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박재삼

박종화200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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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삼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 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 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의 내 전 설움이요, 전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 낼런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도 몰라, 그것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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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 때 윤동주, 이육사 시집에 이어 산 것이 바로 박재삼 시집이었다. 그의 시를 알아서 산 것이 아니었다. 따로 책 살 돈을 주시지 않는 부모님 덕에 용돈을 아껴서 돈을 모아 오랜만에 시집을 사러 간 것이었다. 둘러보던 중에, '한'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보였다. 호기심에 집어들었는데, 그것이 이 시였고, 시인과의 첫 만남이었다.

 

한...

이 땅에 사는 사람 중에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정확한 국어사전의 뜻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오는 그 느낌 말이다.

한을 품을 만큼 질곡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나 그 깊이는 다를지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한을 품었다고 말할 만한 인생이 아니지만, 소설이나 영화에서 한이 서릴만큼 고생스런 생을 살았던 주인공들을 보며 눈물 지었던 것을 생각하면, 물에 손을 적시듯 조금이나마 공감했었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 시인의 위대함은 자연의 품에 안겨 가슴 가장 깊은 곳의 아프고 쓰린 한을 노래한다는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너무나 아름답고 조심스럽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거칠게 내뱉는 분노보다, 눈물 고인 눈동자 하나로 가슴을 서럽게 만드는 슬픔이 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슬픔으로 오는 길을 열어놓을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 폭넓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읽을 때 나는 항상 내가 살았던 동안 가장 감동깊게 보았던 소설이나 영화의 장면들을 머릿속에 영상으로 떠올리며 한동안 눈물을 떨어뜨리게 된다. 깨고 나서 부끄러운 꿈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서 간직하며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