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절대로'라던가 '결단코', '다시는' 따위의 말을 별 생각없이 남발했다가는, 그간 나름대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이미지라던지 신뢰도를 하루 아침에 곤두박질시키고 마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거다.
이 법칙이 적용되는, 흔히 우리 주위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이런 게 있을 수 있겠다.
평소 도수 있는 음료수와 각별한 관계의 A씨.
그날도 어김없이 동료들과 들른 모 주점에서 음료와 각별한 관계를 여지없이 과시하였는데.
앞서 거니 뒤서 거니 주고 받는 음료 속에 싹트는 취기.
결국 문제의 음료수와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만 A씨.
버터를 들이부은 양 혓바닥은 붸붸 꼬이고, 다리는 휘청휘청. 거기다가 친절하게도 아침 식단부터 저녁 메뉴까지 줄줄이 만천하에 공개 하기까지 하더라.
갖은 천태만상 속에 버라이어티한 날도 슬슬 막을 내리고...
내일의 찬란한 해가 떠오를 때 즈음의 A씨를 보자.
어제 마신 음료의 잔류로 쓰리고 뒤집어지는 배를 부여잡고, 화씨 911도로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움겨쥐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찰나!
끊긴 필름 사이로 간간히 떠오르는 간밤의 화려했지만 잔인한 추억들.
아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던 어느 현자의 말을 지금처럼 간절히 믿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을 비롯하여 간밤의 작태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을 인간들에게 선택적 기억상실증의 선물이라도 내려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구차한 바람 속에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맘을 이끌고 겨우 겨우 출근도장을 찍은 A씨.
그가 그나마의 체면을 살리는 일이라곤 고작
'내가 다시는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선전포고를 한다거나, '앞으로 절대 술 따위는 마시지 않을테니 나 말리지 마쇼' 따위의 엄포를 놓는 것이 될 것이다.
허나, 어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하던가.
'망각의 동물'이라던 어느 현자의 말이 입증되는 시간이 도래하였으니, 곧 죽을 것만 같이 아팠던 위도 간도 뇌도 어느덧 정상복구되는 시점이렸다.
그리하여 다시 '레테의 강'을 건너고마는 우리의 A씨.
그 뒤의 레파토리는 생략해도 무방할 것이고, 결국 A씨에게 남은 건
'쯧쯧.. 저 인간 또 저러네'라는 투의 조소, 혹은 연민어린 눈빛일 것이다.
오늘 나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A씨와 같은 사례에 덧붙여 또 다른 제2의 사례로서 '극단적 표현으로 낭패보기 십상의 법칙'을 확고히 입증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오늘, 결혼식장에서 일어났다.
근 2년 새에 참으로 많은 결혼식에 쫒아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부럽다거나, 결혼이 하고 싶다거나, 혹은 결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내지는 압박감은 본인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업신여긴, 당당하고 쿨한 나였다.
때문에 나는 고개를 빳빳이 치켜 세우고는 주위의 어느 누구에게라도 스스럼 없이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결혼 고까짓 것 꼭 해야 할 필요성이 있나요?" 라거나
"단지 결혼을 목적으로 두고 사람을 고르는 행위처럼 자신의 삶을 기만하는 행위도 없다구요" 내지는
"그냥 나이가 찼으니까, 남들 다 하니까, 등 떠밀려서 혹은 위기감에 하는 결혼이라면 나는 결단코 사양하겠어요. 그런 사람들을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아니 안할 거예요"
그랬던 나였기에, 오늘의 결혼식에서도 나는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의 확고한 신념을 여지없이 과시해야 옳았다. 그러나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아니 확고한 신념을 사수하기는 커녕 와장창창 무너뜨리는 참담함을 맛보아야만 했다. 오늘은 왠일인지 그간의 억눌렸던(?) 감정이 쓰나미 마냥 몰려왔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의 결혼식이 나의 철통 같은 신념을 무너뜨릴 정도로 특별났다거나, 결혼한 커플이 행복에 겨워 눈물을 펑펑 쏟아낸 것도 아니었다. 또한 물론 그간 결혼을 했던 커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신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결혼은 아직 나에게는 비현실적이거나 지극히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이 결혼식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굳이 찾자면, 아마도 이제 '그냥 그런 결혼식'의 감흥에 젖기엔 녹록치 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서른이 되어 처음으로 맞이했던 친구 결혼식.
