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당시 H.O.T.와 S.E.S.등 한국의 내로라 하는 인기 아이돌 그룹을 키워낸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신인을 발표한다. 해외 시장을 의식한 듯한 언어능력과 뛰어난 춤실력, 그리고 당시에는 놀라운 만 13살의 나이. 3년동안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데뷔한 신인은 바로 BoA였다.
지금의 원더걸스 소희, 소녀시대 서현보다도 어린 나이에 데뷔한 이 소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가수가 많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스타기획사인 SM의 새 신인이라는 점이 이목을 끄는데 한 몫했다. 하지만, 높아지는 관심은 수많은 루머를 양산해내기도 했다. 어린 소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수많은 루머들이 인터넷을 떠돌았고, 안티팬의 행동 또한 도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소녀에게 험한 말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심도는 높았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당시 열풍처럼 인기를 끌던 핑클의 'NOW'에 밀려 최고 순위 2위에 올라간 이후 사람들은 다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소녀에게 가진 생소함과 신기함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찬 소녀는 차츰 조금씩 말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2001년, SM은 준비한대로 BoA의 해외진출을 가속화한다. 해외진출을 기념하는 앨범 를 발매하고 한 달동안의 짧은 프로모션 활동을 한 후에 BoA는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일본의 거대 기획사 Avex와 손을 잡은 SM은 차근차근 일본 진출 계획을 실행한다. 하지만, 국내의 시선은 따가웠다. 제 아무리 Avex에서 활동을 한다고해도 무리라는 반응이었다.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기도 전,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한류가 시작되지도 않았고, 남한과 북한의 구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본인들도 많았다. 게다가 한국가수로 먼저 데뷔한 S.E.S.의 일본시장 참패를 지켜본 사람들은 BoA 역시 그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을 했다.
첫 쇼케이스. 기자와 음악계 관계자들이 모인 곳에서 BoA를 처음 알리는 자리. 'Beat of Angel'이라는 문구로 BoA를 홍보하는 영상이 나오고 BoA가 데뷔곡인 'ID; Peace B'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무대와 달리 핸드마이크가 아닌 헤드마이크로 하는 첫 라이브. 퍼포먼스 중심으로 짜여진 안무를 추며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BoA의 음정은 떨리고 있었다. 결국, 클라이막스의 고음부분에서는 음이 약간 찢어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신인임을 감안했을 때는 그닥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이어지는 외국어 인터뷰. 일본어와 영어로 이루어진 인터뷰는 아슬아슬한 수준의 대답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BoA는 웃으며 대답했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첫 쇼케이스, 떨리지만 떨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공연에서는 완벽한 라이브를 선보였다. 처음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더 열심히, 완벽하게.
일본에서의 데뷔 싱글 는 오리콘 차트 20위권 이내 진입에 성공한다. 방송프로모션은 당시에는 신인들의 출연이 쉬웠던 와 NHK의 <팝잼>과 같은 프로가 전부였다. 홍보를 위해 채택된 타이업(CF 또는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쓰여서 노래를 홍보하는 것)은 얼마 방영도 하지 않는 있으나 마나한 CF였다. 하지만, 첫 싱글은 5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롱런한다. 일본에서 새롭게 신인으로 데뷔한 BoA는 그 당시 신생회사였던 SM Japan의 남소영이사와 함께 일본 전역의 레코드점을 돌아다니며 홍보를 한다. 싸인회, 씨디 구매회 등 발로 뛰는 홍보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용 밴조차 마련되지 않았던 이 시기에 택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프로모션을 했다.
첫번째 싱글 가 여자아이에겐 너무 강한 힙합 댄스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두번째 싱글 에서는 귀여운 이미지를 내세운 댄스를 시도했다. 춤을 추며 노래하는 소녀라는 컨셉의 틀이 잡히던 시기였다.
