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의 알비나에서 생긴일. 티파니에서나 이탈리아에서 생긴일이 아니다. 남미의 수리남 알비나는 프랑스 가이아나와 강을 사이에 두고있는 300가구 남짓한 자그마한 도시이다. 그래도 입구에 있는 부서진 로터리에 '알비나에 온것을 환영한다'라는 글도 적혀있다. 파나바리보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140킬로 거리를 4일 걸려서 도달하였었다. 우기철이라 비도 자주 오는데 왼쪽어깨를 쓰지 못하니 밤낮으로 걷고 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깁스는 안돼고 커다란 압박파스로 어깨수술 부위를 압박하는 방법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팔을 거는 천을 둘러 무게로 오는 고통을 줄여야 했다. 그나마 사람이 많은 마을이나 도시를 지날때에는 사용하지 않아야 했다. 몸이 편치 않은 것을 알고 공격목표물이 될것을 우려하여 정상인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알비나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는 수술하여 꼬맨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나름대로는 주의를 하였지만 아마도 무리를 하여 꼬맨자리가 터졌던 것이다. 붕대를 적신 피는 옷까지 적셨다. 그런데 밤새 이슬비는 내려서 상처부의는 2차 감염을 염려 하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기떼마저 밤마다 극성이다. 특히 손등, 귀와 엉덩이 부위는 남미 모기들이 선호하는 부위이다. 남미 모기의 식성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모기와 다르다. 한국인이 특히 삼겹살을 즐기듯 이곳 남미모기의 남다른 식성을 탓할바는 아니었다. 매일 엉덩이는 두부살처럼 부어올랐다. 더군다나 한쪽팔이 불편하여 긁는 것도 어렵다. 혼자 중얼거리기를 '치사한 모기놈들!" 환자에게 이토록 무자비하게 대하다니... 그냥 가려움증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 어디 뜻대로 되어야지. 그런데 한번 손을 대어 긁으면 긁을 수록 더 가려운것이 남미 모기나 무뜨가 물은 자리이다. 펄펄 뛰도록 가렵다보니 긁는 쾌감(?)이 뇌속까지 전달되곤 한다. 결국 긁은 자리는 벗겨지고 피가나고 따가운 과정으로 진행이 된다. 아주 급하면 모기장을 꺼내어 몸에 둘르고 동이 트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정도는 각오를 하고 떠났다. 염려는 수술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영양상태가 떨어진 상황이라서 물로 인한 질병이나, '뎅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이미 수없이 모기에 물리며 4차례 말라리아에 걸렸던 체험이 있었다. 그리고 파라과이에서 뎅기에 걸려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었었다. 이제 뎅기정도는 들어와도 나를 쓰러트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자신하고 있었다. 피부도 어려서부터 좋았다. 여드름 한번 나지않은 피부이고 염증으로 고생한적도 없었다. 수술을 많이 받았었지만 이차감염이 일어난적도 없다. 다치거나 긁어서 벗겨져도 감염없이 잘도 아물었다.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 머리만 이상이 없다면 모두 감사다! 몸이 이상이 없을때는 2명정도가 위협을 하여도 걱정이 없었으나 수술후 40여일은 한팔을 쓰지 못한다. 아니 잡아당기면 다시 빠질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누군가의 공격이 심히 신경에 거슬렸다. 그나마 알비나에 도착하였을때까지는 아무일이 생기지 않아 한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프랑스 가이아나 까옌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때 문제가 생겼다. 어느국가나 길이든 두번가게 되는 길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고 낯설지가 않다. 생로랑에서 아침일찍 소형보트를 타고 알비나에 도착하였다. 한팔이지만 자전거를 하루 100킬로는 가는 정도로 몸이 호전되었다. 그런데 시내를 관통하면서 이상한 징조를 느꼈다. 그지역에 사는 듯한 젊은 청년 두명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일부러 중국인 슈퍼앞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약 5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수시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시간을 너무 지체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자전거를 끌고 시내의 다른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따돌리기로 하였다. 도로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그들의 추적을 피하려 하였다. 