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비가 오고 수요일인 오늘도 비가 올 것이라 일기예보가 있어서 계룡산에 갈지말지 참 갈등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언제 다시 마음을 잡을까싶어 새벽에 집을 나섰다.
산에서 먹을 김밥을 사들고 등산화를 고쳐 매 신으려는데 왠걸...등산화 줄이 뚝 끊어져 버렸다. 길조일까? 높은 산에서 등산화 줄이 끊어졌다면 정말 낭패가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고쳐매고 시외버스틀 타고 유성에 내렸다. 근처 재래시장을 찾아 거금 천냥을 주고 등산화줄을 새로 매었다. 이제부터 계룡산을 오르는 일만 남았구나...102번 버스를 타고 동학사로 향했는데 버스 창문으로 눈앞에 턱 가로 놓인 계룡산은 정말 가슴을 뛰게 했다. 본디 체력이 약한 나는 천천히 산을 오르며 사진을 찍기로 했다. 어느학교인지 M.T.로 계룡산에 온 듯하다. 보통 엠티에 가면 술먹고 나자빠져 방에 쳐박혀 뒹굴거릴텐데 산을 오를 생각까지 하다니...이녀석들은 참 귀엽군...국민학교 졸업후 20년만에 다시보는 동학사는 옛 기억을 새록새록 해 주었다. 동학사의 매력은 대웅전의 문틀이 아닐까 싶다. 꽃모양 화초모양이 각양각색으로 새겨져있어 동학사가 여승들의 사찰임을 확인 시켜주었다. 그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다보면 은선폭포가 나온다. 높이20m의 절벽을 따라 내리꽂히는 폭포는 어제 비때문에 물줄기가 더욱 힘찼다. 정상인 관음봉까지 계속 돌길이 이어져 있었다. 어릴때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이 무거운 돌을 길에다 다 깔아놨을까?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거친숨을 내쉬며 관음봉에 올랐다. 가슴이 뚫리는 듯 상쾌하면서도 전률이 찌릿찌릿했다. 이래서 다들 '계룡산 계룡산'하는구나...저 멀리 삼불봉이 보였는데 그 앞을 자연성능이 이어주고 있었다. 갑사로 내려갈까 아니면 자연성능을 지나 동학사로 갈까하다가 최근에 사귄 지인들 생각에 갑사구경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자연성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자연성능은...
참 아찔하면서도 계룡산의 백미를 맛보여주는 곳이다.
바위가 가파르고 미끄럽기 때문에 마음 단단히 먹고 지나가는게 좋을듯 싶다...
[사찰] 동학사
성덕왕 23년(724년) 상원조사의 발원으로 회의화상이 창건한 동학사는 계룡산국립공원내 동학사지구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東鶴寺라 이름 지어졌으나, 동방이학인 정몽주를 배향 하면서 東學寺라 불리기도 하였다. 경내 대웅전, 숙모전, 삼은각 등 청아한 불각과 3층석탑, 부도 등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문수암, 길상암, 미타암 등이 있다. 비구니승려들이 수행하고 있으며 불교문화원이 있어 매년 비구니승려들을 배출하고 있다.
[문화재자료제57호]동학사삼성각
삼성각은 삼성(칠성·산신·독성)의 탱화를 모신 곳이다.
칠성은 북두칠성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으며 산신은 우리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며 재물을 담당한다. 독성은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이다. 이것은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도교, 토속, 불교 등 여러 신앙요소가 합쳐진 형태이다. 불교 밖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 이름을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하였다.
[문화재자료제58호]동학사삼층석탑
동학사삼층석탑은 동학사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청량사(남매탑이 있는 곳)’라는 암자에서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1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탑신부의 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의 맨 윗돌은 탑신의 지붕돌과 같이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를 두었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적당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통일신라 선덕왕 23년(723) 동학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세워두었다 하나, 탑의 양식이나 다듬은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계룡산 가는 길 part.1 (2008.03.26)
계룡산 가는 길 (2008.03.26)
전날 비가 오고 수요일인 오늘도 비가 올 것이라 일기예보가 있어서 계룡산에 갈지말지 참 갈등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언제 다시 마음을 잡을까싶어 새벽에 집을 나섰다.
