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모티브가 된 ‘홍길동’은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영웅이다. 홍정은-미란 자매 작가는 만화적 감수성에 기반에 둔 특유의 상상력으로 원전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파격과 진중함을 오가는 불균질한 매력을 보여준다. '쾌도 홍길동’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살아가던 홍길동(강지환)이란 인물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영웅신화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특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 시대 가치관과 조우한 인물들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욕구를 최대한 반영했다는 점에서 홍정은-미란 자매 작가의 야심이 읽혀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쾌도 홍길동’을 집필하며 어느 시대에도 세상을 노리고 겨눌 홍길동이 존재한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홍정은-미란 자매 작가를 만났다.
#. '쾌도 홍길동'은 국민들의 이야기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영웅 홍길동을 선택했다. 꽤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던 작품이었다고 들었는데 집필계기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친숙한 영웅 홍길동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원전의 캐릭터처럼 신출귀몰한 능력을 소유한 정의의 사도가 아닌 다소 삐딱하긴 해도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한 홍길동이란 인물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변모하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다. 그 이야기를 비주얼적으로도 새롭게 풀어 보고 싶었고.
-이야기는 원작을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파격과 진중함 사이를 오간다. 형식적으로도 다양한 실험이 감행됐는데 특히 극 초반 음악이나 미술은 이야기보다 더 과감하게 나간 모험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신선하다 혹은 낯설다는 엇갈린 평가를 낳기도 했는데.
▲처음으로 시도한 부분이 많아서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에 이 같은 작품이 다시 나오게 되면 지금보다 더 발전된 모습일 꺼라 생각한다. 꼭 우리가 아니더라도 ‘쾌도 홍길동’이 한 번 과감하게 날라 다녔으니 지금보다 더 색다른 사극이 나오지 않을까.
-1.2회 분이 비주얼적으로 좀 엇갈린 평가를 낳기도 했지만 연출을 맡은 이정섭 PD의 열정과 욕심이 대단했다는 것은 작품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열정적이고 욕심도 많으신 분이다. 아시겠지만 미니시리즈가 후반에 접어든 이후에도 사람을 와이어에 매달 수 있는 열정을 보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조그만 소품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어려운 협찬을 직접 뚫으러 다니실 만큼 많은 공을 들이셨다. 작가 입장에서 안타까웠던 것은 드라마가 한 겨울에 편성이 잡히다보니 감독님과 배우, 스텝들 모두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것이다. 잠도 거의 못 자고 전국 팔도 가장 추운 곳에 지어진 세트장에서 혹한과 싸우며 촬영했다. 밥도 늘 추운데서 먹다보니 번갈아 가며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고 하더라.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이 더 받혀주지 못 해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찍어주신 감독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홍자매표 드라마답게 ‘쾌도 홍길동’ 역시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고 돌파하는 힘이 느껴진다.
▲길동이를 제외한 이녹이나 창휘같은 캐릭터는 원전에 없는 인물들이다. 물론 길동이도 원전과는 다른 현대적인 인물로 재창조됐다. 영웅이라 할 수 없는 평범한 모습에 ‘알게 뭐야’하며 세상에 무심한 듯 까칠하고 삐딱한 시선을 견지하는 길동이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 너무 맑아서 멍청해 보이는 이녹의 경우 여자도 남자도 아닌 또 아이도 어른도 아닌 모호함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영창대군이 모티브가 된 창휘는 좀 더 전형적이긴 하지만 하나를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사람으로 그렸다. 그런 창휘의 맹목적인 목표나 믿음이 흔들렸을 때 어떻게 변해가는 지 보여주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같이 가고자 했던 길동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창휘, 그런 창휘의 세상을 끝까지 견제하며 지켜보고자 했던 길동의 선택을 함께 보여주려 한 것이다.
-길동과 창휘가 연대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그려지는 동안은 일부 시청자들 사이 민중의 영웅 홍길동의 성장담이 아닌 좋은 왕제로 거듭나는 창휘의 성장담이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둘의 연대가 깨지는 순간부터 ‘쾌도 홍길동’이 의도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더라.
