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2월 28일. 경북고,대구고,대구사대부고 학생들은 데모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팻말과 구호는 -9;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9; 였는데, 이는 그 날 대구에서 민주당 정부통령후보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못가게하려고 28일이 일요임에도 불구하고 등교를 지시한 자유당과 이승만에 대한 시위였다. 이 시위는 54년 11월의 사사 오입 개헌부터, 수많은 부정과 폭력을 일삼으며 때로는 경찰로 때로는 정치폭력배들을 동원해 무력으로써 시민들을 진압한 독재자에 대한 첫 반기였다.
이를 시작으로, 3월 1일부터 3월 15일까지는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부산동아고와 대전고등을 시작으로 번진 데모는 서울,대전,수원,인천,마산,부산,충주,포황,광주까지 이어졌으며 학생들의 구호도 -9;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9; 에서 -9;학생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뭉치자-9; -9;부정선거 물러나라-9; 등으로 바뀌었다.
15일 선거 당일에는 데모가 한층 더 심해졌다. 이날 선거는 내무부장관 최인규의 지시로 인해 40% 사전투표, 반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야당 참관인 축출등 할수있는 모든 방법으로 부정선거를 치루고 정치폭력배까지 동원하여 선거를 끝마친다. 이에 마산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벌였고 민주당은 선거포기를 선언한다. 마산의 시민들까지 참여한 민주당사앞의 학생 데모는 정치폭력배와 경찰들이 한데 어우려져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학생과 시민에게 발포를 하기에 이른다.이 장면을 목격한 시민들에 의해 이 날의 사건들이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으며 마산 시민들의 흥분은 극에 달하게 된다.
60년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의 낚시꾼의 낚싯줄에는 대어가 아닌 사람이 낚아올려졌다. 그 시신은 마산상고생인 16살 김주열 학생이었는데 그는 눈에 최루탄이 박혀져 있었다. 3월 15일 선거 당일 데모에서 행방불명이 된 김주열군이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자 시민들의 분노는 폭팔하였고 학생들은 -9;불법선거 무효-9; -9;재선거 실시-9; -9;학살을 자행한 경관들 처단-9; 을 외치며 데모를 벌인다.
18일엔 고려대학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질서정연한 시위를 마치고 귀가를 하다가 유지광이 이끄는 정치폭력배의 공격을 받아 피를 흘리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19일에는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경무대 앞에서 시위를 하던 도중 비상 계엄이 선포되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향해 발포가 시작된다. 이 날에는 183명의 사상자와 수천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결국 25일 전국 27개의 대학 교수들이 -9;4.19에 쓰러져간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9;는 구호를 외치며 벌인 시가 행진 시위로 26일 이승만은 대통령직 사임 성명을 발표한다. 이로써 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의 12년이 끝이 난다.
4.19 혁명은 그 혁명세력이 어린 학생들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개입도 없었으며 조직적인 계획이나 목표도 없었다. 그저 불의를 못참고 정의를 수호하고자 일어난 학생들의 데모였으며 시위였고 혁명이었다. 시작도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었으며 그 진행과 마지막까지 항상 제일 앞에서 싸운것은 학생들이었으며 심지어는 수송국민학교생들을 중심으로한 국민학생 어린이들까지 -9;오빠 언니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9; 라는 구호로 데모를 벌였다.
나아가서는 4.19 혁명으로 무너진 독재정권 뒤를 이은 민주당 정권때문에 정치활동이 자유로워지자 혁명의 주력인 대학생들은 남과북의 중립화 통일까지 꿈꾼다. 전국 17개 대학 학생대표가 결성한 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은 남북 학생회담을 5월에 추진하고 통일 운동을 대중시켜 나갔고, 그들은 -9;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세!-9; 를 외치며 통일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갔다. 하지만 이는 결국 5.16쿠데타로 물거품이 되버린다.
