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이여,너희가감히歷史를논하는가!

김익현2008.04.15
조회667
누가 감히 大韓史를 중국사라하며 조공사라 하는가!

조선(大韓)이 과연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약한나라였을까? 아니다.
다만 일본의 개혁과 개방이 30년(명치유신) 정도 빨라서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존재 할 수없다만, 만일 조선이 개화를 이와 같은 시기에 했다면 결과는 완전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대한제국의 경제력은 아시아 2위수준이었다. ( 대한제국26위, 일본24위, 청30위권밖 )
이는 금화(Gold Standard)1인당GDP에 의한 것이다. ( 대한제국 850$, 일본 1135$, 청 652$ )
대한제국의 대금광하나로도 외국의 채무를 전부 갚고도 남았다. 이러한 대금광이 대한제국에는 5군데, 중소금광이 10여군데가 있다. 그리고 대한의 인삼, 홍삼을 비롯해 대한의 곡물등은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 그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하였다한다.
당시 대한제국 상인의 어음등이 일본과 청에서도 통용이 되었다. ( 물론 일본상인은 청의 어음을 받지않았고 청상인은 일본의 어음을 받지않았다.) 그만큼 대한제국상인의 선호도가 가히 인정될만큼 높다하겠다.
광복후 우리의 경제력이 세계 146위( 광복후 대한의 GDP 83$ ) 로 떨어진것을 보면 일본이 착취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가히 상상할 수 있다.
<GDP인용 Angus Maddison, Monitoring the World Economy >
다만, 대한제국의 군사력이 당시 암흑기였다. 언제나 과도기에는 약하기 마련이다.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만 추정치는 경제력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는 식민사관과 역사왜곡이다.=
마치 우리 조선이 약하기 그지없고 중국의 속국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혹자는 조선의 국명이 명이 하사했다하는데 이는 일제시대의 일본의 왜곡이다.
조선이 명에 보낸 국서에 조선의 임금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국명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이를 일본이 교묘하게 엮은 것이다.
일제시대에 소각된 大韓의 역사서가 20만권이다. 남아있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정도이다. 그뿐인가. 조선의 실록(조선왕조실록)은 일본이 일본본토에 가져갔다가 얼마전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이 실록을 안건드렸겠는가? 감히 실록을 건드릴 자들이다.
그리고,조선 초의 명의 사서에는 이러한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 조선의 기병은 매우 강하여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 당시 조선기병 500으로 여진족 2만을 쳐부순 기록이 한두번이 아니다.
( 그리고 명나라 4대 임금인 영종은 북원( 북쪽으로 쫓겨난 원 ) 임금에게 사로잡히기 까지한다. 이러한 상황에 조선이 북원과 힘을 합쳐 명을 쳤다면 명은 존재를 가름하기 힘들다. 당시 조선의 군사는 44만정도, 북원의 군사 40만 전후, 명의 군사 대략 80만정도다. 그리고 여기에 조선이 여진까지 끌어들이면 사실상 존재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대 명은 조선을 가볍게 볼 수없는것이다. 조선과 명의 관계는 지금의 한국과 미국같은 동맹관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
그리고 조선초 태조께서 명의 사신에게 " 명이 나를 어린아이로 보느냐! 감히 명이 우리조선을 위협한다면 명을 응징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당시 사신이 썼던 조선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명은 당시 원과의 전쟁으로 쇄진하여 화의를 청한다. 명의 사서에는 " 황상이 조선의 임금을 친히 달래어 주셔 화를 막았다" 라는 구절이 있다.
명나라가 조선에 가장 두려움을 느꼈던 때가 바로 조선의 대마도 정벌이다. 몇만의 왜구를 소탕한 것도 괄목한 성과지만 먼거리를 사고없이 하루만에 군사를 태우고 정벌했다는 것에 두려워했다. 당시 축하사절단에 있던 명환관이 " 조선국황제폐하(朝鮮國 皇帝陛下)의 승전을 경하드리옵니다."라고 했다. 전하(殿下)가 아닌...
또한 후금( 청 )은 논할 바가 아니다. 후금의 누르하치가 임진왜란때 우리 임금께 전한 내용을 보자 " 상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어버이의 나라를 쳐들어온 쥐새끼같은 왜놈들을 목숨으로 쳐부수겠나이다."
훗날 청의 임금이 되는 누르하치의 말이다. 그리고 이사실을 아는가? 청의 국왕의 성이 애신각라 이다. 애신각라! 신라를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겠다. ( 청의 전신인 후금, 그리고 후금의 전신의 되는 고려조의 금나라! 금나라의 초대 임금이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 태자의 증손자이다. 이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
그리고 이익의 상호사설을 보자. 명나라의 말기에 명의 서신에 朝鮮皇帝라는 문구가 등장한다고 적었다. 조선의 구원병을 청코자 명이 조선을 위한다는 뜻이겠다. 구원병이라는 문구또한 어의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대들이 배운 역사대로라면 징병이 옳은말이다. 신하국인 나라에 구원병이라니? 말이 될법한가? 명과 조선의 관계는 지금의 한미동맹과 같다고 보는게 최근 학계의 동향이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그대라면 숙고하길 바란다.
대외적으로는 조선이 왕의 국가이나 내면적인면과 외국사절단의 서신에서 보면 국왕이라는 표현과 황제라는 표현이 같이 등장한다.