▲이 드라마는 분명 홍길동의 이야기다. 창휘는 왜 홍길동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대립점에 있는 사람이다. 시청자 분들이 오해를 하셨던 부분 중에 하나가 ‘쾌도 홍길동’을 ‘이산’이나 ‘주몽’처럼 왕을 만드는 드라마라 생각하셨던 점이다. ‘쾌도 홍길동’은 창휘가 좋은 왕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다. ‘쾌도 홍길동’은 길동이가 왕을 만드는 이야기다. 또 자신들이 만든 왕이 올바른 정치를 행하도록 백성과 함께 견제하고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시대에도 세상을 노리고 겨눌 홍길동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다. 때문에 '쾌도 홍길동'은 창휘가 대통령이 되가는 이야기가 아닌 창휘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길동이 즉 우리 국민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연대와 대립을 반복한 길동과 창휘 사이에 이녹이 있다. 이녹은 두 사람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지켜주고 싶은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녹이는 창휘나 길동이가 지키고 보호하고자 하는 백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길동과 창휘가 선택한 방식은 다르다. 길동이 이녹과 서로를 존경하며 항상 같이 가는 사람이었다면 창휘는 이녹이를 지켜주고자 했고 늘 뭔가 주려 했으나 이녹과 자신을 동급으로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녹이 길동에게는 맹목적으로 갈 수 있어도 창휘에겐 벽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 사이엔 뛰어넘을 수 없는 선천적 계급성이 존재한다. 시청자들이 이녹이 부분을 답답하게 왜 그러냐고 불만을 표하시기도 했는데 저희가 좀 잘 못 그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세 사람의 관계는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길동과 창휘 사이 이녹이란 지켜주고 싶은 공동의 대상이 존재했고 지금의 왕을 친다는 동일한 목표로 일정의 연대가 가능했음에도 이들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길동과 창휘 두 사람이 종국엔 또 다른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을 드라마 안에서 처음부터 계속 깔아주고 가려 했는데 그런 부분이 멜로에 묻혀 잘 안 살았던 것 같아 아쉽다. 생각보다 멜로의 양이 많진 않았는데 우리 배우들이 너무 예뻐서 멜로가 더 부각돼 보였던 것 같다.
#. 율도국의 왕 홍길동은 없다
-‘쾌도 홍길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각 인물들 사이 일정의 교집합이 존재하고 그들이 각기 어떤 선택을 했든 시청자들이 이해나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길동과 창휘의 댓구만큼 광휘와 창휘의 댓구도 흥미로웠다.
▲광휘가 나쁜 왕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광휘 역시 조선이란 나라의 위선과 부조리로 인해 상처 받은 인물이다. 또 그는 그런 상처를 딛고 일어설 만큼 강하지 못 했기에 스스로 무너졌다. 창휘는 그런 광휘보다 더 독한 사람이다. 광휘가 가지 못 했던 부분을 넘어섰다. 그 기준이 된 것이 바로 사인검의 반전이다. 이를 기점으로 창휘는 전제 왕정을 기반에 두고 더 강력한 절대 군주가 되고자 한다. 창휘가 이 나라의 왕이 되겠다는 명분은 섰지만 이로 인해 길동이에겐 광휘보다 더 먼 사람이 되었다.
-광휘는 많은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다. 특히 광휘 역을 맡은 조희봉씨는 희비극을 절묘하게 녹여내며 연기적으로도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 내더라. 자신의 세상을 지켜주고자 했던 홍판서에게 사약을 내린 후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감정적으로도 큰 울림을 전했다.
▲광휘는 말 그대로 미친왕이고 조금만 잘 못 하면 정말 이상하게 흐를 수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캐스팅 당시 감독님이 광휘역에 왕 같은 이미지의 배우들을 이야기 하시길래 그냥 왕이 아닌 미친왕임을 강조하면서 연기를 정말 잘 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조희봉씨를 캐스팅해 오셨다. 정말 잘 된 캐스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광휘의 광기와 슬픔, 분노가 너무 잘 표현됐다. 독백도 많았는데 혼자서 오버돼 보일 수 있는 어려운 연기를 너무 잘 소화하시더라. 광휘는 정말 저희가 생각했던 캐릭터보다 훨씬 잘 나온 것 같다.
-23회 길동의 대사들도 그렇지만 드라마가 원전보다 상당히 급진적이라 느껴졌다. 사실 허균의 ‘홍길동전’은 당대 혁명적인 시각을 설파했다 하지만 결말은 용두사미에 가깝다. 조선이란 사회는 바뀐 것이 없고 홍길동은 율도국이란 이상국가의 왕이 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한풀이로 끝난 측면도 크고.
▲우리는 처음부터 원전의 결말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원전의 결말대로라면 길동이는 군림하는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 같이 싸우는 백성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들이 좋아하는 홍길동은 낮은 사람과 함께 싸워주는 정의의 사도 같은 영웅이다. 그래서 우리는 율도국의 왕이 되는 홍길동은 그리고 싶지 않다. ‘쾌도 홍길동’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홍길동의 모습을 최대한 극대화했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홍길동은 마지막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낮은 사람들 속에 늘 함께 하는 것이 활빈당이란 극중 대사처럼 그런 사람들의 희망으로 남는 이가 길동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원전과 다른 길을 선택한 ‘쾌도 홍길동’의 야심이 읽혀진다.
