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팝의 교황', '팝의 디바'로 불림.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였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으며 그의 작품과 더불어 워홀이라는 인물 자체가 팝을 대표한다.국적미국활동분야예술출생지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주요작품《캠벨 수프 Campbell's soup》(1962), 《두 개의 마릴린 The two Marilyns》(1962),《재키 Jackie》(1964), 《마오 Mao》(1973), 《자화상 Self-Portrait》(1986)주요저서《1970년대의 조망》,《앤디 워홀의 철학》, 잡지《인터뷰》창간
#. 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엘리자 베스 테일러, 재클린 케네디 , 믹 재거 등
티비 영화 신문 잡지 등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유명 인사와 대량 생산된 공산품을 소재로 즐겨 썼다.
'이세상에 딱 하나 뿐인 걸작을 만드는 대신, 조수들을 거느리고
공장에서 제품 찍듯이 수많은 작품을 대량 생산 했다.
작업실 이름이 아예 '공장(factory)'였다.
" 미국이 대단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나 가장 가난한 소비자나 똑같은 제품을 산다는 것이다. tv를 보다 코카콜라가 나왔다 치자, 당신은 안다. 대통령도 콜라를 마시고, 엘리자 베스 테일러도 콜라를 마시고, 당신고 콜라를 마신다. 콜라는 콜라일뿐,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길 모퉁이 노숙자가 마시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마실수 없다. 모든 콜라는 똑같고,모든 콜라가 좋다. 그 사실을 엘리자 베스 테일러도 알고, 대통령도 알고, 노숙자고 알고, 당신도 안다."
'미국'을 '한국' 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이영애'로 바꿔 읽는 다면 더 실감난다. 대중문화가 개인의 일상 깊숙이 촉수를 뻗는 요즘, 전세계 현대 미술작가와 평론가들이 별세한 지 20년이 된 이 괴짜 '예술가 겸 제조업자 (artist manu factory)'를 쉴새없이 호명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 앤디워홀은 1928년 8월 6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병약해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기보다는 집에 혼
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그는 어려서부터 유명 스타를 동경하고 그들과 같이 되기를 열망하여 영화 배우 사진을 모으거나 팬클럽
에 가입하기도 했다.
2. 그의 어릴 적 성향은 그의 작품에도 드러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현재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였다. 상업적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잡지 일러스트레이션과 광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3. 1950년 대 후반 제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예술가가 되기로 다짐한다. 그는 예술가란 평범한 것
을 특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 19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 후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치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5. 1950년과 1960년대 당시의 미국은 레이놀드 케인즈의 이론에 따라 소비가 미덕인 사회였다. 앤디워홀의 작품은 이런 미국 사회의 변화
를 잘 나타내주었고, 그의 작품은 만화의 한 컷, 콜라병, 깡통, 영화배우의 사진 등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똑같
이 그려서 나열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하였다.
6. 1963년부터는 "슬립", "엠파이어" 등 실험영화 제작에 힘쓰고, 상업영화에 손대는가 하면 소설도 출판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1960년대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스타를 사랑한다.'
스타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앤디워홀은 말론 브란도의 사진을 지니고 다닐 정도로 대중스타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마릴린 먼로, 재키, 마오쩌둥, 혹은 범죄자에 이르기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인물들의 초상화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유명인들의 초상을 격자형태의 구성으로 반복 배치하여 인물의 개성을 제거하고 마치 하나의 기호와 같은 상태로 변화 시켰다. 이는 매스미디어가 쏟아 내는 과도한 이미지의 생산을 형상화 하는 것으로 현대 사회에서 매스미디어가 지닌 독보적 권력을 상징한다.
미국의 팝 아트의 대표라면 바로 앤디워홀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실크스크린이라는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인쇄 방법을 이용하여 반복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앤디워홀의 수많은 자화상 작품들은 1964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스타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자신도 스타가 되고 싶어했던 워홀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워홀은 세부묘사가 생략되고 강한 음영의 대비로 이루어진 자화상을 통해 마치 스타처럼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철저희 은폐하고자 하였다.
그는 스타가 되기 위해 전략을 세웠으며 스스로 예술적 오브제가 되었다.
이는 광고의 속성을 차용한 것으로 현대의 대중 문화에 걸맞는 예술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워홀은 대중적 이미지 뿐아니라 공포의 이미지도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영화배우와 같은 유명인들, 꽃, 코카콜라병, 또는 전기의자, 자동차 충돌 장면, 폭풍의 현장 등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묘사하여 거의 임의적인 색채를 첨가함으로써 미묘한 효과를 보여준다.
그는 대중적 속물주의를 정착시켰고, 특히 동어반복적 표현을 통한 작품의 유일무이성 부정, 오리지널리티의 부정 등은 후에 추상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워홀의 작품은 대량 생산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든지, 끔찍한 장면이나 유명인들에 대한 반응을 마비시키는 등의 결과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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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앤디워홀(1928-1987)의 작품이 삼성 리움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어 관람하러 갔었는데,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앤디워홀, 작고 20주년 기념 전시라고는 하지만 상업적인 냄새가 흐르는 경향도 많은 듯 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가 봉착해 있는 극한점에서 다른 세계로의 활로를 모새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지금, 지극히 상업적이고 가벼워 보이는 느낌도 가졌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앞에 서기까지도 비판의 입장에서 견지했던 점도 있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후 비판적 시각을 접고 앤디워홀의 사고와 그 사고의 결과물로써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 속에서, 예술이란 가치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디 워홀 (Andrew Warhola)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팝의 교황', '팝의 디바'로 불림.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였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으며 그의 작품과 더불어 워홀이라는 인물 자체가 팝을 대표한다.국적미국활동분야예술출생지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주요작품《캠벨 수프 Campbell's soup》(1962), 《두 개의 마릴린 The two Marilyns》(1962),《재키 Jackie》(1964), 《마오 Mao》(1973), 《자화상 Self-Portrait》(1986)주요저서《1970년대의 조망》,《앤디 워홀의 철학》, 잡지《인터뷰》창간
#. 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엘리자 베스 테일러, 재클린 케네디 , 믹 재거 등
티비 영화 신문 잡지 등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유명 인사와 대량 생산된 공산품을 소재로 즐겨 썼다.