더이상 그들이 보이지 않아 따돌렸다고 생각을 하고 파나바리보로 가는 다음도시인 몽고를 향하여 움직였다. 점심무렵이었고, 태양도 황금빛으로 눈이 부셨다. 얼마간은 걸어서 도로를 따라 가며 생각에 잠겼었다. 몇킬로미터 정도를 알비나에서 벗어 났을때였다. 썬팅을 한 승용차 한대가 맞은편으로 다가와 섰다. 정차하는 차로만 생각을 했지 다른 의심은 없었다. 그리고 청년이 한명 차에서 내려 나를 향하여 서너걸음 걸어왔다. 나를향해 오던 청년이 한걸음정도 앞에 다거서면서 '번쩍'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몸을 왼쪽으로 목을 돌렸는데, 커다란 칼날이 나의 오른쪽 목쪽으로 지나갔다.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하고 당하는 순간이었다. 왼쪽어깨가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었고 오른팔만 힘이 있는 상황이었다. 놀래서 머리끝이 곤두섰다. 그렇다! 그놈들이 쫓아왔구나.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서는 비상용 몽둥이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다. 웃주머니에 카메라가 아주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몸을 피하면서 상대방 얼굴을 향하여 날린것이 나에게 유일한 무기인 카메라였다. 그리고 자전거는 포기한채 가방만들고 가까운 민가를 향해 달렸다. 얼마후 그놈들은 자전거를 치면서 어디론가 달렸다. 번호판을 머리에 넣고 자동차 색과 브랜드를 기억하였다. 푸른색 도요타로 번호는 '04-55 UP' 아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심장이 마구 뛰었으며 서둘러 경찰서를 찾아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경찰에 보고를 하였다. 경찰들은 장총에 실탄을 장전한 후 출동을 하였으며, 나는 잠시 경찰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만히 생각을 하고 앉아있으니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칼에 맞지않았다는 것이... 나중에 현지인들 이야기를 들으니 총이나 칼에 맞아 죽는일이 비일비재한 지역이란다. 그리고 알비나를 떠나는 날에도 통신사 직원이 칼에 목을 맞아 죽고 수금한 돈을 모두 빼았겼단다. 나중에 경찰이 혐의 차량을 끌고와 수색을 하니 트렁크에서 식칼 3자루와 회칼 1자루가 나왔다. 경찰말로는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으려 하고 있으나 범인들이 강건너 생로랑쪽으로 도망을 쳤을 것이라 시간이 걸린다라는 것이었다. 나의 종합적 검토로는 경찰이나 갱이나 한통속이라는 결론이 났다. 범인과 경찰이 공생을 한다? 50:50의 분배로.... 목숨을 건지고 나니 사진이 아깝다. 이사건 이후 조지타운까지는 몽둥이나 아니면 돌멩이를 반드시 지참하였으며 더욱 주위경계를 하였다.1
알비나에서 생긴일
수리남의 알비나에서 생긴일.
티파니에서나 이탈리아에서 생긴일이 아니다.
남미의 수리남 알비나는 프랑스 가이아나와 강을 사이에 두고있는 300가구 남짓한 자그마한 도시이다.
그래도 입구에 있는 부서진 로터리에 '알비나에 온것을 환영한다'라는 글도 적혀있다.
파나바리보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140킬로 거리를 4일 걸려서 도달하였었다.
우기철이라 비도 자주 오는데 왼쪽어깨를 쓰지 못하니 밤낮으로 걷고 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깁스는 안돼고 커다란 압박파스로 어깨수술 부위를 압박하는 방법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팔을 거는 천을 둘러 무게로 오는 고통을 줄여야 했다.
그나마 사람이 많은 마을이나 도시를 지날때에는 사용하지 않아야 했다.
몸이 편치 않은 것을 알고 공격목표물이 될것을 우려하여 정상인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알비나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는 수술하여 꼬맨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나름대로는 주의를 하였지만 아마도 무리를 하여 꼬맨자리가 터졌던 것이다.
붕대를 적신 피는 옷까지 적셨다.
그런데 밤새 이슬비는 내려서 상처부의는 2차 감염을 염려 하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기떼마저 밤마다 극성이다.
특히 손등, 귀와 엉덩이 부위는 남미 모기들이 선호하는 부위이다.
남미 모기의 식성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모기와 다르다.
한국인이 특히 삼겹살을 즐기듯 이곳 남미모기의 남다른 식성을 탓할바는 아니었다.
매일 엉덩이는 두부살처럼 부어올랐다.
더군다나 한쪽팔이 불편하여 긁는 것도 어렵다.
혼자 중얼거리기를 '치사한 모기놈들!"
환자에게 이토록 무자비하게 대하다니...
그냥 가려움증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 어디 뜻대로 되어야지.
그런데 한번 손을 대어 긁으면 긁을 수록 더 가려운것이 남미 모기나 무뜨가 물은 자리이다.
펄펄 뛰도록 가렵다보니 긁는 쾌감(?)이 뇌속까지 전달되곤 한다.
결국 긁은 자리는 벗겨지고 피가나고 따가운 과정으로 진행이 된다.