두번째 싱글 역시 5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롱런했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반응은 '이러다 말겠지...'였다. 일본 유명가수들이 함께 공연을 하는 여름 투어 콘서트 'A-nation'의 입장공연(주로 신인들이 사람들의 분위기가 정돈되지 않은 오프닝에 공연을 하는 것)에서 노래를 부르던 BoA는 스탭으로 부터 '그렇게 힘들게 노래를 하다가는 10년이 지나도 콘서트를 하지 못하겠다'라는 소리를 듣고 상심한다. 한낮의 땡볕에서, 14살의 소녀는 두 곡의 댄스곡을 연이어 부르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리고 얼마 후, BoA가 쓰러졌다는 기사가 실린다. 로 겨우 상승곡선을 타고 있던 소녀는 이렇게 주춤하고 말았다. 2주 가량의 입원기간동안, BoA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이국 땅에서 신생 기획사인 SM Japan을 운영하고 있는 남소영 이사는 쓰러진 BoA로 인해 스케줄 변경을 하느라 동분서주해야 했고, 매니저 역시 언제까지 신인 가수를 위해 대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인터뷰에서 BoA는 이 시기에 '아프면 자기손해이며, 아무리 울어도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14세의 소녀는 이른 시기에 교훈을 얻은 것이다.
이후 BoA는 이렇게 잊혀져 가는 듯 했다. 가을 발매 예정이었던 싱글 은 발매가 취소되고, BoA에게 아무런 스케줄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국 땅에 남겨진 소녀는 자신이 왜 이 곳에 온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 때의 외로움과 고독은 일본 정규 2집에 수록된 의 가사에 나타난다. 어떠한 미래도 보이지 않고, 불안의 연속 뿐인 시간동안 소녀는 새로이 재즈댄스를 배우고, 노래연습을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 뿐이었다. 그리고 연말, <마음은 전해진다>라는 싱글을 발표한다. 공백 기간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담겨있는 새 싱글.
하지만 그런 노력이 담긴 싱글은 많은 프로모션을 잡지 못했다. 데뷔때도 출연했던 조차 출연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말 가요프로그램인 NHK의 <디지털 드림 라이브>에 출연하게 된다. 한 해동안 인기있었던 가수들이 출연하고, 젊은이들이 그런 가수를 보기 위해 모였던 이 공연에서 BoA가 몇개월간의 공백기간동안 배운 재즈댄스와 함께 <마음은 전해진다>를 라이브로 부른다.
방송국에는 노래를 부른 소녀가 누구냐는 문의가 급증했고, <마음은 전해진다>의 오리콘 순위 또한 상승했다. 춤을 추며 노래하는 여자가수가 얼마 없던 터라 신선하고 멋지다는 의견이 홈페이지를 통해 올라왔다. 10대 여성들의 지지를 받은 BoA의 싱글은 1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고, 고무로 테츠야의 뉴욕 테러 추모 싱글 'Song Nation'에 코다쿠미와 듀엣으로 참가하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인지도가 상승한 BoA는 이제 자리를 더 확고히 할 포인트에 와 있었다. 이미 녹음을 마친 라는 곡은 당시 J-POP의 성향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락이나 테크노와 같은 유럽 풍의 댄스음악이 주류였던 시기에는 난해한 곡이었다. 하지만 유명 핸드폰 회사인 도시바는 수많은 후보곡들 가운데 를 새로운 CF음악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기획사는 BoA를 믿고 도전을 해보기로 한다.
