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교실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떠들다가 선생님께 혼난 일이 있었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유독 크지도 않았는데 나만 부르시더니 교탁에서 교실 문 뒤쪽까지 뺨을 계속 맞으면서 뒤로 물러났었다. 그게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떠든 무리 중에서 촌지를 내지 않은 것은 나 혼자라는 걸 알게되었다. 어머니가 내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니까 그 연유를 아주머니들에게 물으시다가 결국 학교로 가셨고 그 뒤로 그 선생님은 나를 때리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비교적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았다. 선생님들이 좋은 분들이 많으셨다. 중학교 2학년 무렵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되자 선생님들은 갓 공부에 흥미를 가져서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열성을 보이던 나를 특목고(과학고)를 준비하는 아이들 모임에 넣어주셨고 잘 이끌어주셨다. 체력장 때 전교1등을 할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던 나라 체고를 준비하라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할 때 부모님과 많이 싸웠다. 부모님은 내가 외국어고등학교를 가기를 원하셨고, 나는 남고나 집 앞의 가까운 고등학교를 가기를 원했다. 이유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다. 많은 생각 끝에 '외고라면 영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외국어고등학교에 지원을 했다. 각 학교에서 전교 1, 2등 하는 녀석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난 외국어고등학교라면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일 것이라고 기대를 했더니 전혀 반대였다. 과도한 입시열과 학생들에 대한 규제는 숨을 턱턱막혀 질식사할만큼 나를 압도했다.
고1 때 현각스님의 책을 보고 침묵수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1년 동안 말을 부단히도 줄였는데 선생님한테 말이 너무 없다고 끌려가서 혼났다. 아 젠장, 중학교 때처럼 살기 싫은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를 좀 갈고 닦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렇게 놔두지를 않았다.
싸움을 많이 했다. 학교에서는 원래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래도 비교적 착하게 생활해야지라는 생각이었지만 싸움 좀 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건드리는 얘도 별로 없어서 신경쓰기도 싫었다. 학교를 겉돌았다. 입학할 무렵부터 팔씨름 대항전?을 하며 전교를 다돌아서 1등을 했기 때문에 시비를 거는 얘들도 없었다. 야자가 끝나고 나면 중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운동도 하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문제는 선생이었다. 고2 때 교실 뒤에서 친구들과 발차기를 하며 놀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시길래 급하게 들어갔는데 나를 앞으로 부르시더니 '너가 그렇게 발차기를 잘하냐?'하면서 내 발을 잡아서 교실 문앞으로 던졌다. 난 일어나면서 '아, 씨'라고 말하면서 책상에 앉았다. 그냥 가방을 잡고 집으로 가려다가 일 크게 만들기 싫어서 그냥 앉았는데 그 날 뒤로 찍혔다. 그 뒤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지 어느 날 시시콜콜한 두발규정과 같은 이유로 나를 교무실로 끌고 오더니 엎드리게 한 채로 몸 전체를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온 몸에 멍이 다들었는데도 난 정자세로 맞았다. 며칠 뒤 집에서 샤워를 하는데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어머니께서 보실까봐 급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어머니가 내 몸이 다 파래보여서 이상했는지 급히 들어오셨다. 보고 놀라셔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시더니 당장 전화를 거셨다. 그 다음 날 그 선생님은 미안하다며 나한테 물파스를 발라주겠다고 상처를 보여달라면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애걸복걸을 했다. 난 그 모습이 너무 기가 막혀서 그냥 물파스만 받고 나왔다. 스승?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너무도 멀었다. 그럴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난 책속에서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테레사 수녀님도 있었고, 부처가 있었고, 예수가 있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교대에 다니는 녀석인데 아이들이 싫은데도, 그 일이 싫은데도 요새 세상에 이런 철밥통이 어디있냐면서 교사가 그래도 할만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또 얼마전에 고등학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들이랑 이야기하는데 그 선생님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는 말을 하였다. 난 그자리에서 그럴 생각이면 당장 선생님 때려치라고 이야기를 했다. 너같은 놈이 가르치기 때문에 학교 가기 싫었다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당장 그 일 때려치라고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실컷 때려놓고 사랑의 매라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을 많이 보았다.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때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꽃으로도 얘들을 때리지 마라. 행여 그 꽃의 가시가 그 소중한 아이들을 찌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해. 너희가 너무 엉망으로 굴어서 어쩔수 없이 때렸다. 선생님이 이건 미안하다. 하지만 그런 잘못은 저지르지 말아라. 이런 식으로라도. 아이들 너무 규제하지 말고. 귀밑까지 머리를 길렀다고 해서 그 아이가 누구를 해코지하기라도 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게 있냐고. 그런 겉모습에 찌질하게 매이지 말고 사랑을 가르쳐라. 이웃을 사랑하는 법, 사람을 존경하는 법. 어쩌다가 얘들이 담배피는거 걸리면 학생이 담배피면 안된다는 정론을 내세우면서 좋은기회 잡았다고 실컷 두들겨패지도 좀 말고. 어르고 좀 너그럽게 타이르는 법도 좀 배우고. 사랑으로 대해라. 그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으면 당장 손 떼. 성별, 지위, 나이, 학력과 같은 부차적인 걸로 위에 서서 아이들을 억압하지 마라. 그 아이들과 당신은 동등한 하나의 생명이고 인격체다. 자궁에서 몇 년 일찍 태어난 것으로 잘난척하지 말란 말이다. 단지 당신들이 나이가 많아서 당신들을 존중하는게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존중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이지. 위에 열거한 항목들은 아주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는 이유들이란 말이다. 단지 먼저 태어난 선생이 아니라 스승이 되어라. 부탁이다. 당신들에게서 배울 그 소중한 작은 하나하나의 어린 씨앗들을 위해서.
