된 주술은 자비로우면서도 심술궂고, 자연의 힘을 의인화시킨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진 신들을 믿는 종교로 대체되었다. 신들과 인간 사이의 일종의 교류체계인 이러한 형식적인 종교은 자연의 힘을 정복하고 회유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수메르족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종교는 사제, 제물, 제사의식과 같은 신을 회유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은 불완전하여서 보다 높은 존재에 의존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종교관을 소유하고 있었다. 수메르족은 자연의 산을 숭배하였는데, 그들은 하늘의 신인 아누(Anu), 대지를 만들고 지배하는 엔릴(Enlil), 물을 지배하는 에아(Ea), 달의 신, 해의 신, 사랑과 번식의 여신 등이다.
3. 사회적 상황
종교는 생활의 지배적 요소로서 사회의 형태를 결정했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는 도시의 신의 보호하에 있었다. 왕은 신이 땅위에 자기를 대신해서 내보낸 대리자였으며, 땅위의 보물을 지키는 심부름꾼이었다. 왕은 신과 땅 사이에 있었으므로 위로는 신과, 아래로는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싹튼 사회·정치적 체제를 ‘신권 사회(Theocratic Socialism)’라 한다.
4. 경제적 상황
앞에서 말했듯이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문서는 수메르족의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거대한 경제 단위인 신전 사회에 대한 행정기록들이다. 이 기록들은 수메르족의 경제가 비교적 발달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지구라트 위의 ‘흰 신전’, 우루크, BC 3500~3000년
수메르족의 전형적 건물은 지구라트(Ziggurat)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지구라트는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있는 우루크(Uruk)에 세워진 것이다. 이것 은 하늘의 신인 아누(Anu)에게 봉헌된 것이며, 어떤 이집트의 기념물들 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다.
이 건물은 훨씬 후에까지 헬레니즘의 성역 속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보존이 될 수 있었다. 둔덕의 네 귀퉁이는 방위의 네방향으로 향하게끔 설치되었으며, 벽돌로 경사진 옹벽을 쌓아서 주위면보다 12m를 높여 장방형의 거대한 단(壇)을 형성시켰다. 이 테라스 위에 희게 칠한 작은 조적조의 '흰 신전(White Temple)'이 서 있는데 현재는 그 아래 부분만이 남아있다. 출입구는 둔덕을 향해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과 엇갈려서 위치하며, 제단은 내부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아마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부축벽은 목재로 보강되어져 있었으나 건물의 지붕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신전에 해당하는 수메르어의 명칭이 '기다리는 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곳은(왕이 신을) 기다리는 장소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우르의 지구라트, 이라크, BC 2100년경
우르(Ur)와 같은 수메르 도시의 평면은 그들의 생활에 있어 신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신전이 도시의 건축적 배치에 있어 클라이막스가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신전은 도시의 종교적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행정의 중심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신이 도시의 보호자일 뿐 아니라 모든 땅과 가축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제 계급이 도시의 상업을 이끌어 갔으며 신과 그의 심부름꾼인 왕의 재산을 돌보았다. 신전의 영역 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층의 단(段)이 진 벽돌로 된 구조체인 지구라트이다. BC 2200~2100년 사이에 세워진 우르의 지구라트는 햇볕으로 건조시킨 벽돌로 세워졌으며, 표면은 역청으로 처리한 구운 벽돌을 사용하여 덮었다. 15m 높이의 거대한 기단 위에는 2개의 작은 단(壇)이 놓여있는데, 이중 위의 것은 신전을 위한 기단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경사로처럼 보이는 100개의 단을 가진 3개의 계단은 네귀퉁이에 탑이 있는 출입문에서 만나며, 여기에서 또 하나의 계단이 올라가 신전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의식행렬용의 길은 일종의 각이 진 나선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굴곡 축’에 의한 접근방식은 이집트 신전의 직선축에 의한 접근 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지구라트의 건축적 형태
지구라트의 주된 형태요소는 점으로서, 이집트 건축의 지배적인 형태요소인 직선이 아니다. 평면에 있어서는 정사각형에 기초한 중앙집중적 배치이다. 또한 이집트에서보다는 수직축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중앙집중적 배치방식에서는 어느 정도 본질적인 것이다. 점진적인 상승을 통하여 정점으로 이끌어 가는 배치방식은 구성상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집트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수메르의 지구라트 사이에는 형태상으로 유사한 점이 보인다. 이 형태는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쳐왔다(예를들면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구겐하임 미술관).
지구라트의 건축적 의미
수직축과 결합된 중앙집중적 배치는 안정감과 질서감을 주며, 도시 국가에 대한 개인의 소속감을 나타낸다. 지구라트의 꼭대기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신전은 신중심적인 사회구조를 나타내며 신에 대한 의존, 그리고 신과 그의 지상 대리자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다. 나선형 경사로와 계단으로 힘들여 올라가게 한 것은 신성한 교화(敎化)의 경험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인간에게 부과되는 엄격한 요구를 의미한다. 지구라트의 탑은 인간이 자신을 뛰어넘고 싶어하는 영원한 염원을 그 전체로서 표출시키고 있다. 바빌론에 있는 바벨탑에 대해 성경에는 이것이 자만심의 표현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지구라트는 또한, 신이 산 꼭대기나 적어도 높은 장소에 산다는 고대의 믿음을 나타낸다(그리스의 올림푸스 산에서와 같다). 수메르는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신의 거주지로서 인공적인 산을 만들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