<팝잼>에서 첫 라이브를 마친 순간, 는 BoA를 단숨에 최정상의 아티스트로 올려놓은 최고의 명곡이 되었다. 퍼포먼스와 결합한 음악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고, 도시바 역시 큰 광고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이후 이 네번째 싱글은 2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오리콘 데일리 차트 3위를 기록한다. 하루하루 스펙타클하게 바뀌는 순위에 한국의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지껏, 일본에서 이런 성과를 보여준 한국가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을 시기에 BoA는 한국에 있었다. 설 연휴와 2집 앨범 녹음을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TV출연도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메이저 음악 프로그램인 ,<우타방>,<뮤직스테이션> 모두에 출연하지 못했던 BoA였기에 CF를 통해 라는 노래는 알지만 'BoA'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CF를 통해 매끄러운 일본어 발음으로 부른 노래를 들은 일본인들은 BoA가 한국 출신의 소녀 가수라는 것은 잘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BoA는 정규 1집 앨범과 5번째 싱글을 발매한다. 싱글 는 여지껏 타이업과는 다르게 인기 애니메이션이었던 '이누야샤'의 엔딩곡으로 채택된 거대 타이업이었다. 기존의 일본 여가수들과는 다른 창법의 발라드는 발매 전부터 벨소리 순위 1위로 올라가는 등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지? 새 신인 가수인가'에서 시작해 'Listen to my heart를 불렀던 가수래'라는 식으로 저절로 홍보가 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기획사 Avex는 이때부터 'Listen to my heart'를 부른 가수와 'Every Heart'를 부른 가수가 동일인물이며, 3개국어가 가능한 한국출신의 15살 소녀가수 BoA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BoA의 어린나이는 바로 자신의 경쟁력이 되었고, BoA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또한 화제가 되었다. 데뷔 때부터 한국인임을 밝혔지만, 인지도가 낮고 아이돌처럼 귀여운 금발머리 여자아이가 하는 말은 그냥 흘려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 갈색머리의 나이에 비해 성숙한 소녀가 한국인이고 일본어로 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일본의 반응은 '천재소녀', '제대로된 가수가 나왔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1집 앨범을 발매한 BoA는 오리콘 첫등장 1위, 밀리언 셀러 기록을 달성한다. 일본 최고의 메이저 음악 프로그램인 <뮤직 스테이션>에 첫 단독 출연이 결정되고, 어수선한 오프닝 공연을 담당하던 투어의 메인 게스트 자리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 투어를 통해 홍보하게 된 곡이 또 하나의 대표곡인 이다. 1년 후 발매한 2집 역시 큰 성공을 거두고, 첫 투어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BoA는 이 후, 홍백전 연속 출장, 정규앨범 연속 1위기록 등 일본 가수들 사이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달성한다.
물론, 지금의 BoA에 대해 예전에 비해 전성기가 지났다는 등,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등 여러가지 말이 많다. 가파른 상승 곡세를 타고 치솟은 1,2집의 그늘에 가려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BoA는 5집 발매 후의 TV 프로에서 이렇게 말을 한다. "언제까지나 올라갈 수는 없다.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내려오는 때도 있다." 당황한 사회자는 "언제까지나 올라가고만 있는 걸로 보이는데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BoA는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현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이른 성공 이후, BoA는 방황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도와 자신의 음악을 찾아나가는 과정.
다리의 부상으로 인해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던 시기에 BoA는 정통 라이브 공연으로 투어를 한다. 그리고 이때, 일이 없어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가사로 쓴 를 다시 라이브로 부른다. 힘들어도 일어서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신을 다시 기억하는 BoA.
2008년 새로 발매한 6집 앨범 에서 BoA는 드디어 여성 보컬리스트로써의 면모를 갖추었다. 당차지만 늘 누군가를 흉내낸 듯했던 어린 시절의 BoA가 따라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지금의 BoA 자신이었음이 증명된 이번 앨범. 앞으로도 BoA는 수많은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 한국의 3집 앨범 수록곡인 의 가사처럼, 힘든 순간이 닥치더라도 끊임없이 이겨내고, 자신을 성장시켜 나갈 것이다.
BoA,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발자취.
2000년, 당시 H.O.T.와 S.E.S.등 한국의 내로라 하는 인기 아이돌 그룹을 키워낸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신인을 발표한다. 해외 시장을 의식한 듯한 언어능력과 뛰어난 춤실력, 그리고 당시에는 놀라운 만 13살의 나이. 3년동안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데뷔한 신인은 바로 Bo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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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SM은 준비한대로 BoA의 해외진출을 가속화한다. 해외진출을 기념하는 앨범 를 발매하고 한 달동안의 짧은 프로모션 활동을 한 후에 BoA는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일본의 거대 기획사 Avex와 손을 잡은 SM은 차근차근 일본 진출 계획을 실행한다. 하지만, 국내의 시선은 따가웠다. 제 아무리 Avex에서 활동을 한다고해도 무리라는 반응이었다.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기도 전,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한류가 시작되지도 않았고, 남한과 북한의 구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본인들도 많았다. 게다가 한국가수로 먼저 데뷔한 S.E.S.의 일본시장 참패를 지켜본 사람들은 BoA 역시 그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을 했다.
