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해 가는 신앙 (엡 4:13-16)-설교원고

이중무200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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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해 가는 신앙 (엡 4:13-16)


정신과 의사 “네온 사울”, 「정서적 성숙」이라는 책에서 성숙한 사람의 생활양식


       (1) 성숙한 사람은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 성숙한 사람은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3) 성숙한 사람은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4) 성숙한 사람은 절대적인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5) 성숙한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도인 우리에게는 위의 5가지 성숙의 모습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기준의 성숙의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도의 성숙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말씀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은 없으면서 구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 신앙을 “티켓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티켓 신앙인은 구원과 천국 티켓을 얻는 것을 신앙의 전부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성도의 삶’은 무시하고 믿고 구원받는 것만 중시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좀 엉망으로 살아도 괜찮아.”


  그것은 구원과 은혜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성도답게 살려고 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공부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르칠 때 요절로 외우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티켓 신앙인들은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이 말씀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은 외면합니다.  그 다음 구절인 에베소서 2장 1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도록 구원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즉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행위가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내 삶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연약한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는 신앙의 성숙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성숙해 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성숙의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성도의 성숙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절).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5절 하).


  삶의 목표를 주님께 두고,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천국의 삶을 산다는 더 중요한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목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어떤 장벽이 있어도 예수님 닮아가려는 노력을 절대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기까지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어릴 때의 일을 벗어 버리고 장성한 어른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다닌 지 몇 십 년이 되고, 또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의 직분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릴 때의 어린아이는 좀 말썽을 피우고 미숙하더라도, 부모의 기쁨이요 즐거움이 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10년, 20년이 지났는데도 마냥 미숙한 상태라면 부모의 걱정거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모습으로 산다면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범사에 자라나기를 오늘도 원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정과 욕심을 이미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갈5:24).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한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14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미성숙한 성도는 이단에도 잘 빠지고, 세상 유행도 잘 탑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자체적인 힘을 가지고 세파를 헤쳐 나가는 동력배가 아니라, 바람과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돛단배입니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은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충성심이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고난의 바람과 파도를 이길 수 있는 성령님이 주시는 자체 동력이 있습니다.  최후 승리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것입니다.


2. 사랑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본문 15-16절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사랑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특별히 자기만 생각하던 태도를 버리고 남을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주로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철이 들면 사랑받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사랑은 성숙의 증거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1-2).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무엇보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낭비(소비, 소모)하는 것입니다(gastar).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는“왜 낭비하느냐?”고 마리아에게 화를 냈습니다.  사랑의 낭비의 의미를 알면 마리아처럼 되고, 그 의미를 모르면 가룟 유다처럼 됩니다.

  고후 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전부 낭비하셨습니다.  언제나 사랑엔 낭비가 있고 손해가 따릅니다.  사랑은 논리와 손익계산을 초월해야 할 수 있습니다.


  손해보고도 행복한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잃어버리고 소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신앙의 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위해 눈물과 재물, 젊음과 시간, 그리고 피와 땀과 에너지를 낭비해 본 체험이 있는 사람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대가를 치르는 신앙입니다.  신앙 안에서는 마리아처럼 계산이 없어야 합니다.  마리아의 사랑은 낭비할수록 행복이 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나의 모든 것을 드리고, 나의 생명까지 쏟아 부어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리아처럼 옥합을 깨고, 주님을 위해 전부를 낭비하고도 행복해 할 때 우리 교회는 부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사랑과 헌신엔 감동과 향기가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상식을 초월해서 자신의 옥합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 그 향기가 교회에 진동해서 서로가 힘을 얻게 되고, 그 향기를 하나님께서도 흠향하시고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도 행복한 사랑을 하고, 특별히 주님을 사랑해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대가를 치르는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숙한 모습을 대견하게 보시고, 손해를 본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3. 참된 것을 행해야 합니다.


  15절 상반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고 말씀했습니다. 

  ‘참되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힘은 ‘순수함’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조건적인 신앙생활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대가를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충분한 대가를 이미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은 어떤 대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입니다.  구원은 대가는 아니지만, 만약 구원을 대가로 친다면, 이것보다 더 큰 대가는 없을 것입니다.

 

  ***  다니엘의 세 친구였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

  그들은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살기 위해서, ‘한 번 쯤 우상에게 절한다고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나’ 하면서 넙죽 절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숨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더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머리속으로만 아는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늘 내 곁에 계셔서 나를 도와주시는 주님을 굳게 믿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달래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라도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너희들의 목숨은 살려 주겠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엎드려 절하라.  그렇지 않으면 여지없이 극렬히 타는 저 풀무 불 속에 너희들을 집어넣을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잡고, 협박하고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만일 왕이 우리를 저 풀무 불 속에 집어넣는다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우리를 건져 내실 것이며, 또한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설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불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지 않을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렇게 하나님만을 절대 의지하는 강건한 믿음이 우리 속에도 있어야 합니다.


  분한 마음이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군사들에게 평일보다도 칠 배나 더 뜨겁게 풀무 불을 달구라고 말하고, 그 속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던지라고 명했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속에 던져지게 되었는데, 어찌나 뜨거웠던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붙잡고 풀무불 속에 접근한 군사들은 그만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로 극렬히 타는 풀무 불 한 가운데서도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도 기적과 같은 놀라운 체험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이 보내 주신 천사의 도움으로 뜨거운 불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느부갓네살 왕은 이제는 도리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죽기까지 신앙의 정조를 지켰던 이 세 사람을, 바벨론 도에서 지극히 높은 자리에 앉게 하였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철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앙은 조건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순수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무슨 계산적인 방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순수한 믿음과 진실함을 보십니다.  때로는 단순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참되고 순수하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큰 역사를 나타내실 줄로 믿습니다.   순수함, 진실함, 참됨이 곧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