=우리 영토 또한 많이 축소가 되었다.=
대륙조선(간도와 연해주가 포함된 조선)설이 이를 뒷받침한다. ( 영국의 지리지, 미국의 상선 보고서등은 조선은 사막이 길어서 러시아를 통해서 가기는 힘이들고 수로로 통해서만 안전을 보장한다.) 라고 적혔있다. 간도만 생각해보라. 간도가 청의 영토라면 간도협약이라는 것을 따로 맺을 필요가 있겠는가? 대한제국에는 관도관찰사와 연해부사라는 직급이 있다. 남의 영토에 아(我)국의 관리가 임명된다는것이 가능한일이겠는가?

< 참고 : 이익의 상호사설, 명환관 황엄의 조선행록, 명(明)군사통감 조선편, 이순신의 난중일기, 미국제너럴셔먼호의 상선보고서 조선전쟁편, 독립신문원본)

P.s 아름다웠던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다만 마지막에 단결이 되지않아 수모를 겪었다만 대한의 후손들이 미물의 짐승처럼 알지도 못하면서 호도하는 것은 옳지 않지 않은가!
스스로를 약하다고 믿는 대한인이 아니라 위대하고 웅원했던 대한인으로 살지 아니하겠나? 우리는 백제시대 부터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고 그들을 바르게 통치하여 왔다. 조선은 통신사를 보냄으로써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고 도자기기술과 화포등을 전수하였다. 또한 서로의 상권을 존중하여 왜관을 두어 조선의 아름다움과 일본의 아름다움을 공유하였다.
우리 대한은 일본을 사랑하고가엾이여겨, 문화를 주었고 기술을 주었으며, 조선의 문학과 가치관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뿐인가? 대한백성을 속썩였던 대마도를 정벌하였지만 그들을 아껴서 자치를 인정해주었다.
헌데, 그 결과가 어떠한가?
일본은 그렇다고 치자. 우리 대한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재의 가치관과 사회상을 보니 어린것들은 일본을 숭배하는이가 적지 않고 심지어는 우리대한에 태어난것을 부끄러워하니 이것이 과연 노예정신이 아니겠는가?
더러운 문화의 노예로 살것인가? 더러운 식민사관의 노예로 살것인가? 웅건하고 강한 대한이여, 그대를 자랑스워 하라. 위대한 大韓人이 아닌가?
내마음을 사랑하고 나아가 내조국을 사랑하자. . 대한의 웅원한 미래가 그릇된 생각에 더럽혀진다면 아름답고 숭고했던 우리 대한을 살리고자 죽어갔던 대한의 조상을 우러러 볼수 없지 아니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