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그곳엔 눈이 내린다. 다섯 꽃잎의 눈송이가 성긴 햇살을 가르며 흩날린다. 꽃눈은 거리와 철길을 순백으로 물들이고, 실개천과 바다 위에 꽃잎 종이배를 띄운다. 겨우내 검은 등걸 속에서 잉태된 꽃망울이 세상 밖으로 해방을 선언하는 날, 진해에는 꽃잎의 물결이 일렁인다.
◆진해에서 울리는 상춘곡
봄빛이 완연해지면 누구나 봄맞이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봄맞이 중 으뜸이 꽃구경이다. 날이 풀리기가 무섭게 어디로 꽃을 보러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음력 정월부터 개화가 시작되는 여수 동백꽃을 필두로 매화와 벚꽃, 진달래와 철쭉을 찾아 떠난다.
나비도 벌도 아니고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꽃구경에 매달리는 것일까? 조선 성종 때 정극인이 지은 상춘곡(嘗春曲)을 보면 몇 가지 이유가 추려진다.
곡절 많은 속세에 묻혀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옛 사람의 풍류를 따르고픈 심정이 찾아드는 법이다. 선인은 마음을 새롭게 하고자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노을 속에 피어나고 버드나무가 싱그러운 푸르름을 더해가는 산야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맑은 모래 위로 흐르는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꽃가지 꺾어가며 잔 수를 세었다. 그러면 어느새 화창한 봄바람이 술잔에 가득 담기고, 붉은 꽃잎이 옷깃을 스치며 낙화했다. 선인은 또 말했다. 봄이 찾아든 숲에서 교태를 부리는 새들처럼 봄기운에 겨워 어쩔 수 없었다고. 물아일체이거늘 새나 사람이나 흥(興)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봄기운에 이끌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른 산봉우리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무릉(武陵)이 가깝게 다가온다.
◆절정에 이른 봄을 만나다
'상춘곡'을 영화로 제작한다면 촬영지로 진해가 제격이다. 한반도의 봄은 남쪽 바다에서 시작된다. 남해안으로 올라온 봄기운은 동백나무에 붉은 꽃망울을 틔운 후 산수유 가지를 노랗게 물들인다. 이후 맹렬한 기세로 타올라 봄이 턱밑까지 차오른 순간에 벚꽃을 개화시킨다. 진해의 벚꽃은 남해의 봄기운이 극적으로 발현되는 시점에 만개한다.
진해의 왕벚나무는 일제가 군항을 건설하면서 도시 미관용으로 심었다. 하지만 해방 후 진해 시민들은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로 벚나무를 모두 베어냈다. 자취를 감춘 벚나무가 다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왕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로 밝혀지면서 세계 제1의 벚꽃도시로 가꾸자는 캠페인이 시작된다. 진해 곳곳에 다시 왕벚나무가 식재돼 현재 수십 만 그루에 이른다. 왕벚나무는 벚나무 중 으뜸인 수종으로 다른 종보다 꽃이 탐스럽고 그 양이 많다.
군항제는 왕벚나무의 화양연화(花樣年華)에 맞춰 열린다. 화양연화는 '생애의 꽃이 피는 날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말한다. 응축된 생명력으로 꽃의 빛깔과 향기가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군항제의 개막일은 매년 다르다. 어느 해는 전년보다 열흘 이상 앞당겨지기도 한다. 벚꽃 개화시기에 맞춰 제전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군항제 주관처인 이충무공 호국정신 선양회는 매년 심혈을 쏟아 붓는다. 기상청과 농촌진흥청의 기상예보와 개화기 발표에 온 촉각을 기울인다. 하지만 꽃이 피고 지는 일은 하늘이 하는 일인지라 인력으론 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해에도 본격적인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져 벚꽃 없이 개막식이 치러졌다.
갑작스런 꽃샘추위는 개화시기를 헝클어뜨리는 주범이다. 기상예보와 달리 닥쳐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막일이 확정된 뒤 꽃샘추위가 찾아오면 선양회와 진해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올해 군항제는 4월 2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하지만 진해 벚꽃을 제대로 향유하고 싶다면 군항제 기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개화 예상 시점은 언제나 빗나갈 가능성이 있다.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정확한 개화 시점을 확인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
진해에서 벚꽃 명소를 찾는 일은 어쩌면 무의미하다. 안민고개, 제황산공원, 여좌천, 장복산, 해군사관학교, 경화역처럼 이름난 곳이 아니더라도 어디나 일품의 풍경을 선사한다. 길이 나있는 곳은 거개가 새하얀 벚꽃터널을 이룬다. 진해시와 해군은 해마다 더 멋진 벚꽃길을 조성하기 위해 노령의 벚나무를 정비한다. 벚나무 상태를 진단해 자연 고사한 것을 캐내고 그 자리에 다시 수령 15년 안팎의 벚나무를 심는다.
청명(淸明) 무렵 벚나무가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하면 진해 일대는 봄기운에 점령된다. 시 전체가 생명력이 약동하는 거대한 봄 발전소로 변한다. 이 즈음 진해를 찾아가면 겨우내 움츠리고 메말랐던 마음이 회복됨을 느낄 수 있다. 벚꽃이 만개한 거리에 서면 누구나 알게 된다. 봄은 참 좋은 계절임을.