나와 같이 하객의 대열에 동참했던 녀석들을 둘러보니 이미 장가를 갔거나, 시집을 갔거나, '결혼 할 내 남친(혹은 여친)이외다~' 하며 보란듯이 식장에 팔짱을 끼고 동반해주시는 행태를 보이는 와중이었다.
녀석들이 하나, 둘 띄엄띄엄 갈 때는 단순하게도 무리의 셈을 하지 못했게 낭패였다. 저 녀석은 저 녀석대로 가고,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가고.. 그런 식의 계산에만 익숙해져 있던 내가, 오늘 문제의 녀석들을 세트로 대하고 보니 사태는 짐짓 심각해보였다.
게다가 한 녀석의 와이프는 배가 만삯이 되어 동행하는 통에 녀석들의 입방아에 올라 금새,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작년에 애를 낳았네', ' '내 친구는 벌써 애가 둘인데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네' 따위의 대화로 나를 더욱 압박하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심심찮게 듣던 말이었고, 역시나 일말의 흔들림도 없던 나였건만, 오늘의 나는 그런 모든 대화들과 모든 커플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야, 너는 아직도 남친 없냐?', '너도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야지, 임마' 등등의 늘상 듣던 친구들의 장난 섞인 말도 이제는 아닌 게 아니라 장난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내년에 결혼할 남친을 여기 저기 소개시키며 공개적으로 찜뽕하는 센스를 취하던 친구의 "내 결혼식에 꼭 올 꺼지? 내가 니 결혼식 때는 애들 꼬드겨서 축의금 대신 냉장고 사줄께"라는 배려(또는 위로)의 말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불현듯 나와 관계된 모든 지인들의 연애질이나 결혼 소식들이 소용돌이처럼 내 뇌리를 파고들어와 나늘 괴롭히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제껏 나와 같이 So Cool~~을 표방하며 결혼을 맘껏 기만해주던 동종 혈통 부류의 급격한 태도 돌변은 나를 아연실색케 하기 충분했다. 어느 샌가 '미안허이 친구. 그렇게 됐네'라는 암묵적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제 갈 길을 가고 말 때의 그 허탈함과 배신감, 남겨진 자의 비장함과 위기감, 그리고 쓸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와 같은 극렬한 감정에 내몰린 내가 궁여지책으로 내세운 합리화는 이런 것이었다.
오늘 이 결혼식에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단 한 명의 지원군만 있었어도 내가 이리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것. 그건 기필코 확언할 수 있다. 단 한 명의 지원군만 있었어도 화려한 '솔로예찬'에 힘을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단지 숫적으로 열세였을 뿐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에 반하는 확언 또한 해야 할 것 같다. 결국 그 지원군이라는 것도 세월과 인연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내 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면 어찌할 수 없이 나 또한 그들과 같은 기류에 편승하여 사회적 관습과 제도에 그만 승복하고 합의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정,반,합의 변정법적 논리에 부응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득 살아가면서 '절대로'라던가 '결단코', '다시는' 따위의 말을 겁도 없이 남발하던 내가 미워지려 한다.
더불어 내가 그런 애꿎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그 때 누군가가,
너도 나이 들어봐라. 나이 앞에 장사 없다. 지금이야 마냥 이팔청춘이요 니 세상 같고, 니 곁에 있는 친구들이랑 알콩달콩 백년 만년 사이좋게 지낼 것 같지? 나이 들어봐라, 어디 세상이 그런가. 나중에는 다들 지 앞 길 찾아 떠나게 되어 있는 거여~ 그러게 친구 너무 믿지 말어. 너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어여 니 짝 찾아 나서. 그게 남는 거여~
라며.. 자복자복 나를 좀 가르쳐주었으면 싶은 것이다.
하긴, 돌이켜보면 누구한텐들 저런 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겠는가. 그 때는 제아무리 나를 타이르려 했었도 내가 곧이 듣지 않아던 것을.
어찌됐든
결혼 따위는 안해도 그만, 이라던 나의 쿨한 (척 했던) 태도도
오늘 만큼은, 비굴하지만 슬며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오늘 만큼이다. 그래도 아직 내 곁에는 지원군이 족히 여럿은 되니까.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은 남아서
이러한 나의 우유부단하고 뒤죽박죽이며 즉흥적이고 구차한 오늘의 이 감정이
일단은, 결정적으로 여인의 춘심을 파고드는 봄 기운 - 더욱이 오늘은 봄 비까지 내리는 통이므로 - 때문이라고 해두련다.
극단적 표현으로 낭패보기 십상의 법칙
나 살아갈수록 뼈저리게 통감하는 진리의 법칙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른바 '극단적 표현으로 낭패보기 십상의 법칙'이다.
