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외침 -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목소리

강재현200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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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외침 -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목소리
Silent Crying : Voices of Korean Militeray Sexual Slaves by Japan 

 

감독 : 안해룡, 김정민우, 박영임 / 14분 25초/ 실험 다큐멘터리 / 6mm DV / 2003
Directed by : Ahn Hae-Ryong, Kim Joung Min-Woo, Park Young-Im
                   14min 25sec / experimental documentary / 6mm DV / 2003 

 

 

 

 

내가 일본군의 '종군위안부'으로 끌려간 것은 14살되던 해인 1934년이었다.

그 때 우리집은 풍산군 파발리 (오늘의 김형권군 파발리)에 있었다. 어느날 부모들이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는 사이에 무장한 일본 경찰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내입을 틀어막고 밖에 세워놓은 차에 태우더니 파발리 경찰서로 끌고가는 것이었다. 밭에서 김을 매다가 이것을 알게 된 부모들이 경찰서에 달려와 딸을 내놓으라고 하자 경찰들은 모른다고 하면서 목검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하였다.

 

경찰서 감방안에 갇힌 나는 그날부터 5명의 순사들에게 연일 능욕을 당했다. 순사들은 내가 소리를 지르자 입을 누더기로 틀어막고 두 다리를 위자에 비끄러맨 후 번갈아가며 수욕을 채웠다. 이렇게 한달 가량 갇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하던 나는 일본 경찰들이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이미 숱한 처녀들이 경찰서에 끌려와 능욕당하고는 다시 어디론가 실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후 나에게도 그런날이 닥쳐왔다. 어느날 나는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어 그곳에서 멀지 않은 일본군 병영에 넘겨지게 되었다. 거기에는 벌써 17~18살의 처녀들이 많이 끌려와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모두 풍산군 파발리 경찰에 납치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졌던 것이다. 일본군 장교들은 끌려온 여성들을 모아놓고 하루에 '황군' 수비대를 50명씩 대상해야 한다고 하였다. 수많은 일본군이 무리로 쓸어들어 수욕을 채웠다. 그들은 '위안부'들이 소리를 치면 입에 말자갈을 물렸고 거절하면 단도날 끝을 음부에 가져다 대며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며칠사이에 온몸이 피멍이 들고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4년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하루는 일본군 장교 8명이 벌고벗고 나타나 나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놈들은 나에게 눈뜨고 보지 못할 갖은 짓을 다하던 끝에 음부에 칼자루까지 틀어박았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놈들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러자 놈들은 나를 밖으로 끌고나가 물고문을 가한 다음 나체로 만들어 철봉대에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는 입안에 쇠몽둥이를 강제로 넣고 휘둘러 이빨을 모조리 부러뜨렸다. 그러고도 성이차지 않는지 놈들은 나의 입술을 뒤집어놓고 바늘 투성이인 도장으로 입술안에 입묵(문신)을 하였으며 계속하여 젖가슴부위와 잔등, 팔다리와 복부, 이어서 음부부위까지 보기 흉칙한 그림을 입묵하고 나서 내가 정신을 잃게 되자 질질 끌어다가 오물장에 처박았다.

아직도 나의 몸에는 당시 일본군이 새겼던 그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온몸이 쏘고 쓰리던 육체적 고통보다도 그것을 온통 먹물 그림 투성으로 만든 것이 너무도 분하여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일제가 남긴 이 원한의 상처로 하여 지금까지 남들처럼 목욕탕이나 수영장에도 가보지 못하였으며 무더운 삼복철에도 짧은옷 한번 입어보지 못하였다.

이것이 어찌 나 하나만에게 강요된 일이겠는가. 일제가 강요했던 '종군위안부' 생활은 나뿐이 아닌 수많은 조선여성들에게 참을 수 없는 육체적 및 정신적 고통과 참혹한 죽음을 가져다 주었으며 그 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슴아픈 상처를 남겨놓고 있다. 일본정부가 아무리 보상한다 하여도 나의 육체와 마음속에 남긴 상처와 그 피맺힌 원한은 결코 가실 수 없으며 더우기 일본 정부가 감행한 범죄의 역사는 그 무엇으로도 감출 수도 지워버릴 수도 없다.

일본정부는 자기 조상들이 저지른 전대미문의 극악한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교활하고 너절한 수법에 매달리지 말고 지체없이 철저한 진상규명과 공개를 해야 하며 진정한 사죄와 성실한 조상을 하여야 한다.

 

 

- 한 정신대 할머니의 이야기 -

 

일본인들은 말한다.

한국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과거의 실수와 잘못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

또한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철저한 자기 반성과 과거청산이 없다면 

과거의 악몽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과거는 그저 흘러보낼 수 있는

지나간 시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흘러간 물은 절대 오늘의 물이 될 수 없지만

흘러간 과거는 오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난 일본인들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다.

 

일본은 말한다.

종군위안부는 허구라고

자발적인 매춘이라고

주변국에 의한 날조일 뿐이라고

그들 자신이 원폭 피해자라고

전쟁은 비참한 것이니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피해자라고

그들은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은 하지 않은 채

역사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버젓이 태평양 전쟁의 악몽 속에

살고 있고 그 사실들을 증언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진심으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바란다면

진정한 참회자의 자세에서

철저하게 과거의 과오를 사죄하고

정신적, 육체적 피해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배상해 주어야 한다.

 

반복되는 역사 왜곡과 망언들로

정신대 할머니들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이

더이상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