진해~ 꽃으로 물든 봄나의 기억
◆진해에서 울리는 상춘곡
봄빛이 완연해지면 누구나 봄맞이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봄맞이 중 으뜸이 꽃구경이다. 날이 풀리기가 무섭게 어디로 꽃을 보러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음력 정월부터 개화가 시작되는 여수 동백꽃을 필두로 매화와 벚꽃, 진달래와 철쭉을 찾아 떠난다.
나비도 벌도 아니고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꽃구경에 매달리는 것일까? 조선 성종 때 정극인이 지은 상춘곡(嘗春曲)을 보면 몇 가지 이유가 추려진다.
곡절 많은 속세에 묻혀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옛 사람의 풍류를 따르고픈 심정이 찾아드는 법이다. 선인은 마음을 새롭게 하고자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노을 속에 피어나고 버드나무가 싱그러운 푸르름을 더해가는 산야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맑은 모래 위로 흐르는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꽃가지 꺾어가며 잔 수를 세었다. 그러면 어느새 화창한 봄바람이 술잔에 가득 담기고, 붉은 꽃잎이 옷깃을 스치며 낙화했다. 선인은 또 말했다. 봄이 찾아든 숲에서 교태를 부리는 새들처럼 봄기운에 겨워 어쩔 수 없었다고. 물아일체이거늘 새나 사람이나 흥(興)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봄기운에 이끌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른 산봉우리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무릉(武陵)이 가깝게 다가온다.
◆절정에 이른 봄을 만나다
'상춘곡'을 영화로 제작한다면 촬영지로 진해가 제격이다. 한반도의 봄은 남쪽 바다에서 시작된다. 남해안으로 올라온 봄기운은 동백나무에 붉은 꽃망울을 틔운 후 산수유 가지를 노랗게 물들인다. 이후 맹렬한 기세로 타올라 봄이 턱밑까지 차오른 순간에 벚꽃을 개화시킨다. 진해의 벚꽃은 남해의 봄기운이 극적으로 발현되는 시점에 만개한다.
진해의 왕벚나무는 일제가 군항을 건설하면서 도시 미관용으로 심었다. 하지만 해방 후 진해 시민들은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로 벚나무를 모두 베어냈다. 자취를 감춘 벚나무가 다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왕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로 밝혀지면서 세계 제1의 벚꽃도시로 가꾸자는 캠페인이 시작된다. 진해 곳곳에 다시 왕벚나무가 식재돼 현재 수십 만 그루에 이른다. 왕벚나무는 벚나무 중 으뜸인 수종으로 다른 종보다 꽃이 탐스럽고 그 양이 많다.
군항제는 왕벚나무의 화양연화(花樣年華)에 맞춰 열린다. 화양연화는 '생애의 꽃이 피는 날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말한다. 응축된 생명력으로 꽃의 빛깔과 향기가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군항제의 개막일은 매년 다르다. 어느 해는 전년보다 열흘 이상 앞당겨지기도 한다. 벚꽃 개화시기에 맞춰 제전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군항제 주관처인 이충무공 호국정신 선양회는 매년 심혈을 쏟아 붓는다. 기상청과 농촌진흥청의 기상예보와 개화기 발표에 온 촉각을 기울인다. 하지만 꽃이 피고 지는 일은 하늘이 하는 일인지라 인력으론 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해에도 본격적인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져 벚꽃 없이 개막식이 치러졌다.
갑작스런 꽃샘추위는 개화시기를 헝클어뜨리는 주범이다. 기상예보와 달리 닥쳐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막일이 확정된 뒤 꽃샘추위가 찾아오면 선양회와 진해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올해 군항제는 4월 2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하지만 진해 벚꽃을 제대로 향유하고 싶다면 군항제 기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개화 예상 시점은 언제나 빗나갈 가능성이 있다.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정확한 개화 시점을 확인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
진해에서 벚꽃 명소를 찾는 일은 어쩌면 무의미하다. 안민고개, 제황산공원, 여좌천, 장복산, 해군사관학교, 경화역처럼 이름난 곳이 아니더라도 어디나 일품의 풍경을 선사한다. 길이 나있는 곳은 거개가 새하얀 벚꽃터널을 이룬다. 진해시와 해군은 해마다 더 멋진 벚꽃길을 조성하기 위해 노령의 벚나무를 정비한다. 벚나무 상태를 진단해 자연 고사한 것을 캐내고 그 자리에 다시 수령 15년 안팎의 벚나무를 심는다.
청명(淸明) 무렵 벚나무가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하면 진해 일대는 봄기운에 점령된다. 시 전체가 생명력이 약동하는 거대한 봄 발전소로 변한다. 이 즈음 진해를 찾아가면 겨우내 움츠리고 메말랐던 마음이 회복됨을 느낄 수 있다. 벚꽃이 만개한 거리에 서면 누구나 알게 된다. 봄은 참 좋은 계절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