산에서 먹을 김밥을 사들고 등산화를 고쳐 매 신으려는데 왠걸...등산화 줄이 뚝 끊어져 버렸다. 길조일까? 높은 산에서 등산화 줄이 끊어졌다면 정말 낭패가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고쳐매고 시외버스틀 타고 유성에 내렸다. 근처 재래시장을 찾아 거금 천냥을 주고 등산화줄을 새로 매었다. 이제부터 계룡산을 오르는 일만 남았구나...102번 버스를 타고 동학사로 향했는데 버스 창문으로 눈앞에 턱 가로 놓인 계룡산은 정말 가슴을 뛰게 했다. 본디 체력이 약한 나는 천천히 산을 오르며 사진을 찍기로 했다. 어느학교인지 M.T.로 계룡산에 온 듯하다. 보통 엠티에 가면 술먹고 나자빠져 방에 쳐박혀 뒹굴거릴텐데 산을 오를 생각까지 하다니...이녀석들은 참 귀엽군...국민학교 졸업후 20년만에 다시보는 동학사는 옛 기억을 새록새록 해 주었다. 동학사의 매력은 대웅전의 문틀이 아닐까 싶다. 꽃모양 화초모양이 각양각색으로 새겨져있어 동학사가 여승들의 사찰임을 확인 시켜주었다. 그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다보면 은선폭포가 나온다. 높이20m의 절벽을 따라 내리꽂히는 폭포는 어제 비때문에 물줄기가 더욱 힘찼다. 정상인 관음봉까지 계속 돌길이 이어져 있었다. 어릴때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이 무거운 돌을 길에다 다 깔아놨을까?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거친숨을 내쉬며 관음봉에 올랐다. 가슴이 뚫리는 듯 상쾌하면서도 전률이 찌릿찌릿했다. 이래서 다들 '계룡산 계룡산'하는구나...저 멀리 삼불봉이 보였는데 그 앞을 자연성능이 이어주고 있었다. 갑사로 내려갈까 아니면 자연성능을 지나 동학사로 갈까하다가 최근에 사귄 지인들 생각에 갑사구경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자연성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자연성능은...
참 아찔하면서도 계룡산의 백미를 맛보여주는 곳이다.
바위가 가파르고 미끄럽기 때문에 마음 단단히 먹고 지나가는게 좋을듯 싶다...
[사찰] 동학사
성덕왕 23년(724년) 상원조사의 발원으로 회의화상이 창건한 동학사는 계룡산국립공원내 동학사지구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東鶴寺라 이름 지어졌으나, 동방이학인 정몽주를 배향 하면서 東學寺라 불리기도 하였다. 경내 대웅전, 숙모전, 삼은각 등 청아한 불각과 3층석탑, 부도 등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문수암, 길상암, 미타암 등이 있다. 비구니승려들이 수행하고 있으며 불교문화원이 있어 매년 비구니승려들을 배출하고 있다.
[문화재자료제57호]동학사삼성각
삼성각은 삼성(칠성·산신·독성)의 탱화를 모신 곳이다.
칠성은 북두칠성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으며 산신은 우리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며 재물을 담당한다. 독성은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이다. 이것은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도교, 토속, 불교 등 여러 신앙요소가 합쳐진 형태이다. 불교 밖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 이름을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하였다.
[문화재자료제58호]동학사삼층석탑
동학사삼층석탑은 동학사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청량사(남매탑이 있는 곳)’라는 암자에서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1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탑신부의 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의 맨 윗돌은 탑신의 지붕돌과 같이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를 두었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적당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통일신라 선덕왕 23년(723) 동학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세워두었다 하나, 탑의 양식이나 다듬은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내용출처는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