'이세상에 딱 하나 뿐인 걸작을 만드는 대신, 조수들을 거느리고
공장에서 제품 찍듯이 수많은 작품을 대량 생산 했다.
작업실 이름이 아예 '공장(factory)'였다.
" 미국이 대단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나 가장 가난한 소비자나 똑같은 제품을 산다는 것이다. tv를 보다 코카콜라가 나왔다 치자, 당신은 안다. 대통령도 콜라를 마시고, 엘리자 베스 테일러도 콜라를 마시고, 당신고 콜라를 마신다. 콜라는 콜라일뿐,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길 모퉁이 노숙자가 마시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마실수 없다. 모든 콜라는 똑같고,모든 콜라가 좋다. 그 사실을 엘리자 베스 테일러도 알고, 대통령도 알고, 노숙자고 알고, 당신도 안다."
'미국'을 '한국' 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이영애'로 바꿔 읽는 다면 더 실감난다. 대중문화가 개인의 일상 깊숙이 촉수를 뻗는 요즘, 전세계 현대 미술작가와 평론가들이 별세한 지 20년이 된 이 괴짜 '예술가 겸 제조업자 (artist manu factory)'를 쉴새없이 호명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 앤디워홀은 1928년 8월 6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병약해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기보다는 집에 혼
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그는 어려서부터 유명 스타를 동경하고 그들과 같이 되기를 열망하여 영화 배우 사진을 모으거나 팬클럽
에 가입하기도 했다.
2. 그의 어릴 적 성향은 그의 작품에도 드러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현재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였다. 상업적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잡지 일러스트레이션과 광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3. 1950년 대 후반 제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예술가가 되기로 다짐한다. 그는 예술가란 평범한 것
을 특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 19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 후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치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5. 1950년과 1960년대 당시의 미국은 레이놀드 케인즈의 이론에 따라 소비가 미덕인 사회였다. 앤디워홀의 작품은 이런 미국 사회의 변화
를 잘 나타내주었고, 그의 작품은 만화의 한 컷, 콜라병, 깡통, 영화배우의 사진 등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똑같
이 그려서 나열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하였다.
6. 1963년부터는 "슬립", "엠파이어" 등 실험영화 제작에 힘쓰고, 상업영화에 손대는가 하면 소설도 출판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1960년대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스타를 사랑한다.'
스타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앤디워홀은 말론 브란도의 사진을 지니고 다닐 정도로 대중스타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마릴린 먼로, 재키, 마오쩌둥, 혹은 범죄자에 이르기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인물들의 초상화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유명인들의 초상을 격자형태의 구성으로 반복 배치하여 인물의 개성을 제거하고 마치 하나의 기호와 같은 상태로 변화 시켰다. 이는 매스미디어가 쏟아 내는 과도한 이미지의 생산을 형상화 하는 것으로 현대 사회에서 매스미디어가 지닌 독보적 권력을 상징한다.
미국의 팝 아트의 대표라면 바로 앤디워홀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실크스크린이라는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인쇄 방법을 이용하여 반복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앤디워홀의 수많은 자화상 작품들은 1964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스타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자신도 스타가 되고 싶어했던 워홀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워홀은 세부묘사가 생략되고 강한 음영의 대비로 이루어진 자화상을 통해 마치 스타처럼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철저희 은폐하고자 하였다.
그는 스타가 되기 위해 전략을 세웠으며 스스로 예술적 오브제가 되었다.
이는 광고의 속성을 차용한 것으로 현대의 대중 문화에 걸맞는 예술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워홀은 대중적 이미지 뿐아니라 공포의 이미지도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영화배우와 같은 유명인들, 꽃, 코카콜라병, 또는 전기의자, 자동차 충돌 장면, 폭풍의 현장 등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묘사하여 거의 임의적인 색채를 첨가함으로써 미묘한 효과를 보여준다.
그는 대중적 속물주의를 정착시켰고, 특히 동어반복적 표현을 통한 작품의 유일무이성 부정, 오리지널리티의 부정 등은 후에 추상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워홀의 작품은 대량 생산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든지, 끔찍한 장면이나 유명인들에 대한 반응을 마비시키는 등의 결과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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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앤디워홀(1928-1987)의 작품이 삼성 리움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어 관람하러 갔었는데,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앤디워홀, 작고 20주년 기념 전시라고는 하지만 상업적인 냄새가 흐르는 경향도 많은 듯 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가 봉착해 있는 극한점에서 다른 세계로의 활로를 모새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지금, 지극히 상업적이고 가벼워 보이는 느낌도 가졌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앞에 서기까지도 비판의 입장에서 견지했던 점도 있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후 비판적 시각을 접고 앤디워홀의 사고와 그 사고의 결과물로써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 속에서, 예술이란 가치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