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1984)

류영주20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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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1984)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1984)


 

  미국 / 드라마 / 90분 / 감독: 짐 자무쉬

  (★★★★★)

 

  1983년 제12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KNF상

  1984년 제37회 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1985년 제 1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월드드라마)

  1985년 제19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작품상

 

  헝가리 아가씨 '에바'가 뉴욕에 사는 건달 친척 '윌리'의 집에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은 착상이 도전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미국 사회의 풍경은 아메리칸 드림, 모든 것이 넘쳐나는 풍요의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 흑백 장편영화는 삭막하고 스산하기조차 한 미국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영화로 청년 감독 '짐 자무쉬'는 1984년의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과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 표범상을 받았다. 그는 단숨에 뉴욕 독립영화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은 미국영화지만 사실 미국영화라기보다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럽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화면이 한 장면을 이루는 길게 찍기, 시선의 비상한 집중을 요구하는 고정된 카메라 스타일, 서로 진정한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관계, 여기저기 떠돌지만 정신적으로 건조한 삶의 조건, 긴 페이드 아웃의 화면전환이 주는 형식의 단절감 등은 무엇보다 대리만족을 주는 이야기체 영화를 중시했던 미국영화의 전통과는 별로 상관없다.
  '자무쉬'는 '빔 벤더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 브레송

' 등의 유럽 영화감독과 일본 영화의 대가 '오주 야스지로' 등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빌려와 황폐한 미국 생활의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영화 표현의 뿌리를 여러 혈통에서 빌려온 셈이다. 그래서 곧잘 '포스트모던'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자무쉬' 영화의 새로움은 유럽영화에서는 이미 상투화한 진술을 미국의 상황으로 옮겨놓은 낯설음에서 온다. 예를 들면 '에바'와 에바의 사촌 오빠 '윌리'가 식탁에서 TV 디너에 관해 대화하는 장면같은 것이다. "티브이 디너 안먹을래?" "안먹어, 배 고프지 않아." "왜 티브이 디너라고 부르지?" "그냥... 티브이를 보면서 먹으니까... 텔레비전말이야." "텔레비전이 뭔지는 나도 알아." "그 고기는 어디서 난거야?" "뭐?" "그 고기는 어디서 난거야?" "쇠고기지 뭐." "쇠고기야? 고기같이 보이지 않는데." "휴... 상관하지마. 어쨌든 여기선 이런 걸 먹는다구. 고기, 야채, 디저트, 그리고 설거지할 필요도 없어." 이런 식의 반복된 대화의 연속과 단조로운 양식은 황폐한 미국생활을 암시하는 놀라운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자무쉬'는 원래 이 영화의 1부인 를 단편영화로 발표했었다. 영화가 평판이 좋자 자무쉬는 두 단락을 더 붙여서 장편영화로 공개했다.
  그러나 1부 '신세계'에 이어 추가된 '일년 후'와 '천국'은 1부의 부연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뉴욕'에서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로 옮겨 다닌다. 이 여정은 야만의 땅에 문명을 심으며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걷던 신화적인 여정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장소이동 모티브에는 더 이상 상징적인 의미가 없다. '클리블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주인공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고 중얼거린다.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저 천국보다 낯선 곳일 뿐이다.
  '자무쉬'는 그러나 이후에 만든 영화들에서 의 신선함에 맞먹는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형식이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는 종래의 미국적인 이미지를 뒤집는데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재미있는 것은 이 관심이 모방과 짜집기와 재구성이라는 1980년대 이후의 양식적 경향 속에서 추구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미국적인 감독이다.