스승
초등학생 때 교실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떠들다가 선생님께 혼난 일이 있었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유독 크지도 않았는데 나만 부르시더니 교탁에서 교실 문 뒤쪽까지 뺨을 계속 맞으면서 뒤로 물러났었다. 그게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떠든 무리 중에서 촌지를 내지 않은 것은 나 혼자라는 걸 알게되었다. 어머니가 내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니까 그 연유를 아주머니들에게 물으시다가 결국 학교로 가셨고 그 뒤로 그 선생님은 나를 때리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비교적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았다. 선생님들이 좋은 분들이 많으셨다. 중학교 2학년 무렵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되자 선생님들은 갓 공부에 흥미를 가져서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열성을 보이던 나를 특목고(과학고)를 준비하는 아이들 모임에 넣어주셨고 잘 이끌어주셨다. 체력장 때 전교1등을 할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던 나라 체고를 준비하라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할 때 부모님과 많이 싸웠다. 부모님은 내가 외국어고등학교를 가기를 원하셨고, 나는 남고나 집 앞의 가까운 고등학교를 가기를 원했다. 이유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다. 많은 생각 끝에 '외고라면 영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외국어고등학교에 지원을 했다. 각 학교에서 전교 1, 2등 하는 녀석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난 외국어고등학교라면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일 것이라고 기대를 했더니 전혀 반대였다. 과도한 입시열과 학생들에 대한 규제는 숨을 턱턱막혀 질식사할만큼 나를 압도했다.
고1 때 현각스님의 책을 보고 침묵수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1년 동안 말을 부단히도 줄였는데 선생님한테 말이 너무 없다고 끌려가서 혼났다. 아 젠장, 중학교 때처럼 살기 싫은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를 좀 갈고 닦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렇게 놔두지를 않았다.
싸움을 많이 했다. 학교에서는 원래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래도 비교적 착하게 생활해야지라는 생각이었지만 싸움 좀 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건드리는 얘도 별로 없어서 신경쓰기도 싫었다. 학교를 겉돌았다. 입학할 무렵부터 팔씨름 대항전?을 하며 전교를 다돌아서 1등을 했기 때문에 시비를 거는 얘들도 없었다. 야자가 끝나고 나면 중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운동도 하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문제는 선생이었다. 고2 때 교실 뒤에서 친구들과 발차기를 하며 놀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시길래 급하게 들어갔는데 나를 앞으로 부르시더니 '너가 그렇게 발차기를 잘하냐?'하면서 내 발을 잡아서 교실 문앞으로 던졌다. 난 일어나면서 '아, 씨'라고 말하면서 책상에 앉았다. 그냥 가방을 잡고 집으로 가려다가 일 크게 만들기 싫어서 그냥 앉았는데 그 날 뒤로 찍혔다. 그 뒤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지 어느 날 시시콜콜한 두발규정과 같은 이유로 나를 교무실로 끌고 오더니 엎드리게 한 채로 몸 전체를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온 몸에 멍이 다들었는데도 난 정자세로 맞았다. 며칠 뒤 집에서 샤워를 하는데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어머니께서 보실까봐 급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어머니가 내 몸이 다 파래보여서 이상했는지 급히 들어오셨다. 보고 놀라셔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시더니 당장 전화를 거셨다. 그 다음 날 그 선생님은 미안하다며 나한테 물파스를 발라주겠다고 상처를 보여달라면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애걸복걸을 했다. 난 그 모습이 너무 기가 막혀서 그냥 물파스만 받고 나왔다. 스승?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너무도 멀었다. 그럴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난 책속에서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테레사 수녀님도 있었고, 부처가 있었고, 예수가 있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교대에 다니는 녀석인데 아이들이 싫은데도, 그 일이 싫은데도 요새 세상에 이런 철밥통이 어디있냐면서 교사가 그래도 할만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또 얼마전에 고등학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들이랑 이야기하는데 그 선생님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는 말을 하였다. 난 그자리에서 그럴 생각이면 당장 선생님 때려치라고 이야기를 했다. 너같은 놈이 가르치기 때문에 학교 가기 싫었다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당장 그 일 때려치라고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실컷 때려놓고 사랑의 매라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을 많이 보았다.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때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꽃으로도 얘들을 때리지 마라. 행여 그 꽃의 가시가 그 소중한 아이들을 찌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해. 너희가 너무 엉망으로 굴어서 어쩔수 없이 때렸다. 선생님이 이건 미안하다. 하지만 그런 잘못은 저지르지 말아라. 이런 식으로라도. 아이들 너무 규제하지 말고. 귀밑까지 머리를 길렀다고 해서 그 아이가 누구를 해코지하기라도 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게 있냐고. 그런 겉모습에 찌질하게 매이지 말고 사랑을 가르쳐라. 이웃을 사랑하는 법, 사람을 존경하는 법. 어쩌다가 얘들이 담배피는거 걸리면 학생이 담배피면 안된다는 정론을 내세우면서 좋은기회 잡았다고 실컷 두들겨패지도 좀 말고. 어르고 좀 너그럽게 타이르는 법도 좀 배우고. 사랑으로 대해라. 그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으면 당장 손 떼. 성별, 지위, 나이, 학력과 같은 부차적인 걸로 위에 서서 아이들을 억압하지 마라. 그 아이들과 당신은 동등한 하나의 생명이고 인격체다. 자궁에서 몇 년 일찍 태어난 것으로 잘난척하지 말란 말이다. 단지 당신들이 나이가 많아서 당신들을 존중하는게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존중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이지. 위에 열거한 항목들은 아주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는 이유들이란 말이다. 단지 먼저 태어난 선생이 아니라 스승이 되어라. 부탁이다. 당신들에게서 배울 그 소중한 작은 하나하나의 어린 씨앗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