이 외에도 우리의 역사속에서는 3.1운동과 6.25전쟁등 수많은 나라의 위기때마다 깨어있는 학생들이 흘린 핏자국들을 곳곳에서 발견할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학생들 모두가 피를 흘려 지킨 자유의 기반아래에 살고있는 지금의 학생들은 어떠한가.
밀양에서는 그 수를 헤아릴수 없는 많은 남학생들이 어린 자매를 1년간이나 성폭행을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외에도 점차 연령대를 낯추어가는 성폭행 사건은 끊이질 않고 있고, 나아가서 어린 학생들의 살인사건도 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따라해 보고 싶어서 도끼로 친형을 찍어죽인 동생의 이야기도 이젠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엄청나고 놀라운, 또는 비민주적인 일이 일어나도 취업준비에 바쁜 학생들에겐 그저 먼곳의 불상사일뿐이다.
투표권의 확대로 기존 만20세 이상에서 만19세 이상으로 한살 어린 학생들이 투표를 행사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대부분은 자신에게 투표권이 생긴지도 아직도 모르고 있으며, 게 중에는 소중한 투표권을 다른사람의 의도에 그냥 따라간다거나, 장난질로 재미있는사람을 뽑는 등 생각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과연 그 4월 19일 혁명의 아들들이 맞는걸까? 불과 50여년만에 그 정의의 불씨들은 세대가 교체되는 동안 모두 꺼져버린것인가..?
4.19 혁명의 비극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었던 3.15 부정선거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수 있는 투표권이 있으며 시간이 있다. 이에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아니 부탁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져라.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뭐가 옳은것인지 마주하면서 살아라.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을 가지고 투표에 참여하라. 이 땅에 살면서 정치에 영향 없는이가 있을까?
그 자욱한 연기의 4월이 다시 왔다. 그리고 올해 4월에는 18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글의 마지막으로 4.19 혁명을 나서며 서울대학교에서 낭독했던 선언문을 덧붙이며, 다시 한번 4월 국회의원선거에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를 부탁한다.
긴 칠흑과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학생들이여 깨어나라
1960년 2월 28일. 경북고,대구고,대구사대부고 학생들은 데모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팻말과 구호는 -9;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9; 였는데,
이는 그 날 대구에서 민주당 정부통령후보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못가게하려고 28일이 일요임에도 불구하고 등교를 지시한 자유당과 이승만에 대한 시위였다.
이 시위는 54년 11월의 사사 오입 개헌부터, 수많은 부정과 폭력을 일삼으며 때로는 경찰로 때로는 정치폭력배들을 동원해 무력으로써 시민들을 진압한 독재자에 대한 첫 반기였다.
이를 시작으로, 3월 1일부터 3월 15일까지는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부산동아고와 대전고등을 시작으로 번진 데모는 서울,대전,수원,인천,마산,부산,충주,포황,광주까지 이어졌으며 학생들의 구호도 -9;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9; 에서 -9;학생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뭉치자-9; -9;부정선거 물러나라-9; 등으로 바뀌었다.
15일 선거 당일에는 데모가 한층 더 심해졌다.
이날 선거는 내무부장관 최인규의 지시로 인해 40% 사전투표, 반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야당 참관인 축출등 할수있는 모든 방법으로 부정선거를 치루고 정치폭력배까지 동원하여 선거를 끝마친다.
이에 마산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벌였고 민주당은 선거포기를 선언한다. 마산의 시민들까지 참여한 민주당사앞의 학생 데모는 정치폭력배와 경찰들이 한데 어우려져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학생과 시민에게 발포를 하기에 이른다.이 장면을 목격한 시민들에 의해 이 날의 사건들이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으며 마산 시민들의 흥분은 극에 달하게 된다.
60년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의 낚시꾼의 낚싯줄에는 대어가 아닌 사람이 낚아올려졌다.