이를 풀어 설명하자면,
살아가면서 '절대로'라던가 '결단코', '다시는' 따위의 말을 별 생각없이 남발했다가는, 그간 나름대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이미지라던지 신뢰도를 하루 아침에 곤두박질시키고 마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거다.
이 법칙이 적용되는, 흔히 우리 주위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이런 게 있을 수 있겠다.
평소 도수 있는 음료수와 각별한 관계의 A씨.
그날도 어김없이 동료들과 들른 모 주점에서 음료와 각별한 관계를 여지없이 과시하였는데.
앞서 거니 뒤서 거니 주고 받는 음료 속에 싹트는 취기.
결국 문제의 음료수와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만 A씨.
버터를 들이부은 양 혓바닥은 붸붸 꼬이고, 다리는 휘청휘청. 거기다가 친절하게도 아침 식단부터 저녁 메뉴까지 줄줄이 만천하에 공개 하기까지 하더라.
갖은 천태만상 속에 버라이어티한 날도 슬슬 막을 내리고...
내일의 찬란한 해가 떠오를 때 즈음의 A씨를 보자.
어제 마신 음료의 잔류로 쓰리고 뒤집어지는 배를 부여잡고, 화씨 911도로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움겨쥐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찰나!
끊긴 필름 사이로 간간히 떠오르는 간밤의 화려했지만 잔인한 추억들.
아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던 어느 현자의 말을 지금처럼 간절히 믿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을 비롯하여 간밤의 작태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을 인간들에게 선택적 기억상실증의 선물이라도 내려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구차한 바람 속에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맘을 이끌고 겨우 겨우 출근도장을 찍은 A씨.
그가 그나마의 체면을 살리는 일이라곤 고작
'내가 다시는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선전포고를 한다거나, '앞으로 절대 술 따위는 마시지 않을테니 나 말리지 마쇼' 따위의 엄포를 놓는 것이 될 것이다.
허나, 어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하던가.
'망각의 동물'이라던 어느 현자의 말이 입증되는 시간이 도래하였으니, 곧 죽을 것만 같이 아팠던 위도 간도 뇌도 어느덧 정상복구되는 시점이렸다.
그리하여 다시 '레테의 강'을 건너고마는 우리의 A씨.
그 뒤의 레파토리는 생략해도 무방할 것이고, 결국 A씨에게 남은 건
'쯧쯧.. 저 인간 또 저러네'라는 투의 조소, 혹은 연민어린 눈빛일 것이다.
오늘 나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A씨와 같은 사례에 덧붙여 또 다른 제2의 사례로서 '극단적 표현으로 낭패보기 십상의 법칙'을 확고히 입증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오늘, 결혼식장에서 일어났다.
근 2년 새에 참으로 많은 결혼식에 쫒아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부럽다거나, 결혼이 하고 싶다거나, 혹은 결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내지는 압박감은 본인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업신여긴, 당당하고 쿨한 나였다.
때문에 나는 고개를 빳빳이 치켜 세우고는 주위의 어느 누구에게라도 스스럼 없이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결혼 고까짓 것 꼭 해야 할 필요성이 있나요?" 라거나
"단지 결혼을 목적으로 두고 사람을 고르는 행위처럼 자신의 삶을 기만하는 행위도 없다구요" 내지는
"그냥 나이가 찼으니까, 남들 다 하니까, 등 떠밀려서 혹은 위기감에 하는 결혼이라면 나는 결단코 사양하겠어요. 그런 사람들을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아니 안할 거예요"
그랬던 나였기에, 오늘의 결혼식에서도 나는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의 확고한 신념을 여지없이 과시해야 옳았다. 그러나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아니 확고한 신념을 사수하기는 커녕 와장창창 무너뜨리는 참담함을 맛보아야만 했다. 오늘은 왠일인지 그간의 억눌렸던(?) 감정이 쓰나미 마냥 몰려왔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의 결혼식이 나의 철통 같은 신념을 무너뜨릴 정도로 특별났다거나, 결혼한 커플이 행복에 겨워 눈물을 펑펑 쏟아낸 것도 아니었다. 또한 물론 그간 결혼을 했던 커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신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결혼은 아직 나에게는 비현실적이거나 지극히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이 결혼식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굳이 찾자면, 아마도 이제 '그냥 그런 결혼식'의 감흥에 젖기엔 녹록치 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서른이 되어 처음으로 맞이했던 친구 결혼식.
