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는 보통여자가 아니였다.

조혜진200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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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는  보통여자가 아니였다.

나에게 캔디캔디는 단순한 순정만화가 아니다.

문자랑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소녀에게 책을 읽게끔 해 준 '모티브' 그 자체였고 사춘기 소녀에게 로맨스의 환상과 풍부한 감성을 가져다 준 '로망' 그 자체였다.

 

반갑게도 요즘 대교어린이 TV에서 들장미소녀 캔디가 방영되고 있다. 오늘날의 만화와는 사뭇 다른 정적인 애니메이션이다.

80년대를 주름잡던 들장미소녀 캔디는 나의 세대랑은 다소 거리감은 있지만 캔디캔디를 읽어 본 사람에게는 추억이 가득 담긴 햇살이나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시절 캔디캔디를 10번 이상 읽어 볼 정도록 캔디 마니아였다) 비록 촌스러운 그림과 옛날스러운 더빙이지만 마음만은 훈훈해 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허나. 지금 26살에 잠깐 본 캔디는 그 옛날의 캔디의 모습이 더이상 아니였다. 늘 캔디를 질투하고 괴롭히던 이라이저의 모습이 나에게도 투영되고 있었다. 11살 당시 나에게 善은 무조건 캔디였고 惡은 이라이저였다.

세월의 풍파를 조금 겪어보니 우습게도 이라이저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캔디보다 동정이 앞서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아. 생각해보자. 이라이저가 좋아하는 남자마다 캔디가 기어이 독차지하니 미워하지 않고 못베기는 건 당연지사 아닌가?

매번 괴롭히던 이라이저를 매번 감싸주는 캔디의 행동에서 위선을 느낄 수도 있다. 이라이저 입장에선 말이다. 유독 표독스러웠던 이라이저의 성격은 캔디의 영향이 컸던 것이 아닐까?

 




캔디캔디에서 캔디는 그야말로 명랑소녀 그자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가 캔디의 신조이긴 하지만. 어찌나 어려운 역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지.(보고 있으면 답답할 정도다) 그리고 어찌나 여려움도 자주 닥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캔디의 팔자는 너무 쎄고 기구하다.(이 여자가 정신병동에 안들어간 것만으로 다행스럽다)

 

남자관계는 또한 어찌나 복잡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웃기게도 그 만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다 캔디를 사랑하게 된다. 심지어 매일 캔디를 괴롭히던 닐까지 나중에 캔디를 사랑하게 되어버린다.  그 많은 남자들이 아무리 뒤에서 도와주고 보살펴 줘도 캔디는 매번 시련의 고통을 기어이 당하고 마니 캔디의 팔자는 보통이 넘는 것은 확실하다.

 

모든 남자들에게 웃음으로 대했던 캔디양. 그녀는 웃음이 헤픈 여자였다. 그리고 박애주의자의 절정을 달리던 여자. 눈은 또 얼마나 높은지 돈많은 왕자님만 좋아했던 신데렐라 증후군을 앓던 여자. 어리숙한 남자들이 모두 캔디한테 깜짝 속았다는 건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캔디 옆에서 간도 빼줄 것처럼 헌신적이였던 스테아나 아치의 마음을 끝내는 받아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속물근성이 가득한 여자임은 틀림없다. 시시껄렁한 보통여자는 아니라고 봐야한다. 괜히 들장미 소녀이겠냐고! 클클클.

 

캔디는 남자 보는 눈 또한 탁월했다.





캔디의 첫사랑 안소니.

 

백작의 아들이자 백만장자의 미소년이였다. 그야말로 백마탄 왕자 그 자체가 안소니였다. 모든 여자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였고 남몰래 가슴앓이 했던 만인의 연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소니가 캔디만 유독 좋아하니 이라이저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캔디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낙마로 죽음을 당하는 안소니때문에 평화로웠던 캔디의 일생에는 점차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여자 팔자는 뒤응박 팔자라는 양성평등의 시비거리가 될 만한 내용이였다

 

 




두번째 사랑. 테리우스

 

그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 영국 귀족 그란체스터 공작의 아들이다.

다정다감하면서 로맨틱했던 안소니와 달리 굉장히 시니컬하고 반항기질이 다분했던(엄청 터프했다) 테리우스.

한마디로 대 스타와 일반 여자와의 러브스토리. 누구나 꿈꾸는 로맨스를 캔디는 당당히 해 버린다. 어찌보면 남자복 하나는 지대로 타고났다고 볼 수 있다.

 

테리우스를 짝사랑하던 여배우의 사고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둘은 그만 헤어지고 만다. 이 둘의 슬픈 로맨스는 당시 나의 가슴을 찢어놓을 정도록 슬펐다. 눈물 콧물을 질질 짤면서 읽어댔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과 남배우와의 커플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게 아닌가? 차 후 캔디가 테리우스랑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행복해 질 수가 없다. 테리우스를 흠모하는 여자들이 한둘이어야지 말이다. 테리우스는 뭐 남자가 아닌가. 클클클.

 



세번째 사랑. 알버트

 

캔디가 고아원에서 자라면서부터 든든한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 전형적인 키다리아저씨 스타일이다. 만화에서 신비스로운 존재(만화가가 등장을 잘 시켜주지 않아서 앨버트에 대한 나의 갈망이 캔디만큼 컸다. 여심을 흔들 줄 아시는 만화가님은 선수로 인정)

 

캔디의 사 생활과 남자관계까지 다 포용할 줄 아는 이해심 넓은 성격의 소유자다. 그 당시 너무 멋져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캔디랑 나이차이가 무려 8~10살 가량 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앨버트씨는 겪을 것은 다 겪어 봤을 것이고, 단순히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보통 남자일 뿐이였다. 너무 회의적인가?

 

아무튼 엄청난 재산을 물러 받을 후계자였던 알버트는 결국 캔디와 결혼한다. 캔디의 말년은 아주 그냥 황금밭이였다. 

공부 잘하는 년은 이쁜 년 못 따라오고 이쁜 년은 팔자 좋은 년 못따라 온다는 말이 참 거침없이 나오게 끔 하는 캔디의 파란만장한 일생일대기였다.

 

캔디는  보통여자가 아니였다.



 

비록 외로워도 슬퍼도 캔디는 안 울었지만 아마 속은 시커멓게 탔을 것으로 예상된다. 병적으로 긍정적이였고 씩씩했던 캔디양. 일치감치 배알을 개한테 더져주었던 캔디는 아주 독한여자임은 틀림없다

훗날 창창한 미래가 펼쳐질 줄 그녀는 진작에 알아보았나 보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단 한가지 배운 사실은

여러 사람을 좋아하되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행동력.

 

그녀의 속마음이 불이 되건 흙이 되건

나무가 되건 물이 되건

적어도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주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아갔을 뿐.

모든 사람들에게 훗날의 후광이 밝혀오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미래는 존재하는 법이니깐.

지금 이 시점에서 캔디를 비틀어 놓는 이유는 보통여자들이 갖는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캔디를 좋아하며 동경해오고 있다.

다만 얄짤 없는 세상에 대한 넋두리 정도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다행이겠다. 점차 메말라지는 나의 감정선이 더욱 편협하게 좁혀진다는 사실이 다소 쓸쓸하다 못해 조금은 울적해 진다.
다시 한번 캔디캔디를 찬찬히 읽어보면 달라지지 않을까.(그러지 않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어서 빨리 화야랑 약속한 캔디 리딩 프로젝트에 착수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마구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