첫 쇼케이스. 기자와 음악계 관계자들이 모인 곳에서 BoA를 처음 알리는 자리. 'Beat of Angel'이라는 문구로 BoA를 홍보하는 영상이 나오고 BoA가 데뷔곡인 'ID; Peace B'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무대와 달리 핸드마이크가 아닌 헤드마이크로 하는 첫 라이브. 퍼포먼스 중심으로 짜여진 안무를 추며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BoA의 음정은 떨리고 있었다. 결국, 클라이막스의 고음부분에서는 음이 약간 찢어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신인임을 감안했을 때는 그닥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이어지는 외국어 인터뷰. 일본어와 영어로 이루어진 인터뷰는 아슬아슬한 수준의 대답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BoA는 웃으며 대답했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첫 쇼케이스, 떨리지만 떨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공연에서는 완벽한 라이브를 선보였다. 처음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더 열심히, 완벽하게.
일본에서의 데뷔 싱글 는 오리콘 차트 20위권 이내 진입에 성공한다. 방송프로모션은 당시에는 신인들의 출연이 쉬웠던 와 NHK의 <팝잼>과 같은 프로가 전부였다. 홍보를 위해 채택된 타이업(CF 또는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쓰여서 노래를 홍보하는 것)은 얼마 방영도 하지 않는 있으나 마나한 CF였다. 하지만, 첫 싱글은 5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롱런한다. 일본에서 새롭게 신인으로 데뷔한 BoA는 그 당시 신생회사였던 SM Japan의 남소영이사와 함께 일본 전역의 레코드점을 돌아다니며 홍보를 한다. 싸인회, 씨디 구매회 등 발로 뛰는 홍보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용 밴조차 마련되지 않았던 이 시기에 택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프로모션을 했다.
첫번째 싱글 가 여자아이에겐 너무 강한 힙합 댄스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두번째 싱글 에서는 귀여운 이미지를 내세운 댄스를 시도했다. 춤을 추며 노래하는 소녀라는 컨셉의 틀이 잡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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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싱글 역시 5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롱런했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반응은 '이러다 말겠지...'였다. 일본 유명가수들이 함께 공연을 하는 여름 투어 콘서트 'A-nation'의 입장공연(주로 신인들이 사람들의 분위기가 정돈되지 않은 오프닝에 공연을 하는 것)에서 노래를 부르던 BoA는 스탭으로 부터 '그렇게 힘들게 노래를 하다가는 10년이 지나도 콘서트를 하지 못하겠다'라는 소리를 듣고 상심한다. 한낮의 땡볕에서, 14살의 소녀는 두 곡의 댄스곡을 연이어 부르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리고 얼마 후, BoA가 쓰러졌다는 기사가 실린다. 로 겨우 상승곡선을 타고 있던 소녀는 이렇게 주춤하고 말았다. 2주 가량의 입원기간동안, BoA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이국 땅에서 신생 기획사인 SM Japan을 운영하고 있는 남소영 이사는 쓰러진 BoA로 인해 스케줄 변경을 하느라 동분서주해야 했고, 매니저 역시 언제까지 신인 가수를 위해 대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인터뷰에서 BoA는 이 시기에 '아프면 자기손해이며, 아무리 울어도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14세의 소녀는 이른 시기에 교훈을 얻은 것이다.
이후 BoA는 이렇게 잊혀져 가는 듯 했다. 가을 발매 예정이었던 싱글 은 발매가 취소되고, BoA에게 아무런 스케줄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국 땅에 남겨진 소녀는 자신이 왜 이 곳에 온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 때의 외로움과 고독은 일본 정규 2집에 수록된 의 가사에 나타난다. 어떠한 미래도 보이지 않고, 불안의 연속 뿐인 시간동안 소녀는 새로이 재즈댄스를 배우고, 노래연습을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 뿐이었다. 그리고 연말, <마음은 전해진다>라는 싱글을 발표한다. 공백 기간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담겨있는 새 싱글.