▲그러나 어떻게 싸워야 하고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진 않았다. 그것은 각자가 찾아가야 할 부분이기에 그것을 작품 안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단 지금 현대에도 홍길동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 다는 것,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힘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은 진보라 얘기하면 멍청이가 되는 세상이다. 뭔가 바꿔보고자 하는 의지도 크지 않은 것 같다.
-홍길동전의 진지한 리메이크란 평이 있듯이 중반 이후 재기발랄함과 경쾌함이 줄고 사뭇 진중한 드라마로 흐른 것 같다. 어둡고 무겁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홍자매표 드라마에서 새드 엔딩이 등장한 것도 처음이고.
▲초반 코미디가 생각했던 것 보다 좀 오버돼서 나왔다. 아무래도 앞쪽이 너무 붕 떠 있다 보니 정극과 부조화가 있어 뒤로 갈수록 의도했던 것 보다 코미디가 좀 적어졌다. 엔딩의 경우 일부 시청자들이 1회 프롤로그를 보고 다른 결말을 상상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장면은 말 그대로 프롤로그일 뿐이고 지금의 결말에서 바뀐 것은 전혀 없다. 배우들에게도 첫 리딩 때 지금의 결말을 충분히 얘기해 줬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결말이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창휘는 자기가 지키는 세상의 왕으로 남은 것이고 이녹이는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이 어디라는 것을 명확히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길동이는 죽었지만 굉장히 귀엽고 아름다운 상태에서 행복하게 멍청이를 알라뷰하면서 살다간다. 사실 우리 드라마에서 둘이 살림을 차린 것은 처음 나온다.(웃음) 둘다 워낙 닭살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손 만 잡았다하면 바로 그 회 안에 헤어지고 둘이 맺어진다 싶으면 드라마가 끝났는데 이번 작품에선 마지막에 길동과 이녹이 아주 예쁘게 살았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나온다. 코믹과 정극이 가장 잘 석여서 만들어 진 것이 마지막 회인 것 같다.
조은영 helloe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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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 홍길동 “
홍자매 “‘쾌도 홍길동’은
왕을 만들고 견제하는 국민들의 이야기”(인터뷰①)
[뉴스엔 조은영 기자]
26일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모티브가 된 ‘홍길동’은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영웅이다. 홍정은-미란 자매 작가는 만화적 감수성에 기반에 둔 특유의 상상력으로 원전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파격과 진중함을 오가는 불균질한 매력을 보여준다. '쾌도 홍길동’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살아가던 홍길동(강지환)이란 인물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영웅신화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특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 시대 가치관과 조우한 인물들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욕구를 최대한 반영했다는 점에서 홍정은-미란 자매 작가의 야심이 읽혀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쾌도 홍길동’을 집필하며 어느 시대에도 세상을 노리고 겨눌 홍길동이 존재한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홍정은-미란 자매 작가를 만났다.
#. '쾌도 홍길동'은 국민들의 이야기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영웅 홍길동을 선택했다. 꽤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던 작품이었다고 들었는데 집필계기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친숙한 영웅 홍길동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원전의 캐릭터처럼 신출귀몰한 능력을 소유한 정의의 사도가 아닌 다소 삐딱하긴 해도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한 홍길동이란 인물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변모하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다. 그 이야기를 비주얼적으로도 새롭게 풀어 보고 싶었고.
-이야기는 원작을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파격과 진중함 사이를 오간다. 형식적으로도 다양한 실험이 감행됐는데 특히 극 초반 음악이나 미술은 이야기보다 더 과감하게 나간 모험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신선하다 혹은 낯설다는 엇갈린 평가를 낳기도 했는데.
▲처음으로 시도한 부분이 많아서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에 이 같은 작품이 다시 나오게 되면 지금보다 더 발전된 모습일 꺼라 생각한다. 꼭 우리가 아니더라도 ‘쾌도 홍길동’이 한 번 과감하게 날라 다녔으니 지금보다 더 색다른 사극이 나오지 않을까.
