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런 (Chicken Run, 2000)

류영주20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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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런 (Chicken Run, 2000)

 

  영국 / 애니메이션, 모험, 코미디 / 84 분 

  감독: 피터 로드, 닉 파크

  (★★★★☆)

 

  2000년 제65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장편애니메이션작품상

  2000년 제26회 LA 비평가 협회상 애니메이션상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은 아이들이 보면 아이들의 눈으로, 또 어른들이 보면 어른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유자재의 눈높이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세대를 뛰어 넘는 의 이 기묘한 특질은, 어른과 아이 모두를 포획하려는 제작사의 상업주의적 마케팅 감각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교훈의 이야기를 소재로 활용한 결과다.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무엇보다 있는 자와 없는 자 모두가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애니메이션. 바로 그점이야말로 의 미덕이자 '아드만' 작품세계의 특징이다.
  의 재미는 의외로 이 영화가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간다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곧 '점토인형극'이라는 기술적 난이도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작품은 영화가 시작된 후 대개는 30분안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게끔 만든다. 마치 잘 짜여진 극영화 한편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얘기인데, 그것은 이 영화가 여느 실사영화 못지 않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다양한 캐릭터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영국 한 시골 양계장에서 살고 있는 암탉 '진저'는 주인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탈주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주인은 알을 낳지 못하는 닭들을 가차없이 처단하는데다 목돈을 마련할 요량으로 이들을 모두 치킨 파이로 만들 계략을 꾸민다. 대학살을 눈앞에 두고 '진저'와 친구들 앞에 전력이 의심스러운 미국 수탉 '로키'가 나타나고 '로키'는 이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 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로키' 역시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들의 탈주 계획은 또다시 물거품이 된다.
  '피터 로드'와 '닉 파크'는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진저'와 '로키', 두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캐릭터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암탉 '뱁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뜨개질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퇴역공군 출신 '파울러'는 수용소 생활에서조차 명예부터 찾는 고집 센 노인 수탉이다. '번티'는 늘 말만 앞세우고 스코틀랜드 출신 엔지니어인 '맥' 또한 항상 수선만 피운다.
  다양한 캐릭터를 갖춘 이들 닭들은 때로는 액션 어드벤처의 감각으로 또 때로는 '코미디'와 '스펙터클'의 묘미로,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눈물겨운 휴먼드라마적인 감동의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탈주 실패로 독방(쓰레기통)에 갇히며 힘겨운 투쟁을 벌이는 진저의 모습은 에서 에 이르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실의에 빠진 닭들을 댄스파티로 위로하는 '로키'의 장난기도 영화적 볼거리를 톡톡이 제공하고 대탈출을 위해 비행선을 만드는 닭들의 피땀 어린 노력은 스팔타커스 노예들의 눈물겨운 반란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압권은 치킨파이 기계안에서 경각에 달린 목숨을 구하기 위해 로키와 진저가 벌이는 필사의 액션 시퀀스다. '아드만'의 제작진들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치밀한 장면 묘사를 통해 세계 최고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뛰어난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아드만 제작진'은 영화에 나오는 80마리의 닭 출연진을 위해 3백마리의 큰 닭과 백30마리의 작은 닭들을 만들었으며 통상 닭 한마리의 깃털을 만드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 또 닭들마다 1초당 24개의 포즈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머리와 팔, 다리, 손가락 등 모든 세세한 움직임을 다 바꿔야 하는 '머리털 서는' 노동이 필요했다. 10초 분량의 작업을 위해 때로는 10일 이상의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이번 작업을 위해 3년 이상의 시간이 투자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소를 불문하고 이 애니메이션을 쉽게 권할 수 있는 이유는 제작진의 끈질긴 노력에 '동정표'를 던지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순진무구한 주제, 곧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열망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도 또 그 반대로 손쉽게 얻어지지도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 영화는 지난 6월 미국 개봉시 아이들을 위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관객들 덕에 1억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국내 개봉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 이 영화가 잘되면 잘될 수록 닭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아이들 때문에 치킨 구이집은 당분간 영업을 쉬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맥도널드가 '진저'와 '로키'의 캐릭터를 이용해 "불쌍한 치킨들 대신에 소고기 구이가 든 햄버거를 많이 먹어 달라"는 광고로 큰 재미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