하지만 그런 노력이 담긴 싱글은 많은 프로모션을 잡지 못했다. 데뷔때도 출연했던 조차 출연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말 가요프로그램인 NHK의 <디지털 드림 라이브>에 출연하게 된다. 한 해동안 인기있었던 가수들이 출연하고, 젊은이들이 그런 가수를 보기 위해 모였던 이 공연에서 BoA가 몇개월간의 공백기간동안 배운 재즈댄스와 함께 <마음은 전해진다>를 라이브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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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가 상승한 BoA는 이제 자리를 더 확고히 할 포인트에 와 있었다. 이미 녹음을 마친 라는 곡은 당시 J-POP의 성향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락이나 테크노와 같은 유럽 풍의 댄스음악이 주류였던 시기에는 난해한 곡이었다. 하지만 유명 핸드폰 회사인 도시바는 수많은 후보곡들 가운데 를 새로운 CF음악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기획사는 BoA를 믿고 도전을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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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을 시기에 BoA는 한국에 있었다. 설 연휴와 2집 앨범 녹음을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TV출연도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메이저 음악 프로그램인 ,<우타방>,<뮤직스테이션> 모두에 출연하지 못했던 BoA였기에 CF를 통해 라는 노래는 알지만 'BoA'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CF를 통해 매끄러운 일본어 발음으로 부른 노래를 들은 일본인들은 BoA가 한국 출신의 소녀 가수라는 것은 잘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BoA는 정규 1집 앨범과 5번째 싱글을 발매한다. 싱글 는 여지껏 타이업과는 다르게 인기 애니메이션이었던 '이누야샤'의 엔딩곡으로 채택된 거대 타이업이었다. 기존의 일본 여가수들과는 다른 창법의 발라드는 발매 전부터 벨소리 순위 1위로 올라가는 등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지? 새 신인 가수인가'에서 시작해 'Listen to my heart를 불렀던 가수래'라는 식으로 저절로 홍보가 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기획사 Avex는 이때부터 'Listen to my heart'를 부른 가수와 'Every Heart'를 부른 가수가 동일인물이며, 3개국어가 가능한 한국출신의 15살 소녀가수 BoA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BoA의 어린나이는 바로 자신의 경쟁력이 되었고, BoA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또한 화제가 되었다. 데뷔 때부터 한국인임을 밝혔지만, 인지도가 낮고 아이돌처럼 귀여운 금발머리 여자아이가 하는 말은 그냥 흘려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 갈색머리의 나이에 비해 성숙한 소녀가 한국인이고 일본어로 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일본의 반응은 '천재소녀', '제대로된 가수가 나왔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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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집 앨범을 발매한 BoA는 오리콘 첫등장 1위, 밀리언 셀러 기록을 달성한다. 일본 최고의 메이저 음악 프로그램인 <뮤직 스테이션>에 첫 단독 출연이 결정되고, 어수선한 오프닝 공연을 담당하던 투어의 메인 게스트 자리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 투어를 통해 홍보하게 된 곡이 또 하나의 대표곡인 이다. 1년 후 발매한 2집 역시 큰 성공을 거두고, 첫 투어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BoA는 이 후, 홍백전 연속 출장, 정규앨범 연속 1위기록 등 일본 가수들 사이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달성한다.
물론, 지금의 BoA에 대해 예전에 비해 전성기가 지났다는 등,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등 여러가지 말이 많다. 가파른 상승 곡세를 타고 치솟은 1,2집의 그늘에 가려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BoA는 5집 발매 후의 TV 프로에서 이렇게 말을 한다. "언제까지나 올라갈 수는 없다.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내려오는 때도 있다." 당황한 사회자는 "언제까지나 올라가고만 있는 걸로 보이는데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BoA는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현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이른 성공 이후, BoA는 방황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도와 자신의 음악을 찾아나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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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의 부상으로 인해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던 시기에 BoA는 정통 라이브 공연으로 투어를 한다. 그리고 이때, 일이 없어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가사로 쓴 를 다시 라이브로 부른다. 힘들어도 일어서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신을 다시 기억하는 BoA.
2008년 새로 발매한 6집 앨범 에서 BoA는 드디어 여성 보컬리스트로써의 면모를 갖추었다. 당차지만 늘 누군가를 흉내낸 듯했던 어린 시절의 BoA가 따라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지금의 BoA 자신이었음이 증명된 이번 앨범. 앞으로도 BoA는 수많은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 한국의 3집 앨범 수록곡인 의 가사처럼, 힘든 순간이 닥치더라도 끊임없이 이겨내고, 자신을 성장시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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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iz의 프랑소와 님글을 인용, 재구성, 첨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