-1.2회 분이 비주얼적으로 좀 엇갈린 평가를 낳기도 했지만 연출을 맡은 이정섭 PD의 열정과 욕심이 대단했다는 것은 작품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열정적이고 욕심도 많으신 분이다. 아시겠지만 미니시리즈가 후반에 접어든 이후에도 사람을 와이어에 매달 수 있는 열정을 보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조그만 소품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어려운 협찬을 직접 뚫으러 다니실 만큼 많은 공을 들이셨다. 작가 입장에서 안타까웠던 것은 드라마가 한 겨울에 편성이 잡히다보니 감독님과 배우, 스텝들 모두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것이다. 잠도 거의 못 자고 전국 팔도 가장 추운 곳에 지어진 세트장에서 혹한과 싸우며 촬영했다. 밥도 늘 추운데서 먹다보니 번갈아 가며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고 하더라.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이 더 받혀주지 못 해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찍어주신 감독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홍자매표 드라마답게 ‘쾌도 홍길동’ 역시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고 돌파하는 힘이 느껴진다.
▲길동이를 제외한 이녹이나 창휘같은 캐릭터는 원전에 없는 인물들이다. 물론 길동이도 원전과는 다른 현대적인 인물로 재창조됐다. 영웅이라 할 수 없는 평범한 모습에 ‘알게 뭐야’하며 세상에 무심한 듯 까칠하고 삐딱한 시선을 견지하는 길동이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 너무 맑아서 멍청해 보이는 이녹의 경우 여자도 남자도 아닌 또 아이도 어른도 아닌 모호함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영창대군이 모티브가 된 창휘는 좀 더 전형적이긴 하지만 하나를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사람으로 그렸다. 그런 창휘의 맹목적인 목표나 믿음이 흔들렸을 때 어떻게 변해가는 지 보여주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같이 가고자 했던 길동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창휘, 그런 창휘의 세상을 끝까지 견제하며 지켜보고자 했던 길동의 선택을 함께 보여주려 한 것이다.
-길동과 창휘가 연대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그려지는 동안은 일부 시청자들 사이 민중의 영웅 홍길동의 성장담이 아닌 좋은 왕제로 거듭나는 창휘의 성장담이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둘의 연대가 깨지는 순간부터 ‘쾌도 홍길동’이 의도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더라.
▲이 드라마는 분명 홍길동의 이야기다. 창휘는 왜 홍길동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대립점에 있는 사람이다. 시청자 분들이 오해를 하셨던 부분 중에 하나가 ‘쾌도 홍길동’을 ‘이산’이나 ‘주몽’처럼 왕을 만드는 드라마라 생각하셨던 점이다. ‘쾌도 홍길동’은 창휘가 좋은 왕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다. ‘쾌도 홍길동’은 길동이가 왕을 만드는 이야기다. 또 자신들이 만든 왕이 올바른 정치를 행하도록 백성과 함께 견제하고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시대에도 세상을 노리고 겨눌 홍길동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다. 때문에 '쾌도 홍길동'은 창휘가 대통령이 되가는 이야기가 아닌 창휘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길동이 즉 우리 국민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연대와 대립을 반복한 길동과 창휘 사이에 이녹이 있다. 이녹은 두 사람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지켜주고 싶은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녹이는 창휘나 길동이가 지키고 보호하고자 하는 백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길동과 창휘가 선택한 방식은 다르다. 길동이 이녹과 서로를 존경하며 항상 같이 가는 사람이었다면 창휘는 이녹이를 지켜주고자 했고 늘 뭔가 주려 했으나 이녹과 자신을 동급으로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녹이 길동에게는 맹목적으로 갈 수 있어도 창휘에겐 벽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 사이엔 뛰어넘을 수 없는 선천적 계급성이 존재한다. 시청자들이 이녹이 부분을 답답하게 왜 그러냐고 불만을 표하시기도 했는데 저희가 좀 잘 못 그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세 사람의 관계는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길동과 창휘 사이 이녹이란 지켜주고 싶은 공동의 대상이 존재했고 지금의 왕을 친다는 동일한 목표로 일정의 연대가 가능했음에도 이들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길동과 창휘 두 사람이 종국엔 또 다른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을 드라마 안에서 처음부터 계속 깔아주고 가려 했는데 그런 부분이 멜로에 묻혀 잘 안 살았던 것 같아 아쉽다. 생각보다 멜로의 양이 많진 않았는데 우리 배우들이 너무 예뻐서 멜로가 더 부각돼 보였던 것 같다.
#. 율도국의 왕 홍길동은 없다
-‘쾌도 홍길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각 인물들 사이 일정의 교집합이 존재하고 그들이 각기 어떤 선택을 했든 시청자들이 이해나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길동과 창휘의 댓구만큼 광휘와 창휘의 댓구도 흥미로웠다.