그 시신은 마산상고생인 16살 김주열 학생이었는데 그는 눈에 최루탄이 박혀져 있었다. 3월 15일 선거 당일 데모에서 행방불명이 된 김주열군이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자 시민들의 분노는 폭팔하였고 학생들은 -9;불법선거 무효-9; -9;재선거 실시-9; -9;학살을 자행한 경관들 처단-9; 을 외치며 데모를 벌인다.
18일엔 고려대학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질서정연한 시위를 마치고 귀가를 하다가 유지광이 이끄는 정치폭력배의 공격을 받아 피를 흘리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19일에는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경무대 앞에서 시위를 하던 도중 비상 계엄이 선포되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향해 발포가 시작된다. 이 날에는 183명의 사상자와 수천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결국 25일 전국 27개의 대학 교수들이 -9;4.19에 쓰러져간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9;는 구호를 외치며 벌인 시가 행진 시위로 26일 이승만은 대통령직 사임 성명을 발표한다. 이로써 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의 12년이 끝이 난다.
4.19 혁명은 그 혁명세력이 어린 학생들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개입도 없었으며 조직적인 계획이나 목표도 없었다.
그저 불의를 못참고 정의를 수호하고자 일어난 학생들의 데모였으며 시위였고 혁명이었다.
시작도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었으며 그 진행과 마지막까지 항상 제일 앞에서 싸운것은 학생들이었으며
심지어는 수송국민학교생들을 중심으로한 국민학생 어린이들까지 -9;오빠 언니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9; 라는 구호로 데모를 벌였다.
나아가서는 4.19 혁명으로 무너진 독재정권 뒤를 이은 민주당 정권때문에 정치활동이 자유로워지자 혁명의 주력인 대학생들은 남과북의 중립화 통일까지 꿈꾼다. 전국 17개 대학 학생대표가 결성한 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은 남북 학생회담을 5월에 추진하고 통일 운동을 대중시켜 나갔고, 그들은 -9;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세!-9; 를 외치며 통일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갔다. 하지만 이는 결국 5.16쿠데타로 물거품이 되버린다.
이 외에도 우리의 역사속에서는 3.1운동과 6.25전쟁등 수많은 나라의 위기때마다 깨어있는 학생들이 흘린 핏자국들을 곳곳에서 발견할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학생들 모두가 피를 흘려 지킨 자유의 기반아래에 살고있는 지금의 학생들은 어떠한가.
밀양에서는 그 수를 헤아릴수 없는 많은 남학생들이 어린 자매를 1년간이나 성폭행을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외에도 점차 연령대를 낯추어가는 성폭행 사건은 끊이질 않고 있고, 나아가서 어린 학생들의 살인사건도 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따라해 보고 싶어서 도끼로 친형을 찍어죽인 동생의 이야기도 이젠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엄청나고 놀라운, 또는 비민주적인 일이 일어나도 취업준비에 바쁜 학생들에겐 그저 먼곳의 불상사일뿐이다.
투표권의 확대로 기존 만20세 이상에서 만19세 이상으로 한살 어린 학생들이 투표를 행사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대부분은 자신에게 투표권이 생긴지도 아직도 모르고 있으며, 게 중에는 소중한 투표권을 다른사람의 의도에 그냥 따라간다거나, 장난질로 재미있는사람을 뽑는 등 생각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과연 그 4월 19일 혁명의 아들들이 맞는걸까? 불과 50여년만에 그 정의의 불씨들은 세대가 교체되는 동안 모두 꺼져버린것인가..?
4.19 혁명의 비극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었던 3.15 부정선거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수 있는 투표권이 있으며 시간이 있다.
이에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아니 부탁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져라.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뭐가 옳은것인지 마주하면서 살아라.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을 가지고 투표에 참여하라.
이 땅에 살면서 정치에 영향 없는이가 있을까?
그 자욱한 연기의 4월이 다시 왔다.
그리고 올해 4월에는 18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글의 마지막으로 4.19 혁명을 나서며 서울대학교에서 낭독했던 선언문을 덧붙이며, 다시 한번 4월 국회의원선거에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를 부탁한다.
긴 칠흑과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