아주 급하면 모기장을 꺼내어 몸에 둘르고 동이 트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정도는 각오를 하고 떠났다.
염려는 수술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영양상태가 떨어진 상황이라서 물로 인한 질병이나, '뎅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이미 수없이 모기에 물리며 4차례 말라리아에 걸렸던 체험이 있었다.
그리고 파라과이에서 뎅기에 걸려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었었다.
이제 뎅기정도는 들어와도 나를 쓰러트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자신하고 있었다.
피부도 어려서부터 좋았다.
여드름 한번 나지않은 피부이고 염증으로 고생한적도 없었다.
수술을 많이 받았었지만 이차감염이 일어난적도 없다.
다치거나 긁어서 벗겨져도 감염없이 잘도 아물었다.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
머리만 이상이 없다면 모두 감사다!
몸이 이상이 없을때는 2명정도가 위협을 하여도 걱정이 없었으나 수술후 40여일은 한팔을 쓰지 못한다.
아니 잡아당기면 다시 빠질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누군가의 공격이 심히 신경에 거슬렸다.
그나마 알비나에 도착하였을때까지는 아무일이 생기지 않아 한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프랑스 가이아나 까옌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때 문제가 생겼다.
어느국가나 길이든 두번가게 되는 길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고 낯설지가 않다.
생로랑에서 아침일찍 소형보트를 타고 알비나에 도착하였다.
한팔이지만 자전거를 하루 100킬로는 가는 정도로 몸이 호전되었다.
그런데 시내를 관통하면서 이상한 징조를 느꼈다.
그지역에 사는 듯한 젊은 청년 두명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일부러 중국인 슈퍼앞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약 5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수시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시간을 너무 지체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자전거를 끌고 시내의 다른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따돌리기로 하였다.
도로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그들의 추적을 피하려 하였다.
더이상 그들이 보이지 않아 따돌렸다고 생각을 하고 파나바리보로 가는 다음도시인 몽고를 향하여 움직였다.
점심무렵이었고, 태양도 황금빛으로 눈이 부셨다.
얼마간은 걸어서 도로를 따라 가며 생각에 잠겼었다.
몇킬로미터 정도를 알비나에서 벗어 났을때였다.
썬팅을 한 승용차 한대가 맞은편으로 다가와 섰다.
정차하는 차로만 생각을 했지 다른 의심은 없었다.
그리고 청년이 한명 차에서 내려 나를 향하여 서너걸음 걸어왔다.
나를향해 오던 청년이 한걸음정도 앞에 다거서면서 '번쩍'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몸을 왼쪽으로 목을 돌렸는데, 커다란 칼날이 나의 오른쪽 목쪽으로 지나갔다.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하고 당하는 순간이었다.
왼쪽어깨가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었고 오른팔만 힘이 있는 상황이었다.
놀래서 머리끝이 곤두섰다.
그렇다! 그놈들이 쫓아왔구나.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서는 비상용 몽둥이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다.
웃주머니에 카메라가 아주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몸을 피하면서 상대방 얼굴을 향하여 날린것이 나에게 유일한 무기인 카메라였다.
그리고 자전거는 포기한채 가방만들고 가까운 민가를 향해 달렸다.
얼마후 그놈들은 자전거를 치면서 어디론가 달렸다.
번호판을 머리에 넣고 자동차 색과 브랜드를 기억하였다.
푸른색 도요타로 번호는 '04-55 UP'
아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심장이 마구 뛰었으며 서둘러 경찰서를 찾아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경찰에 보고를 하였다.
경찰들은 장총에 실탄을 장전한 후 출동을 하였으며, 나는 잠시 경찰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만히 생각을 하고 앉아있으니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칼에 맞지않았다는 것이...
나중에 현지인들 이야기를 들으니 총이나 칼에 맞아 죽는일이 비일비재한 지역이란다.
그리고 알비나를 떠나는 날에도 통신사 직원이 칼에 목을 맞아 죽고 수금한 돈을 모두 빼았겼단다.
나중에 경찰이 혐의 차량을 끌고와 수색을 하니 트렁크에서 식칼 3자루와 회칼 1자루가 나왔다.
경찰말로는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으려 하고 있으나 범인들이 강건너 생로랑쪽으로 도망을 쳤을 것이라 시간이 걸린다라는 것이었다.
나의 종합적 검토로는 경찰이나 갱이나 한통속이라는 결론이 났다.
범인과 경찰이 공생을 한다?
50:50의 분배로....
목숨을 건지고 나니 사진이 아깝다.
이사건 이후 조지타운까지는 몽둥이나 아니면 돌멩이를 반드시 지참하였으며 더욱 주위경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