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이원준200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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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농구공을 처음 잡았을 당시 내 나이는 13살이었고-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사회성을 함양할 나이였다.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나의 규칙이었고-

또한 내가 그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것만이-

내가 사회에 원만히 적응해 간다는 증거였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그런 아이로 커 가는 것이 부모님들의 낙이였고-

공부와 관련없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호기심을 갖는 것들은 용납되지 않았던 때였다.

 

사회의 편견들이 그 때가 지나면 누릴 수 없는-

아이들만의 특권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알기까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누구나 겪어 봤을 대한민국 교육부의 압박 아래-

농구는 내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친구가 되어주었고-

처음으로 무언가에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원하는 '최고'가 되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수학보단 비교적 단순하지만 명료한 답을 주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처음 농구와 인연을 맺고 나서-

본격적으로 농구를 하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였나-

당시 NBA 파이널을 비디오 테잎에 리코딩을 하고-

슛 연습을 하기 위해 매일 새벽 학교로 달려 가고-

매주 토요일 오후엔 어김없이 AFKN 방송을 봤다.

물론 Upperdeck 카드수집도 업수이 여기지 않았다.

 

어차피 중학교 땐 연애는 모르고 운동만 줄창 했고-

운동 때문에 쌈 좀 하는 애들이랑은 친했으니까-

농구를 하는 동안 만큼은 누가 더 싸움을 잘하고-

누가 더 인기가 많은지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보다 덩치가 큰 녀석들을 앞에 두고-

나르시즘을 느끼며 슛하는 그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가끔 어릴적 나의 용기와 자신감이 그리워진다-

나이가 20-30살은 족히 되었을 '아저씨'들에게-

결투 신청 마냥 일대일 신청을 해댄 기억이 있으니.

 

아마도 그 때 내 머릿속은 농구공으로 가득 찾으리라-

 

중학교 졸업 땐 농구가 너무 좋아서 농구부가 있던-

명문 고등학교 진학을 심각하게 고려도 해 봤지만-

결국 100% 순수한 코리안 혈통에게 덜미를 잡힌다.

 

해서 일반 인문계 고교 진학 후 농구 동아리에 들면서-

다시 한번 농구와 짠-한 우정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쯤해서 각설하고-

 

농구는 내게 선생님들이나 부모님께서 해 줄 수 없는-

농구만의 독특한 역할을 지금껏 담당해 준 것 같다.

 

옛날에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때문에 농구를 했다면-

이제는 삶의 일부분으로써 농구를 인정한다고나 할까.

 

농구를 통해 증명된 성장과 발육에 대한 효과라던가-

특출난 운동 센스를 발휘하고 싶기 때문이라던가-

혹은 나이스 바디와 탄력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다.

 

물론 일련의 신체 활동에의 목적은 모두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농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미칠 수 있는 열정을 주고-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경쟁할 수 있는 기쁨을 주고-

땀흘려가며 코트를 뛰어다닌 끝에 얻는 승리의 단맛과-

비록 패배하더라도 동료들과의 신뢰감과 우정은 남는다.

 

낯선 사람들과의 게임 중 격렬한 몸싸움이 나더라도-

스스로가 규칙을 지키려는 마음에 알아서들 조정한다.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은 함께 뛰지 못하니까-

만들어놔도 지켜지지 않는 도로교통법과는 다르다.

 

이러한 여러 이유 때문에 나는 농구를 아직도 즐긴다.

다른 일면에 있는 내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사실 난 그렇게 멋진 덩크를 성공시킬 만큼 키가 크거나-

팀을 승리로 이끌만한 특출난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연령대에 따른 농구 림의 높이가 모두 다르듯이-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목표도 점점 높아져 간다.

 

기회라는 공이 그 림을 통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게 공은 있으니 다시 코트로 나가봐야겠다.

 

오늘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