나와 같이 하객의 대열에 동참했던 녀석들을 둘러보니 이미 장가를 갔거나, 시집을 갔거나, '결혼 할 내 남친(혹은 여친)이외다~' 하며 보란듯이 식장에 팔짱을 끼고 동반해주시는 행태를 보이는 와중이었다.
녀석들이 하나, 둘 띄엄띄엄 갈 때는 단순하게도 무리의 셈을 하지 못했게 낭패였다. 저 녀석은 저 녀석대로 가고,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가고.. 그런 식의 계산에만 익숙해져 있던 내가, 오늘 문제의 녀석들을 세트로 대하고 보니 사태는 짐짓 심각해보였다.
게다가 한 녀석의 와이프는 배가 만삯이 되어 동행하는 통에 녀석들의 입방아에 올라 금새,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작년에 애를 낳았네', ' '내 친구는 벌써 애가 둘인데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네' 따위의 대화로 나를 더욱 압박하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심심찮게 듣던 말이었고, 역시나 일말의 흔들림도 없던 나였건만, 오늘의 나는 그런 모든 대화들과 모든 커플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야, 너는 아직도 남친 없냐?', '너도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야지, 임마' 등등의 늘상 듣던 친구들의 장난 섞인 말도 이제는 아닌 게 아니라 장난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내년에 결혼할 남친을 여기 저기 소개시키며 공개적으로 찜뽕하는 센스를 취하던 친구의 "내 결혼식에 꼭 올 꺼지? 내가 니 결혼식 때는 애들 꼬드겨서 축의금 대신 냉장고 사줄께"라는 배려(또는 위로)의 말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불현듯 나와 관계된 모든 지인들의 연애질이나 결혼 소식들이 소용돌이처럼 내 뇌리를 파고들어와 나늘 괴롭히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제껏 나와 같이 So Cool~~을 표방하며 결혼을 맘껏 기만해주던 동종 혈통 부류의 급격한 태도 돌변은 나를 아연실색케 하기 충분했다. 어느 샌가 '미안허이 친구. 그렇게 됐네'라는 암묵적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제 갈 길을 가고 말 때의 그 허탈함과 배신감, 남겨진 자의 비장함과 위기감, 그리고 쓸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와 같은 극렬한 감정에 내몰린 내가 궁여지책으로 내세운 합리화는 이런 것이었다.
오늘 이 결혼식에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단 한 명의 지원군만 있었어도 내가 이리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것. 그건 기필코 확언할 수 있다. 단 한 명의 지원군만 있었어도 화려한 '솔로예찬'에 힘을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단지 숫적으로 열세였을 뿐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에 반하는 확언 또한 해야 할 것 같다. 결국 그 지원군이라는 것도 세월과 인연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내 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면 어찌할 수 없이 나 또한 그들과 같은 기류에 편승하여 사회적 관습과 제도에 그만 승복하고 합의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정,반,합의 변정법적 논리에 부응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득 살아가면서 '절대로'라던가 '결단코', '다시는' 따위의 말을 겁도 없이 남발하던 내가 미워지려 한다.
더불어 내가 그런 애꿎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그 때 누군가가,
너도 나이 들어봐라. 나이 앞에 장사 없다. 지금이야 마냥 이팔청춘이요 니 세상 같고, 니 곁에 있는 친구들이랑 알콩달콩 백년 만년 사이좋게 지낼 것 같지? 나이 들어봐라, 어디 세상이 그런가. 나중에는 다들 지 앞 길 찾아 떠나게 되어 있는 거여~ 그러게 친구 너무 믿지 말어. 너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어여 니 짝 찾아 나서. 그게 남는 거여~
라며.. 자복자복 나를 좀 가르쳐주었으면 싶은 것이다.
하긴, 돌이켜보면 누구한텐들 저런 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겠는가. 그 때는 제아무리 나를 타이르려 했었도 내가 곧이 듣지 않아던 것을.
어찌됐든
결혼 따위는 안해도 그만, 이라던 나의 쿨한 (척 했던) 태도도
오늘 만큼은, 비굴하지만 슬며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오늘 만큼이다. 그래도 아직 내 곁에는 지원군이 족히 여럿은 되니까.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은 남아서
이러한 나의 우유부단하고 뒤죽박죽이며 즉흥적이고 구차한 오늘의 이 감정이
일단은, 결정적으로 여인의 춘심을 파고드는 봄 기운 - 더욱이 오늘은 봄 비까지 내리는 통이므로 - 때문이라고 해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