▲광휘가 나쁜 왕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광휘 역시 조선이란 나라의 위선과 부조리로 인해 상처 받은 인물이다. 또 그는 그런 상처를 딛고 일어설 만큼 강하지 못 했기에 스스로 무너졌다. 창휘는 그런 광휘보다 더 독한 사람이다. 광휘가 가지 못 했던 부분을 넘어섰다. 그 기준이 된 것이 바로 사인검의 반전이다. 이를 기점으로 창휘는 전제 왕정을 기반에 두고 더 강력한 절대 군주가 되고자 한다. 창휘가 이 나라의 왕이 되겠다는 명분은 섰지만 이로 인해 길동이에겐 광휘보다 더 먼 사람이 되었다.
-광휘는 많은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다. 특히 광휘 역을 맡은 조희봉씨는 희비극을 절묘하게 녹여내며 연기적으로도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 내더라. 자신의 세상을 지켜주고자 했던 홍판서에게 사약을 내린 후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감정적으로도 큰 울림을 전했다.
▲광휘는 말 그대로 미친왕이고 조금만 잘 못 하면 정말 이상하게 흐를 수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캐스팅 당시 감독님이 광휘역에 왕 같은 이미지의 배우들을 이야기 하시길래 그냥 왕이 아닌 미친왕임을 강조하면서 연기를 정말 잘 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조희봉씨를 캐스팅해 오셨다. 정말 잘 된 캐스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광휘의 광기와 슬픔, 분노가 너무 잘 표현됐다. 독백도 많았는데 혼자서 오버돼 보일 수 있는 어려운 연기를 너무 잘 소화하시더라. 광휘는 정말 저희가 생각했던 캐릭터보다 훨씬 잘 나온 것 같다.
-23회 길동의 대사들도 그렇지만 드라마가 원전보다 상당히 급진적이라 느껴졌다. 사실 허균의 ‘홍길동전’은 당대 혁명적인 시각을 설파했다 하지만 결말은 용두사미에 가깝다. 조선이란 사회는 바뀐 것이 없고 홍길동은 율도국이란 이상국가의 왕이 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한풀이로 끝난 측면도 크고.
▲우리는 처음부터 원전의 결말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원전의 결말대로라면 길동이는 군림하는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 같이 싸우는 백성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들이 좋아하는 홍길동은 낮은 사람과 함께 싸워주는 정의의 사도 같은 영웅이다. 그래서 우리는 율도국의 왕이 되는 홍길동은 그리고 싶지 않다. ‘쾌도 홍길동’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홍길동의 모습을 최대한 극대화했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홍길동은 마지막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낮은 사람들 속에 늘 함께 하는 것이 활빈당이란 극중 대사처럼 그런 사람들의 희망으로 남는 이가 길동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원전과 다른 길을 선택한 ‘쾌도 홍길동’의 야심이 읽혀진다.
▲그러나 어떻게 싸워야 하고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진 않았다. 그것은 각자가 찾아가야 할 부분이기에 그것을 작품 안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단 지금 현대에도 홍길동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 다는 것,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힘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은 진보라 얘기하면 멍청이가 되는 세상이다. 뭔가 바꿔보고자 하는 의지도 크지 않은 것 같다.
-홍길동전의 진지한 리메이크란 평이 있듯이 중반 이후 재기발랄함과 경쾌함이 줄고 사뭇 진중한 드라마로 흐른 것 같다. 어둡고 무겁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홍자매표 드라마에서 새드 엔딩이 등장한 것도 처음이고.
▲초반 코미디가 생각했던 것 보다 좀 오버돼서 나왔다. 아무래도 앞쪽이 너무 붕 떠 있다 보니 정극과 부조화가 있어 뒤로 갈수록 의도했던 것 보다 코미디가 좀 적어졌다. 엔딩의 경우 일부 시청자들이 1회 프롤로그를 보고 다른 결말을 상상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장면은 말 그대로 프롤로그일 뿐이고 지금의 결말에서 바뀐 것은 전혀 없다. 배우들에게도 첫 리딩 때 지금의 결말을 충분히 얘기해 줬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결말이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창휘는 자기가 지키는 세상의 왕으로 남은 것이고 이녹이는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이 어디라는 것을 명확히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길동이는 죽었지만 굉장히 귀엽고 아름다운 상태에서 행복하게 멍청이를 알라뷰하면서 살다간다. 사실 우리 드라마에서 둘이 살림을 차린 것은 처음 나온다.(웃음) 둘다 워낙 닭살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손 만 잡았다하면 바로 그 회 안에 헤어지고 둘이 맺어진다 싶으면 드라마가 끝났는데 이번 작품에선 마지막에 길동과 이녹이 아주 예쁘게 살았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나온다. 코믹과 정극이 가장 잘 석여서 만들어 진 것이 마지막 회인 것 같다.
조은영 helloe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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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www.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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