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신학자 파울 틸리히는 회고록에서 응석받이에 걱정 하나 없던 젊은 시절에는 부모와 교사들이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해주어도 늘 냉랭한 마음으로 예술을 대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군대에 끌려갔다가 휴가를 받아 나왔을 때 (그가 속한 대대원 가운데 3/4이 이 전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폭풍우가 부는 날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베를린의 카이저 프리드리히 미술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BOTTICELLI, Sandro, Madonna and Child with Eight Angels c.1478, 틸리히는 위층 작은 전시실에서 우연히 산드로 보티첼리의 을 보게 됩니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지혜롭고, 연약하고, 동정 어린 눈길과 만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흐느꼈습니다. 그 자신도 깜짝 놀랄만큼 스스로 "계시적 환희"의 순간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림의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분위기와 그가 참호에서 배운 전쟁의 잔혹한 교훈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눈물이 솟았습니다. 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고통과 대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어쩌면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중년이 되도록 보람없는 일만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눈에 띄는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어떤 건축물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라고 말할 때, 그 말에는 그 구조물에 기록된 고귀한 특질과 그 주변에 있는 더 슬프고 더 넓은 현실 사이의 달콤쌉쌀한 대조의 느낌이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슬픔을 아는 것은 어찌보면 건축을 감상하는 특별한 선행조건이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조건들은 옆으로 밀어 놓더라도, 우선 약간은 슬퍼야 건물들이 제대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테니까요. 아름다움을 볼 때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암시하는 행복이 '예외적인 것'임을 알기에 목에서 덩어리가 치밀어오르는 것이겠죠. from 알랭 드 보통의 에서 발췌하여...1
고통과의 대화
독일의 신학자 파울 틸리히는 회고록에서 응석받이에 걱정 하나 없던 젊은 시절에는 부모와 교사들이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해주어도 늘 냉랭한 마음으로 예술을 대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군대에 끌려갔다가 휴가를 받아 나왔을 때 (그가 속한 대대원 가운데 3/4이 이 전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폭풍우가 부는 날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베를린의 카이저 프리드리히 미술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BOTTICELLI, Sandro, Madonna and Child with Eight Angels c.1478,
틸리히는 위층 작은 전시실에서 우연히 산드로 보티첼리의 을 보게 됩니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지혜롭고, 연약하고, 동정 어린 눈길과 만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흐느꼈습니다.
그 자신도 깜짝 놀랄만큼 스스로 "계시적 환희"의 순간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림의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분위기와 그가 참호에서 배운 전쟁의 잔혹한 교훈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눈물이 솟았습니다.
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고통과 대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어쩌면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중년이 되도록 보람없는 일만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눈에 띄는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어떤 건축물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라고 말할 때, 그 말에는 그 구조물에 기록된 고귀한 특질과 그 주변에 있는 더 슬프고 더 넓은 현실 사이의 달콤쌉쌀한 대조의 느낌이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슬픔을 아는 것은 어찌보면 건축을 감상하는 특별한 선행조건이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조건들은 옆으로 밀어 놓더라도, 우선 약간은 슬퍼야 건물들이 제대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테니까요.
아름다움을 볼 때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암시하는 행복이 '예외적인 것'임을 알기에 목에서 덩어리가 치밀어오르는 것이겠죠.
from 알랭 드 보통의 에서 발췌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